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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에서 버스나 도로의 사정이 좋지 않았던 나라는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정도라고 볼 수 있었다. 왜 이 나라들을 꼽냐면은 고속버스라고 불리는 장거리 버스들이 대부분 한국이나 일본에서 들여온 중고 차량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로의 상태는 어찌나 좋지 않은지 쾌적한 여행은 보장할 수 없었다. 

비행기를 타면 불과 1시간도 안 되는 거리를 무려 15시간이나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던 곳이 바간이었다. 내가 비행기를 타지 않았던 이유는 가격이 크게 비싸지 않았지만 비행기를 탈 자금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고 최대한 미얀마를 이해하면서 다니고 싶었다. 원래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가장 쉬운 것 중에 하나가 교통 수단을 이용하거나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간행 버스 14시간이라...'

그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버스의 상태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좋았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냥 탈만했다. 


버스 회사 앞에서는 과자나 과일 등을 파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외국인이었던 나에게도 역시 하나만 사달라고 졸라댔다. 사실은 전혀 살 마음은 없었는데 갑자기 귤이 먹고 싶어서(아마도 만다린이었던거 같다) 하나 구입했다. 내가 얼마냐고 물으니 옆의 아저씨는 1000짯을 불렀는데 아가씨는 그 아저씨를 살짝 째려보더니 아니라고 800짯이라고 했다. 흥정할 생각은 하지 않고 알았다고 난 800짯을 내고 만다린을 하나 집어들었다. 내가 볼 때는 한 500짯이면 살 수 있을것 같았다. 


정말 허름했던 대합실에 앉아 있는데 바로 옆에 있던 여자분이 나를 몇 번 쳐다보더니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봤다. 그랬다. 이 분도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혼자 여행을 오셨다고 하는데 나보다 하루 늦게 미얀마에 도착했었다고 한다. 

이 분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미얀마 여자가 내 앞으로 오더니 짐을 찾았다. 내 뒤에 있었던 짐을 찾는 모양인듯 보여서 내가 짐을 들어서 건네줬는데 상당히 무거웠다. 그리고는 큰 보따리 2개 더 날라줬는데 누워서 나를 지켜봤던 아저씨가 나를 향해 찡긋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워줬다. 

어째 여기에 있던 사람들은 배낭여행자들 보다도 짐은 엄청나게 많았는데 마치 이사를 가는듯 보일 정도였다. 주위를 살펴보니 조금 몸집이 있던(사실은 심하게 있던) 서양 부부가 보였고, 서양인 여자는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외에는 전부 미얀마 사람들이었다. 

한국 분과 이야기를 조금 나눴는데 불교의 성지인 미얀마를 보고 싶어서 오신 듯 보였다. 하지만 잠시 뒤에 정신 없이 버스에 올라타는 바람에 급하게 헤어져 버렸다. 

내 좌석은 버스의 맨 뒷자리였다. 내 바로 옆에는 아까 전에 대합실 바깥에서 담배를 피던 서양인 여자가 앉아 있었다. 조금은 도도한 듯한 표정에 살짝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인사를 건네니 무척 반가워 했다. 아마도 이 버스 안에는 외국인이라고는 우리 둘 밖에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보였던 귀여운 꼬마 아이가 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타나카(미얀마의 전통 화장품)를 바른 사람들의 사진은 미얀마가 아니면 찍을 수 없는 매우 희귀한 장면이다. 


버스는 거의 시장의 한복판에 온 것처럼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버스의 내부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고, 장거리 버스이다 보니 베개와 물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버스는 3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출발했다. 어차피 버스 터미널이 양곤 시내를 한참이나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도시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창밖의 풍경은 정말 단조로워졌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양곤을 벗어나자마자 아무 것도 없다니 그게 너무 이상할 정도였다. 

내 옆에 있던 금발에 푸른빛 눈을 가진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름은 비키였고, 러시아 사람인데 현재는 두바이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나이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나보다는 좀 더 많아 보였다. 그러니까 중후한 여인도 아니었고, 젊은 아가씨도 아니라고 보면 되었다. 

아무래도 장거리 버스에서 서로 옆에 앉다보니 급격하게 친해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비키가 말린 과일을 나에게 건네주면서 같이 먹기도 했다. 많이 본 상품이길래 혹시 그거 태국 공항에서 사가지고 온 거냐고 하니까 맞다고 이번에 미얀마 오기 전에 공항에서 샀다고 했다. 

비키는 가이드북도 없이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었던 론리플래닛 동남아 슈스트링을 꺼내서 보여주니 정말 필요했던 거라며 열심히 읽었다. 


버스는 덜컹덜컹 거리면서 달리고, 쉬도 때도 없이 경적을 울려댔다. 경적을 계속 울리는 것을 보면 딱 캄보디아 버스를 탄 것처럼 느껴졌다. 아까 전에 샀던 귤을 하나 까서 먹어봤는데 무척 맛이 없었다. 

버스 안에는 작은 TV가 설치 되어 있었는데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유치해 보이는 뮤직 비디오나 노래방에서 나올 법한 영상이 나왔다. 뚱땅뚱땅 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버스는 신나게 달렸는데 외국인의 입장으로써는 이건 고문과 다름이 없었다. 


계속 버스는 덜컹덜컹거리기만 했다. 바깥의 경치는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땅이 연속적으로 보였다. 이런 풍경은 호주 이후로 처음이었던거 같다. 

갑자기 버스가 멈춰섰는데 누군가가 볼일이 급했나 보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무척 재미있었다. 


남자들이 열심히 뛰어갔지만 어차피 이 곳에서 멀리갈 곳도 없었는데 서서 볼일을 보는가 하면 쭈그려서 볼일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미얀마의 전통 의상이었던 롱지는 치마의 형태로 안에 속옷을 입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그 말이 사실인가 보다. 


비키와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던 것도 잠시 서로 잠이 들기도 하고, 풍경도 지루했기 때문에 버스 여정은 쉽지 않았다. 원래 버스가 다 이렇지만 그냥 쉬지 않고 달리는 버스가 점점 힘들어졌다. 이제 날도 서서히 저물고 있었는데 여전히 변하지 않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가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내 옆에는 미얀마 가족이 타고 있었는데 2좌석은 엄마와 아이, 그리고 보조 의자를 펼친 자리에는 아저씨가 타고 있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을 때 나에게 코끝을 자극하는 비린 냄새가 났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은 비닐봉지 안에 있던 면요리를 손으로 슥슥 비벼서 먹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전 날 먹었던 음식과 매우 유사하게 보였고, 냄새도 비슷했다. 

무려 4시간동안 창 밖의 풍경이 같았다. 


이제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어둠이 짙어질 무렵 드디어 휴게소에 도착했다.


이 근처에 사람이 사는지 의문일 정도로 휴게소의 위치도 참 생뚱맞아 보였는데 슈퍼마켓과 같이 과자를 팔고 있었던 곳도 있었고, 안 쪽으로 더 들어가니 거대한 식당도 있었다. 우선 화장실에 갔다온 뒤에 비키와 자리에 앉았다. 마침 주변에 서양인들이 몇 명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식사는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얘기를 해줬다. 


비키는 버스가 언제 출발할지 몰라서 조금 불안했던 모양인지 옥수수를 하나 사가지고 왔고, 나는 밥을 먹었다. 휴게소라 그런지 이런 간단한 밥이 1800짯이었다. 그래도 나름 먹을만해서 잘 먹었다. 

밥을 먹고 난 뒤에 버스를 타려고 우리 버스를 찾아 갔다. 버스가 여러 대 정차하고 있어서 잘 찾아가야 했다.


버스를 타기 전에 멀리서 불이 나고 있었던 모습이 보였다. 들판 위에 불이 붙었던 것인지 아니면 화재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사람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듯 했다. 

버스에 올라탄 뒤에는 비키와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뒤에는 함께 내 아이팟에 있던 영화 '원스'를 같이 봤다. 비키의 경우 러시아 사람이긴 했지만 영어 교사를 했을 정도로 영어는 매우 능숙했기 때문에 영어권 국가의 사람과 대화나 영화를 보는데 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영화를 잘 보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는 섰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와 비키는 멀뚱 멀뚱 쳐다보다가 그냥 화장실을 가는 거라고 생각해서 다시 영화 보기에 열중했는데, 누군가가 "Passport"라고 외치는 소리에 내렸다.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내리고 미얀마 사람의 경우는 걸어서 이동했고, 외국인은 사무실에 들어가 여권을 검사했다. 

정말 신기한 장면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마치 국경을 넘는 것처럼 사무실 직원은 내 여권 번호를 받아 들고는 어디로 가냐는 짧은 물음에 내가 "바간이요"라고 하면 그걸 받아 적었다. 

버스에 다시 올라타고 출발하자마자 비키는 나에게 "방금 어땠어? 이거 완전 웃기지 않아? 여권을 받아들고 검사를 하다니!" 라고 말을 하면서 미쳤다는 표현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비키도 역시 재미있는 경험인듯 황당하면서도 웃긴다고 했다. 

버스는 너무 다시 출발했는데 너무 추웠다. 아무리 1월의 동남아가 덥다고는 하지만 바간은 미얀마의 북쪽 도시였기 때문에 밤이 되자 무척 쌀쌀해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것은 버스의 에어컨이 꺼지지 않았던 것이다. 긴 팔의 옷을 입고도 너무 추워서 뒤쪽에 있던 내 배낭에서 항공 이불을 꺼내 덮었다. 

거의 냉동차와 같았던 버스는 여전히 덜컹거리면서 달리고 있었고, 나는 얼어죽을까봐 항공이불을 뒤집어 썼다. 거의 비몽사몽이었던 상태라 그냥 의식적으로 달리고 있는 버스 안에 있다는 생각 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에 버스는 어느 곳에서 정차했고, 내 옆에 있던 가족들은 많은 짐을 챙겨들고는 내렸다. 그리고는 아주머니가 막 화를 내는데 미얀마어를 전혀 모르던 나도 대충 '우릴 얼어죽일셈이냐!'라는 듯한 항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난 뒤에 휴게소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들 내려서 따뜻한 티를 마셨다. 밖에도 이렇게 추운데 대체 에어컨을 왜 안 끄는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는데 고장나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시 버스는 출발 했을 때는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아니 대체 왜 여태까지 에어컨을 안 껐던거야!

잠을 자다가 비몽사몽인 상태로 깼는데 도착했다고 알려줬다. 시각은 새벽 3시 반이었다. 원래 예상은 새벽 6시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이 새벽에 냥우(바간에는 3개의 도시가 있는데, 보통 여행자들은 냥우에서 머문다)에 도착했던 것도 황당했는데 낯선 땅에서 졸다가 겨우 일어났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버스 터미널 앞에는 삐끼들이 달라 붙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와 비키는 우선 삐끼들을 잠시 무시하고는 우리끼리 책을 꺼내서 숙소 정보를 알아보고, 이 터미널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우리는 잠시 상의를 한 뒤에 숙소는 직접 찾아보자고 하며 그냥 사이까(인력거)를 타고 갔다. 사이까는 우리가 숙소를 찾을 때까지 태워다 준다고 했고, 1인당 500짯이었다. 

사이까 옆에 붙은 자리에 내 배낭을 묶었고, 나는 앞자리에 앉았는데 진짜 너무 너무 추웠다. 동남아의 겨울 날씨가 이정도로 추웠던가 생각될 정도로 몸이 바르르 떨렸다. 

딸랑딸랑 거리는 사이까의 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살펴 보는데 진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에 어느 게스트하우스 앞을 지나갔는데 '메이카라 게스트하우스'였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었던 게스트하우스였다. 그래서 가격이나 알아 볼 겸 잠시 멈춰 선 뒤에 사이까 아저씨가 문을 두드리니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눈을 비비며 나왔다. 

게스트하우스를 살펴 봤는데 매우 평범했다. 하지만 가격을 물어보니 내 예상보다 2배는 비싼 15불이었다. 나와 비키는 망설일 이유도 없이 나왔다. 사이까를 타고 조금만 더 가자 다른 게스트하우스가 나왔는데 어느 가이드북에도 나오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래도 확인해보자고 들어갔는데 역시나 문을 쾅쾅 두드린 끝에 자다 깬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나왔다. 

게스트하우스는 메이카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였는데 가격은 5달러로 매우 저렴한 편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늦은 새벽에 도착했기 때문에 이 날은 요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는 무척 좋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나와 비키는 체크인을 한 뒤에 지역 입장료였던 10달러를 냈다. 비키에게는 아침에 보자면서 내 방으로 돌아와서는 너무 피곤했지만 샤워를 하려고 물을 틀었는데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뜨거운 물은 나오긴 했지만 물이 콸콸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겨우 겨우 샤워를 한 뒤에 잠이 들었는데 새벽 4시인지 5시인지 아무튼 무척 늦은 시각이긴 했다. 이불을 뒤집어 썼는데도 너무 추워서 잠이 드는데 무척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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