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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만달레이 힐 근처에는 뭔가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가이드북을 살펴봤는데 놀랍게도 만달레이에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책이 있다고 한다. 설명을 보면 여기는 꼭 가야할 것 같아서 그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내가 처음 도착한 곳은 목적지였던 꾸도더 파고다가 아닌 어느 사원이었다. 이제는 사원이라면 질릴 정도였는데 그래도 찬찬히 살펴봤다. 


꽤 넓은 곳이었는데 너무도 조용했다. 사원 내부에는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있었던 아주머니만 한 분이 계실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던 곳이었다. 어디서 나무를 태우는지 그윽한 연기만 휘날렸다. 


여기에도 커다란 불상은 있었다. 혹시 이곳이 차욱타지 파고다가 아닌가 싶어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더니 맞다고 한다. 양곤에 있을 때도 차욱타지 파고다를 간 적이 있었는데 만달레이에도 차욱타지 파고다가 있었다. 그건 미얀마 내에 차욱타지 파고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원이 여러 곳이라서 그렇다. 


너무 더워서 차욱타지 파고다를 둘러봤다기 보다는 그냥 잠시 거닐면서 쉬고 갔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다리가 조금씩 아파왔지만 꾸도더 파고다의 방향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편하게 다니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미얀마에서는 이정표조차 없었기 때문에 한번 길을 잃어버리면 헤매기도 한다. 나는 이 부근에서 꽤 헤맸다. 


차욱타지 파고다의 맞은편으로 건너가니 좁은 공터에서 축구를 하고 있던 승려들을 볼 수 있었다. 여행을 하다가 가끔 미얀마 사람들이 좁은 골목에서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긴치마와 같은 그들의 옷을 저렇게 둘둘 말아서 반바지 형태로 만들고 뛰어 다닌다. 


축구하는 공터의 맞은편에는 한 눈에 봐도 뭔가 신비한 장소일 것 같은 하얀색 불탑들이 보였다. 이곳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책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파고다 안으로 들어갔다. 


파고다 안에는 확실히 뭔가 있었다. 새하얀 불탑 안에는 돌판이 세워져 있었고 그 돌판에는 뭔가 새겨져 있었다. 흥미로웠다. 이렇게 거대한 돌판이 내 주위에 가득했던 것이다. 


이 파고다의 가운데에는 황금빛 불탑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이 위쪽으로 올라가서 한 바퀴 돌아봤다. 


확실히 거대하기는 했지만 과연 이정도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책인지는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어쨋든 파고다를 구경하고 내가 들어왔던 입구의 반대 방향으로 나갔다. 입구로 나오니 어느 스님이 나를 보더니 말을 걸었는데 이제는 일본 사람도 아니고 중국 사람같단다. 짧은 시간 이야기를 했지만 그 스님은 알고 있었다. 한국의 부자 나라이고, 북한은 가난하다는 것을. 그리고 미얀마 역시 북한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짧은 말동무를 하던 스님과 헤어진 후 나는 다시 걸어갔다. 이번에는 사이까(인력거) 아저씨들이 나를 부르면서 타라고 손을 흔든다. 마음이 불편할 것 같은 사이까를 타고 싶은 생각도 없긴 했지만 그냥 걷고 싶었다. 어디로 가냐는 그들의 물음에 나는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No money"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사이까 아저씨들은 내 대답이 웃겼는지 아니면 땡볕에서 열심히 걸어다니는 정말 돈 없는 여행자의 모습을 발견했는지 마구 웃었다. 


내가 잠시 후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책이라는 안내판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아까 전에 봤던 것은 꾸도더 파고다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나중에 지도를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곳은 산다무니 파고다였다. 여기는 도착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그래도 좀 유명한 곳인지 간혹 외국인 여행자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래봐야 한 두명이었지만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책이 있는 꾸도더 파고다는 1857년 민돈왕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규모는 어찌나 큰지 흰색 파고다가 사방에 펼쳐져 있는데 대리석에 적힌 뜨리삐따까(불교경전)가 729개나 된다고 한다. 이는 한 사람이 쉬지 않고 경전을 읽는다면 500일이 걸리는 양이라고 한다. 원래는 이 경전도 금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도난의 위험때문에 대리석에 새긴 것이라고 한다. 


꾸도더 파고다의 미니어쳐도 전시되어 있는데 새삼 이 파고다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알 수가 있다. 여기에서 미니어쳐를 보고 있을 때 어떤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파고다 내에서 기념품 등을 팔고 있었던 아저씨였는데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딸을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데리고 왔다. 한국말을 좀 알고 있다고 해서 데리고 온 것인데 사실 '안녕하세요' 정도만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도 딸과 부인을 비롯해서 이 아저씨는 한국의 드라마 얘기에 신이났다. 확실히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대단하긴 대단했다. 기념품을 사달라고 강요하지도 않았고 나와 이야기하는걸 더욱 좋아했던 아저씨였다. 


꾸도더 파고다를 한 바퀴 둘러본 뒤 나는 아까 만난 아저씨의 가족들에게 인사를 나눈 뒤 밖으로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책을 둘러보기엔 너무 덥고 지친 상태였다. 하긴 책을 열심히 살펴본다 하더라도 내겐 무슨 말인지 모르는 똑같은 대리석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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