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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한 카오산로드에 도착했을 때 나는 비로소 여행을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2년만에 찾아왔을 때도 방콕은 크게 변한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고작해야 6개월만에 돌아왔으니 크게 특별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나마 2년만에 돌아왔을 때는 예전 생각이 나서 기분이 신났지만 말이다.


아무리 12월이라고 해도 이상하게 방콕의 날씨는 선선했다. 물론 다음 날에는 찜통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더워지는 것을 보고 달라진 것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오산로드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100달러를 환전했다.

나는  Eden님이 추천해 준 한인게스트하우스인 '폴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다녔다. 사실은 가까운 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찾기가 힘들었다. 카오산로드에서 거리가 좀 멀었다는 점도 있었고, 방콕의 좁은 골목사이를 뒤지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헤맸다.

깜깜한 어느 한 골목을 걷다보니 여기에 과연 게스트하우스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냥 돌아갈까 하는데 때마침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래서 그들을 조심스럽게 따라 골목을 지나 또 다른 골목을 지나니 폴게스트하우스가 나타났다. 폴게스트하우스 앞에 서서 살펴보니 사람들은 전부 마루에 나와 누워있거나 앉아서 인터넷을 하거나 놀고 있었는데 꽤 적응이 안 되는 분위기였다.

폴게스트하우스 찾아가는 법은 Phra Sumen Fort에서 곧바로 나오는 다리를 건너서 좌회전을 하면 된다.

내가 좀 어색하게 있자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사람들은 내가 태국에 처음 왔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어쨋든 중요한 것은 방인데 정말 애석하게도 방이 없었다. 폴게스트하우스 옆도 역시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싱글이 180밧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방이 홍콩에서 묵었던 곳보다 더 좁았다. 여기는 아니다 싶어서 나왔다.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사람들이 다른 곳을 알려줘서 가까운 다른 곳을 가보았는데 다행히 방이 있었다. 싱글룸은 150밧이었는데 그냥 선풍기 하나만 놓여져있던 곳이었다. 긴 여정에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 짐을 내려놓을 곳만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서 체크인을 했다. 체크인을 한 후에 폴게스트 하우스에 놀러오라는 말에 잠시 가보긴 했는데 이상하게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어서 곧바로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카오산로드까지 걸어서 왔다. 배가 너무 고팠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장 만만해 보였던(?) 족발덮밥을 먹으러 갔다. 족발덮밥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아서 그런지 매일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저녁 시간이 되면 카오산로드 부근은 시끌벅적해서 정신이 없었는데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좁은 골목 사이에 위치한 노점이라 자리에 앉기조차도 힘들었다. 테이블도 몇 개 없어서 방금 식사를 마친 사람이 자리에 뜨자마자 나는 곧바로 앉았다. 족발덮밥 30밧짜리를 주문하고 나서 거리를 구경하고 있는데 한 외국인이 자리가 없어서인지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족발덮밥을 먹었고, 그 사람은 주문한 팟타이를 받아들고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다가 서로 눈치를 살짝 보는듯 해서 내가 넌지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달러스라고 소개했던 이 친구는 호주 사람이라고 했다. 나도 호주에 있었다고 하자 이야기는 급격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서로의 식사를 마친 후에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입맛을 다시며 맥주 한 잔 하자고 자리를 떴다.

시끄러운 카오산로드를 걸으며 달러스는 나에게 괜찮은 곳을 아냐고 물어봤다. 나 역시 딱히 아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길거리에 늘어져있는 노점식 술집을 제안했다. 말이 술집이지 거리에 목욕탕 의자만 놓여져 있을 뿐이었다. 흔쾌히 좋다고 했던 달러스와 의자를 하나씩 잡고 앉았다.


카오산로드는 이런 곳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맥주를 밤새도록 마실 수 있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태국에 오면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기 정신 없는데 반해 신기하게도 나는 항상 외국인들과 어울렸다.


달러스와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맥주를 한 병, 한 병, 또 한 병을 마시면서 자신이 태어났던 태즈매니아쪽 이야기라든가 시드니쪽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현재는 중국 광저우에서 살고 있다고 했는데 중국어도 수준급이었다. 나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던 이야기라든가 이전에 했던 여행 이야기를 해줬다.

맥주 계산을 하던 달러스는 자신의 너덜너덜한 지갑을 보여주면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만들었다면서 빨간색과 파란색 테이프로 감긴 지갑이었는데 그 지갑을 보자 나 역시 지갑을 꺼내서 달러스에게 보여줬다. 내 지갑도 역시 너덜너덜했는데 Brisbane이라고 적혀있던 것으로 호주에 있을 때 기념품가게에서 구입했던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지갑을 보면서 웃었다. 아마 누구라도 이런 더러운 지갑을 훔쳐갈 일이 없을거라면서 말이다.

그 때 거리에는 곤충튀김 판매상이 지나가고 있었다. 태국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메뚜기, 귀뚜라미, 애벌레 등을 튀겨서 먹기도 하는데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한 먹거리였다. 내가 저거 먹어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니 달러스는 자신은 중국에서 살고 있다면서 무엇이든 다 먹어봤다고 했다.

"야니 메뚜기 좋아해?" 라고 물어보고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메뚜기 한 봉지를 사가지고 왔다. 맥주를 마시던 우리에게는 안주 거리가 생긴 셈이었다.


메뚜기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거부감도 별로 없었고, 바삭바삭해서 맛도 무척 좋았다.


카오산로드는 여전히 시끄럽고 복잡했지만 맥주를 마시기에 아주 기분 좋은 상태를 만들어줬다. 그래서 난 카오산로드를 좋아하나 보다. 수 많은 여행자를 바라보는 것도 즐겁고, 맥주를 마시면서 친구를 사귀기도 좋았다. 단 카오산로드에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간혹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이 곳에서 맥주를 3병을 마신 뒤에 일어났다. 그리고는 람부트리 거리로 들어온 뒤에 달러스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 돈을 조금 가지러 갔다. 잠시 뒤에 돈을 가지고 돌아온 달러스는 2차로 팟타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자신이 맛있는 팟타이 노점을 안다면서 갔는데 DDM가는 길 중간에 있던 노점이었다. 나는 팟타이를 먹고, 달러스는 국수를 먹었다.


우리는 야식을 먹고 난 후 자리를 옮겨 또 맥주를 마셨다. 사실 몸은 정말 피곤한 상태였다. 이틀 동안 잠도 안 잔 상태에서 새벽부터 이동을 해서 저녁에 방콕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달러스와 새벽 3시까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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