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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산티아고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날씨는 흐리고, 거리에는 사람이 없는 대신 온통 쓰레기로 가득했다. 특히 오랜만에 한식이 그리워 한인촌을 찾았는데 이곳이 더 심했다. 아무리 아침이라고 해도 가게는 다 닫았고, 분위기는 황량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곳은 평소 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주말이라 조용했던 거다.


근처 식당에 대해 물으려 한인 숙소 고려민박에 들어갔을 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여행했던 동우를 다시 만났다. 산티아고에서 일주일 있더니 너무 편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마침 함께 있던 숙소 사장님이 저녁에 바베큐 파티를 하려고 하니 시간이 있으면 오라고 초대를 했다. 어차피 우리도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이곳에 묵고 있는 여행자가 아닌데 그래도 되나 싶었다. 괜찮다는 말을 몇 번 듣고 저녁에 우리가 마실 술만 준비해서 갔다.


항상 고기를 먹었는데 오랜만에 쌈장에 한국식으로 고기를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가지고 온 술을 마시며 새벽 4시까지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너무 늦었으니 자고 가라는 호의는 차마 이곳에 묵는 여행자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바쁘게 움직이지 않고 그저 동네 한 바퀴 돌고, 같이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산티아고에서 관광지라고 할만한 곳은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술에 쩔어 한동안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호스텔에서 포켓볼을 쳤다. 내기를 했는데 우리 팀이 이겨 맥주를 마시는 소소한 즐거움까지 누렸다.


산티아고를 본격적인 여행을 하기 전에 우리는 발파라이소(Valparaiso)를 먼저 여행하기로 했다. 산티아고에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항구 도시이자 관광 도시로 유명한 곳이지만 처음 도착했을 때는 그저 낙후된 분위기만 느껴졌다. 나중에 이곳이 '죽은 항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티아고에서 2시간 이동했다는 이유로 게으른 여행자는 오늘 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게다가 숙소가 언덕 위에 있어 발파라이소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다음날이 되자 우리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바다와 산이 맞닿아 있어서 그런지 발파라이소의 겨울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하루만 이런 줄 알았는데 거의 매일 안개가 꼈다. 


안개가 걷힌 오후에는 수산 시장에 가봤다. 푸에르토몬트처럼 다양한 해산물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무척 한가했다. 해산물도 별로 없고, 사람도 별로 없었다. 오전에 왔다면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아쉬운 대로 홍합과 가리비 등을 샀다.


시장 근처에는 몸집이 거대한 바다사자가 자리를 잡고 누워있거나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발파라이소에 도착한 이후 우리가 했던 것이라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요리를 잔뜩 하는 것이었다.


칠레에서는 가리비를 주로 생으로 먹나 보다. 수산 시장에서 뭘 살까 기웃거리던 도중 아주머니가 내 의사는 묻지 않은 채 라임을 살짝 뿌린 가리비를 입에 넣어줬다. 그게 너무 웃겨서, 혹은 먹었던 가리비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몇 개 사왔다. 가볍게 에피타이저로 먹었다.


부대찌개를 하고, 오이무침을 하고, 홍합은 버터를 바른 뒤 오븐에 구웠다. 그리고는 맥주를 마셨다. 칠레에 있는 동안 늘 여러 사람과 요리를 해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발파라이소를 제대로 여행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호와 은정이는 시간이 없어 산티아고로 돌아갔다. 사실 2박 3일이나 시간이 있었는데 먹고 마시기만 했다.


날씨가 정말 좋았는데 나가지 않았다.


내일은 날씨가 좋겠지, 라고 생각해서 하루를 또 미뤘더니 안개가 자욱한 아침을 맞이했다. 오늘도 나가지 않으면 4일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거라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확실히 산티아고는 서울과 비슷할 정도로 현대적인 도시인데 발파라이소는 오래된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정반대의 도시다.


구 소련 지역을 여행할 때 자주 볼 수 있는 트롤리버스를 여기서도 보게 된다. 이 트롤리버스 내부에는 독일어가 몇 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스위스에서 건너왔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지 않아 무척 아쉽긴 했지만 시내로 나와 프리 워킹투어를 참가했다.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 뭘 할지 모를 때면 여행자를 위한 프리 워킹투어를 하게 된다. 재미 없을 때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 새로운 도시에 대한 정보와 여행 팁을 알 수 있어 유익한 편이다. 발파라이소에는 몇 개의 프리 워킹투어가 있는데 그 중에서 내가 했던 곳은 빨간색 줄무늬 옷을 입은 팀이었다. 가이드는 미국인으로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는지 정확하게 발음해주려 노력했고, 속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인원이 되자 항구로 이동해 설명을 들었다. 과거 발파라이소는 남미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다음으로 가는 부유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항구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남아메리카 대륙을 한 바퀴 돌려면 어디에서 쉬어야 하는데 딱 그 지점이 발파라이소였다고. 그래서 사람이 몰리고, 온갖 유흥과 돈으로 가득했던 곳인데 1914년에 파나마 운하가 뚫리면서 영광은 사그라졌다.  굳이 멀고 먼 남아메리카 대륙을 돌 필요가 없이 곧장 운하를 통해 대평양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칠레 제 1의 항구 도시는 현재 항구로서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하고, 대신 오래된 가옥과 골목을 보기 위해 찾는 관광지로 바뀌었다고 한다. 해군 기지도 있다.


항상 여행자에게는 바쁘게 움직이는 현지인들의 일상이 신기하기만 하다.


좁은 언덕 복잡하게 이리저리 통하고 있어 처음 온 여행자는 어디부터 가야 할지 당황할 수 있다.


가이드 말로는 발파라이소에는 47개의 언덕과 14개의 아센소르(영어로는 푸니쿨라)가 있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운행하고 있는 아센소르가 신기하기만 하다. 현재 14개 중 9개만 이용이 가능하다.


아센소르를 타면 직선 거리로는 아주 짧지만 걸어서 언덕을 올라가면 한참 돌아가야 한다. 고작해야 1분 타지만 실제로는 엄청 빨리 올라온 것이다.


날씨가 흐려 오래된 건물과 골목이 더 오래돼 보였지만 나름 재미있는 장소가 몇 군데 있어 흥미로웠다. 어느 공터에는 미끄럼틀을 타고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발파라이소는 역사적이고 독특한 오래된 건물이 많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거기에 별 거 아닌 그냥 평범한 집들은 알록달록한 색깔과 벽화로 재탄생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이 거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대부분의 배낭여행자들은 이 벽화가 많은 골목에서 지내는 것 같았다. 카페도, 호스텔도 굉장히 많았다.


간혹 어떤 의미를 담은 그림인지 의아할 때가 있으나 곳곳에 있는 벽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미 어딜 가나 길거리 강아지는 참 많은데 발파라이소 강아지들은 조금 웃겼다. 우리가 워킹투어를 하는 동안 강아지 한 마리가 계속해서 따라오고, 잠깐 멈추면 강아지도 앉아서 가이드 설명을 듣는 것처럼 있었다.


동네 강아지들은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쫓아가며 짖었다. 


잠깐 둘러봤을 뿐인데 발파라이소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숨어있는 볼거리를 찾을 수 있다.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 같았다.


계단이 피아노 건반이다.


흐린 날씨가 많이 아쉬웠지만 발파라이소 항구를 내려다 보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미로 같은 복잡한 골목을 따라 걸었다.


사실 가까이에서 보면 집이 굉장히 허름하다.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계단의 반쪽은 미끄럼틀처럼 되어 있어 아이들은 오르고 내려오는 것을 반복했다. 여기는 이미 놀이터였다.


할머니와 고양이들이 익살스럽게 표현되었다.


언덕 위 오래된 건물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고, 혼잡하면서도 지저분한 거리는 무질서해 보였지만 난 발파라이소를 '숨겨진 매력을 찾아야 하는 도시'로 명명했다. 발파라이소의 매력에 하루 걷다 보니 하루로는 만족할 수 없어 더 머물게 되었다.


다음날은 날씨가 좋아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내려갔다. 그저 평범한 골목이라 생각했는데 몇 명의 사람들이 우리를 부르고는 이곳은 위험한 지역이라고 걱정스럽게 얘기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서툰 영어로 심각하게 이야기 하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우범지역인가 보다. 


칠레는 물가가 비싼 편이라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많지 않은데 지나가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고, 무엇보다 호객을 했던 친구가 인상이 좋아 오랜만에 도전해봤다. 나름 남미에서는 유창한 영어로 우리에게 설명해주는데 알고 보니 칠레 사람이 아니라 베네수엘라 사람이었다. OECD가 꼭 부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미 유일한 OECD회원국인데다가 주변국에 비해 경제력이 높아 칠레로 일자리를 찾아 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우리가 먹은 건 조개가 들어간 스프와 생선구이였는데 나름 괜찮았다.


어떤 특별한 날인지는 모르겠지만 항구로 가니 아이들이 하얀 천을 들고 춤을 추고 있었다. 아이들인데 화장이 엄청 진했다. 잠깐 구경하다 근처에 있는 기념품 가게를 둘러봤다.


다시 벽화가 많은 골목길을 걸었다. 워킹투어로 이미 봤던 곳이지만 조금 더 여유롭게, 그리고 자세히 보고 싶어 다시 찾았다. 사진을 찍으며 걷다가 골목길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셨다.


다시 항구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로 왔다. 날씨가 또 흐려져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없었지만 그냥 이렇게 걷는 게 좋았다. 발파라이소는 칠레의 시인이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블로 네루다가 거주하고, 사랑한 도시로도 유명하지만 문제는 내가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거다. 그렇게 따지자면 남들이 다 가는 비냐델마르도 꼭 가야 하는데 일주일 동안 발파라이소에서 지내면서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서로 각자의 방법으로 여행을 즐긴다.


벽화와 함께 발파라이소의 상징이 되어버린 아센소르가 오르내리고 있다.


조금만 더 열심히 걷는다면 구석진 곳에서 소소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작은 카페에 앉아 어떡하든 시간을 때워야 할 것 같았다. 


발파라이소가 좋았다고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여기서 뭘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창가에 앉아 발파라이소를 바라봤을 뿐이고, 그것만으로도 좋았다고 할까.


석양이 질 무렵에는 햇살이 남아있는 지역과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도시의 이면을 볼 수 있다.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의 야경이 제법 근사하다. 아마 시내에서 지냈다면 이런 야경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칠레를 여행하다 발파라이소가 마음에 들어 한 달을 머물게 되었고, 다시 더 머물다 보니 결국 호스텔까지 운영하게 된 슬로베니아 커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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