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에서 19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다음으로 이동할 나라는 알바니아였다. 히치하이킹을 해서 국경을 넘으려 했는데 정말 운이 좋은 건지 숙소에 있던 스코틀랜드 친구들이 렌터카를 이용해 알바니아를 당일치기 여행을 한다고 해서 나와 호주 친구들이 동행하게 됐다. 국경을 넘을 때 분명 몬테네그로 출국은 했는데 알바니아 입국은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여권에 도장도 없다.
알바니아 입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에서 본 풍경.
우리의 목적지는 크루여(Kruje이지만 크루야라고 부르기도 함)였다. 크루여는 알바니아 최초의 세운 나라의 수도였으며, 알바니아의 국민적 영웅 스칸데르베그가 당시 대국 오스만 제국을 상대했던 곳이기도 하다.
박물관은 2유로였다.
이때는 스칸데르베그가 누군지도 몰랐는데 워낙 알바니아 곳곳에서 동상이나 기념품 등으로 쉽게 찾을 수 있어 잊을 수 없는 영웅이다. 박물관은 입구인 이곳만 사진 촬영이 가능하고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박물관 위에서 크루여 시내를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크루여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왜인지 스코틀랜드 친구들이 밥을 샀다. 자신들의 여행은 2주라 긴 여행을 하고 있는 나와 호주 친구들에게 밥을 한 끼 산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원래 티라나까지 함께 여행하려 했는데 크루여를 돌아보는데도 이미 3시가 넘어 나와 호주 친구들의 목적지인 쉬코드라(Shkodra 혹은 Shokoder)로 가야 했다. 그 전에 우리는 탑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정말 오랜만에 점프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찍고 난 후 스코틀랜드 친구들은 우리를 쉬코드라까지 데려다줬다.
쉬코드라에 막 도착했을 때는 태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그리고 비가 왔다. 저녁에는 비가 그쳐 잠깐 나갔는데 아무래도 외국인인 내가 보이니 사람들이 다들 신기하게 쳐다봤다. 어떤 사람은 멀리서 손짓을 하며 나를 불렀는데, 도시가 워낙 어두워 그게 호의로 느껴지지 않았다.
길을 걷다 체리가 너무 싸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려 1kg에 130렉, 약 1200원 수준이다. 그것도 아저씨가 체리를 너무 많이 담길래 "그만"이라고 외쳤는데 그게 800g이었고 가격은 100렉이었다. 900원쯤 하려나.
대낮에 걷는 쉬코드라의 거리 풍경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노점이 가득해 시장을 연상하게 했다. 오래 전에 여행했던 미얀마가 떠올랐다.
알바니아에는 이슬람 비율이 가장 높다. 하지만 다른 종교도 인정하고 있어 때론 재밌는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쉬코드라에는 이슬람 사원과 카톨릭 교회, 그리고 정교회 교회 건물이 아주 가까운 곳에 나란히 있다.
쉬코드라의 중심 거리라고 할 수 있는 곳, 이 거리의 건너편에도 카페나 식당이 많이 있다. 여기서도 아시아인 여행자를 처음 보는지 중국 사람이라고 속삭이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아니,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이해는 되는데 적어도 내 앞에서 놀리는 것처럼 말하는 건 안 했으면 좋겠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로자파(Rozafa) 성으로 갔다. 물론, 걸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찾아간 곳인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쉬코드라의 경치가 한눈에 보이기도 하고, 바람도 굉장히 시원했다.
성의 반대편으로 가면 굴곡진 강과 오밀조밀한 집이 그림 같다.
쉬코드라에서 가장 밝은 곳은 당연히 이슬람 사원이 있는 중심가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정말 어둡다.
가로등이 있어도 켜지 않아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어둠이 내려 앉는다. 왜 내가 미얀마가 떠올랐는지 그 이유는 가로등이 무용지물인 밤에 확인할 수 있었다.
비가 오기도 하고, 마땅히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정하지 못해 숙소에서 하루 종일 있었다.
숙소 주인장이 쉬코드라 호수 같이 가자고 제안했지만 내가 선택한 곳은 메스 다리였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에서 봤던 올드 브릿지와 여러모로 닮았지만 도심지와 워낙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이 다리 바로 옆에 다른 다리가 있어 그냥 유적지의 역할만 하는 것 같다.
알바니아는 지금 선거철이다. 만국기처럼 거리에는 온통 파란색과 빨간색, 그리고 분홍색의 정당기가 펄럭인다.
4일간 머물렀던 쉬코드라를 떠나 무작정 길 위로 나섰다. 가고 싶었던 곳은 코마니 호수 및 발보나로 버스는 오전 6시 반 한 대뿐이라 일단 남쪽으로 계속 걸었다. 어차피 버스를 탈 생각도 없긴 했다. 1시간 정도 걷다가 히치하이킹을 했고 생각보다 쉽게 차를 탈 수 있었다.
미예다(Mjede)에 도착한 후 바우이데저스(Vau I Dejes)까지 걸어간 후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어떤 아저씨가 언덕 위까지 태워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코마니(Koman)까지 아직 32km나 남았고, 지나다니는 차는 너무 없어 보였다.
앞으로는 내려막길이라 걸어서 코마니까지 갈 생각이 아니라면 여기서 히치하이킹을 해야 했다.
두 대 정도의 차를 보낸 후 코마니까지 가는 인도인의 차를 탈 수 있었다.
생각보다 코마니까지 오래 걸렸다. 거리는 32km이지만 호수를 따라 형성된 구불구불한 길이라 좀처럼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코마니까지 태워준 아저씨는 나를 정확히 캠핑장 앞에 내려주고 떠났다.
캠핑장에는 강아지 6마리, 고양이 5마리, 그리고 세기 힘들었던 닭과 병아리까지. 뭐랄까, 동물 농장에 온 느낌. 텐트가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방에서 묵었다. 아저씨는 처음에 20유로를 불렀지만 어차피 손님도 없고 내가 혼자라 10유로에 트윈룸을 쓸 수 있게 해줬다.
점심을 먹으니 아저씨가 후식으로 준 체리, 아니 체리 나무. 난 이 체리 나무를 손에 쥐고 오물오물 먹으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코마니는 마을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도 작은 곳이었다. 그래도 나름 카페도 있는데 여기서 WIFI를 쓸 수 있었다. 카페 주인은 나를 보더니 한국사람은 처음 본다는 말을 했다. 물론 한국 사람 중에서 내가 여기를 처음 온 것은 아닐 테지만 그만큼 아시아 여행자가 없다고 봐야 했다.
커피를 마시고 와서도 대화를 나눌 여행자가 없어 강아지들과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코마니 호수를 건너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근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거리가 조금 있고 오르막길이었다. 다행히 어떤 아저씨가 태워줬다. 걸어서 갔다면 늦을 뻔했다.
여기서 페리를 타고 갈 수 있는데 목적지인 발보나(Valbona)까지 한 번에 가는 게 아니었다.
코마니 호수를 따라 페리를 타는 게 이번 여정의 큰 목적이기도 했다.
페리에서 독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만났다. 사실 캠핑카 번호판을 봤는데 독일의 D와 라벤스부르크의 RV가 눈에 띄어 말을 걸었다. 약 4개월 전 내가 독일인 친구 필립의 집에서 3일간 지냈던 곳이 라벤스부르크라 RV가 어떤 지역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분들이 발보나까지 태워줬고, 도착해서도 점심으로 스파게티를 만들어주셨다.
발보나의 경치는 멋졌지만 내가 상상했던 그런 작은 마을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애초에 난 하이킹을 하고 싶단 생각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곳이 외국인 여행자에게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워낙 코소보와 알바니아 사람들에게 유명한 곳이라 게스트하우스는 정말 많았다. 침낭만 깔고 자기엔 날씨가 너무 추웠다.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은 정말 맑다.
알바니아의 암흑기라 할 수 있는 공산주의 시절 만들어진 병커가 이런 시골 마을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구름이 산 위에 걸쳐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음날 나는 하이킹도 하지 않은 채 미련 없이 발보나를 떠났다. 발보나의 경치는 괜찮았지만, 딱히 마음에 들 만한 무언가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너무 추웠다.
난 히치하이킹으로 바이람수리(Bajram Curri)에 갔고, 여기서 다시 피에르제(Fierze)로 이동했다. 그런데 다음부터 문제가 생겼다. 더 이상 차도 없고, 히치하이킹도 불가능했다. 영어로 설명해줬던 현지인이 히치하이킹은 커녕 지나가는 차가 없을 거라고 장담했는데, 정말 그랬다. 커피를 마시며 1시간 동안 지켜봤는데 단 한 대의 차도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와서 이 작은 마을에 하루를 머물기로 결정했다.
슈퍼에서 바나나를 사고, 커피를 마셨다.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여기는 워낙 작은 동네라 사람들의 유일한 즐거움은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과 노닥거리는 것이다.
9시에 출발하는 페리도 있지만 난 아침 7시에 미니버스를 타고 티라나로 향했다.
정말 왜 이 도로에 차가 없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찔할 정도의 절벽, 구불구불한 도로는 나를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어느 정도냐면 어릴 때 이후 처음으로 멀미를 할 뻔했다. 왜 바이람수리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이 도로가 아닌 코소보를 통해 돌아가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지름길이었다.
4시간 만에 평지로 내려왔다.
지도상으로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티라나(Tirana)까지는 금방 도착할 줄 알았는데 무려 6시간 반이 걸렸다. 그리고 알바니아에 입국한지 8일 만에 수도 티라나에 도착했다.
피곤한 여정이었지만 그럼에도 거리로 나섰다. 딱히 뭘 봐야겠다는 의무감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티라나를 한 바퀴 돌아보자고 생각했다. 수도이긴 해도 티라나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걸어서 돌아봐도 충분했다.
당연히 티라나에서도 알바니아의 영웅 스칸데르베그는 발견할 수 있다.
점심을 많이 먹어 저녁엔 가볍게 체바피(알바니아에서는 케밥이라고 부름)와 올리브로 때웠다. 맥주까지 포함된 가격은 320렉. 3천원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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