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여행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 코소보를 떠날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몬테네그로로 갈 예정이긴 했는데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정해진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날씨는 정말 상쾌했다. 여행에 대한 압박보다는 밀린 빨래를 해서 말리고, 사진을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의 반을 보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식당 바깥에 있던 메뉴를 살펴보는데 안에 있던 아저씨가 먼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간단한 영어는 가능해 주문하는데 어려움도 없었고, 밥을 다 먹은 뒤에는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봐서 몇 마디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는 사진을 같이 찍고 싶다고 해서 찍었다. 사실 코소보에 있는 동안 사람들이 아시아 여행자라는 이유만으로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을 넘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게 매우 불쾌했는데 직접적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그런 마음이 많이 누그러진다.
그들이 보내주는 미소만으로도 코소보를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묵었던 호텔(호스텔이 아니라 무려 호텔)은 불과 2일 전에 영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첫 손님이자, 첫 외국인이라 나름 환대를 받았다. 말은 안 통했지만 커피와 맥주를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다음날도 어떻게 떠날지 정한 건 없었지만 일단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호텔을 나섰다.
히치하이킹으로 갈 생각으로 국경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페이야(Peja) 외곽 도로까지 말이다.
하지만 지나다니는 차가 너무 없었다. 할 수 없이 계속 걸었다. 국경까지는 무려 30km가 넘게 떨어져 있었고, 눈앞에는 거대한 산이 보이는데도 이상하게 걸어서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런 '뻘짓'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워낙 오지라서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어 히치하이킹도 쉽지 않았다. 총 3번의 히치하이킹을 했으나 워낙 짧은 거리만 이동해 멀리 가지는 못했고, 덕분에 거의 3시간 동안 배낭을 메고 걸어야 했다.
맨 처음 나를 태워준 아저씨는 나를 5km 정도 태워줬고, 그 다음 차로는 3km만 이동할 수 있었다.
몬테네그로로 가는 차가 이렇게 없나 싶을 정도로 도로는 한적했다. 나는 산을 따라 계속 걷고, 또 걸었다. 간혹 지나가는 차를 마주하게 되면 거의 입을 벌리면서 나를 쳐다보곤 했다. 아무래도 배낭을 메고 산을 걷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얼마나 걸었을까? 지도를 켜보니 국경까지는 이제 5km 남짓 남은 상태였는데 그때 지나가던 경찰차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어디로 가냐는 물음에 나는 국경으로 간다고 하니까 이쪽이 아니란다. 지도만 봤을 때는 당연히 이 국경을 넘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경찰 말로는 이곳 국경은 닫혀있으니 로자야(Rozhaja)쪽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알려줬다. 여태까지 뻘짓을 한 셈이었다. 황당해 하는 나에게 5km 정도는 태워줄 수 있다고 했다.
난 국경 근처에서 경찰차를 타고 내려왔고, 어쩔 수 없이 페이야 방향으로 걸어서 내려갔다. 헛웃음만 나왔다.
한참을 걷고 있었을 때 낯설지 않은 여행자가 보였다.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는데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는 게 딱 봐도 외국인 여행자였다.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어보니 이 친구도 여기 국경을 통해 몬테네그로로 가려는 중이라고 했다. 길 위에서 다른 여행자를 만나서 반갑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나만 '뻘짓'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내가 국경이 닫혀있다고 말했는데도 굳이 올라가보겠다고 안 되면 마지막 마을에서 텐트치고 잘 거라는 고집을 부렸다. 우리는 서로에게 행운을 빌어준 뒤 헤어졌다.
히치하이킹으로 페이야 시내로 내려온 후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기로 결심했다. 오후 2시에 로자야로 가는 미니 버스를 탔다. 국경은 산 정상에 있었는데 온통 눈으로 덮혀 있어, 지금이 몇 월인지 다시 기억을 더듬어야 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몬테네그로 국경을 넘은 뒤부터는 비가 쏟아졌다. 상당히 많은 비가 내려 어떻게 움직여야 걱정했는데 다행히 로자야 버스터미널에서 15분 정도 기다리니 비가 그쳤다. 이미 4시가 넘어 로자야에서 하루를 묵어야 할지 고민도 했지만, 과감히 이동하기로 결심했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 또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차를 기다리는데 동네 꼬마가 굳이 도로를 건너 내 손에 껌 2개를 쥐어주고 떠났다.
10분 만에 세르비아인 아저씨의 차를 탈 수 있었다. 아저씨는 베라네(Berane)까지 태워줄 수 있다고 했다. 몇 분이 지나자 차 안에는 정적이 흐르길래 지금 이 노래가 세르비아 음악이냐고 묻자 아저씨는 시디를 꺼내서 나에게 보여줬다. 그리고는 가져도 된다는 식으로 나에게 쥐어줬다. "노. 노. 노."라고 갖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었다고 말하자 아저씨는 "예스. 예스. 예스."라며 가져도 괜찮다고 말했다. 사실 시디를 내가 가질 이유도 없고, 가져도 들을 수 있는 방법도 없어 억지로 시디를 시디플레이어에 집어 넣는 것으로 사태를 일단락했다. 말은 안 통했지만 웃음이 절로 나왔다.
포드고리차(Podgorica)까지는 144km가 남았다. 그래도 나름 작은 도시는 아니라서 히치하이킹하기는 쉬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여기서 무려 3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차를 잡을 수 없었다. 오늘의 '뻘짓'은 끝난 게 아닌가 보다.
난 시내로 가서 잘 수 있는 곳을 알아보려다가 버스터미널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들어갔다. 운이 억세게 좋은건지 정말 다행스럽게 8시에도 포드리고차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아마 이 도시가 아주 작은 곳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만약 버스가 없었다면 여기서 하루 묵어야 했고, 그건 적지 않은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바로 떠나는 게 낫다.
버스에서는 정신없이 졸았다. 눈을 겨우 떴을 때 포드고리차에 도착했고, 그때의 시각은 오후 11시였다. 코소보 페이야에서 떠난지 무려 14시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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