말레이시아 택시는 절대 미터기를 켜지 않았다. 택시를 잡으면 가장 먼저 장소를 얘기하면 택시 아저씨가 가격을 제시했는데 가격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냥 쿨하게 가버리는게바로 말레이시아 택시였다. 이런 말레이시아 택시 덕분에 경찰서까지 갈 뻔했던 적도 있었다.
우리는 페낭힐에서 내려와 기분 좋은 상태로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다. 사실 페낭에서 버스타는건 너무도 싫었는데 버스는 자주 오지 않을 뿐더러 거리는 너무 멀었고, 버스는 낡아서 너무 더웠기 때문에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싶었다. 택시비가 조금 부담이긴 했어도 우리 넷이서 나눠 내면 된다는 생각에 우선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우리는 중심가에서 꽤나 먼 곳인 '마리나 타워'라는 곳에 있었다. 처음에 18링깃으로 흥정을 마치고 택시에 올라탔다. 우리끼리 지나온 얘기도 하면서 기분 좋게 가고 있었는데 멀리서 '마리나 베이'가 보였다. 그러자 택시 아저씨는 '마리나 베이' 다 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무슨 소리냐며 우리는 분명히 '마리나 타워'를 얘기했다고 말하니 택시 아저씨의 말이 가관이었다.
'마리나 베이' 인줄 알았는데 '마리타 타워' 라면 여기서 훨씬 멀다면서 5링깃을 더 받아야겠다고 했다. 우리는 분명 '마리나 타워'라고 얘기하고 택시에 탄거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는 '마리나 베이' 인줄 알았다고 절대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었다.
이해는 한다. 실제로 '마리나 타워'는 좀 더 멀었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마리나 타워'로 18링깃에 흥정했던 것이니 그의 말대로 돈을 주기 싫었다. 아니 어쩌면 그동안 쌓여있던 말레이시아 택시에 대한 불만이 터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우리는 수차례 18링깃이라고 처음에 얘기하지 않았냐며 따졌지만 중국계 택시 기사 아저씨는 완강했다. 우리는 한 발 물러서서 그럼 20링깃 줄테니까 가자고 했다. 하지만 이 아저씨는 무조건 5링깃 더 받아야겠다고 고집을 부리길래 우리는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린 20링깃이상 절대 못주겠다고 했더니 그의 말은 이제 협박으로 변해버렸다.
"너희들 돈을 지불하지 않겠다면 경찰서에 신고할 수 밖에 없어!"
"웃기지말라고! 우리는 분명히 '마리나 타워'라고 얘기했단 말이야!"
"좋아. 그럼 경찰서로 갈 수밖에 없지."
우리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국말이 튀어 나오기도 했다. 아르좀은 한술 더 떠서 경찰서 가자면서 어차피 우린 4명이고 당신은 1명이니까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했다. "Let's go!' 라고 외쳤다.
여태까지 조용히 지켜만 보고있던 엘레나가 이때부터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 엘레나는 여자였지만 갑자기 거칠지기도 했는데 특히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되면 아무도 못 말렸다. 솔직히 우리도 엘레나가 더 무서웠다. 엘레나는 택시아저씨 바로 뒤에 앉았는데 의자를 치면서 그래 그따위로 해봐라, 진짜 말레이시아 택시는 너무 짜증나는데 우리나라로 돌아가면 말레이시아 택시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 다 퍼트리고 다닐 거라는 등의 험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택시 아저씨와 엘레나 둘의 말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솔직히 영어도 잘 못하는데 말싸움에 절대 끼어들 수가 없었다. 택시 아저씨도 지지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한밤중에 택시에서 서로 언성을 높이며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한참을 가더니 오른쪽에 경찰서가 있는 것을 봤다. 내가 "저기 경찰서다!" 라고 소리를 쳤고, 엘레나는 빨리 유턴을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택시 아저씨는 지금 경찰서에 가고 있다고 소리를 쳤다.
그러나 이 아저씨 유턴을 하더니 경찰서를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닌가. 우린 일제히 너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당장 차 안 세우냐고 소리를 질렀다. 당황한 아저씨는 핸드폰을 꺼내 경찰서에 신고한다고 하길래 엘레나는 그의 핸드폰을 뺏고 우리는 일제히 차 문을 열면서 당장 차 안 세울꺼냐고 소리를 질렀다.
겨우 겨우 세운 택시에서 엘레나의 엄청난 공격이 이어졌다. 택시 기사는 처음에는 대들더니 나중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엘레나는 화가 덜 풀렸는지 차의 의자를 손으로 치면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셈이었냐며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때 그 상황을 보지 않았다면 엘레나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것이다. 차를 세워두고 10분을 넘게 화를 내다가 우리는 내리면서 차 문을 쾅 닫고, 오히려 이 택시를 경찰서에 신고해버린다며 핸드폰을 줬다.
아무튼 우리는 돈을 내지 않았지만 이상한 곳에 내려 버린 상태였고 이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우리는 그냥 걸어서 돌아가기로 했다. 사실 무지하게 열받은 상태였지만 경찰에 신고할만큼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다. 걸으면서 그렇게 화를 냈던 엘레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면서 "이거 원... 대체 도움이 안 되는 남자들 뿐이네!" 라고 말했다.
사실 한국 돈으로 따져도 그렇게 큰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돈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이 더 좋다면 아무리 배낭여행이라고 하더라도 돈을 더 낼 수도 있는데 반대로 기분이 나쁘면 100원도 더 내기 싫은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를 경찰서까지 가게 할 뻔했던 택시 덕분에 말레이시아 이미지는 최악으로 치닫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말레이시아에서 딱히 안 좋은 기억은 택시뿐이었던 것 같은데 말레이시아 전체가 별로였던 느낌이다. 이상한 곳에서 내렸던 우리는 지나다는 사람도 없어 길을 물어볼 수 없었기 때문에 1시간을 넘게 헤매다가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안드로이드 어플 <올댓 동남아 배낭여행> 출시로 인해 기존 동남아 배낭여행 글을 전부 수정, 재발행하고 있습니다. 여행기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가다듬기 때문에 약간의 분위기는 바뀔 수 있습니다. 07년도 사진과 글이라 많이 미흡하기는 하지만 어플을 위해 대대적으로 수정을 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시는 유저분들은 <올댓 동남아 배낭여행>을 다운(http://durl.kr/2u2u8) 받으시면 쉽게 여행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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