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 LCCT에서 뜬지 한 시간 만에 메단 공항(폴로니아 공항)에 도착했다. 메단의 공항은 정말 작았다. 인도네시아에서 3번째로 큰 도시라고 해서 나름 기대했는데 공항은 입국심사대를 거치니 바로 출구가 보일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심지어 입국심사를 거친 인원이 빠져나가니 주변은 한적하기까지 했다.
한적하기 그지없는 공항에서 나를 맞이한 건 환전상뿐이었다. 고작 2명뿐이었으나 날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어딘가. 일단 50달러만 환전하자는 생각으로 환전소로 향했다. 첫 번째 환전소에서 달러를 환전하겠다고 하니 계산기를 두드린다.
9600. 1달러에 9600루피아라는 의미였다. 뒤에 적힌 1달러에 9850은 뭐냐고 하니 이건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 옛날 정보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여기에는 환율이 실시간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니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9600이면 너무 손해보는 게 아닌가 싶어 바로 옆 환전소로 이동했다.
9600. 당연했다. 바로 코앞에 있는 환전소인데 다르면 더 이상하지 않는가. 그래도 이 아주머니는 나를 설득하는데 좀 더 끈질겼다. 곱슬머리에 까만색 피부가 꼭 인도계 사람처럼 보였다.
“얼마나 환전할 생각인데?”
잠시 고민하다가 50달러라고 했다. 내가 한참동안 머뭇거리니 9650에서 9700까지 올라갔다. 9700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서 환전을 하겠다고 50달러를 꺼냈다. 그런데 내 50달러를 슬쩍 보더니 낡은 지폐라며 손을 내저었다. 간혹 동남아시아에서는 낡은 지폐를 안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였다. 태국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없는데 유난히 이곳에서는 낡거나 구권의 경우 꺼려한다.
방금 전 도착비자를 발급 받을 때 거스름돈으로 받은 건데 환전소에서 안 받는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내가 보기엔 똑같은 50달러인데 왜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지 모르겠다. 동남아시아에서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니 일단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거 입국하자마자 받은 돈이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이 아주머니는 나를 도착비자 발급장소로 다시 안내했다. 여태까지 입국한 뒤로 다시 입국심사대를 통과한 적이 없는데 메단은 이게 가능했다. 입국심사대를 지나 도착비자 발급 받은 곳에서 50달러와 아까 받은 20달러짜리도 신권으로 교환했다. 그리곤 아주머니와 함께 다시 입국심사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다.
환전소로 돌아와 그녀가 계산기를 두들겨 나에게 보여줬는데 뭔가 이상했다. 혹시나 해서 다시 확인해 보니 9600으로 계산한 48만 루피아였다. 내가 아무리 허술해도 그렇지, 어디서 이런 꼼수를 부리나. 얼른 계산기를 뺏어 9700루피아로 계산해 48만 5천 루피아로 보여줬다. 아주머니는 피식 웃으며 알았다며 옆에 있던 젊은 여자에게 돈을 주라고 했다. 이렇게 환전하는데도 힘이 들다니.
돈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갔다. 지붕은 있었지만 뜨거운 공기를 마시니 벌써부터 답답함이 느껴졌다. 국제선에서는 안 보이던 사람도 여긴 참 많았다. 환전상을 지나치니 보는 사람마다 ‘택시?’라고 말을 걸 뿐이었다.
사실 난 메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왔다. 어느 곳이 유명한 관광지인지 배낭여행자는 주로 어느 곳에서 머무는 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냥 왔다. 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대책 없는 여행자의 심리가 나를 이끈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숙소를 찾는 대신 카우치서핑으로 알게 된 인도네시아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출발 전에 메단 공항 앞 KFC에서 만나기로 문자로 주고받아 이번에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에게 묻고 물어 KFC를 찾아갔다. KFC는 메단 공항 맞은편에 있는데 가깝지만 도로를 건너가야 했다.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져서 KFC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기만 했다.
‘그 친구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도 제대로 기억 못하는 인도네시아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조금 떨렸다. 혹시 만났는데 어색하면 어쩌나 싶었다. 아니면 이 친구가 안 나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짧게나마 생각에 잠겼다.
한 15분 정도 기다렸을까. 지나가는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계속 쳐다보다가 이상하다 싶어 KFC 내부를 쳐다봤다. 마침 나를 발견한 한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을 흔들었다.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장시간 비행과 뜨거운 공기에 지친 나는 그가 사주는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었다. 찬드라. 그의 이름이었다. 한국에도 와 본적이 있다고 했던 그와 몇 마디를 나누며, 수마트라 여행의 기대감을 점차 높여갔다. 이제부터 여행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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