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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를 여행하는 배낭여행자라면 집결 장소 역할을 하는 쿠타, 그리고 그 쿠타(Kuta)에서도 뽀삐스 거리(Poppies)와 르기안 거리(Legian)가 주 놀이터라고 볼 수 있다. 덴파사에서 어떻게든 쿠타까지는 왔는데 새로운 도시에 왔다는 즐거움보다는 일단 오늘 휴식을 취할 숙소부터 찾는 일이 시급했다. 이렇게 늦게 발리에 도착하는지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서둘러야 했다.

베모를 타고 뽀삐스 거리 근처까지 왔는데 아직 주변 지리에 대한 감이 오지 않아 뽀삐스 거리를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몰랐다. 조금 어두컴컴한 거리 분위기와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엉켜있는 시끌벅적한 모습이 내가 처음 본 쿠타였다. 사실 주변 풍경을 스치듯이 살펴본 후 곧바로 근처에 있던 아저씨에게 물어 뽀삐스 거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뽀삐스 거리에 접어 들자 여행자 거리 아니랄까봐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고, 서양인들 입맛에 맞는 식당이 많이 보였다. 근데 여기에서 조금 문제가 발생했다. 이 거리가 그리 복잡하지는 않지만 처음 도착했기 때문인지 아직 방향 감각조차 없는 상태였다. 때문에 좀 거리에서 헤매이게 되었다. 물론 혼자라면 어디를 가도 별 상관이 없을테지만 같이 여행을 하던 동료가 있던터라 여기에서 약간의 불협화음이 생기기는 일도 있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숙소를 잡게 되었는데 위치는 원래 내가 가고 싶어했던 소르가 골목(Gang Sorga)이었다. 숙소는 골목길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던 리타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시설은 그냥 평범했고, 원래 더 비쌌는데 좀 깎은 가격이 트윈룸에 20만 루피아였다.

나중에야 뽀삐스 거리1과 뽀삐스 거리2를 잇는 작은 골목길이 있는데 그 주변으로 게스트하우스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너무 늦은 시각에 몸이 너무 피곤해서 대충 숙소를 잡았는데 조금만 돌아보면 더 저렴한 숙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확실히 다른 여행자 거리에 비해 숙소들이 많이 숨어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배고프고, 피곤했다. 일단 나는 씼기로 했고, 동생 2명은 전화 사용과 환전을 위해 나갔다. 한참을 기다린 후 두 사람이 돌아왔는데 너나 할 것 없이 열변을 토했다. 다름이 아니라 뽀삐스 거리에는 사설 환전소가 많은데 대부분 평소보다 높은 환율을 제시했다. 그저 순진하게 발리는 여행자가 많으니까 높게 쳐주는가 보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로 교묘하게 사기치는 환전소가 많은 것이다.

방법은 이렇다. 100달러짜리를 들고 환전을 하려고 하면 분명 제대로 돈을 교환해 주긴 준다. 그것도 눈앞에서 일일이 숫자까지 세면서 지폐를 확인시켜주는데 이때 두세 번 확인시키다가 재빨리 몇 장을 가로챈다. 여행자는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을 감지하지 못하고 돈을 집어 넣는데 이때는 이미 돈이 몇 장 사라진 후다. 두 사람의 말로는 만약 마지막에 다시 한 번 확인차 세보지 않았다면 꼼짝 못하고 당할뻔 했다고 한다. 워낙 여행자가 많은 곳이라 이런 일도 비일비재 한 것 같은데 차라리 환율은 조금 낮게 쳐주더라도 안전한 곳에서 환전하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뽀삐스 거리1의 중간부터 끝자락까지 걸었는데 확실히 기존에 많이 봤던 인도네시아 식당들보다 철저하게 여행자들을 위한 깔끔하고, 서양식 입맛에 맞춘 곳이 많았다. 어느 레스토랑이나 여행자들로 가득했는데 뽀삐스에는 아주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발리에 왔으니 에어컨 바람을 쐬며 수박 쥬스를 마시는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 와서 내가 주문한 음식은 조금 뜬금없게도 태국의 똠양꿍이었다. 근데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 맛은 살짝 별로였다.

대충 허기를 채우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뽀삐스 거리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뽀삐스 거리가 화려함이 부족했는데 며칠 지내고 보니 그 화려함은 대부분은 르기안 거리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갔다. 아무리 밤이라도 여기가 바로 쿠타 비치인데 바다를 먼저 찾아야 예의인 것 같았다.

다행히 바다는 무척 가까웠다. 해변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봤다. 멀리서 불꽃을 터트리며 노는 모습이 있었지만 역시 밤이라 해변은 한적하기만 했다. 멀리에서 터지는 불꽃놀이를 구경하다 잠시 하늘을 봤다. 이상하게 하늘은 잠잠했고, 회색빛이었다. 구름의 움직임이 그대로 보일 정도였다. 달이 빠르게 이동한다. 아니 구름이 빠르게 이동하는 걸까?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걸었다. 편의점에 들렀는데 한국산 제품이 무척 많았다. 아이스크림이며 라면이며 한국산이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인도네시아에도 한국산 제품이 많다는 사실에 괜히 신기했다.


편의점 앞에서는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과 현지인이 작은 탁자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대게 꼭 어디를 들어 가서 마시지 않더라도 이런데서 맥주를 마시면 누구와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즐겁기 마련이다.


인도네시아는 가게들은 보통 일찍 닫았는데 쿠타도 예외는 아니었다. 늦은 시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자정을 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가게들이 닫았다. 그러고보면 방콕의 여행자 거리인 카오산로드는 정말 신기한 곳이다. 거기는 새벽 3시가  되어도 이제 막 저녁이 된 것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저 멀리 커다란 간판들이 보이자 난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간판이지만 외국 자본을 대변하는 맥도날드와 KFC 그리고 삼성전자의 간판이 이 거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자와 서퍼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쿠타 비치만의 간판도 보였다.

그나저나 맥주 한잔 마시려고 돌아다녔는데 적당한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뽀삐스 거리1의 중간 지점까지 갔다가 그냥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하나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맥주를 마시고 쉬고 있는데 졸음이 쏟아졌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침대로 쓰러졌다. 정말 피곤하긴 피곤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