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로 날아가 처음으로 시작한 일이 포도 피킹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호주로 날아가 농장을 많이 가는데 소위 대박을 꿈꾸며 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거야 나도 경험해 보고서야 돈 버는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쨋든 나의 경우는 참 우여곡절이 있었고, 초기에는 텐트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일을 할 수 있었다. 일을 할 수 있다는건 호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호주의 농장은 대부분 규모가 무척 컸다. 내가 세인트조지에 있었을 당시의 포도 농장의 규모는 피킹하는 사람만 200명이 넘었을 정도였으니 왠만한 기업 못지 않다. 물론 사람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가 피킹할 때이다.
포도 농장의 하루 일과는 매우 이른 시각부터 시작되었다. 세인트조지에 있었을 때가 12월이었으니 호주의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그래서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6시, 한참 더울 때는 5시 반에도 했었다.
6시부터 일을 시작하니 아침은 5시 20분정도에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으면서 출근 준비를 하고, 차를 타고 농장으로 향한다. 농장의 거리는 차로 약 15분 거리에 있었다. 대낮에는 찜통처럼 더운데 아직 한 여름이 아니어서 그런지 오전에는 너무 춥게 느껴졌다.
포도가 다른 작물에 비해 덜 힘들다고는 하지만 확실히 초반에는 적응하느라 힘들긴 했다. 대낮에 하루 종일 포도만 따는데 돈도 괜찮게 번다라고 생각하면 쉽게 생각하기 쉬운데 의외로 포도는 손질이 많이 가는 작물이었다. 피킹용 가위로 포도의 썩은 부분이나 작은 부분을 잘라내야 하는데 이걸 얼마나 빨리 하느냐에 따라 실력이 판가름 났다.
또 덥다 보니 체력적으로 지치기 쉬웠다. 12월이 초여름이기는 했지만 대낮에는 35도까지 훌쩍 올라가버리는데 입이 턱 막혀버릴 정도로 더웠다.
커다란 포도밭 하나를 베이라고 부르는데 이 농장은 이러한 베이가 20개 가까이 있었다. 하루 일과는 트롤리라는 수레를 끌며 포도를 피킹한 뒤 박스에 담는 작업을 하는 단순한 노동이었다.
피킹 초기에는 포도가 익지 않은 것과 익은 것을 구별해야 했고 그 이후에는 포도가 썩었는지 안 썩었는지 구별하는게 매우 손이 많이 갔다. 여기 농장 자체는 나쁘지는 않았지만 흉년이었는지 12월 중순부터는 품질자체가 그리 좋지 않아서 손질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포도만 좀 더 좋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을 하면서 포도를 많이 따먹곤 했다. 초기에 피킹했던 포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청포도의 종류였는데 껍질채 먹는 종이었다. 맛은 무척 달콤하다. 일을 하면서도 농약이 묻어있어도 막 먹기도 했는데 문제는 포도를 먹으면 갈증이 너무 생겨 일을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 하는데 너무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포도는 거의 먹지 않았다. 가뜩이나 물을 너무 많이 먹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일을 하면서 하루에 1.5리터가량 마셨었다.
끝도 없는 포도였지만 그냥 막 피킹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이 있다. 처음에는 색깔이 노랑빛이 나는 포도를 피킹하고, 그 이후에 포도가 익으면 나머지를 피킹을 했다.
사실 농장에 일하면서 이렇게 여유 부릴 시간은 없다. 누군가는 일은 안하면서 사진 찍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딱 한 번 초기뿐이었다. 내 영상에 쓰일 동영상을 촬영하고 싶어서 가지고 갔던 것이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일하는 모습을 촬영했었다.
농장에서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살은 까맣게 그을렸고, 온 몸이 땀투성이로 그리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게 고된 하루가 끝나면 캐러반파크로 돌아온다. 보통 3시정도 되었는데 씻고 나면 그늘을 찾아 다녀야 했다. 세인트조지에서 텐트생활을 2주~3주정도 생활했는데 항상 일하고 돌아온 후에 쉴 곳이 없었다. 대낮에 텐트 안에 들어가서 찜질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깐.
저녁에는 밥을 먹고 난 후 다음 날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 이 때는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어서 항상 밥에 햄 몇개 아니면 김치볶음밥이 주류였다. 그나마 김치볶음밥도 김치가 있을 때 가능했던 요리였다. 하루 일과는 이렇게 도시락을 만들고 물을 얼린 뒤 9시나 10시에 취침으로 끝이 났다.
호주의 농장은 대부분 규모가 무척 컸다. 내가 세인트조지에 있었을 당시의 포도 농장의 규모는 피킹하는 사람만 200명이 넘었을 정도였으니 왠만한 기업 못지 않다. 물론 사람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가 피킹할 때이다.
포도 농장의 하루 일과는 매우 이른 시각부터 시작되었다. 세인트조지에 있었을 때가 12월이었으니 호주의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그래서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6시, 한참 더울 때는 5시 반에도 했었다.
6시부터 일을 시작하니 아침은 5시 20분정도에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으면서 출근 준비를 하고, 차를 타고 농장으로 향한다. 농장의 거리는 차로 약 15분 거리에 있었다. 대낮에는 찜통처럼 더운데 아직 한 여름이 아니어서 그런지 오전에는 너무 춥게 느껴졌다.
포도가 다른 작물에 비해 덜 힘들다고는 하지만 확실히 초반에는 적응하느라 힘들긴 했다. 대낮에 하루 종일 포도만 따는데 돈도 괜찮게 번다라고 생각하면 쉽게 생각하기 쉬운데 의외로 포도는 손질이 많이 가는 작물이었다. 피킹용 가위로 포도의 썩은 부분이나 작은 부분을 잘라내야 하는데 이걸 얼마나 빨리 하느냐에 따라 실력이 판가름 났다.
또 덥다 보니 체력적으로 지치기 쉬웠다. 12월이 초여름이기는 했지만 대낮에는 35도까지 훌쩍 올라가버리는데 입이 턱 막혀버릴 정도로 더웠다.
커다란 포도밭 하나를 베이라고 부르는데 이 농장은 이러한 베이가 20개 가까이 있었다. 하루 일과는 트롤리라는 수레를 끌며 포도를 피킹한 뒤 박스에 담는 작업을 하는 단순한 노동이었다.
피킹 초기에는 포도가 익지 않은 것과 익은 것을 구별해야 했고 그 이후에는 포도가 썩었는지 안 썩었는지 구별하는게 매우 손이 많이 갔다. 여기 농장 자체는 나쁘지는 않았지만 흉년이었는지 12월 중순부터는 품질자체가 그리 좋지 않아서 손질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포도만 좀 더 좋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을 하면서 포도를 많이 따먹곤 했다. 초기에 피킹했던 포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청포도의 종류였는데 껍질채 먹는 종이었다. 맛은 무척 달콤하다. 일을 하면서도 농약이 묻어있어도 막 먹기도 했는데 문제는 포도를 먹으면 갈증이 너무 생겨 일을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 하는데 너무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포도는 거의 먹지 않았다. 가뜩이나 물을 너무 많이 먹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일을 하면서 하루에 1.5리터가량 마셨었다.
끝도 없는 포도였지만 그냥 막 피킹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이 있다. 처음에는 색깔이 노랑빛이 나는 포도를 피킹하고, 그 이후에 포도가 익으면 나머지를 피킹을 했다.
사실 농장에 일하면서 이렇게 여유 부릴 시간은 없다. 누군가는 일은 안하면서 사진 찍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딱 한 번 초기뿐이었다. 내 영상에 쓰일 동영상을 촬영하고 싶어서 가지고 갔던 것이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일하는 모습을 촬영했었다.
농장에서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살은 까맣게 그을렸고, 온 몸이 땀투성이로 그리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게 고된 하루가 끝나면 캐러반파크로 돌아온다. 보통 3시정도 되었는데 씻고 나면 그늘을 찾아 다녀야 했다. 세인트조지에서 텐트생활을 2주~3주정도 생활했는데 항상 일하고 돌아온 후에 쉴 곳이 없었다. 대낮에 텐트 안에 들어가서 찜질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깐.
저녁에는 밥을 먹고 난 후 다음 날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 이 때는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어서 항상 밥에 햄 몇개 아니면 김치볶음밥이 주류였다. 그나마 김치볶음밥도 김치가 있을 때 가능했던 요리였다. 하루 일과는 이렇게 도시락을 만들고 물을 얼린 뒤 9시나 10시에 취침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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