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 번 가봤던 땃빈뉴 파고다로 자전거를 돌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간에 있는 동안 아이들의 엽서를 사주지 못했던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앙코르왓을 여행했을 때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달려오면서 엽서를 사달라고 했는데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바간에서도 앙코르왓과 너무 똑같을 정도로 수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어는 엽서 사달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안 사주는게 너무 마음에 걸렸다. 그게 너무 이상했다.
특히 내 카메라에 찍혔던 이 아이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카메라에 있는 이 사진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왜 이 아이에게 엽서를 사주지 못했는지 아쉬움만 되새기고 있었다. 그래서 사진 속 아이의 엽서를 사줄 수 없다면 땃빈뉴 파고다에서서 만났던 소녀도 기억에 많이 남아서 그 아이의 엽서라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는 김에 사진 속의 아이를 아냐고 물어보면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땃빈뉴 파고다는 확실히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지나치는 곳이기도 했다.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줄지어 지나가기도 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있던 나는 이 비포장길이라 바퀴가 계속 헛돌아 운전하기가 힘들었다.
땃빈뉴 파고다 앞에 도착했는데 이상하게 나에게 몰려드는 아이들이 없었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고 있을 때 몇 명의 아이들이 나에게 왔고, 이틀 전에 나와 같이 사진을 찍었던 소녀도 나를 보더니 "어? 나 이 오빠 기억나!" 라고 반가워했다. 내가 그 소녀에게 비키가 샀던 컵 받침을 사고 싶다고 하니까 친구를 데리고 오더니 이 아이가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늘에 앉아서 기념품을 천천히 살펴보는데 솔직히 내가 마음에 드는 문양이 없었다. 고르면서 가격을 물어보니 무려 5000짯을 부르는 것이었다. 비키가 이와 똑같은 것을 시장에서 3000짯에 사는 것을 봤던 나는 너무 비싸다면서 내 친구는 3000짯에 샀다고 얘기했다. 안 사도 그만인데 가격이 높아서 일종의 흥정을 한 셈이었는데 물건을 파는 아이는 꽤나 완강했다. 가격이 조금 내려가긴 했지만 4000짯 밑으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 때 내 주변에는 많은 아이들이 몰려 들어서 내가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나와 사진을 찍었던 소녀가 "그러면 4000짯과 3000짯의 중간인 3500짯이면 되겠네." 라고 제안을 했고, 물건을 팔려고 하는 아이는 매우 화를 냈다. 왜 끼어들어서 내가 팔려는 물건 값을 깎으려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사진 같이 찍었던 아이를 대변해주고자 이거 안 사도 되는데 일부러 찾아와서 사는 것인데 팔 생각이 없으면 안 팔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꼭 살 이유는 없으니 너가 이 아이에게 화를 낼 정도면 팔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물건을 들고 있던 아이는 그제서야 조금 잠잠해졌다.
결국 한참을 고민한 끝에 코끼리 문양이 그려진 컵받침을 구입했다. 여전히 약간은 뾰루퉁한 모습이 눈에 보였는데 물건을 싸게 팔았다기 보다는 옆에 아이가 나서서 물건 값을 깎아버린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친한 친구가 아닌지도 모른다.
어쨋든 흡사 플라스틱처럼 보였던 나무 컵받침을 구입한 뒤에 나는 사진 속 꼬마 아이를 아냐고 물어봤다. 몇 명의 아이들이 수근거리더니 자신들이 아는 아이였다. 이 아이는 아난다 파고다 근처에 집이 있다고 알려주기까지 했다. 나중에 냥우로 돌아가기 전에 아난다 파고다 주변을 한 번 더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인사를 한 뒤에 자전거를 타고 쉐산도 파고다로 향했다. 땃빈뉴 파고다를 벗어난지 5분도 되지 않은 갈림길에서 잠시 멈춰섰는데 그 때 내 뒤에서 "오빠~" 라고 한국말로 외치면서 자전거를 타고 따라오던 아이들이 있었다. 아까 전에 내가 물건을 구입할 때 구경을 했던 아이들이었다.
진짜 웃음이 났다. 한국 드라마 덕분에 '오빠'라는 말이 그들에 익숙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한국말로 부르면서 나를 쫓아왔던 아이들이 너무 순수해보였기 때문이다. 쫓아온 아이한테 나 때문에 그 아이와 싸운 것이 아니냐고 얘기를 했더니 일제히 합창이라도 하듯 원래 그 아이는 그렇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아이는 나에게 반지를 하나 내밀었고, 다른 한 아이는 팔찌를 내밀었다. 또 다른 아이도 팔찌를 내밀었다. 파는거 아니라고 나한테 주는 선물이라고 준 것이다. 이건 땃빈뉴 파고다에 오는 관광객들에게 3개나 4개에 1달러에 파는 것인데 그냥 줬던 것이다. 그 파는 물건을 돈을 받지 않겠다고 선물로 주다니 이런 일은 정말 생각도 못했던 장면이었다. 너무 착하고 순수한 마음에 내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과일도 줬는데 한 입 물어보니 사과 맛이 났다. 그냥 작은 사과인지 아니면 사과 맛이 나는 다른 과일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도 뭔가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내 가방 안에는 마땅히 줄 만한 것이 없었다. 지갑에도 한국 돈도 없었는데 그냥 500짯을 소녀에게 줬다. 돈을 받으려고 하는게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이건 돈을 주는게 아니라 음료수 사먹을 것이라며 줬다. 근데 뒤늦게 생각났던 것은 왜 고작해야 500짯만 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2000짯 주고 올껄 그랬다.
아이들과 얘기를 하다가 내가 사진을 찍자고 하니 다들 너무 좋아했다. 유난히 장난끼가 넘쳐 흐르던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나보고 사진 한 장 당 돈을 줘야 한다며 카메라를 받아 들었다. 쪼그만한게 벌써부터 돈만 알다니 나는 웃어넘겼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그냥 무시하라고 얘기했다.
땃빈뉴 파고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햇빛이 너무 얼굴을 강타해서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방향을 바꿔서 사진을 찍었다.
나는 아이들이 준 팔찌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이 너무 착하고 순수해서 그런지 너무 기분이 좋았다. 바간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났지만 이런 기분은 정말 처음이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은 바로 이 아이들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가 지고 있어서 나는 쉐산도 파고다로 가야했는데 아이들은 나에게 손을 흔들면서 "오빠 미얀마에 또 놀러와야돼"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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