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의 묘지를 둘러보고 온 뒤에 가이드를 따라 이동한 곳은 전쟁박물관이었다. 다만 예상치 못하게 입장료가 있었다. 60밧(약 2000원)이었나? 어쨋든 그리 큰 돈은 아니니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다만 투어 비용에 이런 것들은 다 포함되어 있을 줄 알았다.
전쟁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도마뱀이었다. 아니 이구아나라고 해야하나?
눈동자를 살짝 굴리면서 주위를 살피고는 느릿느릿 움직이는데 무척 귀여웠다. 설마 물지는 않겠지?
깐짜나부리는 영화 '콰이강의 다리' 덕분에 유명해진 곳이다. 당시의 역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군이 물자 보급을 위해 태국과 미얀마를 가로지르는 죽음의 철도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 강제적인 노역으로 현지 주민은 물론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던 영국군도 포함되었다. 강제적인 노역에 어떠한 대우가 있을리가 없었다. 당시 1만 6천명 이상이 굶어죽거나 맞아 죽었다고 한다.
아마도 당시에 사용하던 자동차들인 것 같다.
그 동안 호주, 베트남에서 전쟁박물관을 둘러 본 적이 있어 그 나라의 전쟁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총 길이 417km의 거리를 단 18개월만에 완성시켰다고 한다.
이 전쟁박문관은 상당히 미로처럼 복잡하게 구성되어있었다. 지하로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올라갔다가 옆 건물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렇게 전쟁 당시의 사진을 보여주는가 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품들도 있어서 약간 이상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전쟁박문관이긴 했지만 전쟁박물관다워 보이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용이 무척 귀여워보여서 찍었다.
당시의 태국 왕인듯 보이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까 전의 그녀석 여전히 입구 앞에서 있었다. 사실 이 전쟁박문관에서 약 30분정도 구경했는데 작은 돈이었던 60밧도 아까울 정도였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박물관은 아니었다.
입구 앞에는 당시에 달렸던 열차로 보이는 것이 전시가 되어있었다.
전쟁박물관이 관람을 마치고 다시 걸어서 이동하는 도중에 길가에서 호랑이를 볼 수 있었다. 새끼호랑이였지만 한 성질 하던 녀석으로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던 상품이었던 것이다. 가격은 100밧으로 그렇게 비싸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사치가 분명했기 때문에 저 아저씨를 대신 찍었다.
조금 이동하니 모습을 드러난 철교는 거의 그림이었다. 사진을 찍자마자 그림같이 나오는게 너무나 아름다웠는데 '죽음의 철도'라는 사실이 너무나 모순되던 순간이었다.
확실히 이 다리는 방콕 근교의 관광지라서 그런지 많은 관광객들이 걷고 있었다. 깐짜나부리 투어의 가장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이 다리를 보기 위해서 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아래에서는 보트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마도 보트를 타고 강을 따라 이동하는 투어가 있는 것 같았다.
정말 그림과도 같은 풍경이 내 눈 앞에 펼쳐져있었다.
그런데 이 좁은 다리 위에는 작은 열차가 다니고 있었다. 마주오는 열차를 피해서 아슬아슬하게 서있어야 했다.
철교 끝까지 가니 한 할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 장소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고, 우리는 그 선율에 이끌려 잠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해진 곳이지만 사실 이 곳은 더 많은 아픔들이 숨어있는 장소이다.
전쟁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도마뱀이었다. 아니 이구아나라고 해야하나?
눈동자를 살짝 굴리면서 주위를 살피고는 느릿느릿 움직이는데 무척 귀여웠다. 설마 물지는 않겠지?
깐짜나부리는 영화 '콰이강의 다리' 덕분에 유명해진 곳이다. 당시의 역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군이 물자 보급을 위해 태국과 미얀마를 가로지르는 죽음의 철도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 강제적인 노역으로 현지 주민은 물론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던 영국군도 포함되었다. 강제적인 노역에 어떠한 대우가 있을리가 없었다. 당시 1만 6천명 이상이 굶어죽거나 맞아 죽었다고 한다.
아마도 당시에 사용하던 자동차들인 것 같다.
그 동안 호주, 베트남에서 전쟁박물관을 둘러 본 적이 있어 그 나라의 전쟁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총 길이 417km의 거리를 단 18개월만에 완성시켰다고 한다.
이 전쟁박문관은 상당히 미로처럼 복잡하게 구성되어있었다. 지하로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올라갔다가 옆 건물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렇게 전쟁 당시의 사진을 보여주는가 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품들도 있어서 약간 이상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전쟁박문관이긴 했지만 전쟁박물관다워 보이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용이 무척 귀여워보여서 찍었다.
당시의 태국 왕인듯 보이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까 전의 그녀석 여전히 입구 앞에서 있었다. 사실 이 전쟁박문관에서 약 30분정도 구경했는데 작은 돈이었던 60밧도 아까울 정도였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박물관은 아니었다.
입구 앞에는 당시에 달렸던 열차로 보이는 것이 전시가 되어있었다.
전쟁박물관이 관람을 마치고 다시 걸어서 이동하는 도중에 길가에서 호랑이를 볼 수 있었다. 새끼호랑이였지만 한 성질 하던 녀석으로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던 상품이었던 것이다. 가격은 100밧으로 그렇게 비싸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사치가 분명했기 때문에 저 아저씨를 대신 찍었다.
조금 이동하니 모습을 드러난 철교는 거의 그림이었다. 사진을 찍자마자 그림같이 나오는게 너무나 아름다웠는데 '죽음의 철도'라는 사실이 너무나 모순되던 순간이었다.
확실히 이 다리는 방콕 근교의 관광지라서 그런지 많은 관광객들이 걷고 있었다. 깐짜나부리 투어의 가장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이 다리를 보기 위해서 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아래에서는 보트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마도 보트를 타고 강을 따라 이동하는 투어가 있는 것 같았다.
정말 그림과도 같은 풍경이 내 눈 앞에 펼쳐져있었다.
그런데 이 좁은 다리 위에는 작은 열차가 다니고 있었다. 마주오는 열차를 피해서 아슬아슬하게 서있어야 했다.
철교 끝까지 가니 한 할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 장소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고, 우리는 그 선율에 이끌려 잠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해진 곳이지만 사실 이 곳은 더 많은 아픔들이 숨어있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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