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방콕에서만 있었던 이유는 캄보디아로 가는 비행기를 예매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짧은 기간 동안 어디로 가기는 애매하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찾은 방콕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에 한 곳에 오래있었더라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캄보디아로 향하게 된 원인은 아주 사소한 곳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호주에 있을 당시 멜번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네이트온을 켜봤는데 그 때 상민이형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상민이형은 07년도에 배낭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형이었는데 캄보디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다짜고짜 나보고 보고싶다며 놀러오라고는 그 말에 솔깃했는데 어차피 여행을 하고 싶었던 나로써는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보여서 호주에서 비행기표를 다 예매해버렸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어버려 홍콩-방콕, 방콕-프놈펜행 비행기로 이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며칠간 머무른 후에 태국으로 다시 돌아올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방콕에 도착한지 불과 3일만에 떠나게 된 것이다. 나는 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일정량의 짐을 DDM에 맡기고 밴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밴을 타자마자 지루함을 느끼고는 곧바로 쓰러져 잤다.
또 이렇게 공항에 오게 되었다니 참 신기할 뿐이었다. 그만큼 나에게 공항은 익숙한 장소가 아니었다. 많은 곳을 돌아다녔어도 이렇게 비행기를 자주 타게 될 줄은 나도 몰랐던 것이다. 어쨋든 에어아시아 카운터로 갔다. 나는 E-Ticket을 프린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여권과 예약번호만 알려줬다. 에어아시아는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기 때문에 예약번호만 알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불과 며칠 전에 태국 쑤완나폼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렇게 빨리 떠난다는게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다. 출국신고를 한 뒤 걸어나갔는데 이상하게 다른 곳에서 보이는 짐검사를 하는 곳이 없었다. 태국 공항은 원래 하지 않는 것일까? 알고 보니 공항의 게이트 앞에서 짐검사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 다시 가본 쑤완나폼 공항 시스템이 다시 바뀌어서 출국신고를 하자마자 짐검사를 했다)
당시에는 전 세계적으로 신종플루가 절정을 이루던 때로 공항에 있는 모든 직원이 마스크를 착용할 정도로 심했었다. 이상하게 공항에만 오면 내가 신종플루가 걸렸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갑자기 기침이 콜록콜록 나올 정도였다. 물론 공항만 빠져나오면 멀쩡했다. 기침만 하면 신종플루로 의심을 받을지 모르는데 참을 수 없는 기현상에 공항이 너무 싫었었다.
쑤완나폼의 공항은 깨끗하고 규모가 큰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앉아있을 공간이 많이 부족해보였다. 게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야 게이트의 대기공간이 열리기 때문에 그냥 바닥에 주저 앉아서 기다렸었다.
에어아시아에 올랐는데 나의 자리는 창가였다. 얼핏 예전의 자료를 보면 에어아시아에는 좌석이 정해져있지 않다고 들었는데 요즘에는 아닌듯 했다.
잠시 뒤에 비행기는 이륙을 했고 어느덧 방콕 상공을 날고 있었다.
점점 높이 올라갔다. 더이상 구름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캄보디아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과 1시간 좀 넘게 걸렸을 뿐인데 2년 전에 육로로 이동했을 때의 엄청난 이동거리와 시간에 비하면 무척이나 쾌적하고 빠르다는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육로로 이동했다면 캄보디아의 국경 뽀이펫에서 비자 비용가지고 또 싸웠을지도 모르겠다.
비행기가 점점 아래로 하강하더니 커다란 도시가 나타났다. 프놈펜이 틀림없었다. 멀리 보이는 커다란 강과 함께 형성된 도시가 보였는데 역시 빌딩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는 점점 내려가는데 어째 도시 한복판으로 날아다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는 활주로 하강했는데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프놈펜 공항의 규모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이다. 얼핏봐도 게이트는 4~5개뿐이었다.
프놈펜 공항에 내려 이제 입국을 하려고 하는 순간 뒤늦게 깨달은게 있었으니 캄보디아 비자였다. 캄보디아 비자를 위한 20달러는 있었지만 사진이 없었던 것이었다. 작은 가방을 여러 차례 뒤지면서 사진이 없는지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그렇게 10분동안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는데 사실 사진은 필요가 없었다. 사진이 없으면 그냥 1달러만 더 내면 되었다. 그래서 비자비용 20달러와 사진이 없었기 때문에 추가로 1달러만 더 내는 것으로 내 여권에 비자를 붙여줬다.
입국은 가볍게 되고, 공항에 나가자마자 누군가 손을 흔들며 내 이름을 불렀다. 상민이형이었다. 무척 오랜만에 만났다는 것도 반가웠지만 그것도 캄보디아에서 만났다는게 너무 신기했다.
여행을 통해 사람을 알게 되고 다시 여행을 통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상민이형의 오토바이를 타고 우선 상민이형이 머무는 곳으로 이동했다. 사실 나에게 있어 캄보디아는 딱히 좋은 기억이 없었다. 세계 최대 유적지라 불리는 앙코르왓을 여행하면서 사람들과 싸운 기억으로 가득했고, 항상 돈을 요구하던 모습에 짜증이 많이 났었기 때문이다. 다시 오게 된 캄보디아의 분위기는 그 때의 기억과 매우 유사했다.
도로는 상당히 좁고 복잡했는데 그 이유로는 온통 오토바이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프놈펜에 도로 포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정도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내가 도착한 곳은 KLC(Korea Language Center)로 한국어 혹은 크메르어를 가르치는 곳이었다. 상민이형은 이 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어쨋든 도착한 후에 상민이형이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서 시간적 여유가 없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무척 미안하다고 했다. 이거 괜히 캄보디아로 온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저녁부터 먹으러 가자며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캄보디아 시내를 질주했다.
캄보디아는 역시 나에게 혼돈의 나라라고 느껴지게 만들었다. 도로는 엄청나게 복잡했고, 오토바이에 둘러싸여 차들은 움직이기가 힘들어 보였고 더군다나 신호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무척 많았다. 심지어 역주행도 서슴찮게 하고 있었다. 여기서 어떻게 운전을 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한 15분가량 달려 프놈펜의 중심부로 들어왔다. 내가 있었던 곳은 프놈펜의 외곽지역으로 꽤나 멀었던 것이였다.
공원에 분수대도 있고 꽤나 잘 갖춰져있는 모습이랄까? 게다가 이 근처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밀집해있는지 이쪽 지역으로 오니 외국인들이 꽤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연과 함께 어울렸던 프놈펜의 복잡함이 나에게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우리는 한식당에 들어갔는데 이 때 상민이형이 가르쳤다고 하는 학생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나는 학생이라고 해서 정말 어린 아이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식당의 가격은 정말 비싼 편으로 나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는데 상민이형이 이 날 한턱 내는 날이었던 것이었다. 삼겹살과 김치찌개등을 시키고난 후 소주와 맥주도 함께 마셨는데 생각보다 다들 잘 먹었다. 늦게 온 사람중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한국말도 조금 하면서 소주도 무척 잘 마셨다.
내가 느끼기로는 음식이 너무 한국적이기도 했고, 사실 가격도 지나치게 비쌌다. 그 이유는 프놈펜에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있기 때문인데 따라서 한식당들이 한인들을 위한 곳이라 그런지 가격이 한국보다 더 비싸게 느껴졌던 것이다. 사실 맛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인들은 너무나 잘 먹고 잘 마셨다. 한국말도 영어도 잘 못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은근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듯 보였다.
캄보디아로 향하게 된 원인은 아주 사소한 곳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호주에 있을 당시 멜번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네이트온을 켜봤는데 그 때 상민이형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상민이형은 07년도에 배낭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형이었는데 캄보디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다짜고짜 나보고 보고싶다며 놀러오라고는 그 말에 솔깃했는데 어차피 여행을 하고 싶었던 나로써는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보여서 호주에서 비행기표를 다 예매해버렸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어버려 홍콩-방콕, 방콕-프놈펜행 비행기로 이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며칠간 머무른 후에 태국으로 다시 돌아올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방콕에 도착한지 불과 3일만에 떠나게 된 것이다. 나는 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일정량의 짐을 DDM에 맡기고 밴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밴을 타자마자 지루함을 느끼고는 곧바로 쓰러져 잤다.
또 이렇게 공항에 오게 되었다니 참 신기할 뿐이었다. 그만큼 나에게 공항은 익숙한 장소가 아니었다. 많은 곳을 돌아다녔어도 이렇게 비행기를 자주 타게 될 줄은 나도 몰랐던 것이다. 어쨋든 에어아시아 카운터로 갔다. 나는 E-Ticket을 프린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여권과 예약번호만 알려줬다. 에어아시아는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기 때문에 예약번호만 알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불과 며칠 전에 태국 쑤완나폼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렇게 빨리 떠난다는게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다. 출국신고를 한 뒤 걸어나갔는데 이상하게 다른 곳에서 보이는 짐검사를 하는 곳이 없었다. 태국 공항은 원래 하지 않는 것일까? 알고 보니 공항의 게이트 앞에서 짐검사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 다시 가본 쑤완나폼 공항 시스템이 다시 바뀌어서 출국신고를 하자마자 짐검사를 했다)
당시에는 전 세계적으로 신종플루가 절정을 이루던 때로 공항에 있는 모든 직원이 마스크를 착용할 정도로 심했었다. 이상하게 공항에만 오면 내가 신종플루가 걸렸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갑자기 기침이 콜록콜록 나올 정도였다. 물론 공항만 빠져나오면 멀쩡했다. 기침만 하면 신종플루로 의심을 받을지 모르는데 참을 수 없는 기현상에 공항이 너무 싫었었다.
쑤완나폼의 공항은 깨끗하고 규모가 큰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앉아있을 공간이 많이 부족해보였다. 게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야 게이트의 대기공간이 열리기 때문에 그냥 바닥에 주저 앉아서 기다렸었다.
에어아시아에 올랐는데 나의 자리는 창가였다. 얼핏 예전의 자료를 보면 에어아시아에는 좌석이 정해져있지 않다고 들었는데 요즘에는 아닌듯 했다.
잠시 뒤에 비행기는 이륙을 했고 어느덧 방콕 상공을 날고 있었다.
점점 높이 올라갔다. 더이상 구름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캄보디아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과 1시간 좀 넘게 걸렸을 뿐인데 2년 전에 육로로 이동했을 때의 엄청난 이동거리와 시간에 비하면 무척이나 쾌적하고 빠르다는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육로로 이동했다면 캄보디아의 국경 뽀이펫에서 비자 비용가지고 또 싸웠을지도 모르겠다.
비행기가 점점 아래로 하강하더니 커다란 도시가 나타났다. 프놈펜이 틀림없었다. 멀리 보이는 커다란 강과 함께 형성된 도시가 보였는데 역시 빌딩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는 점점 내려가는데 어째 도시 한복판으로 날아다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는 활주로 하강했는데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프놈펜 공항의 규모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이다. 얼핏봐도 게이트는 4~5개뿐이었다.
프놈펜 공항에 내려 이제 입국을 하려고 하는 순간 뒤늦게 깨달은게 있었으니 캄보디아 비자였다. 캄보디아 비자를 위한 20달러는 있었지만 사진이 없었던 것이었다. 작은 가방을 여러 차례 뒤지면서 사진이 없는지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그렇게 10분동안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는데 사실 사진은 필요가 없었다. 사진이 없으면 그냥 1달러만 더 내면 되었다. 그래서 비자비용 20달러와 사진이 없었기 때문에 추가로 1달러만 더 내는 것으로 내 여권에 비자를 붙여줬다.
입국은 가볍게 되고, 공항에 나가자마자 누군가 손을 흔들며 내 이름을 불렀다. 상민이형이었다. 무척 오랜만에 만났다는 것도 반가웠지만 그것도 캄보디아에서 만났다는게 너무 신기했다.
여행을 통해 사람을 알게 되고 다시 여행을 통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상민이형의 오토바이를 타고 우선 상민이형이 머무는 곳으로 이동했다. 사실 나에게 있어 캄보디아는 딱히 좋은 기억이 없었다. 세계 최대 유적지라 불리는 앙코르왓을 여행하면서 사람들과 싸운 기억으로 가득했고, 항상 돈을 요구하던 모습에 짜증이 많이 났었기 때문이다. 다시 오게 된 캄보디아의 분위기는 그 때의 기억과 매우 유사했다.
도로는 상당히 좁고 복잡했는데 그 이유로는 온통 오토바이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프놈펜에 도로 포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정도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내가 도착한 곳은 KLC(Korea Language Center)로 한국어 혹은 크메르어를 가르치는 곳이었다. 상민이형은 이 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어쨋든 도착한 후에 상민이형이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서 시간적 여유가 없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무척 미안하다고 했다. 이거 괜히 캄보디아로 온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저녁부터 먹으러 가자며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캄보디아 시내를 질주했다.
캄보디아는 역시 나에게 혼돈의 나라라고 느껴지게 만들었다. 도로는 엄청나게 복잡했고, 오토바이에 둘러싸여 차들은 움직이기가 힘들어 보였고 더군다나 신호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무척 많았다. 심지어 역주행도 서슴찮게 하고 있었다. 여기서 어떻게 운전을 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한 15분가량 달려 프놈펜의 중심부로 들어왔다. 내가 있었던 곳은 프놈펜의 외곽지역으로 꽤나 멀었던 것이였다.
공원에 분수대도 있고 꽤나 잘 갖춰져있는 모습이랄까? 게다가 이 근처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밀집해있는지 이쪽 지역으로 오니 외국인들이 꽤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연과 함께 어울렸던 프놈펜의 복잡함이 나에게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우리는 한식당에 들어갔는데 이 때 상민이형이 가르쳤다고 하는 학생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나는 학생이라고 해서 정말 어린 아이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식당의 가격은 정말 비싼 편으로 나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는데 상민이형이 이 날 한턱 내는 날이었던 것이었다. 삼겹살과 김치찌개등을 시키고난 후 소주와 맥주도 함께 마셨는데 생각보다 다들 잘 먹었다. 늦게 온 사람중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한국말도 조금 하면서 소주도 무척 잘 마셨다.
내가 느끼기로는 음식이 너무 한국적이기도 했고, 사실 가격도 지나치게 비쌌다. 그 이유는 프놈펜에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있기 때문인데 따라서 한식당들이 한인들을 위한 곳이라 그런지 가격이 한국보다 더 비싸게 느껴졌던 것이다. 사실 맛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인들은 너무나 잘 먹고 잘 마셨다. 한국말도 영어도 잘 못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은근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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