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달리다 보니 거대한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호수의 이름은 언젠가 들어봤던 티티카카 호수였다. 티티카카 호수는 볼리비아와 페루 국경에 자리 잡고 있는 남미 최대 호수이자, 고지대에 위치한 호수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오래전부터 더 높은 곳에 있는 호수가 발견되면서 그런 타이틀은 의미를 잃게 되었다.
티티카카 호수의 볼리비아쪽은 코파카바나(Copacabana)라는 작은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정말 작은 마을인데 내가 예약한 호스텔이 중심지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고, 언덕 위에 있어 찾아가는데 꽤 애를 먹었다.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봤다. 날씨는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굉장히 추웠다. 작은 마을이지만 여행자가 많아서인지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호수로 가는 길목에는 거의 대부분이 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식당과 기념품 가게가 전부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덕분에 영어는 쉽게 통했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기념품 가게 아저씨도 말을 걸어오고, 옆에서 메뉴판을 들고 여행자를 꼬시던 여자도 와서 말을 걸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한국 사람은 처음 본다며 무척 신기해 했다. 티티카카 호수면 한국인 여행자도 꼭 들리는 곳이라 그럴 리가 없는데 왜 그렇게 놀라워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한국인 여행자와 말을 해본 적이 없던 것인지. 아무튼 갑자기 거리 한복판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혔다.
아침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자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푸른 호수가 장대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경치로 보나, 혼자서 넓게 쓰는 싱글룸을 생각할 때 호스텔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으나 너무 외진 곳에 있어 숙소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코파카바나가 작은 마을인 데다가 여행자로 가득해 거리마다 숙소가 보였다. 다만 적당히 괜찮은 숙소를 찾는 건 꽤 어려웠다. 가격은 대부분 저렴했는데 깔끔하지 못한 곳이 너무 많았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깔끔하게 여행했다고, 까다롭게 고르다 보니 1시간 정도 돌아다니게 되었다.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은 아니었는데 중심부에 있는 곳으로 잡았다. 외관은 그럴 듯한데 내부는 매우 낡은 편이었다. 그래도 40볼리비아노면 적당한 가격이라 생각했고, 위치도 매우 좋았다. 불만이라면 주인 아저씨가 너무 불친절했다.
맑은 날씨에 바라보는 티티카카 호수는 훨씬 더 좋았다. 여행자들이 몰려 형성된 전형적인 유명 여행지의 분위기였지만 마을은 한결 활기차고 북적였다. 보통 코파카바나에서는 태양의 섬(Isla del Sol)을 여행하는 게 일반적인데 배가 출발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이미 해가 중천에 떠있는 점심 즈음이라 아주 쉽게 내일 가면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기분이 들었지만 오리배도 있었다.
호수에서 둥둥 떠서 다닐 수 있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정작 타는 사람이 없었다.
호수 근처에는 포장마차가 길게 늘어서 있는데 대부분 똑같은 음식을 팔고 있다. 점심은 이곳에서 해결하면 좋겠다 생각하고 둘러봤다.
다 똑같은 메뉴를 팔고 있어 특별할 것도 없는데 12번 가게에 아주 익숙한 한글이 많이 보였다. 들어가서 메뉴판을 보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말도 하지 않고 커다란 책을 툭 던졌는데 이미 왔던 한국인들의 추천사였다. 거창한 추천사를 읽어보면서 문득 이 가게가 맛은 둘째치고, 장사를 잘 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옆 가게나 별 차이도 없는 메뉴를 팔고 있는데 한국인이 많이 온다고 홍보를 하는 곳은 여기뿐이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12번 가게에서 먹었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송어(뜨루차) 요리다. 나는 뜨루차 디아블라(Trucha a la Diabla)를 주문했다. 이름에 '디아블라'가 들어가 매운맛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실제로도 적당히 매운맛이 느끼함을 없애줘 괜찮았다. 40볼리비아노면 식당에서도 먹을 수 있는 가격이지만 만족스러운 점심이었다. 며칠 더 지내보니 코파카바나에서 송어 요리를 접할 기회가 너무나 많았는데 사실 송어 토종이 아니라고 한다. 송어를 먹고 싶었던 미국인들이 북미산 송어를 티티카카 호수에 방류하는 바람에 토종 물고기는 멸종하고 송어만 살아남았다고.
여행자가 많은 골목을 벗어나면 골목을 가득 메운 시장이 나온다. 이질적인 여행자 거리보다는 확실히 정감이 넘친다.
점심을 먹지 않았다면 평소처럼 시장에서 해결했을 텐데, 뒤늦게 발견했다. 확실히 시장이 저렴하다.
2월 2일 광장(Plaza 2 de Febrero)에 가면 코파카바나 성모 성당이 보인다. 새하얀 성당은 작은 마을에는 어울리지 않게 규모가 상당했다. 일반적인 성당이라 입장료는 없었었으나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였다.
동네를 한 바퀴 돌다 호수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전망이 괜찮은 곳에서 맥주 한 병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조금 무료하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렇다고 너무 감상에 빠지지는 않았다.
마치 애완동물처럼 알파카를 끌고 가는 모습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다음날 아침 본격적으로 티티카카 호수를 여행하기 위해 보트에 올랐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이런 보트를 타고 섬으로 이동한 뒤 개별적으로 걸으면서 여행하는 편이다. 티티카카 호수에는 여러 섬이 있는데 나는 태양의 섬만 보기로 결정했다. 태양의 섬이 가장 큰 섬이기도 하고, 딱히 다른 섬은 볼거리가 많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보트에는 70~80명의 많은 사람들이 타게 되는데 생각보다 파도가 거칠어 좌우로 많이 기울었다. 보트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토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을 것 같다.
태양의 섬에 도착하니 사람들을 불러서는 뭐라고 설명을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트레킹을 하는데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주의사항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특별한 내용은 없는 것 같아 그냥 걸어갔다.
일반적으로 태양의 섬의 북쪽으로 들어가 남쪽으로 걷는데 나 역시 같은 방법을 택했다.
트레킹을 하는데 날씨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호수를 구석구석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맑았다.
이곳에서 트레킹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길의 중간에서 돈을 받을 줄은 몰랐다.
트레킹 코스는 그리 힘들지 않아 가볍게 산책한다는 마음으로 걸을 수 있었다. 간혹 태양의 섬을 걷다 고산병 증세가 왔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다행히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게다가 한 방향으로 길이 있어 헤맬 수도 없다.
지금은 사람이 많이 살고 있지 않아 간간히 몇 채의 집이 보일 뿐, 한적하다 못해 인기척이 거의 없는 시골 마을이다.
트레킹 코스를 걷다 돌을 놓아 만든 야마(Llama)를 보게 되었다. 귀엽다.
여행을 하면서 바다처럼 보이는 큰 호수를 많이 봤는데도 언제나 감탄을 자아낸다.
조금 걸었다고 땀이 주르륵 흘렀다. 분명 지난밤에는 덜덜 몸이 떨릴 정도로 무지하게 추웠는데 낮에는 햇빛이 강렬한 여름 날씨였다.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걷는 게 전부지만 그게 태양의 섬의 매력이다.
과거 잉카 문명이 번성했던 시절, 티티카카 호수는 태양의 신이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믿었다. 잉카인들에게는 인류의 시작이라고 믿었던 곳이니 당연히 기원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곳이고, 신을 모시는 제단을 만들었다. 돌을 쌓아 벽을 만들고 입구를 만들어 놓았지만 흥미를 가질만한 요소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라파스에서 만났던 남아공 여행자 제시카를 여기서 다시 만났다. 정확히 내 이름 '킴'을 기억하고 있던 제시카는 자신도 혼자 걷고 있다며 무척 반가워했다.
제시카와 나는 남쪽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또 입장료를 받는 곳이 있었다. 사실 별 거 아닌데 길을 막고 구간마다 입장료를 받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입도하는 순간 입장료를 받았으면 괜찮았을 거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다른 외국인 여행자들도 비슷한 입장이었으나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돈을 냈다. 이후에도 돈을 내야 하는 구간이 또 있었다.
경치를 즐기며 걷는 게 태양의 섬의 매력이라 했지만 사실 혼자 걸으면 심심하기 마련이다. 우연히 만난 제시카와 만나 함께 걷게 되니 심심할 틈이 없이 수다를 떠느라 한결 즐거워졌다.
걷다 보니 출발지였던 북쪽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돌을 모아 만든 길을 따라 걸었다.
3시간 정도면 태양의 섬 북에서 남까지 충분히 걸을 수 있었다. 물론 서두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호수의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잠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중간에 마을이라고 할만한 곳이 거의 없어 당연히 화장실 이용에도 제약이 따르게 된다.
한참 걷다 얼굴이 빨갛게 익은 여행자 한 명을 만나게 되었다. 정작 본인은 그렇게 얼굴이 탄 줄 몰랐던 것인지 깜짝 놀라서 선크림을 꺼내 발랐다. 프랑스인이라고 소개했던 이 친구와 아주 잠깐이지만 함께 걷게 되었고, 남쪽 마을에 도착해서는 적당히 괜찮은 곳에 가서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원래 나는 태양의 섬에서 하루 묵을 생각이었는데 막상 남쪽 마을에 도착하니 굳이 여기서 지낼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아침에 바라보는 호수의 풍경은 당연히 근사하겠지만 코파카바나로 돌아가면 편하게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볼리비아 비자도 고작 이틀 남았고, 돈도 거의 떨어진 상태였다. 싸구려 숙소를 어렵지 않게 찾았음에도 태양의 섬을 떠나기로 했다.
선착장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다 야마를 타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너무 귀여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눈치를 살폈는데 아주머니가 팁을 주면 된다고 했다. 여태까지 여행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돈을 주고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 만큼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팁이라고 해봐야 내가 준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뭔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을 뒤로 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북쪽에 비해 집이 훨씬 많았다. 물론 여행자를 위한 숙소가 대부분이었지만.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막 떠나려는 보트를 탈 수 있었다. 태양의 섬을 온종일 머무르지 못한 점은 조금 아쉽지만 트레킹을 하며 충분히 즐겼다 생각한다.
코파카바나로 돌아오자 곧장 숙소부터 찾으러 돌아다녔다. 주인장이 조금 불친절한 거 빼면 가격도 싸서 지낼만했는데 방이 없었다. 거의 1시간 동안 돌아다녔는데 적당한 가격의 괜찮은 숙소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2~3달러짜리 싸구려 숙소도 있었지만 돈을 조금만 내면 깔끔한 곳을 찾을 수 있다 보니 어려운 것 같다.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는 이보다 더 안 좋은 숙소에서도 잘 자긴 했는데 뭔가 아쉬워 코파카바나에 있는 숙소를 거의 다 돌아보며 물어봤던 것 같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숙소에 들어가서 방을 봤을 때 딱 봐도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과 마주쳐 인사를 나눴다. 그 분만이 아니라 이 숙소에 막 도착한 한국 사람이 3명 더 있었던 거다.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만나 반가웠다. 같이 전망대에 오르자고 해서 서둘러 제시카가 있는 곳으로 가서 인사를 나눴고, 나는 배낭을 챙겨 돌아와 체크인을 했다.
전망대가 있는 곳이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계단이 꽤 많았다. 독일인 몇 명과 가볍게 인사를 하며 땀을 흘리다 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이라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경치가 꽤 근사했다.
가만히 앉아서 티티카카 호수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구름이 많아 붉은 일몰을 볼 수는 없었지만 충분히 좋았다.
아마 혼자 있었다면 전망대가 있는 줄도 모르고 오르지 않았을 것 같다.
함께 올랐던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과 사진을 찍었다. 부부 여행자의 경우 나와 거의 비슷하게 2년 가까이 여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근처에 가로등이 있는 게 아니라서 우리는 앞이 보이지 않기 전에 내려왔다. 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갈 때 노란 불빛으로 물든 코파카바나의 야경은 환상적이었다.
볼리비아 비자도 이제 하루 남아 떠나야 하는데 다음 목적지를 어디로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페루의 최대 관광지 쿠스코(Cusco)로 바로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봤던, 그리고 티티카카 호수라고 하면 떠오르던 이미지가 갈대섬이었는데 그 갈대섬이 푸노(Puno)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십 번도 고민하다가 결국 푸노로 가기로 결심했다. 푸노로 가는 버스는 오전에는 9시 30분, 오후에는 1시 30분과 6시 30분, 이렇게 3편이 있었는데 나는 저녁 버스를 탔다.
페루 국경을 넘어 푸노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9시 반이었다. 원래 호스텔에서 픽업을 나와주기로 해서(심지어 내가 요청한 것도 아닌데) 택시 아저씨들을 물리치고 버스터미널에서 한참 기다렸는데 오지 않아 걸었다. 사실 푸노가 코파카바나처럼 작은 동네일 거라 생각하고 걸었는데 호스텔까지 40분이 걸릴 정도로 꽤 큰 도시였다.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왜 픽업을 안 나왔냐고 따졌다. 깜박 잊었는지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나중에 버스터미널로 돌아갈 때 교통편을 제공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딱히 화가 났던 것은 아니었고 오랜만에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니 괜찮아졌다.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인터넷을 했는데 볼리비아에 비해 엄청 빨라 기분도 좋아졌다.
볼리비아와 아주 가까워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확실히 페루만의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코파카바나에서 만났던 용운이형이 푸노에 3솔(약 1,000원)짜리 세비체 파는 곳이 있다고 해서 그곳부터 먼저 찾아갔다. 양은 조금 적었지만 맛도 괜찮아 3솔짜리치곤 정말 만족하며 먹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갈대섬은 우로스 섬(Isla Uros)이었는데 투어로 쉽게 갈 수 있었다. 보통 투어는 아침에 출발하기 때문에 이미 늦어 푸노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대신 했다. 중심 거리에는 기념품 가게와 여행사가 꽤 많아 제법 관광지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푸노에는 딱히 볼만한 것은 없는데 아르마스 광장에 가니 특이한 건축물인 푸노 성당(Catedral de Puno)을 볼 수 있었다.
원래 호스텔에서 우로스 섬 투어를 예약하려고 했는데 밤에 돌아다니면서 물어보니 여행사가 조금 더 싸게 불렀다. 어차피 이런 투어는 예약하는 곳이 달라도 투어 내용은 똑같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싼 곳인 여행사에서 예약했다.
다음날 아침 여행사 직원을 따라 티티카카 호수로 이동했다. 호수가 바로 코앞에 있던 코파카바나와 달리 푸노는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가야 했다. 예상대로 이곳저곳에서 온 많은 외국인 여행자들과 함께 보트를 타고 우로스 섬으로 향했다. 분명 코파카바나에서 보던 것과 같은 티티카카 호수인데 주변의 경치가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한참 달리자 갈대로 만든 섬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보자마자 너무 관광지화 된 모습에 조금 놀랐지만, 어쨌든 내가 보고 싶었던 갈대섬이긴 했다.
갈대로 엮은 배도 있는데 너무 크고, 뒤에 있는 동력이 있는 배가 밀어주는 형태라 전통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우리가 내릴 갈대섬에 도착하자 마중을 나온 원주민들이 환영해줬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반가워했다.
상상하던 갈대섬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갈대섬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지면이 안정적이었고, 집이 깔끔해 보였다. 무엇보다 곳곳에 설치된 어색한 태양전지판이 이질감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이곳에 사는 원주민이 문명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티티카카 호수에는 잉카문명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다. 처음에는 부족간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배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생활을 하다 인공섬을 만들어 살기 시작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한다. 지금은 약 30여 개의 인공섬이 있다고 한다. 도착하자마자 갈대에 앉아 어떻게 호수 위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설명을 들었다. 아주머니는 집을 짓는 방법을 모형을 이용해 보여줬다.
관광객이 몰려드는 이곳에 상업적인 면이 없으면 섭하다.
이쯤이면 갈대로 만든 집이 궁금해진다.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데 좁기는 하지만 TV도 있고, 컴퓨터도 있다. 아마 휴대폰을 이용하는 것이겠지만 인터넷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깔끔하게 짜여진 나무로 뼈대를 이루고 있어 완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집을 만들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순식간에 시장처럼 변한 모습인데 나처럼 아예 관심이 없는 여행자도 있고, 몇 명은 유심히 살펴보며 구입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관광객 사이로 뛰어다닌다.
환영의 의미로 각국의 노래를 불러준다. 심지어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곰세마리'를 불렀다. 여행을 하면서 어디선가 많이 봤던 장면인데, 어색하면서도 그만큼 이곳에 관광객이 많이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굳이 타고 싶지 않았는데 갈대로 만든 배를 무조건 타야 했다. 그것도 추가 비용을 내면서 까지. 노를 저어 가야 하는 게 아니라 크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한데 어쨌든 갈대로 만든 배를 타고 잠깐 이동했다. 배는 굉장히 크고, 정말 갈대로만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튼튼해 보였다.
이동한 곳은 또 다른 갈대섬인데 카페테리아와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보통 이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갈대로 만든 섬에 누워 자세를 취해봤다. 내 집처럼 편안했다.
호수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원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은 문명을 많이 접해 전통을 잃어버리고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괜한 걱정을 해본다.
한국인 여행자에 한정된 말이겠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푸노를 지나치고 코파카바나로 가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보통 시간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은데 우로스 섬만 보기 위해 푸노에 머무는 경우가 별로 없기도 하고, 쿠스코에서 라파스로 이동할 때 딱 코파카바나 정도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관광지화 된 것처럼 느껴지는 섬의 모습을 굳이 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고 같은 티티카카 호수라면 맛있는 송어를 먹고, 태양의 섬 트레킹을 하며 즐길 수 있는 코파카바나쪽을 선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갈대로 만든 섬을 봤다는 것에 충분히 만족했고, 푸노 자체도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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