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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이다.  실제로 떠나는건 오전이니까 일어나자마자 짐 챙기고 바로 가야하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떠나야만 하는데 비는 왜 이리 많이 오는지 여태까지 필리핀에 있으면서 비가 오면 대부분 금방 그치곤 했는데 새벽부터 계속해서 내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됐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배가 뜰 수 있을까? 배가 못 뜨면 우리는 못 갈텐데...
그런데 어느덧 나는 배가 못 뜨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 때문에 하루정도는 여기 더 머무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가득 찼다.




마지막으로 올랑고 빵을 먹고 나니 나 뿐만 아니라 모두들 기분이 우울한 듯 보였다.

이젠 진짜 여기서 떠나는걸까? 왜 이리 허무한 걸까?



우리가 널어놨던 빨래들은 새벽부터 내린 비에 다 젖어 버렸다.





엄청난 연기때문에 눈이 매워 눈물이 계속 났지만 직접 요리를 해먹던 조리대





뜨거운 태양빛을 잠시 피해 낮잠도 자던 이 곳도..





우리가 코코넛이 신기해하자 계속해서 나무 위에 올라가서 따다주곤 했다.





짠맛이 나는 우물 앞에서 쪼그려 앉아 설거지 했던 기억이 난다.





빗물을 받아 쓰는 물인데 항상 물부족했는데 이날은 물이 넘치고 있었다.





항상 걷던 이 길이었는데 이제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이되고 말았다.
이 길을 따라가면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 올 수 없기에 ...


우리 베이스캠프까지 차가 들어올 수 없어서 우리는 비를 맞으면서 뛰어갔다. 이건 완전 장마비였다.

짐을 싣고 차에 올라타서 우리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 가는거야?"
"아~ 나 그냥 여기 남으면 안될까?"


처음에 우리가 올랑고에 왔을 때만 해도 현지인과 비슷하다고해서 너 항공권 찢어줄께 그냥 여기 살아라 너무 잘어울린다라는 식으로 놀린 적이 있었는데 갈 때가 되니까 서로 남겠다고 투정을 부리곤 했다. 그런 와중에도 마음이 여린 팀원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제 우리를 태운 빨간자동차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기분도 우울한데 비까지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내리다니 ...
티나네 집을 지나가니 누군가 말을 꺼냈다.


"까를로가 안 보이네 그녀석 안 오나. 엄청 까불었는데..."
"아 저기 마빈이다!!"


마빈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는 마빈에게 손을 흔들며


"와 마빈이다. 저녀석도 엄청 짖궂었는데 옷은 갈아입었네? 팬티는 입었나? 으하하"


마빈이 사라지자마자 그리고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이 차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평소에는 우리가 탄 차만 보면 따라오곤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인지 마을은 텅 비어있었고, 우리는 비때문에 서둘러 출발하느라고 인사도 못했던 것이었다.
비만 안 왔다면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라도 하면서 왔을텐데라는 슬픔이 밀려왔다. 내가 이곳에서 있었던 10일이 30일만큼 길게 느껴졌었는데 이렇게 훌쩍 떠나버리면 이 곳 사람들은 더 쉽게 잊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우리는 정식적인 헤어짐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베이스캠프에 왔는데 우리가 없다면 얼마나 실망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오늘 떠나는지 모르는 아이들도 분명 있을텐데...


그래. 이대로 아무도 안 보고 온게 더 다행일지 몰라.  만약  사람들을 만났다면 헤어짐이 더 어려웠을 테니까. 나 역시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르지.


선착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은 여전히 아무도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우리 팀원 모두 비에 젖은건지 얼굴과 눈가가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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