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클루지나포카(Cluj-Napoca)에서 버스를 타면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에는 아침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후너스는 말했지만 실제로 내가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시각은 무려 새벽 4시 반이었다. 나 역시 이렇게 이른 시각에 도착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작정 시티센터까지 걸었다. 또 배낭 메고 걸었다. 그것도 1시간 이상.
사실 평소라면 일찍 도착한 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예약했던 호스텔은 아침 9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했다. 이는 앞으로 4시간 이상 낯선 도시에서의 방황을 의미했다.
나쁜 예감은 꼭 들어 맞는다. 부다페스트이자, 헝가리에서의 첫날부터 배낭 메고 2시간 이상 걷다가 새벽 6시가 되어서야 24시간 영업하는 서브웨이를 발견하고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부다페스트는 과연 관광도시다웠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은 여행자들로 거리를 가득 메웠다. 심지어 지난 3개월간 한국인을 포함해 아시아인 여행자를 본 횟수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는데, 여기에선 너무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노점이 참 많았다. 소세지가 지글지글 익는 소리와 함께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근데 정말 비쌌다. 아무거나 손가락으로 집으면서 가격을 물어보니 전부 만 원 가까이 했다. 난 처음에 내가 잘못 계산했나 싶어서 몇 번이고 환율계산기를 들여다 봤다. 헝가리 물가가 이렇게 비싼가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노점이 정말 비싼편이었던 것이고, 찾아보면 싸고 괜찮은 식당이 꽤 많다.
처음엔 그런 것도 모르고 그냥 사먹어봤다. 너무 비쌌지만 배고프고, 귀찮아서. 게다가 바로 전날이 내 생일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거 먹어보자는 심정으로 거금을 들여 길거리 음식을 사먹었다.
보통 대관람차의 위치는 강이나 바닷가 근처이기 마련인데 여기는 건물 사이에 있어 조금 신기했다.
부다페스트는 오래된 건물이 많아 중후한 도시로 연출하고 있다.
겨울에 여행한다는 건 어두운 사진만 남긴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3시부터 시작되는 저녁, 혹은 낮이라고 하더라도 비나 눈이 오는 날씨에 대부분 '버릴 사진'이 되어버렸다. 그건 그렇고 영웅광장에서 아주 특별한 친구를 만났다.
커팅카는 헝가리인으로 로컬 친구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곳은 3개월 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였다. 그 동안 난 여행을 계속하다 보니 헝가리까지 왔고, 이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나보고 여행을 아직도 하고 있냐며 어찌나 질투를 하던지.
나를 '손님'이니까 밥을 사겠다며 데려간 곳은 무려 부페였는데 정말 저렴하면서도 괜찮았다. 고작해야 6천원 정도에 다양한 메뉴는 물론이고, 직접 구워주는 고기도 먹을 수 있었다. 이쯤되면 지난 저녁에 먹었던 만 5천원짜리 '길거리표 스테이크'가 얼마나 비쌌는지 알 수 있다.
밤에는 부다페스트의 대표적인 야경을 보러 다리를 건넜다. 날씨가 정말 추웠다.
왕궁 근처까지 올라 바라보는 야경은 제법 훌륭했다.
밤에 돌아봤으니 다음엔 낮에 같은 지역을 돌아봐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늘 그렇듯 부다페스트에 머무는 동안 다시 가질 않았다.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 치(토고)와 타히라(미국)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깜짝 놀랐다. 급저녁멤버로 구성돼 헝가리 음식인 굴라쉬를 먹으러 갔다.
하필 내가 부다페스트에 있는 동안 숙박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행자가 몰리는 새해가 있어 난 계속 숙소 찾아 이동해야 했다. 심지어 12월 31일은 웬만한 호스텔 가격이 배 이상으로 뛰었다.
부다페스트에선 항상 걸어다녔다. 대중 교통을 단 한 번도 타 본적이 없다. 하루는 시티센터에서 다리를 건너 저 멀리 다른 다리로 건너서 돌아오는 식으로 도보여행을 했다.
여러 나라의 국회의사당을 봤지만 헝가리 국회의사당처럼 이렇게 개성이 강한 외형은 처음 보는 것 같다.
2015년이 오긴 오는가 보다. 펍과 클럽이 많은 거리에선 공연도 했다. 우연찮게 불쇼를 보며 '엄마가 불장난은 하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혼자 펍을 갔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너무 심심했다. 부다페스트는 내가 여행했던 어떤 나라보다도 여행자가 많았지만 같이 어울린 적이 별로 없었다. 한국인을 만나도 서로 그리 반가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긴 호스텔 복도에서 아시아 사람을 붙잡고 "한국 사람이죠? 같이 술 한 잔 하실래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아무튼 적당히 시끄럽지 않은 펍을 골라 들어갔다.
이 펍은 어두운 분위기도 아니고, 담배가 자욱한 냄새나는 곳도 아니었다. 그런데 한편에서 라이브 공연까지 하고 있어 혼자서 한 잔 하기엔 괜찮았다. 그러다가 바로 옆에 앉은 아저씨와 합석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혼자라고 심심하다고 투정부리니 꼭 누군가 나를 만나준다. 내 여행은 항상 그랬다.
미국인이라고는 했지만 10년 넘게 유럽에 살고 있어 유럽인이라고 소개한 존 아저씨와 자리를 옮겨 와인바에 가서도 한 잔 마셨다. 여기 와인바는 잘 아는 곳이라고 해서 무려 공짜로 마셨다. 그 다음날에도 존 아저씨와 와인바에서 여러 와인을 마셨는데, 또 공짜였다.
12월 31일.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유럽에서는 새해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들었는데 역시 너도나도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모자를 쓰고, 나팔을 불고, 폭죽을 터트렸다. 하지만 난 이날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시기도 했고, 날씨가 너무 추워 12시가 되기도 전에 숙소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버렸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새해맞이 폭죽이 아니라 소세지뿐이었다. 물론 먹진 않았다.
매서운 찬바람엔 따뜻한 와인으로 몸을 녹인다.
굴라쉬와 더불어 헝가리를 여행하면 꼭 마셔봐야 한다고 해서 토카이(Tokaj) 와인을 마셔봤는데 기존 와인보다 살짝 걸죽하면서도 달달했다.
부다페스트에서 체류하는 동안 호스텔을 2번이나 옮겨 총 3군데서 지냈는데 마지막 호스텔에서는 한국 사람을 많이 만났다. 처음엔 서로 한국 사람인 줄 모르고 같은 방에서 딴 짓하다가 얼떨결에 나온 한국말에 놀라 인사하게 되었다. 그렇게 예원이와 부다페스트의 외곽을 몇 시간 걷다가 전날 만났던 상봉이를 만나 저녁을 함께 보냈다.
루마니아에서 신지누나를 만났으니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 같았다. 숙소로 돌아와 내가 가지고 있던 브랜디와 와인도 꺼내서 늦게까지 함께 마셨다. 안주가 살짝 부족해졌을 때 내가 파스타를 넣어 '수제비를지향하는빨간스프'를 정체모를 음식을 만들어 주니 정말 맛있다고 좋아했다.
부다페스트의 마지막날엔 시장을 잠깐 둘러봤다. 1층엔 주로 청과물과 육류, 2층엔 기념품, 지하엔 피클 등을 팔고 있어 재래시장 분위기가 난다.
부다페스트 거리에는 여행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70%는 넘어 보였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도 들어가봤다.
2015년이 되니 한 철 장사이긴 했는지 노점 철거가 시작됐다. 그래서 비쌌나 보다.
저녁엔 부다페스트 야경을 찍으러 나갔다. 부다페스트에 무려 일주일이나 있었는데 제대로 된 야경 한 장 찍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게으름을 채찍질하기 위해서라도 거리로 나섰다.
항상 트램만 보면 멈춰서서 사진을 찍게 된다.
과연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 부다페스트였다. 하지만 갑자기 내리는 비로 사진 찍기가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금방 멈출 것 같더니 이내 카메라를 꺼내 놓기 힘들 정도로 비가 내렸다. 마지막 날이라고 야경 찍는 건데 참 타이밍 한 번 죽인다.
겔레르트 언덕 위는 이날 처음 올라가봤는데 경치가 상당히 좋았다. 게다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적당한 포인트가 몇 군데 있다. 여길 이제야 알았다니 나도 정말 게으른 여행자인가 보다.
내려오는 길에는 부다성(Buda Castle) 야경도 찍었다. 한참을 사진 찍고 내려오는데 아까 내린 비로 도로가 얼어붙어 넘어질 뻔했다.
항상 넘던 체인 브릿지를 넘어 호스텔로 돌아갔다. 여길 건너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다. 야경을 찍겠다고 나선 시각은 5시, 호스텔로 돌아오니 9시가 되었다.
호스텔로 돌아와 같은 방을 사용했던 동갑인 준영이와 전 호스텔 주방에서 몇 번 마주쳤지만 눈치만 살폈던 동생 정훈이를 호스텔에서 만났다. 전날에도 한국 사람과 어울려 같이 술을 마셨는데 또 한국 사람들과 밤새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했는데 의외로(?) 괜찮은 인간미가 느껴지는 바람에 맥주 캔이 쌓여갔다.
지금 생각하면 다음날 늦게 예상보다 늦은 9시에 일어났을 때부터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짐을 챙기고 떠날까 말까 고민하던 순간 남은 포린트가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미련 없이 떠나기로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호스텔을 나선 시각이 무려 11시, 그것도 다시 '히치하이킹'을 하기 위해서 나간 것 치고는 많이 늦은 편이었다. 난 루마니아부터 히치하이킹으로만 여행을 하려고 했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실패했고, 그 결심이 헝가리에서부터로 변경된 것이다. 12월 31일이나 1월 1일에 부다페스트에 머물렀던 이유도 그 시기엔 히치하이킹이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은 포린트가 하나도 없어 히치 포인트까지 걸어갔는데 무척 멀었다. 1시간은 족히 걸었을 거다. 서쪽과 북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M1과 M7로 진입하는 곳까지 가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다시 용기가 필요했다. 힘들게 꺼낸 내 엄지손가락, 그러나 생각만큼 히치하이킹이 쉽지 않았다. 15분 만에 경적을 울리는 차에 다가가니 M7으로 간다며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10분 동안 엄지손가락을 다시 내밀고 서있으니 차 한 대가 멈췄다. 방향은 살짝 다르지만 M1 고속도로를 타고, 슬로바키아 국경 근처까지 태워줄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난 좋다고 올라탔다.
나를 태워준 친구는 체코인으로 우크라이나와 헝가리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우리는 약 1시간 반 동안 신나게 대화를 나누며 북쪽으로 이동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말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거쳐 체코로 향하던 이 친구는 끝까지 데려다 줄 수 없어 미안하고 다음차를 빨리 탈 수 있길 바라겠다는 말을 건넸다. 난 여기서 슬로바키아까지는 30km 남짓 남았기 때문에 당연히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이번 여행의 최대 개고생이 시작됐다.
겨울이라 오후 3시만 넘어가도 해가 진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것이다.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슬로바키아로 지나다니는 차는 별로 없고, 설령 슬로바키아로 가는 차가 있다 하더라도 차는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고속도로라 하더라도 분기점이라 대부분 속도를 멈추기 마련인데 딱 한 대 멈췄다. 그 차에 탄 할아버지는 손짓으로만 대화를 시도하더니 날 태우지 않은 채 그냥 가버렸다.
브라티슬라바까지 가깝지 않나 최면을 시도해봐도 지도를 보면 정말 막막했다. 그로부터 1시간 후 난 걷기 시작했다. 칠흙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걸었다. 히치하이킹에 실패했어도, 배낭의 무게가 점점 압박해 와도, 비가 오더라도... 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암울했다. 아무리 걸어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인데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다니 하늘이 무심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지인들에게 나를 '길바닥 여행자'라고 불러 달라고 했는데, 이날 만큼은 정말 길바닥 여행자였다. 난 쉬지 않고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깜깜한 시계만큼 까마득한 거리가 남아 있었다. 3시간이 지났을 무렵 비는 더욱 거세졌고, 이미 나는 온몸이 다 젖었다. 4시간 후엔 슬로바키아 국경에 도달했다. 이때부터 비는 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5시간 후엔 어느 작은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턴 가로등이 있어 훨씬 안심이 됐다.
마침 지나가는 버스가 보였다. 여기서 분명 버스를 타고 브라티슬라바 시내까지 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10분 더 걸었을 때 버스정류장이 나왔고 난 그제야 배낭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배낭 커버는 이미 살얼음으로 뒤덮힌 상태였다. 그때부터 버스에 어떻게 탈 것인지 고민했다. 슬로바키아 돈이 전혀 없으니 유로를 받으면 안 되겠냐고 설득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승객에게 대신 좀 내달라고 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잠시 후 도착한 버스에 올랐는데 아예 현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유로를 안 받는다는 줄 알고 다른 승객에게 가서 슬로바키아 돈으로 바꿔 줄 수 없냐고 물었는데 슬로바키아도 유로를 사용한다고 했고, 딱히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미리 승차권을 구입해야 하는데 루마니아와 비슷한 시스템인 것 같았다. 난 현금이라도 낼 수 없냐고 기사 아저씨에게 재차 물었지만 괜찮다고 했다. 결국 나는 원치 않는 무임승차(?)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브라티슬라바 시내까지 무사히(?) 도착했다는 훈훈한 개고생 스토리가 끝이었으면 좋겠지만 이날의 여파로 다음날부터 앓아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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