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여행을 시작한지 2달 반 만에 드디어 볼리비아로 떠나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새로운 나라로 떠나게 되었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른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볼리비아 국경으로 향했다. 황량하던 국경에서 입국심사를 마친 후 버스를 갈아탔다. 버스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리는데 머리가 살짝 아파왔다. 당시에는 그저 버스를 오래 타서 멀미가 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고산병이었다. 우유니는 4000미터나 되는 고지대에 있기 때문에 칠레에서 넘어온 내가 고산병 증세를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계단을 오르면 숨이 차거나 맥주를 한 병 이상 마시기 힘들었는데 다행히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증세가 그리 심하지 않아 하루 쉬니 괜찮아졌다.
볼리비아 물가는 저렴하지만 우유니는 물가가 저렴하지 않았다. 특히 숙소의 경우 칠레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쌌다. 보통 가장 저렴한 숙소에 묵는 편인데 우유니에서는 사정이 있어 이틀을 싱글룸에서 지냈다.
우유니는 소금사막 덕분에 생겨난 마을이라 규모가 작다. 그럼에도 시장이 열려 제법 활기찬 분위기였다.
역 맞은편은 관광객을 위한 식당이 가득했지만 가격이 무지하게 비쌌다. 사실 비싼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어느 식당을 가도 맛이 없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볼리비아 음식이 맛없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도시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을 보면 우유니 음식점이 특히 맛없던 것이었다.
놀랍게도 이런 시골마을에 김치볶음밥을 파는 식당이 있다. 아무래도 한국인 여행자가 많은 곳이라 현지인이 어디서 배워 온 것 같은데 완전한 한식은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내가 칠레에서 서둘러 볼리비아로 올라온 이유는 전 직장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은영 선배는 안식휴가와 추석을 맞아 동생과 남미 여행을 왔는데 아무래도 기간이 짧아 내가 맞추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할뻔했다. 직장을 그만둔지 2년도 넘었지만 다시 만나서, 그것도 한국의 반대편인 볼리비아에서 만나 신기하고 즐거웠다. 헤어지기 직전에는 은영 선배가 여행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며 100달러를 줬다. 당연히 나는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거의 억지로 내 주머니에 돈을 넣었다.
약간의 고산병 증세가 느껴져 하루를 온전히 쉬는데 쓰고 그 다음날 우유니 투어를 하러 나갔다. 가끔 만난 한국인 여행자로부터 우유니 투어는 무조건 브리사에서 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결론적으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어차피 우유니 투어를 하는 여행사가 정말 많고, 가이드와 투어를 함께 가는 멤버들이 좋아야 만족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데이, 선라이즈, 선셋 투어를 했는데 딱 한 번 데이투어만 브리사에서 했고, 그때가 가장 별로였다. 왜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이해가 안 된다.
여행사에 들어가면 자국의 언어로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추천글을 볼 수 있다. 확실히 관광지라 그런지 남미에서 오랜만에 영어가 능숙한 직원이 있어 충분히 설명을 듣고 투어를 신청할 수 있었다.
볼리비아에서 칠레로 이동하면서 여행하는 2박 3일 우유니 투어도 있지만 나는 칠레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하루만 시간을 내어 우유니 소금사막을 여행하는 데이투어를 했다. 우유니에 오면 한국인을 많이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을에도, 투어를 하는 도중에도 만날 수 없었다. 나는 스페인 노부부와 나름 젊은 친구들인 스페인, 일본, 페루에서 온 여행자와 함께 했다. 우리는 먼저 기차 무덤이라 불리는 곳에 갔다.
1900년대 초중반 광산이 운영되고 있을 무렵 오고가던 기차인데 폐광이 되어 현재는 그대로 방치되었다고 한다. 우유니를 여행하는 많은 여행자들은 이 기차에 올라 사진 찍는 즐거움을 누린다.
다시 지프를 타고 이동하면 황량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시장이 나온다. 데이투어 일정에 포함된 것이지만 시장을 구경하는데 1시간이나 보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볼리비아부터 쉽게 볼 수 있는 야마 인형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인기다. 물론 난 구입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기념품만 파는 곳이라 오로지 투어를 하고 있는 여행자만 가득했다.
지프를 타고 20여분을 달리니 온통 새하얀 세상이 나왔다.
볼리비아라고 하면 우유니 소금사막만 떠올릴 정도로 알려져 있고, 특히 한국인 여행자에게는 독특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그런 이곳에 내가 발도장을 찍었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점심시간이란다. 허름한 건물에 들어가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투어를 함께 했던 멤버들이 각자 따로 놀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았는데 딱 한 명 스페인에서 온 호세와는 조금 친하게 지내 괜찮았다.
식당 바로 옆에는 전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이 걸어 놓은 국기가 펄럭인다. 호세는 스페인 국기를 찾으려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바로셀로나가 속한 카탈루냐 국기만 보이고 스페인 국기는 없었다. 적잖아 실망하는 눈치다.
다행히 태극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사실 데이투어가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는 가이드가 별로 말이 없었고, 투어를 함께 했던 사람들도 그리 친근하지 않았다. 지프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에도 조용했다.
보통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기대하는 건 물이 살짝 차서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소금사막인지 모르는 풍경인데 안타깝게도 내가 우유니를 찾았을 때는 우기가 아닌 건기였다. 그럼에도 이색적인 풍경에 넋을 놓게 된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관심이 별로 없는지 지프를 정비하다 한참 후에 우리 사진 몇 장을 찍어주는 게 전부였다. 그것도 성의가 없었다. 흔히 우유니 투어를 할 때 가이드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데 그 이유는 어떻게 하면 멋들어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가이드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일정으로 '물고기 섬'으로 이동했다. 누군가는 '어부의 섬'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바다가 아닌 곳인데 섬이라 불리니 조금 이상하긴 하다.
여기에는 물고기도 어부도 없지만 사람보다 훨씬 큰 선인장이 빼곡하게 있다. 확실히 신기하지만 굳이 돈을 내고 들어가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밖에서도 보이는 게 전부 선인장이었으니까.
때로는 별 거 아닌 돈도 아깝게 느껴지고, 때로는 정해진 일정이 마음에 안 들 때가 있다. 나와 호세는 이 물고기 섬 주변을 걸어서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온통 소금이 있는 하얀 땅을 걸을 때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다.
소금 덩어리를 집어봤다.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같다.
건기라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가이드는 물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해질 무렵은 우유니에서 사진 찍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데이투어 일정은 해가 지기 직전까지라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무척 짧았다. 우리가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원래 더 많은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붉은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 오히려 더 강렬하게 타오르는 것 같다.
데이투어를 마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을 뚫고 우유니 마을로 돌아왔다. 사실 데이투어만 하면 우유니를 더 안 봐도 될 줄 알았는데 즐겁지도 않았고, 남들이 기대하는 멋진 사진을 많이 건지지 못해 아쉬움이 무척 컸다.
우유니에서 며칠 더 지내면서 다른 투어도 하려고 했는데 한국에서 새로 받은 은행 카드에 문제가 있어 ATM에서 돈을 인출할 수 없었다. 남은 현금이 거의 없어 결국 스카이프를 결제해 하나은행에 전화를 했는데 처음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했지만 그쪽에서 해외 사용을 막아 놓았던 거다. 정말 열이 받는 상황이었지만 잘 참으면서 상담을 했는데 마지막에 조금 터졌다. 카카오도 그렇고, 하나은행도 그렇고 계속 원론적인 답변만 계속하니 미칠 노릇이다. 아무튼 은영 선배가 준 100달러가 아니었으면 이틀 간 굶을 뻔했다.
밤에는 미칠 듯이 추운데 낮에는 반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정말 더웠다.
호스텔에서 만난 독일 친구와 시장에 가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이 친구가 페루에서 가방을 도둑맞았다는 말을 하자 나 역시 칠레에서 도둑맞았다는 말로 위로를 건넸다.
아르헨티나나 칠레와는 달리 원주민 비율이 무척 높은 볼리비아는 확연히 달라진 외모, 체형, 그리고 옷차림을 보게 된다. 여행자 눈에는 신기해 보이는 넓은 치마와 길게 땋은 머리,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모자(원래 맞지 않는 서양인들의 모자를 착용하면서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된 역사적인 사건이 있다)는 볼리비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우유니에서 별사진을 찍고 싶어 다음날 새벽에 출발하는 선라이즈투어를 신청했다. 여행사 벽면에는 투어를 원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을 수 있도록 했는데 어쩌 된 일인지 저녁이 되어도 나 혼자뿐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쉬고 있을 때 호스텔 주인 아주머니가 친구가 왔으니 나와보라고 했다. 아는 사람이 없는데 이상하다 생각하며 내려가 보니 역시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한국 사람 아니냐며 같이 투어를 가자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제 막 도착해서 다음날 출발하는 우유니 투어를 하고 싶었는데 여행사 앞에 딱 내 이름만 있어 찾아왔다고 한다. 다른 여행사로 가면 사람을 다 채워서 다 같이 떠날 수 있지 않냐며 나를 설득하는데 본인도 이 상황이 어이가 없는지 이상한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 나는 빵 터졌다. 어차피 우유니 투어는 다시 할 예정이었고, 혼자 가는 것보다는 덜 심심할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선라이즈 투어를 신청해 같이 갔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건 너무 늦지 않냐고 물었는데 여행사 측에서는 괜찮을 거라 했다. 하지만 정작 우유니에는 5시에 도착해 별을 보기 위해 갔던 우리에겐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래서인지 다음날 이 여행사의 선라이즈 투어는 새벽 3시 반에 출발하는 것으로 바꿨다.
이른 새벽이라 추위에 벌벌 떨며 기대했는데 순식간에 날이 밝았다. 아쉽게도 별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평소 원했던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었다.
일몰 때와 마찬가지로 가이드의 지시로 여러 포즈를 취하면 알아서 사진을 찍어준다.
데이투어의 경우 여러 군데 이동하면서 우유니 소금사막을 보는 것이라면 선라이즈투어나 선셋투어는 그저 가이드가 물이 찬 장소로 데려다 주고, 몇 시간 동안 사진을 찍는 게 전부다. 때문에 오로지 우유니에서 근사한 사진을 찍는 게 목적이라면 데이투어보다는 선셋이나 선라이즈투어가 더 적합하다.
날이 완전히 밝자 소금사막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날이 밝은 뒤에도 사진을 계속 찍으며 우유니에서 시간을 보냈다.
점프 사진은 실패했다.
예상치 못한 만남, 신기한 만남 덕분에 심심하지 않아 좋았다.
선라이즈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곧장 선셋투어를 신청하러 갔다. 선셋투어는 오후 4시에 출발해 완전히 어두워 진 후 돌아오는 일정이라 별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선라이즈투어와 마찬가지로 호다카 마운틴이라는 여행사를 통해 했다.
생각만큼 시간이 많지 않아 점심을 먹고 우리는 다시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향했다. 선라이즈투어를 같이 갔던 유정이와 소선이 말고도 마침 다른 한국인이 있어 새롭게 합류했다. 주로 아시아인이 선셋투어와 선라이즈투어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선셋투어를 하는 여행자는 한국인, 대만인, 홍콩인들로 전부 아시아인뿐이었다.
선셋투어 일정은 꽤 여유로웠다. 일단 물이 없는 소금사막으로 가서 한참 동안 사진을 찍었는데 다행이라면 이번에는 가이드가 정말 괜찮았다. 일단 성격이 유쾌한 데다가 굉장히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줬다.
비현실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사진을 찍는 건 우유니를 여행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거인이 되거나 프링글스 통을 지나면서 춤을 추는 건 흔한 사진 중 하나다. 물론 가이드가 어떤 포즈를 취하라고 알려주지만 미리 몇 가지를 생각해 가는 것도 좋다.
한국인 4명을 비롯해 대만인, 홍콩인이라 다들 소심하트를 알고 있었다.
의자를 놓고 앉아서 혹은 일어서서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확실히 선셋투어를 하는 여행자는 많지 않은지 딱 2대의 지프만 선셋투어였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다른 지프는 마을로 돌아갔다.
몇 번째 비슷한 사진을 찍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사람이 많고, 가이드가 적극적이라 지겹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
분명 다 똑같은 포즈를 취했다고 생각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하늘에서는 반짝이는 별이 등장했다. 별사진은 셔터를 누르고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한참 걸리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하다. 게다가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 초점 맞추기가 어렵고, 장화를 신은 발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지만 잠시 후 모니터에 드러난 별사진을 보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별이 쏟아질 것만 같았던 하늘을 바라보고, 바라봤다.
생각만큼 별사진을 많이 건질 수 없었지만 우유니에서 선셋투어가 가장 만족스럽고 즐거웠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와 우리는 역 주변의 여행자들을 위한 비싼 식당이 아닌 현지인들이 가는 곳으로 갔다. 바베큐 연기와 냄새에 절로 끌리게 된다. 가격도 일반 식당의 절반으로 저렴했다.
물론 맛있다고 하기에는 고기가 너무 질겼다. 우유니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서 맛있었던 게 있긴 했던가.
우유니를 떠나는 버스를 알아보러 다녔다. 다음 목적지는 수크레(Sucre)였는데 대부분의 버스는 포토시를 거쳐 간다고 했다. 볼리비아 버스는 상태가 워낙 안 좋아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에 그냥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회사로 예약을 했다.
새벽에 유정이와 소선이는 칠레로 떠나 작별인사를 했다. 볼리비아 비자는 30일인데 나는 물가가 비싼 우유니에서 꽤 오래 지낸 편이었다.
아침에 숙소에서 일본인 여행자 두 명을 만났다. 말이 잘 통해 금방 친해진 우리는 2시간 넘게 수다를 떨었는데 아르헨티나에서 가방을 몽땅 도둑맞아 에코백만 들고 여행하고 있다는 이 친구의 하소연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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