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차이나타운에 있던 프린스코트 백팩에서 지낼 때는 하루 하루 방 값을 내면서 연장했다. 내일은 어디론가 떠날 수 있겠지라며 생각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내일 방값을 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무리 싸다는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다고 해도 세트메뉴는 보통 7불(약 7천원)이었다. 

조금 적응이 된 이후에는 라면을 사다가 백팩에서 끓여먹었다. 백팩은 조리대가 있기 때문에 각종 요리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는 거의 없었고, 쉽게 먹을 수 있는건 역시 라면뿐이었다. 같은 방을 쓰고 있었던 네덜란드 애들은 한국인으로부터 라면을 소개 받은 뒤로 라면을 자주 먹는다며 나에게 검은 봉지 속의 라면을 꺼내서 보여줬다. 

이 백팩에온 첫 날 네덜란드 친구들이 담배를 말아피는 것을 보고, 나는 필리핀에서 사온 말보로 담배를 한 갑씩 선물로 줬다. 호주에서 담배를 말아핀다는 것은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까 왠지 불쌍해 보였다. 물론 나는 비흡연자였지만 혹시나 선물로 줄 사람이 있으면 주려고 2보루를 사왔었다. 

하루 하루가 무료하던 때 필리핀에서 같이 학원을 다녔던 다른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브리즈번에 놀러오겠다고 말이다. 내가 호주로 날아오기 2주 전에 이미 두명의 동생이 호주로 먼저 떠났는데 한명은 브리즈번, 다른 한명은 골드코스트에 있었다. 항상 마음이 착잡했지만 이렇게 찾아온다는 얘기에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나로써는 기분이 좋아질 수 있었다. 

브리즈번으로 온다고 했던 유승(이름이 외자)을 마중나가러 트랜짓센터까지 갔다. 주말을 이용해 달려온 승이를 만났는데 한 3주만에 다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반가웠다. 아마도 필리핀에서 만나고 다시 호주에서 이렇게 빨리 만날줄 몰랐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트랜짓센터에서 다시 차이나타운의 백팩까지 걸어갔다. 거리가 상당히 멀긴 멀다.  명훈이를 불러 근처 푸드코트에서 같이 저녁을 먹은 뒤 맥주를 샀다. 다들 가난한시기라 가장 싼 XXXX(포엑스)를 샀다.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만 호주에서 학원을 다니지 않는 상태였는데 학원을 다니는 두 동생이 살짝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원을 다니는 동안에는 적어도 먹고 사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테니깐. 


다음 날 승이와 아침은 백팩에서 라면으로 떼우고 퀸 스트리트로 갔다. 시간을 대충 보내다가 골드코스트로 가는 승이를 바래다주기 위해서였다. 헝그리잭에서 가장 싼 50센트짜리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아무 생각없이 거리를 바라봤다. 


골드코스트가 브리즈번에서 먼거리는 아니었지만 나를 보려고 찾아와준 동생이 매우 고마웠다. 승이를 바래다주고, 혼자인 나로 돌아왔다. 


차이나타운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딘가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캥거루녀석을 보고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이후로 나는 라면으로 계속해서 끼니를 떼우면서 퀸즐랜드 주립 도서관에서 인터넷을 하며 정보를 모았다. 어떻게서든 살아남아야 했다. 우선 농장을 중심으로 정보도 긁어모으고, 다른 사람들의 체험기도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지날수록 한국이 그리워졌다. 여태까지 나와서 한국이 그립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는데 가장 좋을 것만 같았던 호주에서 한국 생각이 간절해지다니 조금은 나약해졌나 보다. 


인터넷으로만 알아보면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 할 수가 없어서 도시를 방황하거나 주립 도서관에서 한참을 있었다. 노트북을 접고, 다시 생각을 했다. 

'그래! 차라리 사람과의 접촉이 더 필요할지도 몰라. 정보가 생명인 이 곳에서 혼자만이 능사가 아니야.'

다시 나는 백팩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너무 멀었던 차이나타운이라 이번에는 시티 한 가운데로 이동하기로 했다. 호주에 온지 1주일만에 3번째 백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