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고액권인 1000짯 아래의 작은 단위의 돈은 대부분 이렇게 지저분했다.
아침에 일어나 토스트와 커피 그리고 바나나와 파파야 등의 과일이 제공되는 아침을 먹고 배낭을 쌌다. 저녁에 만달레이를 떠나는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미리 배낭을 싸고 아래로 내려와 카운터에 내 배낭을 잠시 맡겼다. 시간은 한참 남았기 때문에 만달레이를 구경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이른 아침부터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쏘소와 오토바이 아저씨가 나를 맞이했는데 오늘은 어디를 가냐고 물었다. 밍군이나 다른 지역을 여행할 생각이라면 또 오토바이를 이용하라고 했는데 나는 돈이 없어서 사양하겠다고 했다. 그냥 튼튼한 다리를 이용하겠다고 하니 조금 아쉬워하면서도 알겠다고 인사를 했다.
대략적인 지도를 살펴보면서 내가 정한 목적지는 다름아닌 만달레이 궁전Mandalay Palace였다. 만달레이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미얀마의 수도로써 정치, 경제 행정의 중심지였다. 그 증거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만달레이 궁전이었다.
만달레이 궁전으로 향하는 길은 미얀마 양곤을 걸을 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양곤보다도 오히려 캄보디아 프놈펜이 연상될 정도로 거리의 풍경과 오토바이 행렬이 너무 비슷했다.
아침이라 그런지 살짝 쌀쌀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강렬한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면 이내 더워질 것이 확실해 보였다. 거리에 있던 나무에는 청설모도 바쁘게 뛰어다녔다. 도시 한복판에 청설모가 있다는 것은 조금 신기했다. 만달레이가 숲속처럼 공기가 맑고 상쾌한 것은 전혀 아닌데 말이다.
만달레이 궁전이 보이는 가장 큰 길로 나왔다. 도로에는 오토바이와 자전거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았고, 도로는 건너기도 힘들어 보였다. 횡단보도 같은건 있을리가 없으니 적절한 타이밍에 맞혀서 건너갔다.
무지하게 넓은 해자가 내 눈앞에 펼쳐졌고 그 건너편에는 만달레이 궁전이 보였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앙코르왓이 다시 눈 앞에 있는 듯 했다.
근데 만달레이 궁전 너무 컸다. 너무 거대해서 내가 아무리 걸어도 입구는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몇 십분을 걸었을 때 입구가 나왔다. 신나서 달려간 것도 잠시 입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나의 출입을 제지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곳은 외국인이 출입을 할 수 없는 곳이라며 다른 입구를 통해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이런 수상쩍은 행동을 한다는게 너무 이상했고, 왜 미얀마가 '이상한 나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만달레이 궁전의 경우 외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입구는 딱 한군데였다.
좋다고 다른 입구를 향해 이동했지만 만달레이 궁전의 한 변은 무려 3km였다. 대략 감이 오지 않겠지만 입구를 찾겠다고 걸어도 걸어도 만달레이 궁전은 제자리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우선 방향을 돌려서 가까웠던 만달레이 힐Mandalay Hill을 찾아갔다. 역시 걸어서 갔는데 새삼 만달레이가 걷기에는 너무 거대한 도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길을 건너 만달레이 힐에 도착했는데 내 눈 앞에 펼쳐진 무수한 계단을 보고 기가 죽어버렸다. 걸어서 여기를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어떤 삐끼 아저씨가 나를 붙잡고 픽업트럭을 타고 올라가라고 제안을 했다. 원래는 안 탄다고 하려고 했지만 가격을 물어보니 500짯이라고 해서 그냥 탔다. 내가 타자 바로 출발한 것은 아니고, 사람이 더 탈 때까지 기다렸는데 잠시 후 스님 2명이 타자 바로 출발했다.
픽업트럭은 정신없이 달렸다. 그러니까 낭떠러지가 옆에 보이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침없이 질주했다. 마치 타임어택을 찍는 것처럼 달렸는데 속도감이 장난 아니었다. 무엇보다 커브길에서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질주본능에 내가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맨 뒤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나를 보더니 "Where are from? Japan?" 이라고 물어본다. 처음에는 발음이 심하게 안 좋아 알아 듣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일본사람처럼 생겼나? 어쨋든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답하니 내 바로 맞은편에 앉았던 소녀들이 서로 쳐다보다가 다시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일제히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했다. 나도 깜짝 놀랐다.
그러더니 나에게 혼자냐고 물어봤는데 내가 혼자라고 답해줬다. 하지만 잘 이해를 못했는지 맨 뒤에 있던 아저씨가 다시 나에게 혼자냐고 물어봐서 내가 손가락을 하나 올리면서 혼자라고 다시 대답해 줬다. 혼자 여행을 다니는 내가 조금 신기했나 보다.
산악경주를 하듯 질주했던 픽업트럭은 마침내 만달레이 힐의 끝까지 올라왔다. 계단 몇 개를 오르니 진짜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입구에서 카메라요금이 있다면서 500짯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사실 정상이 아니더라도 사진 찍을 수 있는 장소도 있었고, 만달레이 힐의 풍경이 그리 멋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서 사진을 찍고 싶지는 않았다. 카운터에 내 카메라를 올려놓으면서 500짯을 안 내고 사진을 안 찍겠다고 말을 했다.
만달레이 힐 정상에 올라 그냥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 부처상도 구경했다. 크게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나는 멀리 만달레이의 경치를 구경하다가 그늘진 곳에서 철푸덕 주저 앉아 버렸다. 그냥 앉아서 멍하니 생각도 하고, 지난 밤의 일과에 대해서 노트에 정리를 했다.
그 때 픽업트럭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내 주변에 왔다. 과자인지 튀김인지 모를 무언가를 나에게 건네먼서 내 옆에 앉았는데 나보고 미얀마에는 왜 왔냐고 물어봤다. 혼자 여행을 왔다고 하니 아이들은 눈이 동그랗게 변하면서 어디를 여행해 봤냐고 물어봤다. 그리고는 자신들은 네피도에 사는데 네피도는 가봤냐고 물어봤다.
사실 영어가 그렇게 잘 통하지는 않았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나에게 어렵게 설명을 했는데 영락없는 꼬마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근데 알고보니 대학생이었다. 17살이라고 했던 아이들은 정말 키가 작아서 중학생정도로 생각했는데 대학생이라고 하니 깜짝 놀랐다.
만달레이 힐에서 앉아 수다를 떨다가 이제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갈 때는 걸어서 내려갔는데 정말 멀긴 멀었다.
아이들이 나에게 줬던 튀김 비슷한 것을 여기에서 팔고 있었다.
기념품 가게를 뒤로 하고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계단이 가파르지는 않아서 내려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중간쯤에는 커다란 불상도 만날 수 있었다.
나와 대화를 나눴던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앞에서 먼저 내려가고 있었다.
거의 끝까지 다 내려왔을 때 낯익은 친구들이 보였다. 전 날 만났던 스위스 친구들이었는데 멀리서 서로 알아 보고는 키득키득 웃기만 했다. 여기에서 또 우연히 만나다니 그냥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친구들도 이날이 마지막 날이었고, 비행기를 타고 양곤으로 간다고 했는데 마지막에 만달레이 힐을 들린 것이다.
내가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계단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오래 걸어야 하는지 물었는데 나는 올라갈 때는 차를 타고 올라가고, 내려갈 때는 걸어서 내려왔으니 너네도 그렇게 하는게 좋을거 같다고 얘기했다.
"걸어 올라가면 좀 힘들껄? 500짯이면 금방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어."
내 이야기에 스위스 친구들은 망설이지도 않고 바로 내려가 차를 타러 갔다. 생각해보면 이 친구들과는 연락처를 주고 받지 않은게 조금 아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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