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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공원에서 곧장 내려와 역이 있을 방향으로 무작정 뛰었다. 헐레벌떡 뛰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쉽게 노면전차 역을 찾을 수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노면전차에 올라타고 나서야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시간에 촉박한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생각보다 잘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 이제 일본 여행을 한지 며칠이 지나서인지도 모르겠다.


나가사키 역에 도착하니 대충 시간이 딱 맞았다. 코인락커에서 내 배낭을 꺼내들고 역내로 들어갔다. 나가카시를 떠나 다음 목적지는 바로 유후인이었다. 유후인은 온천으로 유명한 도시인데 특히 여성들이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아침에 유후인행 열차표를 예매했는데 오전 11시경에 출발해서 오후 2시 40분에 도착 예정이었다. 꽤 오래 걸리는 여정이었는데 생각해보면 나가사키는 큐슈의 서쪽 끝에 있었던 도시였고, 유후인은 거의 동쪽 끝에 있었던 도시였으니 당연했다.


나가사키에서 유후인으로 바로 가는 열차는 없었다. 따라서 나는 토스로 가서 열차를 갈아타야 했는데 사람들에게 이 열차가 토스로 가는 것인지 확인해 보고 탔다. 항상 일본에서는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식으로 확인절차를 더 많이 거쳤던 것 같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시간을 정확히 맞춰야 하는 일본이었기에 더욱 긴장의 끈이 놓이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열차는 후쿠오카에서 고쿠라로 이동했을 때 탔던 것과 같았다. 주변에 둘러봐도 사람은 많이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들 뿐이었다. 배낭을 내 옆 좌석에 놓고,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목이 탔다. 창밖을 보니 자판기가 있어 얼른 내려 150엔짜리 콜라 하나를 뽑아 들고 들어왔다. 콜라를 마시며 잠시 앉아있으니 열차는 서서히 움직였다. 이제 토스로 간다.


빠르게 경치가 바뀌어간다. 아담한 마을도 지나고, 새파란 하늘을 품고 있는 바다도 지났다. 나는 이렇게 창밖을 구경하다가 어김없이 졸게 된다. 그러나 미야자키에서 구마모토로 이동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열차를 갈아타야 했기 때문에 항상 졸다가도 시간을 확인하고, 현재 어느 역인지 살펴봤다.


드디어 토스에 도착했다. 나가사키에서 토스까진는 대략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이제 유후인으로 가는 열차만 잘 갈아타면 목적지까지는 무사히 도착한다.


유후인행 열차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너무 배고파졌다. 역시 열차여행은 에끼벤을 먹어야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멀리서 우동을 드시는 아저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차가운 도시락과 비교할 수 없는 우동이야 말로 진짜 별미라고 할 수 있었다. 순간 고민에 빠지긴 했는데 곧 도착한다는 열차 안내에 우동은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좀 아쉽긴 했다. 그냥 에끼벤 중에서도 가장 비싸고 맛있어 보이는 것을 하나 집었다.


잠시 후 노란색 유후 디럭스 열차가 역으로 들어왔다. 색깔부터 기존의 열차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놀이동산의 입구로 안내하는 열차처럼 노란색이라니 역시 일본다웠다. 유후인으로 가는 특급열차는 유후인노모리라고 따로 있지만 이 열차도 전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내부도 역시 기존의 열차와 많이 틀렸다. 우선 창문도 커다랗게 배치되어 있었고, 특히 열차의 앞쪽으로 가면 달리는 정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그곳은 여러명이 일렬로 앉을 수 있는 자리도 배치되어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기념촬영 서비스를 하는가 하면, 사탕을 나눠주기도 했다.


난 배고프니 에끼벤을 먼저 열었다. 뭔가 풍성하면서도 모양이 예쁜 도시락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일단 눈으로 보기엔 맛있어 보였다. 실제로 먹어보니 연근, 계란, 생선, 고기 등 다양한 반찬이 있어 무척 맛있었다. 배고파서 정신없이 흡입했던 것 같다.

밥을 먹으면서 깜짝 놀랐던 점은 바로 내 앞자리에도 뒷자리에도 한국 사람이 앉았다는 점이다. 앞자리에는 한국인 여자로 보이는 세 사람이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는데 새삼 한국 사람을 보니 신기했다. 가까운 일본이니까 당연히 한국인 여행자가 있을텐데 그동안 한국 사람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열차 안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있었고, 혼자인 내가 갑자기 인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냥 가만히 있었다. 유후인은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여행지이니까 앞으로 한국 사람을 자주 만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후식으로 아까 받은 유후인노모리 사탕을 먹었다. 열차는 유후인노모리가 아닌데 사탕은 유후인노모리라고 써있었다.


어느순간부터 경치가 멋지게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예상대로 유후인에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열차만 타고 있었던터라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는데 바깥 경치를 보니 유후인이라는 곳이 무척 기대가 되었다. 열차는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정차했다. 역시 예상대로 열차에서 내리는 사람 중에는 한국 사람이 꽤 많았고, 일본 사람들도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온 사람이 많아 보였다. 배낭을 메고 온 사람은 아마 나 혼자뿐일지도 모른다.


역에서 빠져나오자 거대한 산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역 앞에 있는 도로치고는 좁고, 차량도 별로 없어 보였지만 도로 양 옆에 보였던 다양한 가게들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유후인을 처음 보자마자 거대한 설산(雪山) 때문인지 몰라도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그런 마을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시골마을이지만 세련되기도 하고, 소소한 매력을 품고 있는 이곳이 바로 유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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