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539일차, 말라위 '아프리카의 따뜻한 마음'

말라위에서는 항상 이동이 문제였다. 상대적으로 나라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보다 이동하는데 훨씬 오래 걸렸고 힘들었다. 은카타베이(Nkhata Bay)에서 센가(Senga)로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버스를 알아보지 않고 출발 당일이 되어서야 떠나겠다고 짐을 챙겨 나왔는데 센가로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없었다. 그들의 말로는 은코타코타(Nkota Kota)로 먼저 간 뒤 그곳에서 다른 미니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미니버스 와이퍼에 생선을 매달아 놓은 게 흥미롭다. 아무래도 비린내 나는 생선을 들고 탈 수 없으니 와이퍼에 매달고 달린다.

늘 그렇듯 말라위 미니버스는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1시간 동안 사람이 다 차길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은코타코타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이었다. 여기서 센가로 가기 위해서는 살리마(Salima)라는 곳으로 먼저 가야 했는데 이대로 미니버스를 타게 되면 한밤 중에 도착할 게 뻔했다. 그들은 1시간 반이면 살리마에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미니버스에 올라탄 사람은 나를 포함해 현재 남아공에 살고 있다는 말라위 여자까지 딱 2명이었다. 정원 12명인 미니버스에 20명 이상 태우는 말라위에서 도무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어 이곳에서 하루 묵기로 결정했다. 가까운 곳에 있던 싸구려 숙소에 체크인하고 반대편 식당에서 질긴 치킨으로 저녁을 해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정전이다. 3시간 동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지루함을 이겨내야 했다.

다음날 폭우를 뚫고 살리마를 거쳐 센가에 도착했다. 나름 유명한 관광지일 거라는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완전 시골마을이었다.

해변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들을 보자 나는 왜 바닷물에 빨래를 헹구고 있지?, 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했다. 순간 말라위가 내륙국이라는 것도 잊었나 보다. 파도가 치고 끝없이 펼쳐진 해변이 있는 이곳 역시 말라위 호수라는 사실도 잊었다 보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있을 때 소꿉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살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즈음에는 호숫가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대부분 고기를 낚은 어부와 물고기를 사려는 상인들이다. 이 동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는 줄 몰랐다.

센가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기대했던 호수는 별볼일 없었고, 오히려 동네를 돌아다니는 게 더 여행자의 구미를 당겼다. 말라위에서는 대체로 기독교를 믿는 편이지만 이 지역만큼은 유난히 이슬람을 믿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누구 말로는 90%라고 하던데, 아무튼 아주 약간이지만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시장을 가로지르니 사람들이 전부 나를 쳐다봤다. 낯선 외국인의 등장에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이내 웃음을 짓거나 인사를 건넨다. 아프리카 최빈국 말라위, 그곳이 좋았던 이유는 이런 사람들 때문이다.

예상했던 관광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반대로 평범한 삶의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센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생선을 올려 놓고 그대로 햇빛에 말리는 곳이었다. 미니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가끔 호숫가에서 생선을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긴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것도 대규모로 생선을 말리는 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사진 찍는 것을 거부할까봐 아예 카메라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이튿날에는 아예 카메라를 꺼내 들고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한 후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는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정중하게 물어봤다. 나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대부분 흔쾌히 응했다. 사실 말라위는 사용하는 언어가 10개가 넘는 것처럼 지역마다 색깔이 매우 다른데 센가에서는 사진 찍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물론 나는 사진 말고도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대규모로 생선을 말리는 곳이다 보니 여기저기 땅에 떨어진 생선도 많다. 어떤 아이들은 그 생선을 열심히 줍고 다녔다.

여행 중이라고 대답한 나에게 말라위 어떠냐고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난 조금 고민하는 척 하다가 말라위 사람들 때문에 마음에 든다고 하자, 그들은 씨익 웃으며 “그래서 말라위의 별명이 아프리카의 따뜻한 마음(The Warm Heart of Africa) 아니겠어?” 라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해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섬이 있는데 가끔 보트를 타고 저 섬에 가지 않겠냐고 꼬시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술집에서 목마르다는 위한 핑계로 낮술을 했다. 현지인이 추천해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로컬 맥주(맥주라고는 했지만 도무지 맥주 같지 않았던)를 마셔봤는데 이건 도저히 내 타입이 아니었다. 막걸리처럼 불투명한 색깔인데 맥주 맛은 아니었고, 안에는 뭔지도 모르는 가루가 가득한 정체 모를 술이었다. 추천해준 성의를 봐서 몇 모금 더 마셨지만 난 이내 평범한 이들에게 어울리는 맥주를 찾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이들은 사진을 엄청 좋아했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을 보자 먼저 다가와 사진을 찍어 달라고 난리였다. 다만 아이들은 사진 찍으려 할 때마다 움직이거나 앞으로 다가와 사진 찍는 게 쉽지 않다.

골목을 지나 센가의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카메라를 들자 아이들이 몰려왔다. 앉아서 셔터를 누르는 사이 뒤에서 어떤 아줌마가 노발대발 화를 냈다. 아이들이 황급히 떠나는 것을 보면 사진을 찍는다고 화를 내는 것 같았다. 나와 함께 있던 말라위 친구는 외국인과 소통할 줄도 모른다며 무작정 화를 내는 아주머니에게 오히려 뭐라 했다. 사실 내가 먼저 찍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그렇게 격하게 화를 낼 필요도 없었는데. 아무튼 센가에서는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된 후로는 먼저 물어보고 사진을 찍었다.

마을은 평화롭고 조용했다.

다음 목적지인 케이프맥클리어(Cape Maclear)는 센가에서 거의 직선상에 있어 배를 타고 가면 금방 도착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여러 사람에게 배를 탈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쌌다. 여기서 배를 타면 100달러 정도를 줘야 한다고. 대체 누가 100달러씩이나 내면서 배를 타겠냐고 반문해도 딱히 제대로 된 해명을 들을 수는 없었다.

결국 다음날 배가 아닌 미니버스를 타고 케이프맥클리어로 가기로 결정했다. 가까워 보이지만 상당히 멀리 돌아가는 거리라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하루 종일 이동하는 고생길이었다. 미니버스를 타고 살리마로 이동한 후 살리마에서 케이프맥클리어 방향으로 가는 차를 탈 생각으로 히치하이킹을 계속 시도했다. 도로에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는데 히치하이킹이 될 리가 없었다. 배낭을 메고 1시간 정도 걸었을 때 미니버스를 탔다. 2시간 뒤 몽키베이(Monkey Bay)로 가는 미니버스를 탔고, 그 후에는 케이프맥클리어로 가는 트럭을 탔다. 트럭 뒤에 탔을 때는 갑자기 비가 내려 커다란 천막을 뒤집어 쓰고 달렸다.

몽키베이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 혹은 짐을 채우느라 시간을 계속 허비했다. 내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돈을 내고 이동하는데 뭔가 짐짝 취급을 받는 느낌이었다.

케이프맥클리어로 가는 도중에는 고장난 차를 끌어주느라 더 지체됐다.

그렇게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케이프맥클리어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되었다. 센가에서 아침 9시에 출발했으니 7시간이나 걸렸다. 어디서 지낼지 정하지도 않아 도착하자마자 론리플래닛을 보고 나름 괜찮을 것으로 보이던 팻 몽키 롯지(Fat Mokeys Lodge)를 찾아갔다. 호수 근처에 있는 확실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숙소였다. 도미토리는 10달러였으나 손님이 없었는지 바로 깎아준다는 이야기부터 나왔다. 5000콰차까지 떨어졌으나 내가 마지막으로 더 깎아줄 수 있냐고 묻자 의외로 쉽게 “유 해피, 아임 해피.”라는 말을 하며 4000콰차로 성사됐다.

말라위 어딜 가나 마찬가지였지만 케이프맥클리어도 내가 상상한 유명 관광지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지내는 숙소를 제외하고 시골 마을 한복판에서 지내는 것처럼 사람들의 일상이 나를 맞이했다. 호수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식당이 어디 있냐고 묻다가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시장으로 왔는데 나를 본 아이들은 식당까지 쫓아왔다.

센가에서 봤던 그 섬이 여기서도 보인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 배를 타고 건너올 수 없었다니 이상할 뿐이다.

케이프맥클리어에서 물장구를 치고 늘어져 지내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건 마을 한 바퀴 도는 게 전부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시골 마을에서 동네를 걷는데 기분은 점점 좋아졌다. 그건 역시 말라위 사람 덕분이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 사람부터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꼬마 아이들이 나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센가에서는 사진을 싫어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는데 여기서는 서로 사진 찍어달라 했다.

‘므중구(주로 백인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들 눈에는 외국인은 전부 피부가 하얗기에)’의 등장에 아이들이 가장 신났다.

마침 집에서 문을 열고 나를 보던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게 됐다. 여행 중이라는 말에 환영한다는 말로 화답을 했다. 역시 이 아저씨도 ‘아프리카의 따뜻한 마음’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내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말에는 왜 안 되냐며 흔쾌히 응해줬다. 친절한 아저씨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포토프린터로 사진을 인화해 선물로 줬다.

동네 이발소는 흥미로웠지만 역시 내 머리를 자르기에는 무리인 것 같았다.

동네를 조금 걸었을 뿐인데 더운 날씨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더울 때는 콜라다. 아프리카에서 거의 매일 콜라를 마시는 게 좀 문제긴 하지만 이렇게 더운데 콜라를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작은 상점에 앉아 콜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했다. 동네 꼬마들이 이 상점에 와서 10콰차(약 15원)를 내고 불량식품을 입에 물고 가는 모습이 어렸을 때 나를 보는 것 같아 재밌었다.

숙제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 왠지 모를 흐뭇함이 밀려왔다.

동네 아이들은 어찌나 나를 따라 다니던지 내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사실 내가 케이프맥클리어에 무엇을 기대하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즐거웠다.

이렇게 함박 웃음을 짓는 아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호숫가로 가면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거기에 작은 배에 몸을 싣고 낚시하는 아이들이 케이프맥클리어의 그림을 만든다.

내가 지내던 숙소의 식당은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할 정도로 비싸 항상 다른 데서 밥을 먹었다. 다시 밖으로 나가 마을을 걷던 도중 또 다른 아이들 무리를 만났다. 그 중 어떤 아이는 풀뿌리에 비닐봉지를 씌우고는 인형처럼 가지고 다녔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니 반가운 친구가 보였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4번째 만남인 요르단계 독일인 이보(실제 이름은 이브라힘)였다. 이보는 나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안는 것으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맥주 4병을 해치우며 서로의 여행담을 쏟아냈다.

말라위의 옛수도였던 좀바(Zomba)로 이동하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다행히 케이프맥클리어에서 운이 좋게도 나가는 차를 히치하이킹해서 쉽게 몽키베이로 갔고, 그곳에서 좀바로 가는 미니버스를 탔다. 다만 좀바에 도착하고 나서 숙소를 찾는 과정이 고생이었다. 처음 찾아간 숙소는 여행자가 몇 명 보이는 곳이었으나 도미토리가 10달러라는 말에 나왔는데 다른 곳은 더 터무니 없이 비싸고 고급스러운 곳뿐이었다. 아예 현지인들만 묵는 싸구려 숙소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1시간 넘게 산을 오르내리다가 10달러짜리 숙소로 돌아가 체크인을 했다. 다른 나라에서 10달러는 아무 것도 아닌데 말라위를 여행하는 동안 10달러짜리 숙소에서 지내본 적이 없다. 가장 비싼 곳이었다.

탄자니아에서 만났던 한국인 여행자 병길씨가 마침 블렌타이어로 온다고 연락이 와 좀바로 오라고 꼬셨다. 그랬더니 다음날 아침 정말로 왔다. 우리는 좀바 시내를 걷다가 고원을 향해 걸었다. 여기서 정말 신기하고도 재밌는 일이 있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히치하이킹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녀가 우리를 태워줬다. 아주 잠깐 소개를 하는 과정에서 대만이라는 말과 현재 릴롱궤에 살고 있다고 해서 혹시 카우치서핑을 하지 않냐고 이름이 미쉘이 아니냐고 했는데 놀랍게도 맞았다. 미쉘은 내가 며칠 전에 카우치서핑에서 호스팅 요청을 보낸 사람이었다. 아쉽게도 방향이 달라 5분만에 내리게 되었지만 나중에 릴롱궤에 오면 연락해달라고 전화번호를 받았다. 세상은 이렇게 좁다.

지름길이라고 했던 길은 정말 가파르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풀리고 숨이 넘어갈 것 같아 몇 걸음 걷고 쉬고, 다시 또 쉬었다. 이런 길에서 자신의 키보다 몇 배나 큰 나무를 머리에 지고 내려오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지름길이 아닌 지름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니 도로가 나왔다. 차라리 도로를 따라 올라오는 게 더 빠르겠다는 말을 하며 걸었는데 어울리지 않은 고급 호텔이 보였다. 관광객이 있기는 한 것인지 우리를 보자 기념품이나 과일을 파는 사람들이 달려왔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냥 뿌리치고 갈 텐데 산딸기가 눈에 들어왔다. 가득 주는데 1500원 정도였다.

잠깐 음료를 마시러 들어갔던 호텔에서 쉬다가 갑자기 이곳의 하루 숙박료가 궁금해졌다. 난 80달러, 병길씨는 50달러쯤 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그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120달러였다. 다른 나라에서 120달러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는데 말라위라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ATM에서 한 번에 인출할 수 있는 돈은 4만콰차, 우리나라 돈으로 약 5만원 정도다. 게다가 1000콰차가 가장 높은 지폐니 4만콰차를 인출하면 무려 40장이 나오게 된다. 물론 대부분 돈이 있는 사람은 달러나 카드로 계산을 하겠지만 이곳의 가장 저렴한 방의 요금인 120달러를 말라위 콰차로 낸다고 생각해 보면 ATM에서 몇 번이나 인출을 해야 하고 또 100장이 넘는 현금을 들고 와야 한다. 그런 상상을 하자 나는 여기서 묵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고원 내 깊숙한 곳에 있는 폭포까지 가려고 했으나 올라오는데 시간을 너무 허비해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댐이 있어 잠시 둘러봤다.

내리막길이기는 해도 내려가는데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지나가는 차를 히치하이킹했는데 운이 좋게도 트럭 한 대가 멈췄다. 나무를 가득 싣고 가는 트럭이라 우리도 짐처럼 뒤에서 실려가는 모양새였지만 금방 산 아래까지 내려왔다. 무엇보다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와서 다행이었다.

좀바에서 약 1시간 거리에는 말라위 제 2의 도시 블랜타이어(Blantyer)가 있다. 처음에는 나름 도시의 모양새를 갖췄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나 30분이면 다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카우치서핑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마도 혼자 여행했지만 혼자가 아니었던 적이 많아서 그랬을지도. 아무튼 블랜타이어에 있을 때는 카우치서핑을 통해 만난 독일인 크리스 아저씨네 집에서 지냈다. 도심에서 거리가 멀다는 게 조금 문제이긴 했지만 이틀간 편하게 지냈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이보에게 말라위 사람들의 평균 임금이 24달러라는 것을 들었지만, 여기서 살고 있는 크리스 아저씨의 말을 빌면 이 집에서 일하는 매니저도 30달러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30달러면 내가 말라위 ATM에서는 한 번에 4만콰차 밖에 인출할 수 없다고 불평하던 그 돈보다도 적은 액수다. 아프리카의 최빈국이라는 말을 조금 실감했다.

주말이라 블랜타이어 시내는 매우 조용했다. 시내를 조금 걷다 유일한 볼거리로 생각되는 오래된 교회, 성 미카엘과 모든 천사들의 교회(St.Michael's and All Angels Church)로 향했다.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교회이고, 전에 독특한 모습의 사진을 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실제로 보니 규모도 작고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다.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Lilongwe)로 이동할 때는 악사 버스를 탔다. 말라위에서는 처음이었던 고급 버스였다. 가격은 일반 버스의 두 배 정도였으나 확실히 좌석도 넓고 빵과 음료를 주는 등 비싼 값을 했다. 무엇보다도 승객이 다 차지 않아도 거의 정시에 무조건 출발했다.

릴롱궤는 말라위 수도라 분명 큰 도시이긴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쇼핑센터에는 사람이 많은데 그곳을 벗어나면 영락 없는 시골마을이고,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다 보면 또 다른 쇼핑센터가 나왔다. 마치 쇼핑센터를 중심으로 도시 구역이 나눠진 것 같았다.

어떻게 서로 알게 되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인스타그램으로 소식을 받던 재선씨를 만났다. 말라위에 온지 이제 2주째라 거의 한 달간 여행한 나보다도 신참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1년간 이곳에서 봉사를 할 예정이라 나보다 보고 듣는 건 훨씬 많아질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어색할 법도 한데 점심을 먹으며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좀바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다가 우연히 만난 미쉘을 릴롱궤에서 다시 만났다. 3일간 미쉘의 집에서 지내면서 한 달간의 말라위 여정을 잘 마무리 하나 싶었는데 마지막 날 몸이 이상했다. 열이 조금 있었고 몸은 무거워 평소와는 분명히 달랐다. 이때만 하더라도 내가 죽을 것처럼 그렇게 아프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글은 여행 중에 현지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도움이 되었거나 마음에 든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저를 응원(클릭)해 주실 수 있습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배낭여행자에게 커피 한 잔 사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