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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탑까지라면 2불이면 돼"

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걷기 시작했다. 동남아에서는 흔하게 탈 수 있는 대중교통이 그냥 오토바이인데 캄보디아에서는 모또라고 불렀다. 이 모또 아저씨가 어처구니 없는 가격을 제시하자마자 나는 흥정할 생각도 안 하고 걷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히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먼 거리는 아니었다. 왓프놈에서 독립기념탑까지 직진으로 쭉 가면 10분이면 충분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난 어이없어 하는 헛웃음만 지어보이고는 손사레를 치고는 걸은 것이다.

지도 상으로는 분명 가까워 보였는데 막상 걸으려니 괜한 후회도 살짝 밀려왔는데 이제와서 모또를 잡아타면 왠지 나의 자존심이 무너질 것 같았다. 더워도 괜찮으니 열심히 걸어보자면서 씩씩하게 프놈펜 거리를 걸었다.


걷다보니 어느 이런 다리도 나왔다. 그런데 아주 친숙해 보이는게 앙코르왓에서 봤던 것과 매우 흡사해보였다. 하지만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이 조형물보다 앙코르왓이 훨씬 웅장해보였고 멋있어 보였는데 그건 진품과 가품의 차이일 듯 했다. 위대한 조상들의 이루어 놓은 문화보다 1000년이나 지났음에도 어째 더 뒤쳐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앙코르인들은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


공원을 바라보니 새삼 프놈펜도 꽤 정돈이 잘 된 느낌도 들었다. 분명 도로를 보면 혼란스러운 것은 여전했는데 이제 서서히 도시의 모습을 갖춰가는가 보다.


아무리 2불 아낀다고 걷는다고는 하지만 꽤나 다리가 아플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살살 내려주니 프놈펜을 돌아보기엔 악조건이 슬슬 갖춰진다고 볼 수 있었다.


힘들게 걸어가 겨우 도착해 우뚝 솟아있는 독립기념탑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독립기념탑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자주 보았는데 그 때마다 밤이어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이왕이면 낮에 둘러보고 싶다고 온 것인데 날씨가 흐리고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캄보디아는 과거 여러 나라에게 침략을 받거나 지배를 받아왔었다. 특히 프놈펜은 프랑스의 식민지였을 당시 많은 영향을 받은 도시였는데 그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한 후 이 기념탑이 세워진 것이다. 독립기념탑은 캄보디아 돈인 100리엘에 그려져있는데 100리엘 자체가 워낙 작은 단위라 실제 사용할 때 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 주변은 라운드어바웃(교통체계)라서 독립기념탑 주변으로 많은 차량과 오토바이가 지나다니고 있었다.


라오스 독립기념탑은 시멘트로 만들어져서 회색빛이 돌아 좀 멋스럽지는 않았는데 캄보디아의 독립기념탑은 독특한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나 밤이 되면 조명을 비춰서 알록달록 예쁜 색깔이 된다. 그게 가장 큰 구경거리라고 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이 날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 배가고파 리버사이드 쪽으로 향했다. 아마도 그 쪽으로 가면 먹을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캠코더까지 약간 맛이 가서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아무튼 내가 걸었던 곳은 한 공원이었는데 굉장히 잘 갖춰져있었다. 넓고 길었던 이 공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조깅을 하고 있었고, 몇 몇 사람들은 배드민턴을 즐기고 있었다. 여타 다른 나라의 여가와 다름이 없어보였다. 그동안 보아왔던 것과는 다르게 아주 깨끗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공원을 빠져나왔을 무렵 한식당이 보여서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캄보디아에 와서는 거의 한식당에서만 밥을 먹었던 것 같다. 제일 싼 음식을 골랐는데도 가격은 6불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서 밥 먹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전부 단체로 회식을 하는 분위기였다. 작은 한식당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을 보면 단골이 꽤 많은듯 보였다. 마치 한국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내가 밥을 먹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일을 마친 직장인들처럼 단체로 들어왔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밖에 나가려고 했는데 비가 정말 왕창 쏟아지고 있었다. 이래서는 절대 돌아다닐 수가 없는 상태였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주인 아주머니가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커피도 주셨다.

한 30분쯤 비가 멎기를 기다렸다가 문 앞으로 갔다. 여전히 비는 많이 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빗줄기가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나는 언제 나가야할지 타이밍만 재고 있었는데 문 앞에서 일하고 있던 캄보디아인과도 눈이 살짝 마주쳤다. 문 앞에서 식당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안내하거나 경비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짝 웃어보인 뒤에 나는 비 사이로 막 뛰어갔다.


다행히 비는 거의 그쳤다. 살짝 내리기는 했지만 맞으면서 갈 정도는 되었다. 원래 계획은 독립기념탑의 야경을 보는 것이었는데 그걸 접고 리버사이드로 갔다. 리버사이드쪽에는 여행자를 위한 거리가 조성되어있어서 외국인들이 많이 있었는데 나는 그 곳에서 맥주나 한 잔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주변은 너무나 어두웠다. 제대로 된 가로등은 거의 없었고, 도로는 사방이 물이 고여있었다. 프놈펜의 중심권인데도 너무나 어두워서 바로 앞에 있는 사람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혹시나 누군가 나를 여행자로 보고 쫓아오면 어떡하지? 혼자 다니게 되면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어둠이 가시고 약간의 불빛이 있는 도로를 걷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한 외국인이 나를 보더니 말을 걸었다.

"Do you speak English?"

나를 여행자로 알아본 것도 좀 신기한데 어쨋든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 그러니 머리를 살짝 쥐어잡으면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호주 사람인데 방금 전에 씨엠립에서 프놈펜으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버스에서 내리면서 돈과 가방을 전부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조금만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호주 캔버라에 살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에 나도 호주에서 왔다고 하니 묘한 반가움이 교차했다. 나도 돈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호주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지갑 속에 있는 20달러를 꺼내줬다. 이야기 한 것은 15분 정도 밖에 안 되었고, 그는 고맙다는 말을 몇 번 하고 헤어졌다. 뒤늦게 어쩌면 저 사람은 여행자에게 구걸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도 안 먹었다는 말에 내가 밥을 사주겠다고 해도 거절했으니 그럴 가능성이 무척 높긴 했다. 그런데도 그냥 아깝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호주이긴 했지만 그래도 7개월동안 호주에서 지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바에 가서 맥주 한 잔을 마셨다. 바였지만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거나 그런 모습은 전혀 없었다. 다들 끼리끼리 오거나 혹은 나처럼 혼자서 마시는 사람뿐이었다. 어쩐지 쓸쓸했다.

그렇게 이 근처에서 1시간을 배회하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모또는 아니었지만 태국의 뚝뚝과 비슷한 오토바이 차량 아저씨와 의외로 쉽게 흥정이 되어 2달러에 돌아가기로 했다.


프놈펜의 밤거리를 달리니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또 이상한데서 세웠다. 그리고는 여기라고 했는데 알고보니 KFC였다. 난 KLC라고 했는데 잘 못 알아듣고 KFC로 온 것이었다. 내가 설명을 하니 아저씨는 머쓱해 하며 웃어넘기는 것이었다. 뭐... 인상이 나쁘지 않은 아저씨이긴 했는데 어쨋든 이 아저씨는 다른 모또 아저씨를 잡아 주었다. 이 아저씨한테는 1불 줬다.

모또를 타고 돌아가는데 이 아저씨 또 길을 못 찾았다. 영어까지도 안 통하니 이거야 말로 미칠 노릇이다. 더 짜증이 났던 것은 그렇게 헤매고 겨우 도착하니 또 하는 소리가 돈을 더 달라고 한다. 이거 하루라도 안 싸우는 날이 없구나!


이틀 연속으로 베스트에 올라가 보기는 또 처음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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