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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전거를 타고 의기양양하게 냥우에서 올드바간을 거쳐 뉴바간으로 갔다. 근데 진짜 너무 너무 힘들었다. 자전거가 불량인지 아니면 너무 심한 오르막길이 연속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정말 죽을맛이었다. 잘 나아가지도 않아서 일어서서 낑낑대며 페달을 밟아댔고, 마차를 탈 때는 몰랐는데 자전거를 타니 왜 이렇게 오르막길이 많은지 올드바간에 도착하기 전인데도 벌써부터 자전거를 빌려서 다닌게 후회가 될 정도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어떤 한 남자가 나를 불렀는데 다름 아닌 네 친구와는 왜 헤어지고 혼자다니고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아마 나와 항상 같이 다녔던 러시아인 비키를 말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걸 기억하는지 그거 참 신기하기만 했다. 서양인과 같이 다녔던 아시아인이 정말 유난히 눈에 띄었나 보다. 그러면서 나에게 보석 살 생각있냐고 물어보았는데 당연히 거절했다. 

그리고 나서 한참 후에 내 옆에는 남자아이들이 몇 명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우리로 치면 고등학생뻘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는데 인사를 건네고 가려고 하는데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조금 친해져서 이야기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아이가 자신의 가게에서 그림 좀 구경만 하고 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역시 물건 팔아달라는 속셈이었는데 너무나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올드바간 근처의 작은 상점에 갔다. 원래는 구입조차도 할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축제가 있어서 놀러가고 싶은데 하나만 꼭 사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기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간신히 4000짯짜리를 2500짯에 깎아서 그림 하나를 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갑을 열어보니 2300짯 밖에 없길래 웃음을 지으면서 2300은 어떠냐고 물어보니 이 아이도 포기한듯 알겠다고 했다. 자신이 틈틈히 그렸다는 그림, 하지만 나에게 필요없었던 물건이긴 했다. 다만 하나만 사달라는 부탁도 있고, 꽤 착하게 굴길래 억지로라도 샀던 것이다. 


내가 그림을 사는 동안 이 아이의 가족들이 몰려왔는데 역시 내가 먼저 "밍글라바(안녕하세요)", "뛔이야다 원따바대(반갑습니다)" 라고 인사를 건넸다. 조금 친해진 덕분에 미소를 한아름 머금고 있었던 이 가족들과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림을 제발 사달라고 했던 남자 아이와는 여기서 헤어졌는데 몇 시간 뒤에 길가에서 또 만나기도 했다. 

300짯짜리 물 한 병을 사서 벌컥벌컥 마신 뒤에 이제 올드바간을 지났던 나는 또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 뉴바간으로 향했다. 


지나가는 길에 겉모습은 성처럼 보였던 고고학 박물관이 있었길래 들어가 볼까했는데 입장료가 있어서 들어가지 않았다. 바간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 지역입장료로 10달러나 냈는데 이런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서 또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게 싫어서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바간을 돌아다닌다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줄 알았는데 정말 미친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거의 나는 기진맥진한 즉 무아지경인 상태로 페달을 밟고 있었고 다리는 이미 내 감각이 아니었다. 평지를 달리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었는데 오르막길을 만나는 때에는 거의 죽음이었다. 아마 이 지역 자체가 평지가 아니라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 좋지 않았던 것도 있었겠지만 자전거가 너무 뻑뻑해서 그랬던 것 같다. 


뉴바간에 도착했다고 좋아했었지만 자전거를 보며 달려들었던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올드바간과 뉴바간 사이에 있던 '밍거바 마을' 이었다. 어차피 힘들어서 자전거를 더이상 탈 기력도 없었고, 마침 이 지역에는 볼만할 것 같았던 마누하 사원이 있어서 구경하다가 가기로 했다. 


저렇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은 태운 고물차량을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마누하 사원에서 자전거 자물쇠를 채우고 있는데 역시나 많은 아이들이 뛰어왔다. 엽서를 사달라는 아이들이었는데 내가 "Sorry"라고 말을 하니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오빠라고 하다가 할아버지로 바꿔버렸다. 바간에서 놀림받는 것도 또 처음이었다. 

그래도 웃으면서 사줄 수 없다고 미안하다고 하니 한 여자아이가 "노 쏘리, 쏘리는 돈이 없다. 쏘리라고 하지 말고 엽서를 사달라" 라고 말을 했다. 


마누하 사원에 들어가니 커다란 황금색 그릇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서 돈을 집어넣는 것 같았다. 미얀마의 사원들은 기부하는 방법이 참 독특했다. 그릇에 넣기도 하고, 무슨 게임을 하듯 움직이는 통에 집어넣기도 하고, 조그만한 틈새 사이로 돈을 떨어트리기도 하고, 호랑이 입 속에 넣기도 했다. 외국인이 보기엔 참 재미있는 방법이었다. 


마누하 파고다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생긴 부처상이 있었다. 


사원에서 편안하게 누워있던 강아지들, 하지만 태국에서는 참 풍족해 보였는데 어째 미얀마 강아지들은 굶고만 사는지 삐쩍 말라서 불쌍하게 보였다. 
 

마누하 사원에서도 미얀마의 토속 신앙이라고 볼 수 있는 낫Nat은 있었다. 


사원 뒤쪽으로 돌아가보니 거대한 와불상이 나왔다. 하지만 이 곳에서 와불상이 방치되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구석진 곳에 있었고, 굉장히 좁은 곳에 와불이 있었다. 


마누하 사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옷 색깔이 초록색인 것을 보니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모양이다. 미얀마에서의 초록색은 학생들의 교복이었다.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뉴바간으로 달리고 달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누하 사원에서라도 다시 뒤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올드바간을 이미 지나온 이상 이미 3/5이상 왔는데 이제와서 포기하는건 더 아까웠다. 뉴바간에 뭐가 있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아 험난한 여정을 거치는 것처럼 말이다. 

근데 인간적으로 너무 힘들긴 했다. 계속 떠오르는 생각은 내일 일어나면 다리에 알베기겠다는 것뿐이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힘들게 달리니 정말 죽을지경이었다. 


처음 본 한글 안내판에 신기해했지만 자전거 타고 저 안으로 들어가는 것조차도 힘들거 같아서 그냥 지나쳐버렸다. 얼른 뉴바간으로 가서 쉬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자전거 타고 딱 올드바간까지 적당한거 같다. 뉴바간까지는 너무 멀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연속이기 때문에 무지하게 힘들다. 


그렇게 혼잣말로 자전거를 선택한 나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때 드디어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세워놓고는 작은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주문했다. 테이블에 앉아서 거의 얼빠진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기만 했다. 뉴바간은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혹시라도 볼거리가 있었다고 해도 나는 이미 돌아다닐 기력조차 없는 상태였다. 


주문했던 면요리를 먹고, 시원한 콜라를 마시면서 무작정 늘어져 있었다. 아마 여기에 돗자리라도 있었다면 그대로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 온 몸에 기운이 쫘악 빠진 탓에 밥맛도 없어 볶음국수는 다 먹지도 못했다.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지켜봤다. 

점심을 최대한 천천히 먹으면서 쉬다가 조금 괜찮아진거 같아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더 내려가봤다. 하지만 이내 다리에 힘이 풀리는기만 할 뿐 전혀 회복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냥 바로 앞에 보이던 작은 파고다나 구경이나 할겸 들어가봤다. 


외국인 관광객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이 작은 파고다의 계단에 앉아 한 없이 쉬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 정말 오토바이가 너무 그리웠다. 바간에서 오토바이를 빌리는 곳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 것이다. 바간에서는 자전거를 타면 너무 힘들다. 그냥 돈내고 마차를 이용하자. 


근데... 어떻게 다시 냥우까지 올라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