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킷라왕(Bukit Lawang)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피낭 바리스(Pinang Baris)로 가야했다. 메단에서 한참동안 걸은 뒤에 그걸 알게 되다니, 나도 참 한심하다. 처음부터 목적에도 없던 부킷라왕(Bukit Lawang)이라 가이드북을 가지고 있어도 자세히 보질 않았다고 괜한 핑계를 대본다.
메단 몰 앞에서 사람들에게 피낭 바리스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베짝을 타라고 한다. 베모를 타면 안 되냐고 하니 노선이 없는지 경찰도 ‘베짝뿐’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걸어온 보람이 전혀 없는 셈이다. 괜히 짜증이 밀려와 오토바이 날치기에 당해 피가 나는 팔뚝을 보여줬다. 사실 웃으면서 말했지만, 오토바이 날치기 덕분에 그날 저녁까지도 짜증스런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미 도망쳐버린 그 녀석들에게 욕을 한바탕 퍼부어줘도 시원찮다.
난 베짝과 본격적으로 협상에 들어갔다. 베짝은 부르는 게 값이라 7만 루피아부터 시작했다. 당연히 7만 루피아로는 갈 생각이 없다. 6만 루피아. 5만 루피아. 그러나 5만 루피아에서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그때 아저씨들 틈바구니에서 손을 들고 나타난 사람이 3만 5천 루피아를 불렀다. 3만 5천 루피아도 비싼 거 아니냐고 하니 다들 손사래를 친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정도로 피낭 바리스는 멀다는 논리를 편다.
지도를 펼쳐서 피낭 바리스가 어딘지 물어봤다. 근데 정말 멀긴 먼가 보다. 지도에는 피낭 바리스가 아예 보이지도 않고, 도심에서 10km 떨어져 있다고 표시가 되어있다. 3만 5천 루피아면 적당하다는 판단이 들자 나를 꼬시는데 적극적인 아저씨(사실은 젊은 친구)를 따라갔다. 베짝을 타고 구부정한 자세로 20분을 달리니 그제야 멀다는 걸 믿게 됐다.
나를 태운 베짝이 떠난 뒤 난 멍하니 서있었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도 여긴 그냥 도로 한복판이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바로 옆에 있던 아주머니에게 부킷라왕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자신의 아들인지 조그만 꼬마 아이에게 안내를 하라고 했다. 다행이다 싶어서 따라가려고 했더니, 아주머니의 말이 가관이었다.
너무도 예상치 못한 돈, 그래 그놈의 돈이었다. 짜증이 솟구쳤다. 가뜩이나 소매치기를 당할 뻔해서 기분도 안 좋은데 여행자에게 돈을 요구하다니. 정말 그날은 인도네시아 이미지를 다 깎아 먹었다. 난 평소보다 격하게 화를 내며, 안내 따윈 필요 없다고 했다. 마냥 순진해 보이는 꼬마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아마 그 아이는 정말 순수하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부킷라왕으로 가는 버스편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냥 길을 건너가니 삐끼 아저씨들이 잽싸게 붙었다. 외국인이 피낭 바리스를 오는 이유는 부킷라왕 밖에 없었으니까. 부킷라왕으로 가는 미니밴은 처음에 가격을 높게 부르지만 쉽게 내려갔다. 2만 루피아에 최종 합의를 보고, 피와 먼지로 얼룩진 팔을 씻기 위해 화장실을 찾아 나섰다. 삐끼는 내가 약국을 찾는 줄 알고 데려다줬지만, 여러 차례 ‘토일렛’이라고 말하자 어느 빵집의 화장실로 안내해줬다.
미니밴은 소문대로 청결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부킷라왕까지 가는 동안 쓰레기는 바닥에 버리고, 그 좁은 차안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 아저씨도 있었다. 그나마 그 아저씨가 담배를 몇 번 피우지 않아 다행이라고 할까.
앞에 있던 여행자 커플과는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았다. 서로 지루해질 즈음에 눈이 마주쳐 눈인사정도만 했을 뿐, 별다른 이야기는 오고가지 않았다.
일단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론리 플래닛에 나오는 그 저렴한 숙소였고, 베짝도 단 돈 5천 루피아만 내면 된다고 했다. 거의 망설임도 없이 베짝에 올라탔다. 숙소를 예약했는지 어디론가 전화를 하던 여행자 커플 2명을 뒤로 하고 말이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는 먼저 가는 날 보며 작별 인사를 했다.
내가 찾아간 곳은 위스마 레우저르 시바약(Wisma Leuser Sibayak)이라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외관으로 보면 정말 크고 괜찮아 보이는데 방은 그냥 머물만한 수준 그 자체였다. 더 비싼 방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딱 싸구려 방이다. 가격은 5만 루피아였다.
정말 피곤했다. 메단에서 걷고, 또 걷고, 소매치기도 당할 뻔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부킷라왕에 도착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일단 씻고, 허기를 달래러 식당으로 갔다. 손님은 나밖에 없는지 한적했다. 깊은 어둠에 강이 흐르는 소리만 들리지 보이진 않았다. 주문은 날 데리고 온 아저씨의 추천대로 치킨 카레로 했고, 목을 축일 맥주도 하나 시켰다. 다만 빈땅이 없어 싱가포르 맥주인 앵커로 받았다.
어차피 할 트레킹이라 깎고, 다시 깎아 76달러에 합의를 봤는데 이게 싼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재차 물어봐서 확인한 끝에 하는 말은 오랑우탄이 있는 이곳은 보호구역이라 가이드 말고도 정부에게도 돈을 내야 한다고 했다. 나름 변명거리는 있는 셈이다. 그래도 착한 아저씨였다.
아주 신나게 떠들고 놀았던 것은 아니지만, 메단에서 안 좋았던 기분을 누그러뜨리기 충분했다. 내 팔에 붉게 상처 난 자국을 보고 담배 불을 붙이던 아저씨, 아리스는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메단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내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니. 내가 정말 미안하네. 친구.”라는 위로를 했다.
다음날 아침에 정글 트레킹이 있어 많이 마시지 못한다고 했지만 꽤 여러 잔 마시게 되었다. 공짜라서 계속 마셨나. 아리스는 나에게 꼭 또바호수로 가는 버스를 자신에게 예약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못 이기는 척 알았다고 하니 신나서 술을 또 가져와 마셔댔다. 그러면서 자신의 스위스까지 갔던 과거 연애사까지 털털 털어놨다.
메단 몰 앞에서 사람들에게 피낭 바리스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베짝을 타라고 한다. 베모를 타면 안 되냐고 하니 노선이 없는지 경찰도 ‘베짝뿐’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걸어온 보람이 전혀 없는 셈이다. 괜히 짜증이 밀려와 오토바이 날치기에 당해 피가 나는 팔뚝을 보여줬다. 사실 웃으면서 말했지만, 오토바이 날치기 덕분에 그날 저녁까지도 짜증스런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미 도망쳐버린 그 녀석들에게 욕을 한바탕 퍼부어줘도 시원찮다.
난 베짝과 본격적으로 협상에 들어갔다. 베짝은 부르는 게 값이라 7만 루피아부터 시작했다. 당연히 7만 루피아로는 갈 생각이 없다. 6만 루피아. 5만 루피아. 그러나 5만 루피아에서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그때 아저씨들 틈바구니에서 손을 들고 나타난 사람이 3만 5천 루피아를 불렀다. 3만 5천 루피아도 비싼 거 아니냐고 하니 다들 손사래를 친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정도로 피낭 바리스는 멀다는 논리를 편다.
지도를 펼쳐서 피낭 바리스가 어딘지 물어봤다. 근데 정말 멀긴 먼가 보다. 지도에는 피낭 바리스가 아예 보이지도 않고, 도심에서 10km 떨어져 있다고 표시가 되어있다. 3만 5천 루피아면 적당하다는 판단이 들자 나를 꼬시는데 적극적인 아저씨(사실은 젊은 친구)를 따라갔다. 베짝을 타고 구부정한 자세로 20분을 달리니 그제야 멀다는 걸 믿게 됐다.
여기가 피낭 바리스? 도무지 버스 터미널은 보이지도 않았고, 아니 그와 비슷한 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저 베짝 아저씨가 피낭 바리스라고 하기에 내린 것뿐이다. 오로지 나의 관심은 터미널에 쫓겨 있어, 아저씨가 돈을 거슬러 주다가 잔돈이 없다는 걸 그냥 넘어가 버렸다. 아무리 내가 짠돌이라고 해도 고작 1천 루피아 가지고 당장 내놓으라고 하진 않는다. 심지어 여긴 너무 멀었다.
나를 태운 베짝이 떠난 뒤 난 멍하니 서있었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도 여긴 그냥 도로 한복판이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바로 옆에 있던 아주머니에게 부킷라왕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자신의 아들인지 조그만 꼬마 아이에게 안내를 하라고 했다. 다행이다 싶어서 따라가려고 했더니, 아주머니의 말이 가관이었다.
너무도 예상치 못한 돈, 그래 그놈의 돈이었다. 짜증이 솟구쳤다. 가뜩이나 소매치기를 당할 뻔해서 기분도 안 좋은데 여행자에게 돈을 요구하다니. 정말 그날은 인도네시아 이미지를 다 깎아 먹었다. 난 평소보다 격하게 화를 내며, 안내 따윈 필요 없다고 했다. 마냥 순진해 보이는 꼬마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아마 그 아이는 정말 순수하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부킷라왕으로 가는 버스편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냥 길을 건너가니 삐끼 아저씨들이 잽싸게 붙었다. 외국인이 피낭 바리스를 오는 이유는 부킷라왕 밖에 없었으니까. 부킷라왕으로 가는 미니밴은 처음에 가격을 높게 부르지만 쉽게 내려갔다. 2만 루피아에 최종 합의를 보고, 피와 먼지로 얼룩진 팔을 씻기 위해 화장실을 찾아 나섰다. 삐끼는 내가 약국을 찾는 줄 알고 데려다줬지만, 여러 차례 ‘토일렛’이라고 말하자 어느 빵집의 화장실로 안내해줬다.
미니밴은 소문대로 청결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부킷라왕까지 가는 동안 쓰레기는 바닥에 버리고, 그 좁은 차안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 아저씨도 있었다. 그나마 그 아저씨가 담배를 몇 번 피우지 않아 다행이라고 할까.
사람이 채워지자 미니밴을 달렸는데 이내 거리에 멈춰서 서양 여행자 2명을 태웠다. 미니밴은 좁은 도로를 빠르게 달렸다. 종점은 부킷라왕이지만 중간에 손님이 있으면 언제라도 멈춰서 태우곤 했다. 지독하게 울리는 경적 소리는 다른 여행지에서 듣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쯤 되면 아주 낯익은 풍경이다.
숨 막히던 도심을 빠져나가니 더위도 함께 사라졌다. 날이 어두워지기도 했거니와 점차 숲속을 향해 진입해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주변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나무도 높아져갔다.
앞에 있던 여행자 커플과는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았다. 서로 지루해질 즈음에 눈이 마주쳐 눈인사정도만 했을 뿐, 별다른 이야기는 오고가지 않았다.
부킷라왕까지는 2시간 걸렸다. 큰 지붕이 터미널 대합실이라는 걸 증명해 줄 뿐,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 내렸다. 그들은 여기가 부킷라왕 터미널이고, 여기에서 다시 베짝을 타고 마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약속한 요금 2만 루피아를 지불하면서, 주변 풍경을 익혀보려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내리자마자 삐끼(나중에 알고 보니 게스트하우스 주인장)가 붙었기 때문이다.
일단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론리 플래닛에 나오는 그 저렴한 숙소였고, 베짝도 단 돈 5천 루피아만 내면 된다고 했다. 거의 망설임도 없이 베짝에 올라탔다. 숙소를 예약했는지 어디론가 전화를 하던 여행자 커플 2명을 뒤로 하고 말이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는 먼저 가는 날 보며 작별 인사를 했다.
작은 마을 부킷라왕에는 이미 어둠이 깔렸다. 부킷라왕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그 강을 따라 여행자를 위한 숙소가 형성된 아주 작은 마을이다. 괜찮은 분위기였다. 조용하지만 수영을 하는 아이들이 보여 활기가 넘쳤다. 흔들거리는 다리를 건너며 강을 내려다봤다.
내가 찾아간 곳은 위스마 레우저르 시바약(Wisma Leuser Sibayak)이라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외관으로 보면 정말 크고 괜찮아 보이는데 방은 그냥 머물만한 수준 그 자체였다. 더 비싼 방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딱 싸구려 방이다. 가격은 5만 루피아였다.
정말 피곤했다. 메단에서 걷고, 또 걷고, 소매치기도 당할 뻔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부킷라왕에 도착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일단 씻고, 허기를 달래러 식당으로 갔다. 손님은 나밖에 없는지 한적했다. 깊은 어둠에 강이 흐르는 소리만 들리지 보이진 않았다. 주문은 날 데리고 온 아저씨의 추천대로 치킨 카레로 했고, 목을 축일 맥주도 하나 시켰다. 다만 빈땅이 없어 싱가포르 맥주인 앵커로 받았다.
모기에 계속 뜯기면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아저씨가 내 앞에 앉아 내일 정글 트레킹을 하자고 꼬셨다. 어차피 부킷라왕에 온 목적은 오랑우탄을 보는 것이지만, 가격을 듣고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80달러가 넘었는데 난 계속 ‘나중에, 나중에’라는 말로 화제를 돌렸다. 꼬임에 넘어가지 않아 답답했는지 콜라를 하나 집어 와서 마시기 시작했다. 덕분에 심심하진 않았지만, 목적은 뻔히 보이는 트레킹 예약이었다.
어차피 할 트레킹이라 깎고, 다시 깎아 76달러에 합의를 봤는데 이게 싼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재차 물어봐서 확인한 끝에 하는 말은 오랑우탄이 있는 이곳은 보호구역이라 가이드 말고도 정부에게도 돈을 내야 한다고 했다. 나름 변명거리는 있는 셈이다. 그래도 착한 아저씨였다.
저녁을 먹고, 어두워졌음에도 다리를 건너갔다. 다리 건너 어떤 으슥함이 나를 덮칠지 모르지만, 아까 이런 시골 마을이 오히려 안전하다는 아저씨의 말에는 백퍼센트 공감했다. 다리를 건너 조금만 걷다가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이내 난 제지당했다. 다리 끝에 있던 작은 슈퍼 겸 식당에서 수다를 떨던 무리가 나를 붙잡은 거다. 함께 하자는 그들의 말에 딱히 거부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아 자리에 앉아 버렸다.
아주 신나게 떠들고 놀았던 것은 아니지만, 메단에서 안 좋았던 기분을 누그러뜨리기 충분했다. 내 팔에 붉게 상처 난 자국을 보고 담배 불을 붙이던 아저씨, 아리스는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메단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내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니. 내가 정말 미안하네. 친구.”라는 위로를 했다.
가장 연장자인 아리스만 담배를 피우고, 불투명한 술을 마셨다. 물론, 나도 옆에서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무슨 술인지도 모르고. 어떤 나무에서 추출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은 안 난다. 맛은 막걸리와 살짝 비슷하지만 그렇게 진하지 않았다. 아무튼 딱 술을 좋아하는 아저씨였다. 그래서 무슬림이 왜 이렇게 술을 좋아하냐고 놀리자 자신은 ‘반쪽짜리 무슬림’이라고 웃어 넘겼다.
다음날 아침에 정글 트레킹이 있어 많이 마시지 못한다고 했지만 꽤 여러 잔 마시게 되었다. 공짜라서 계속 마셨나. 아리스는 나에게 꼭 또바호수로 가는 버스를 자신에게 예약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못 이기는 척 알았다고 하니 신나서 술을 또 가져와 마셔댔다. 그러면서 자신의 스위스까지 갔던 과거 연애사까지 털털 털어놨다.
지나가던 동네 남자 2명도 자리에 앉아 한참 이야기했다. 아리스는 손가락 2개 크기의 작은 휴대폰으로 내 얼굴을 ‘기념’으로 찍겠다고 할 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옆에서는 그런 구닥다리 휴대폰으로 사진이 찍히냐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내일 나를 위한 간단한 파티를 열자고 약속한 뒤 헤어졌다. 부킷라왕에 도착하자마자 동네 주민들과 몇 시간 동안 수다라니. 그래도 이런 게 여행의 재미라면 재미다. 정말 길었던 하루가 그제야 끝났다. 아무튼 부킷라왕에 도착하니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내일이 오면 오랑우탄을 만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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