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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왔다. 큐슈 일주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붙이고 출발한 여행은 어느새 출발지였던 후쿠오카로 돌아와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제대로 돌아봤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큐슈의 거의 대부분의 현을 다 가봤다는 것에 만족했다.

카라츠를 갔다가 후쿠오카로 돌아온 나는 텐진 거리를 걸었다. 텐진의 백화점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일본에서 볼 수 있는 만화 백화점도 구경했다. 그리곤 텐진 지하상가를 아무 생각없이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다시 나카스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겨울 법도 한데 또 나카스다. 하지만 뭐 괜찮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배고프면 라멘이라도 먹어야 할텐데 그렇다면 이 근처에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나중에 정작 라멘을 먹으러 갔을 때는 이 근처가 아닌 꽤 먼 곳에서 먹기는 했지만 말이다.

거리를 걷다가 재미있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가면을 쓰고 로봇처럼 행동하는 사람, 그러니까 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된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니고 말도 전혀 하지 않으며 오로지 딱딱하게 움직이기만 했다. 이게 뭐 재밌나 궁금하겠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의 행동에 주목하기도 하고, 손짓을 하면 반응을 하기 때문에 좋아했다.


정말 로봇처럼 움직이는게 바로 포인트다. 그래야 사람들이 지나다가다가 사람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란다. 이런 것도 행위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난 이와 똑같은 모습을 시드니에서도 봤다. 그 사람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간간히 움직이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이게 일종의 유행인지 아니면 벤치마킹을 한건지 모르겠는데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볼 수 있다니 개성이 너무 없다. 다들 연구 좀 했으면 좋겠다.

나카스를 걷다가 멀리 공원까지 가게 되었다. 공원에도 나카스처럼 포장마차가 몇 군데 있었는데 나는 여기에서 라멘과 꼬치를 사먹었다. 그리고는 같이 여행은 했지만 함께 돌아다닌 적은 거의 없었던 이니그마님을 만나러 나카스로 돌아갔다.


아주 오랜만에 나카스에서 다시 만난 이니그마님과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후쿠오카의 중심지인 텐진쪽으로 걸어갔다. 텐진이 후쿠오카의 중심지이기는 하지만 다른 도시에 비한다면 조금 심심한 것도 사실이다.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높은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야경을 선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조금 달랐다. 그동안 텐진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중심지인데 밤거리가 왜 이렇게 한가하냐고 말했었는데 골목에 들어가보니 사람들도 무지하게 많았고, 현란한 네온사인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연말이라서 아름다운 텐진의 야경을 볼 수도 있었다.


확실히 사진을 찍는 사람은 좀 틀리긴 틀린가 보다. 이니그마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횡단보도의 중앙분리대 근처로 가더니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찍었다. 위험한 자리는 아니지만 이런데서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찍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덕분에 도로에 자동차가 움직이는 궤적까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보니 텐진도 근사해 보였다.


나카스와 텐진에서 사진도 찍었으니 이제는 뭘 먹으러 가자며 거리를 나서는데 멀리 반짝이는 곳이 보였다. 텐진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곳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일루미네이션이 가득했던 곳이 있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연말이라서 쇼핑센터 뒤에 장식을 한 것 같다.


이때부터 다시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만 내 카메라의 렌즈가 야경 찍기에 적합치 않아 힘들었다는게 많이 아쉬웠다. 그냥 카메라를 들고 주변 분위기를 찍어본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아무튼 여기에서 봤던 일루미네이션은 정말 화려했다. 큐슈 여행을 하면서 이상하게 후쿠오카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별로 안 느껴졌다고 했는데 바로 여기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반짝이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여자들이나 연인들이 많아 남자는 구석에서 쓸쓸히 사진을 찍어야 했다.


아무튼 참 아름다웠다. 일본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에 텐진의 야경까지 제대로 구경하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사진을 찍던 도중 일본인 커플과도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다른 지역에서 여행왔다고 했다. 확실히 카라가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지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 구하라 이야기를 꺼냈다. 약간 혀짧은 소리를 내는 여자를 보면서 구하라를 닮았다고 말해주려다가 말았다. 착한 커플이었다.

이렇게 사진을 열심히 찍던 도중 갑자기 정전이 된 것처럼 일루미네이션 불이 모두 꺼졌다. 아마도 12시가 되어서 끈 것 같은데 불이 꺼지자 동시에 주변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었던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어둠에 아쉬워하다가 결국 뿔뿔히 흩어졌다.

잠깐 사진만 찍고 가자고 했는데 벌써 12시 반이 지났다. 우리는 그제서야 들어가 먹고 마실 적당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텐진의 골목을 돌아다니다 찾은 곳이 꼬치를 파는 선술집이었다.


막상 안에 들어가보니 가게는 아주 소박하지도 않고 적당한 크기에 사람도 꽤 많이 있었다. 우연히 찾은 가게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다.


맥주와 함께 꼬치를 주문했는데 우리는 정말 쉬지않고 계속 먹고 마셨다.


우리는 가게를 정리할 때까지 있었다. 일본답게 선술집 분위기는 무척 활기가 있었는데 특히 종업원들이 재밌었다. 서로 주문을 주고 받고, 소리를 지르며 일을 하는 모습이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독특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손님이었던 우리가 돌아가자 작별 인사도 시원하게 하게 했다. 괜히 그들의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친근하기도 해서 사진을 찍었다. 일본 여행에도 가끔 이런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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