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 오면 먹여주고 재워줄테니 호주에서 넘어오라는 꼬임에 빠져 찾아갔던 프놈펜이었다. 내가 지내게 되었던 곳은 KLC라는 곳으로 프놈펜에서 한국어와 크메르어를 가르치는 일종의 학교와 같은 시설이었다. 저녁을 배터지게 먹고 햄버거에 맥주도 여러 잔 마신 후에 돌아온 이 곳에서 잘 준비를 했다.
상민이형은 갑자기 바빠진 자신의 일정에 같이 시간을 못 보낸다는 이야기와 당장 내일부터 이사 준비를 해야한다고 했다. 사실 살짝 서운한 느낌도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상민이형이 오라는 말 한마디에 호주에서부터 홍콩, 태국을 거쳐 캄보디아를 왔기 때문이다. 뭐... 보고 싶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달려가긴 했지만 말이다. 상민이형도 갑자기 바빠질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다음 날 나는 축구를 해야한다며 상민이형과 함께 운동장으로 갔다. 잔디구장으로 조금은 그럴듯해 보이는 경기장이었는데 나는 처음에 어린 학생들이나 캄보디아인들과 하는 축구일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한인 축구모임이었던 그런 자리였다. 원래 축구를 잘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너무 오랜만에 하는 축구에 저질 체력이 더 심하게 드러났던 것이었다. 게다가 어른 분들 그리고 잘하는 분들과 하는 축구 자리에 내가 끼어서 뛴다는건 심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차라리 축구를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태국도 무척이나 더웠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캄보디아도 미칠듯이 더웠다. 축구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부담감과 함께 더운 날에 뛰었던 축구경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축구를 한 뒤에는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역시나 한인업소였는데 정말 여기가 한국인가 싶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로 구성된 사람들과 축구 경기를 하고, 한인 업소에 와서 한식을 먹으니 내가 여행자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유난히 캄보디아의 한인업소는 왠지 캄보디아인들을 하인같이 부리는 모습이 좀 싫었다. 나는 이렇게 비싼 음식을 먹으면서도 기분이 썩 좋지도 않았고, 맛있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KLC에 돌아온 후에 우리는 이사를 했는데 아래층에서 4층으로 이사하는 것이었지만 여러 가구들 덕분에 생각보다 오래걸리고 꽤나 힘들었다. 이사하는데만 꼬박 3시간은 넘게 걸린듯 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같이 축구를 했던 분의 사무실이었는데 같이 노트북을 펼쳐놓고 게임을 했다. 여기서 아주 오랜만에 자장면을 먹기도 했는데 한국처럼 주문을 해서 먹는 배달음식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엄청나게 배불렀지만 또 한인업소에 들러 막걸리에 김치전을 먹었다. 물론 한인업소였다.
다음 날 오전에 찾아간 곳도 역시 한인업소였다.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싼 회덮밥을 먹었다. 그나마 그 동안 먹었던 한인업소 중에서도 가장 맛은 좋았다. 하지만 가장 싸다는 것도 5불이었는데 배낭여행자에게는 이런 사치가 무척이나 이질감이 느껴졌다. 비싼 음식뿐만 아니라 이 곳의 식당은 한인들의 전유물인듯 조금 있는 집 사람들의 외식 장소였던 것이었다.
프놈펜의 한인업소는 거의다 한인들만 상대한다는 특이점이 있었다. 물론 여러 나라를 가봐도 한인업소는 한인들을 상대로 한다는 것은 비슷했지만 캄보디아에서는 다른 어떤 음식점보다도 화려하고 비싸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캄보디아에 진출한 한국인들이 많으니 이런 음식점이 많을 수 밖에 없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상민이형은 갑자기 바빠진 자신의 일정에 같이 시간을 못 보낸다는 이야기와 당장 내일부터 이사 준비를 해야한다고 했다. 사실 살짝 서운한 느낌도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상민이형이 오라는 말 한마디에 호주에서부터 홍콩, 태국을 거쳐 캄보디아를 왔기 때문이다. 뭐... 보고 싶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달려가긴 했지만 말이다. 상민이형도 갑자기 바빠질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다음 날 나는 축구를 해야한다며 상민이형과 함께 운동장으로 갔다. 잔디구장으로 조금은 그럴듯해 보이는 경기장이었는데 나는 처음에 어린 학생들이나 캄보디아인들과 하는 축구일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한인 축구모임이었던 그런 자리였다. 원래 축구를 잘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너무 오랜만에 하는 축구에 저질 체력이 더 심하게 드러났던 것이었다. 게다가 어른 분들 그리고 잘하는 분들과 하는 축구 자리에 내가 끼어서 뛴다는건 심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차라리 축구를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태국도 무척이나 더웠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캄보디아도 미칠듯이 더웠다. 축구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부담감과 함께 더운 날에 뛰었던 축구경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축구를 한 뒤에는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역시나 한인업소였는데 정말 여기가 한국인가 싶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로 구성된 사람들과 축구 경기를 하고, 한인 업소에 와서 한식을 먹으니 내가 여행자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유난히 캄보디아의 한인업소는 왠지 캄보디아인들을 하인같이 부리는 모습이 좀 싫었다. 나는 이렇게 비싼 음식을 먹으면서도 기분이 썩 좋지도 않았고, 맛있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KLC에 돌아온 후에 우리는 이사를 했는데 아래층에서 4층으로 이사하는 것이었지만 여러 가구들 덕분에 생각보다 오래걸리고 꽤나 힘들었다. 이사하는데만 꼬박 3시간은 넘게 걸린듯 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같이 축구를 했던 분의 사무실이었는데 같이 노트북을 펼쳐놓고 게임을 했다. 여기서 아주 오랜만에 자장면을 먹기도 했는데 한국처럼 주문을 해서 먹는 배달음식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엄청나게 배불렀지만 또 한인업소에 들러 막걸리에 김치전을 먹었다. 물론 한인업소였다.
다음 날 오전에 찾아간 곳도 역시 한인업소였다.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싼 회덮밥을 먹었다. 그나마 그 동안 먹었던 한인업소 중에서도 가장 맛은 좋았다. 하지만 가장 싸다는 것도 5불이었는데 배낭여행자에게는 이런 사치가 무척이나 이질감이 느껴졌다. 비싼 음식뿐만 아니라 이 곳의 식당은 한인들의 전유물인듯 조금 있는 집 사람들의 외식 장소였던 것이었다.
프놈펜의 한인업소는 거의다 한인들만 상대한다는 특이점이 있었다. 물론 여러 나라를 가봐도 한인업소는 한인들을 상대로 한다는 것은 비슷했지만 캄보디아에서는 다른 어떤 음식점보다도 화려하고 비싸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캄보디아에 진출한 한국인들이 많으니 이런 음식점이 많을 수 밖에 없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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