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텍시티 푸드코트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뒤 후식으로 키위주스를 사먹었다. 배낭여행자에게도 큰돈은 아니었지만 이미 다 알고 있는 싱가폴에서 일부러 시티투어 버스를 탄다거나 가격이 얼마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뭔가 마구 사먹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말은 평소 여행을 하면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먹는 금액마저 아까워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냥 싱가폴에 있었을 당시에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돌아다녔던 것 같다. 하긴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으므로 굳이 1달러라도 아끼자는 행동도 의미가 없긴 했다.
차가운 키위주스를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갔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에 저절로 눈이 감길 지경이었다. 푹푹 찌는 더위도 여전했다. 발리에 있을 때는 그냥 뜨겁다고 말했다면, 아마 싱가폴의 더위는 후덥지근하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나라라서 더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은 바다와 강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 습기가 많았다. 그래도 무지하게 추웠던 MRT보다는 이 더위가 낫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거리, 익숙한 빌딩 사이로 걸었다. 기억이 난다. 이 도로를 걸었던 것도 그리고 어느 빌딩 앞에 있던 황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던 것도 기억이 났다.
조금 걸으니 싱가폴 강이 보였다. 사실 시원하게 펼쳐진 싱가폴 강이야 말로 추억을 되새김질하기엔 가장 좋은 장소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곳에 앉아 마냥 좋아했던 그 시절이 스쳐지나갔다. 새로운 곳을 여행할 때는 설렘이 있고, 다시 찾아갔을 때는 추억을 곱씹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좌측에는 싱가폴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Marina Bay Sands)이 보였고, 우측에는 높게 솟은 여러 빌딩으로 적당히 강의 배경을 형성했다.
싱가폴이라면 상반신은 사자에 하반신은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는 머라이언(Merlion)을 빼놓을 수 없다. 싱가폴의 상징물과도 같은데 강의 맞은편에는 이 머라이언상이 하루 종일 물을 뿜고 있는 공원이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원과는 다르게 풀이 없는 시멘트 바닥일 뿐이지만 이상하게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고작해야 물을 뿜고 있는 머라이언만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싱가폴이었지만 카메라 셔터는 참 많이 눌렀다. 덥긴 했어도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덕분에 사진 찍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머라이언 공원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다리를 건너 그 요상하게 생긴 사자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매번 머라이언을 볼 때마다 참 웃기게 생긴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에스플러네이드까지 와서 머라이언을 안 보고 돌아가면 허전할 것 같았다.
확실히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덕분인지 다리 위에서도 제법 멋진 경치를 선사해줬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은 세 개의 빌딩 위에 커다란 배가 놓여져 있는 모양이라 언제 봐도 신기했다. 한쪽에는 대관람차 플라이어도 보였다.
쉬지 않고 물을 뿜어대는 머라이언 앞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실 공원만 놓고 본다면 무미건조한데 강을 끼고 있는 머라이언 덕분에 제법 괜찮은 장소처럼 보인다. 물론, 주변의 경치가 시원하고, 멋진 건물이 있기 때문에 찾는 이유도 있다. 나는 한참동안 머라이언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원래는 걸어서 클라키쪽으로도 갈 예정이었으나 시간이 너무 애매했다.
머라이언 공원에 왔으니 당연히 머라이언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과였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사진을 찍으려다 보니 내 차례가 돌아오기도 힘든데다가 혼자라서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었다. 단체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부탁해 나도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이탈리아 사람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오랜만에 머라이언 공원도 구경하고, 유쾌한 만남도 있어 싱가폴 시내 구경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공항에서 나오길 잘했다.
마지막에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대화를 나누었던 이탈리아 사람들과 악수를 한 뒤 머라이언 파크를 떠났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긴 했지만 조금 여유있게 공항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다시 다리를 건너 에스플러네이드 앞으로 갔다. 찌는 더위에 저절로 눈이 갔던 1.2S$짜리 망고주스를 하나 사먹었는데 불량식품 맛이었다. 난 근처에 앉아 이 불량식품 맛이 나는 망고주스를 쪽쪽 빨면서 마지막으로 싱가폴의 강바람을 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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