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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한적한 이즈하라 골목을 걸었다. 이즈하라 골목을 처음 걷는 것은 아니지만 떠나기 전에 이즈하라에 몇 군데 없는 관광지를 보고 싶었다. 아침에 찾아갔던 하치만구 신사를 뒤로 하고, 곧장 이즈하라 항구로 이동했다.

대마도는 한국과 가깝다는 지리적인 이유로 조선통신사의 흔적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당시 조선통신사는 에도로 가기 직전에 대마도에서 머물면서 영주로부터 접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대마도 번주(영주)가 수행을 하며 에도까지 왕래했다고 한다. 또한, 현재 남아있는 이즈하라의 국도는 조선통신사를 맞기 위해 정비했던 것이다.

보통 조선통신사의 왕복은 5개월이 걸리고, 준비하는 기간을 포함하면 막대한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때문에 조선통신사를 경비하고 접대하는 비용을 일본으로부터 받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대마도는 생산력이 아주 적은 곳이었는데 조선통신사를 접대하기 위해 지원받은 이 금액이 상당했고, 조선과의 교류로 인한 이윤도 무척 컸다고 한다.


이즈하라 항구로 가기 직전에는 조선통신사의 방문 200주년을 기념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항구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보통 여기에서 사진을 많이 찍곤 한다.


대마도를 여행은 이즈하라 항구에서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히타카츠 항구에서 들어왔고, 부산으로 돌아갈 때도 히타카츠를 통해 갈 예정이라 이곳에서는 그저 잠깐 머물 뿐이었다. 비록 많은 배가 오고 가는 큰 항구는 아니었지만 분위기는 참 좋았다. 게다가 날씨도 따뜻했으니 가볍게 산책하는 마음을 가진 여행자에겐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한적한 항구를 자유롭게 거닐 수 있어서 좋았다. 대마도 여행을 하면서 많은 관광지를 갔지만 나에겐 이날 걸었던 이즈하라 항구 주변이 유난히 더 마음에 들었다. 확실히 여행자에게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꼭 유명하다는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이즈하라 항구를 돌아 다시 티아라 쇼핑센터가 있던 중심부로 왔다. 여기서 좀 쉬어가나 싶었지만 곧장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가 있는 가네이시죠로 향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꼭 들린다는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는 대마도 시청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시청을 그냥 지나치려다가 안쪽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는 것을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마도 여행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자료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대부분 한글로 적힌 것이 많아 일본어를 모르는 나에겐 아주 유용했다.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가 있는 가네이시죠(금석성)은 제법 화려하게 복원되었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별거 없다. 그냥 넓은 공터일 뿐이고, 구석에는 한국인들이 세웠다는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가 썰렁하게 놓여져 있다. 사실 난 우리나라의 마지막 왕녀라는 덕혜옹주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니 개인적으로도 참 불행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힘이 그렇게도 약했나 싶다.

덕혜옹주는 격변의 시기였던 20세기 초, 고종의 왕녀로 대접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명령에 의해 일본으로 강제로 유학가게 된다. 1931년에는 대마도(쓰시마)의 번주인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1953년에는 사실상 이혼을 당하게 된다. 그녀의 불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평민이라는 신분으로 강등되어 그동안 명목상 지급되었던 생활비마저 끊겼고, 1955년에는 그녀의 딸인 마사에가 행방불명되었다가 얼마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 계기로 정신질환과 우울증으로 이어져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박정희 정권 때가 되어서야 덕혜옹주의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자 국가차원에서 귀국할 수 있었다. 이후 대한민국의 국적과 이덕혜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지급 받으며 창덕궁에서 생활했다. 불행한 삶을 이어가던 덕혜옹주는 1989년 4월 21일 수강재에서 사망한다.


조선의 피를 이은 왕녀의 삶이라기엔 참으로 불행하고, 비참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그녀의 삶인데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라고 대단하게 치장된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 기념비도 대마도의 번주인 소 다케유키와 이혼을 하자 일본인들은 화가 나서 기념비를 뽑았다고 한다. 지금 보이는 것은 대마도에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 2001년에 다시 기념비를 복원한 것이다.


우리는 덕혜옹주 기념비를 뒤로 하고, 점심을 먹으러 티아라 쇼핑센터로 돌아갔다. 시청 바로 옆에는 유치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얼마나 한국인 관광객이 사진을 찍었으면 이런 안내판이 보였다. 아무리 아이들이 귀엽다고 하더라도 자제했으면 좋겠다.


이즈하라를 떠나기 직전에는 모스버거에서 점심을 먹었다. 대마도에서 유일하다고 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인데 참 어색하면서도 반가웠다. 모스버거의 큼지막한 햄버거도 좋았지만 특히 감자튀김이 맛있었다.

이 여행은 쓰시마시, 여행박사, 시그마 협찬과 도움으로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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