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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라를 여행한 후 곧바로 그리스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떠나려고 했던 당일 새벽부터 비가 오는 바람에 하루가 미뤄졌다. 그리고 다음날 칼람바카를 떠날 때 나는 그리스를 탈출하기가 그렇게 어려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목표는 플로리나(Florina)였다. 데살로니키로 간 뒤 터키나 불가리아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구 유고슬라비아의 모든 나라를 여행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마케도니아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칼람바카를 빠져 나와 바로 보이는 큰 도로에서부터 히치하이킹을 했다. 2시간이 지났지만 단 한 대의 차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스에서 히치하이킹이 어려울 거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보다 더 어려웠다. 어쩌면 프랑스보다도 더.


정말 이게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나쁜 건지 난 트럭을 타고 알 수 없는 곳에 도착했다. 지도를 대충 보니 칼람바카에서 고작 30km 이동했을 뿐이다. 난 여기서 그레베나(Grevena)로 쉽게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대단히 큰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차가 잘 안 다니는 도로이긴 했어도 아예 없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3시간을 길 위에서 기다리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근처에 있는 폐건물에서 비를 피했다.


1시간 반 정도 지난 후 비가 멈추자 난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지만 역시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난 폐건물 아래에 텐트를 쳤다. 몇 년간 방치된 건물인지 주변이 더러웠지만 비로 젖은 땅에 텐트를 치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과 비가 와서 습기로 가득한 날씨 탓에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금방 잠이 들었다. 9시부터 다음날 7시까지 숙면을 취했다. 의외로 하루 종일 굶었는데 배는 고프지 않았다.


텐트를 걷고 다시 길 위에 섰다. 플로리나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레베나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쫄쫄 굶은 탓에 허기가 느껴지고, 이제는 아무도 안 멈추는 그리스인을 보며 지치기 시작했다. 여기가 평지였다면 그냥 걷겠지만 얼마나 높은지도 모르는 산이라 쉽사리 움직이기 어려웠다.


결국 걷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은 나를 또 다시 땀으로 젖게 만들었다. 그렇게 거의 1시간쯤 걸으며 손을 들었을 때 정말 놀랍게도 차 한 대가 멈췄다. 그레베나까지 간다고 했던 이들은 역시 그리스인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인으로 약 2주간 그리스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어딘지도 모르는 외딴 곳에서 구해줬다. 데살로니키로 가는 중이라 나를 코자니(Kozani)까지 태워줬다.


이틀간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나를 위해 복숭아까지 줬다.


코자니 시내는 고속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난 배고팠지만 다시 히치하이킹하기로 결심했다.


1시간쯤 걸었을 때 고속도로 입구 근처 공터에 푸드트럭을 발견했다. 굶주린 나는 히치하이킹이고 뭐고 일단 먹으러 달려갔다. 지로스는 아니었지만 구운 고기를 빵에 넣어 주는 샌드위치를 팔고 있었다.


정말 꿀맛이었다.


갑자기 비가 와서 당황하고 있을 때 아저씨가 트럭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물론 영어로 의사소통은 불가능했지만 난 샌드위치를 입에 물면서 어디를 여행했고,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열심히 설명했다. 아저씨는 나에게 아이스커피를 쏘겠다며 건넸고 생수도 한 병 줬다. 정말 고마웠던 아저씨를 뒤로 하고 히치하이킹을 했는데 정말 놀랍게도 10분 만에 성공했다.


난 프토레마이(Ptolemaida)에 도착했고, 여기서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그러나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차가 거의 없어 히치하이킹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일단 프토레마이 시내로 걸어갔다.


나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조금 쉬기로 결정했다. 인터넷도 하고, 옆에 있던 남자와 대화도 나눴다. 한참 얘기를 하다 직업을 물었는데 놀랍게도 이 카페 주인장이라고 했다. 이거 내 여행을 부러워할 사람이 아닌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카페 규모가 주변에서 가장 컸다.


카페에서 난 커피만 주문했을 뿐인데 젤리도 주고, 빵도 주길래 그저 고맙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계산하려고 할 때는 커피 값도 받지 않았다. 낯선 여행자에게 커피 한 잔을 대접한 그들이 정말 고마웠다.


떠나기 전에 사진도 같이 찍었다.


프토레마이가 그리 큰 도시는 아니기에 걸어서 나갔다.


그리고 또 히치하이킹. 역시 그리스에서 히치하이킹을 한다는 건 '개고생'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약 2시간가량 걸으면서 히치하이킹을 했으나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화답을 했는데 그런 거 말고 제발 태워달라고, 라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정말 놀랍게도 어떤 아저씨가 날 태워줬는데 그 다음 마을에서 나를 내려줬다. 플로리나로 가려면 버스를 타라는 의미의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내가 버스는 안 탄다고 설명했다.


이곳이 대체 어디인가 싶을 정도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난 여기서도 히치하이킹을 했으나 1시간 동안 아무도 멈추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난 마을 중심부로 돌아가 샌드위치를 사먹고 맥주를 마셨다.


적당히 텐트 칠 수 있는 장소를 알아보던 도중 한 무리의 여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들은 학교라면 괜찮다고 얘기해줬다. 학교에서도 농구를 하던 몇 명의 남자 아이들이 괜찮다는 말을 했다. 난 그래서 학교에 텐트를 치기로 결정하고 일단 맥주나 한 잔 마시러 옆에 있던 카페에 갔다.


맥주를 마시고 돌아와 텐트를 쳤다. 농구를 하던 남자 아이들도 떠났고, 나와 셀카를 찍었던 여자 아이들도 떠났지만 늦은 시각이라 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난 조금 더 기다렸어야 했다. 적어도 멀리서 보였던 몇 명의 남자가 떠나기 전까지 말이다. 난 텐트를 치고 조금 생각하다가 그냥 안에 들어갔는데 몇 분도 되지 않아 그 남자들이 텐트를 향해 뭔가를 던졌다.


뾰족한 것을 던져 텐트가 찢어진 것을 보자마자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심지어 이들은 "중국인이냐?, 이리와 보시지?"는 식의 도발을 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갔다. 뭘 던진 건 별로 문제가 안 되는데 텐트가 찢어져 미칠 것 같았다. 동네 꼬마 녀석들이지만 이들을 용서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미칠 듯 한 마음을 겨우 진정한 후 다음날 이들을 잡자는 생각으로 텐트를 접고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 갔다. 그리고 맥주를 마셨다. 여기서 어떤 아저씨 무리에 섞여 맥주를 마시게 되었고, 이들 중 한 명만 영어가 가능해 조금 전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코스타스라고 했던 아저씨는 진정하라고 했지만 난 다음날 그들을 꼭 잡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생각보다 이 카페는 굉장히 오래 영업했다. 새벽 2시쯤 난 바로 옆 테이블에 있던 친구들과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다. 폴, 이안, 텔라마코스, 코코스라고 소개했던 이들과 이야기 하는 순간까지도 찢어진 텐트에 속이 쓰라렸지만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물론 그들을 용서했다는 의미는 아니라 안 좋은 사건이 있어도 결국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게 여행의 순리라 느껴졌다는 의미다.


레치나라고 불리는 그리스식 화이트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새벽 4시가 되었다.


정말 즐거웠던 만남에 이어, 아침까지 그들을 잡기 위해 밖에서 버티려고 했던 나에게 텔라마코스는 자신의 집에서 자도 괜찮다고 했다. 새벽 4시 반에 텔라마코스 집에 갔고 코코스와 함께 새벽 5시 반까지 레치나를 마셨다. 집은 굉장히 깔끔하고 넓었다. 텔라마코스는 나에게 빈방을 안내해줬고 최근 며칠 간 텐트에서 자던 나는 오랜만에 침대에 몸을 누웠다.


다음날 아침 어색하게 텔라마코스 어머니와 인사를 했다. 은근슬쩍 "누나니?"라는 말을 건넸더니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셨다. 원래 바로 떠나려고 했으나 텔라마코스를 비롯해 코코스가 낚시를 하러 가자고 해서 하루 더 머물렀다. 다만 아침부터 비가 계속 와서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


늦은 오후 카페에 가서 시간을 때웠다. 지나가는 꼬마가 보일 때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니 다들 웃었다. 평일인데도 카페에 앉아 여러 사람을 만나고 노닥거리는 모습을 보니 그리스 실업률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만난 또 다른 친구 조지는 나에게 샌드위치를 사줬는데 텐트 이야기를 듣고 미안해서라고 했다.


텔라마코스 집에서 모여 또 수다삼매경에 빠진 친구들. 물론 간간히 나에게 질문을 하긴 했지만 12시가 넘어가 피곤해진 난 일찍 자러 들어갔다.


결국 그리스에서 히치하이킹은 포기하자는 생각으로 페르딕카스(Perdikkas)에서 플로리나행 버스를 탔다.


플로리나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마케도니아 비톨라(Bitola)로 가는 버스를 알아봤는데, 그런 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대신 국경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데 무려 5.5유로라는 말을 듣고 바로 나왔다.


어쩔 수 없나 보다. 난 다시 히치하이커가 됐다.


역시 히치하이킹은 쉽지 않았다. 혹시라도 히치하이킹을 할 수 없더라도 국경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걸어서라도 갈 생각이었다.


그때 어떤 아저씨가 내 여권을 확인한 뒤 태워줬다. 말을 거의 하지 않아 처음에는 비톨라를 가는 줄 알았으나 그냥 국경에 나를 내려준 뒤 떠났다. 그리스 국경을 넘을 때 쉥겐지역 체류기한이 지났는지 의심을 받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다. 슬로베니아를 떠난 지 3달 전이라고 했는데도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국경에서 아주 재밌는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국경 안내판 때문이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와 국명 사용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때문에 피럼(FYROM, 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 즉 구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의 마케도니아라고 부르는데 그 갈등을 이 안내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마케도니아에 입국한 순간부터 난 그냥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국경에서 정말 5분도 되지 않아 히치하이킹에 성공했고, 난 비톨라에 도착했다. 메테오라에서 마케도니아로 가겠다고 떠난지 4일 만에 그것도 여러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마케도니아에 도착했다. 어쩌면 그 전에 이리스와 알바니아 남부를 여행하지 않았다면 3주 전에 아주 쉽게 도착했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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