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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는 트랜스젠더들이 공연하는 칼립소 카바레 쇼가 있다. 게이들과 트랜스젠더의 공연이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모르겠지만 관광객들에게는 꼭 관람해야 할 정도로 여행 코스의 일부로 취급되고 있다. 심지어 이 공연은 항상 매진을 기록한다. 나는 방콕에 몇 번 갔어도 칼립소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는 칼립소를 보기 위해 아시아 호텔에 갔다가 공연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해 발걸음을 돌렸던 기억도 있다.

이번에는 칼립소 쇼를 보기 위해 아침에 예약부터 했다. 가격은 900밧으로 그리 저렴하진 않다. 숙소에서 칼립소를 예약하더라도 바우처만 주니 꼭 공연장으로 가서 티켓으로 교환해야 한다. 그리고 칼립소 공연장은 아시아 호텔에서 야시장인 아시아티크로 옮겼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아시아티크를 가봤는데 분위기나 야경이 무척 근사했다. 칼립소를 보러 가는 사람은  가급적 저녁이 되기 전에 아시아티크로 가서 저녁을 먹거나 야시장을 구경하다가 공연장을 들어가는 편이 좋아 보인다.

좀 더 일찍 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시아티크를 왕복하는 무료 셔틀 보트를 빨리 타기 위해서다. 사판탁신에서 무료 셔틀 보트를 탈 수 있는데 조금만 늦게 가면 줄이 길어져 한참 기다릴 수 있다. 만약 돈을 내고 아시아티크로 가고자 한다면 20밧을 내고 보트를 타면 된다.


아시아티크의 정중앙 부근에 칼립소 공연장이 있다. 처음에는 아시아티크도 낯설고 공연장이 어딘지 몰라 한참 헤맸다.


비싼 공연답게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음료 쿠폰을 제공한다. 칼립소 카바레 쇼는 저녁 8시 15분, 9시 45분 이렇게 하루에 두 차례의 공연을 하는데 공연 시간은 약 1시간 15분 정도다.

들뜬 마음을 안고 칼립소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일일이 관객을 안내해 줄 정도로 직원들은 친절했고, 방콕 최고의 공연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돈을 냈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공연장 내부는 어두컴컴한 가운데 붉은색 조명으로 물들어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뜩이나 공연보다도 게이나 트랜스젠더의 모습이 더 궁금했는데 뭔가 이상한 장소에 온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는 가족 관람도 많아 그러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자리는 의자만 있는 단순한 형태이고, 네 사람당 하나씩 음료를 놓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곧바로 음료 주문을 받았는데 난 진토닉을 선택했다. 술 마시러 온 것도 아니니 가볍게 목을 축일 정도라고 보면 된다.


공연은 출연자를 차례대로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화려한 의상과 몸매가 돋보이는 이 분들이 진정 트랜스젠더인지 눈을 의심했다. 난 다른 나라에서 게이는 많이 봤지만 트랜스젠더는 처음(아마도) 보는 거라 무척 신기했다.

칼립소 카바레 쇼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이런 공연은 플래쉬로 공연이 방해되거나 혹은 공연 내용이 외부로 유출될까봐 촬영이 불가능한 게 정상인데 여긴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 있다. 아무래도 게이와 트랜스젠더라는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하는 공연이다 보니 더 사진 찍히길 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겠지만 칼립소 쇼 자체가 그리 수준이 높지 않아서 촬영을 해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춤추는 모습이 재밌다.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야릇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게 더 이상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런 걸 보고 싶으면 굳이 이런 데를 올 리가 없지 않는가. 오히려 출연자들은 자신들의 성 정체성을 인정받고, 일반 사람처럼 대우 받으려 하는 것이니까 이런 내용이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그녀들의 공연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남녀의 이별, 봉춤, 전통춤, 패러디 등 주제가 없다. 그냥 춤추고 노래하는 게 전부인데 사실상 노래는 전부 립싱크라 공연의 주 내용은 춤이라고 해야 할까.


태국 전통 의상을 입고 현대식으로 해석한 공연(권선징악과 관련된 힌두교 이야기로 보인다)도 있지만 뜬금없이 일본의 기모노를 입고 춤을 추거나 한국의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는 장면도 있다.


부채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실소를 터뜨렸다. 아무리 다른 나라의 춤이라 해도 너무 어설펐다고 해야 할까.


칼립소 쇼를 본 사람들이 말하길 여자보다 더 예쁘다고 하던데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정말 예뻐 보이는 사람도 몇 명 있어 놀라긴 했는데 안타깝게도 공연이 끝나고 밖에서 보니 조명빨이었다.

결론적으로 칼립소 카바레 쇼를 평가하자면 공연이 지속될수록 흥미가 떨어졌다. 트랜스젠더라는 호기심 때문이라 해도 그건 초반뿐, 아무래도 공연 자체의 수준이 너무 낮아 관객에게 호응을 유도하긴 어려웠다.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고 등장하기도 하지만 어린 아이들도 함께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단순하고, 내용 자체가 노래와 춤으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노래라도 잘 부르면 모르겠는데 전부 립싱크라 뭐라 할 말이 없다.

공연이 끝나고 나가면 출연자들이 일렬로 서서 관객을 배웅하는데 서로 사진 찍자고 난리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관객이 먼저 다가갈 텐데 얼른 오라는 손짓에도 머뭇거리게 된다. 가끔 용기내서 그녀들을 양옆에 끼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보이긴 하지만, 너무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자고 붙잡으니 오히려 관객이 도망가는 형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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