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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잠이 들었을 무렵 밖에는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장대비가 쏟아진다고하는 표현이 생각날 정도로 엄청난 양의 비가 지붕을 두들겼다. 잠결에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내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정말 비가 오긴 왔나보다. 아직은 비가 온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이긴 했는데 이렇게 아침이 되자 비가 그치고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신기했다. 이후에도 라오스에서는 매일 새벽에 비가 왔을정도로 비가 자주 왔는데 정말 신기한 것은 아침이 되면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곤 했다.


짐을 챙겨 슬로우보트를 타러 나갔다. 거리를 내려가다 곳곳에서 바게트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는 아침으로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자고 해서 전날 미리 흥정을 했던 곳에서 1개당 8000킵(800원)에 샌드위치를 샀다.

슬로우보트가 8시에 출발한다고해서 8시쯤에 맞춰서 내려왔더니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이 반 이상이었다. 나머지 사람들 놓고 가려나 싶었지만, 보트는 출발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첫날 슬로우보트 출발이 1시간가량 늦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내 예상은 적중했다. 9시가 넘어서야 겨우 출발하는 것이었다.


이분들은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배가 출발하기 무섭게 배고프다고 사온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하긴 원래 아침 먹을 생각으로 산 것이니깐 제대로 먹는 셈이다. 아침으로는 이 샌드위치는 적당했다.


정말 작은 마을 박벵이었지만 마음에 들었던 박벵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박벵은 스피드보트를 타게되면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슬로우보트를 타야만 거쳐갈 수 있는 마을이었다.

라오스의 어느 곳을 가도 마찬가지였지만 이곳은 더 볼만한 것이 없었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500킵을 깎으려고 별의별 애교를 부르며 질긴 꼬치를 먹었던 것이나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만난 꼬마 아이에게 예쁘다고 하니 수줍어하는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이제 이 작은 마을을 벗어나 다시 메콩강을 따라 보트는 유유히 흐르기 시작했다. 또 다시 하염없이 메콩강을 따라 흘러갔다. 슬로우보트도 나름 느리다고 생각되지 않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을 보면 메콩강이 정말 길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루앙프라방까지는 정말 멀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출발하고나서 배고픈 나머지 나 역시 바게트 샌드위치를 입에 덥썩 물었다. 배고프고 심심하고 음악도 맨날 똑같은거 들으니 지겹기만 했다.


메콩강을 따라 이동하는 중간중간에 보이는 마을들은 오지라고 느껴질만큼 외딴 곳에 떨어진 곳들이었다. 그런데 메콩강과 어우러진 모습을 보니 신비롭게 보였다.


슬로우보트가 더 느린 이유는 바로 중간중간에 사람들을 내려주기 때문이다. 작은 배를 타고 폴짝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하나 하나 그 사람들의 생활이자 살아가는 모습이기에 더욱 주의깊게 바라본 것 같다.


집이 좀 부실해 보인다. 혹시 비가 엄청나게 오면 무너지지는 아닐까 괜한 걱정을 해본다.


슬로우보트가 잠시 멈추는줄 알고 아이들이 내려왔다. 아이들은 옷감 혹은 스카프로 보이는 아무튼 뭔가를 팔려고 내려온듯 했다. 우리도 그랬긴 했지만 귀여운 아이들을 바라본 외국인들은 신기한듯이 쳐다보고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배는 근처에서 머물지 않아 아이들은 우리 배가 지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봐야 했다.


이제 사람들이 슬슬 미쳐가기 시작한다. 슬로우 보트의 의자는 딱딱한 나무로만 이루어져있었기 때문에 1~2시간은 참을 수 있어도 그 이후로는 서서히 압박이 느껴진다. 게다가 자리도 좁기 때문에 앉아있는 것보다 서있는게 편할 정도였다. 결국 저렇게 바닥에 누워 자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는 루앙프라방을 향해 가던 슬로우보트 안의 모습은 이랬다. 어제처럼 여전히 맥주를 마시며 서서 놀고 있던 사람, 아예 바닥에 누워버린 사람, 앉아서 자보려고 온갖 자세를 다 취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함께 여행했던 상민이형과 경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민이형은 우리가 먹었던 쥬스병을 베개삼아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해보려고 노력을 했다. 나도 중간 중간 잠이 들긴 했는데 아무리 자세를 취하려고 해도 기댈 곳이 하나도 없어 오래 잠이 들 수는 없었다. 음악을 듣는 것도 이젠 한계였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이런 마을은 이미 여러 곳을 지나가서 이젠 별 감흥이 떨어진 상태였다.


얼마나 더 갔을까? 갑자기 주변 풍경이 바뀌는 것을 눈치챘다. 거대한 바위산을 지나 뻥 뚫린 넓은 공간으로 나온 것이다. 사람들도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형 지물만 가지고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금방이라도 루앙프라방에 도착할 것만 같았다.


아름다운 메콩강과 하늘은 계속해서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흙색 메콩강과 절묘하게 조합된 푸른색 하늘과 하얀 구름은 카메라로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느덧 시야에 건물이 많이 보이자 사람들은 일제히 "루앙프라방이다!" 라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슬로우보트를 타고 8시간동안 달린 끝에 라오스의 제 2의 도시 루앙프라방에 도착한 것이다. 굳어있던 허리를 펴고, 무거워진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슬로우보트를 타고 메콩강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배고프고 엉덩이 아픈 우리에겐 빨리 내리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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