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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다르에서는 무려 8일이나 지냈다. 일주일이 지나자 슬슬 지겨워지기도 했고, 너무 늘어져 있다간 침대에서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이동하기로 결심했다. 일반적인 여행자는 시미엔 산 트레킹을 거의 필수로 일정에 넣는데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시미엔을 빼고 용암을 볼 수 있다고 하는 다나킬만 가기로 결정했다. 여행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모든 곳을 다 가보고 싶은 게 사실이나 가지고 있는 돈은 충분하지 않았다. 아무리 장기여행자라도 선택과 집중은 필요한 법이었다.

 

에티오피아의 장거리 버스는 죄다 새벽에 출발한다. 내가 탈 로컬 버스도 새벽 5시 반에 출발 예정이라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했다. 당연히 깊은 어둠에 잠긴 곤다르를 혼자 걸어야 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이스라엘 모녀 여행자가 있었다. 딸은 얼마 전에 한국에 갔었다며 엄청 좋아한다는 말을 나에게 건넸다.

 

지도상으로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지만 버스는 메켈레까지 한 번에 갈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버스를 타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3000미터가 넘는 시미엔 산 주변을 넘어야 하는데다가 길은 험준하고, 포장이 되지 않은 도로도 더러 있었다. 버스를 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목적지인 쉬이레(Shire)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점심을 먹지 못해 배고팠고, 근처에 호텔이 많아 여기서 하루 묵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가 마음을 바꿨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조금 더 유명한 악숨(Axum)까지 가기로 말이다. 다시 밴을 타고 1시간을 달려 악숨에 도착했다.

 

시내라고 해서 내린 곳에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호텔이 있었고 시설도 나름 나쁘지 않은데다가 가격도 150비르라고 해서 바로 체크인했다. 여기서는 오로지 꼬마 아이만 영어를 할 줄 알아 나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줬다. 물론 이 아이도 자신의 자전거 대여 비즈니스를 위해 열심히 설명한 것이지만.


허기를 채우고 8시쯤 졸려서 바로 자서 다음날 6시에 일어났다. 정말 피곤하긴 했나 보다.


다음날 악숨을 천천히 둘러봤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봐야 한다고 꼬셨던 아이가 생각났지만, 지도를 보니 걸어 다녀도 충분했다.


오벨리스크가 있는 곳으로 곧장 가봤다. 주변이 관광지라 몇 명의 외국인이 보였던 게 신기했을 뿐 특별히 관심을 끌만한 곳은 없었다. 어차피 교회는 관심도 없었지만 입장료가 200비르나 했고, 오벨리스크를 비롯한 다른 관광지는 굳이 들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에티오피아 소, 당나귀, 양에게는 그들의 목을 죄이는 줄이 없다. 대신 길을 조금 벗어나면 몽둥이 세례가 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에티오피아 아이들은 순수하지 않다.


원래 목적지였던 오벨리스크가 별 흥미롭지 않아 그냥 동네를 걸었다.


악숨 거리를 걷다 보면 콩 비슷한 무언가를 파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마침 한 남자가 그걸 먹고 있길래 뭐냐고 물어본 후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말하자 돈을 달라고 했다. 헛웃음을 빵 터트린 후 무시하고 뒤돌아서 걸었다. 아마 이때부터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별로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버스를 예약하려고 버스터미널까지 한참을 걸어갔는데 도착하고 보니 메켈레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그냥 새벽에 오란다. 버스는 예약할 수 없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떠나려 했다가 귀찮아서 하루 더 악숨에서 지내게 되었고, 난 여기서 다나킬 투어를 예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니 여기서 예약하면 메켈레까지 가는 교통편은 물론이고, 중간에 지나치는 관광지 몇 군데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다. 다나킬 투어가 엄청나게 비싸서 망설였지만 결국 신청했다.


악숨을 떠나기 직전 유창하게 영어로 말을 걸어왔던 그 꼬마와 작별 인사를 했다.


독일인 4명과 한국인인 나를 포함해 5명을 태우고는 메켈레로 떠났다. 소위 말하는 관광지를 몇 군데 들렀는데 정말 입장료가 터무니 없이 비쌌다. 먼저 세티 교회에 도착했는데 우리를 포함한 다른 차량의 외국인 모두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리 오래된 교회라고 해도 200비르나 내고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 작은 마을에 외국인이 몇 명 등장하니 동네 아이들이 전부 몰려왔다. 펜을 달라고 하는 건 아주 당연했고, 돈을 달라는 아이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엽서라고 하면서 팔았다. 물론 가난이 죄는 아니다. 하지만 여행자가 무슨 자신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그런 존재로만 인식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 다른 나라보다 에티오피아가 유난히 심했다.


또 다시 달려 도착한 곳은 데브레 다모 수도원(Debre Damo Monastery)이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 위에 있는 독특한 수도원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수도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밧줄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밧줄을 타고 올라가는 게 신기하긴 했지만 역시 이곳도 입장료 명목으로 200비르 이상 요구했고, 밧줄을 당겨주는 사람에게는 팁도 줘야 했다.


오르는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현지인과는 달리 밧줄 타는 게 익숙하지 않아 영광의 상처를 가지게 된다. 처음에는 올라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시간을 때웠다. 그때부터 알게 됐다. 에티오피아의 물가는 전반적으로 저렴하지만 ‘관광’을 하고자 하면 엄청나게 비싸다는 것을.


우리는 아디그라트(Adigrat)라는 도시에서 점심을 먹었다. 에리트리아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점심을 먹고 또 교회에 갔다. 어차피 나는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이 교회는 아예 올라가는 길을 아이들이 막고 입장료 명목으로 돈을 달라고 했다. 그저 외관만 보고 싶다고 말해도 돈을 내야 한단다. 또 그 와중에는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돈을 달라는 애들도 상당히 많았다. 나와 독일인 2명은 질려서 안 보겠다며 내려왔지만 독일 중년 부부는 그럼에도 여기는 보고 싶다고 올라갔다. 우리는 교회를 올라가는 대신 아래에 있던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기로 했다.

 

돈을 요구한 어떤 녀석도 있었지만, 이 아저씨는 여행자를 환영하며 사진을 찍어도 괜찮다고 했다. 묶인 소들은 계속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짚을 밟았다. 당연히 말이 통할 리가 없었지만 나름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역시 카메라에 관심을 많이 보인다.


이후 독일인 2명은 중간에 내리고, 역시 독일인이었던 중년 부부와 나는 메켈레(Mekele)로 이동했다. 중간에 또 다른 교회를 보러 간다고 말했지만 이미 교회는 질렸던 우리는 그만 봐도 된다며 메켈레 행을 택했다.


메켈레에 도착하자마자 투어 사무실에 들러 잔금을 냈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큰 단위가 100비르(약 5천원)라 ATM에서 돈을 뽑으니 80장이나 됐다. 두둑했다. 물론 투어 비용을 내니 남은 돈이 몇 장 안 남았지만.


사무실을 나와 우리는 숙소를 찾아 다녔다. 처음 갔던 곳은 물이 나오지 않아 체크인 직전에 나오고, 그 다음 찾아간 곳은 러브호텔을 연상하게 할 정도의 화려한 조명이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독일인 부부도 이 조명을 보자 황당함을 넘어 거부감이 들었지만 맞은편 호텔은 더 비싼데다가 시간도 늦어 체크인을 했다. 사실 조명만 이렇지 내부는 가격대비 무척 괜찮은 곳이었다. 내가 주인에게 조명부터 치워야 한다고 충고를 했는데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조명에 대한 칭찬인 줄 알고 다른 벽면은 더 멋지다는 자랑을 했다.


다나킬 투어의 일정은 메켈레를 떠나 3박 4일간 다나킬 함몰지(Danakil Depression)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소금 사막과 화산 활동을 둘러보게 된다. 4WD 지프를 이용해 움직이게 된다.


그런데 이동하는데, 혹은 대기하는데 시간을 많이 소비한다. 첫날에도 출발한지 얼마나 됐다고 커피타임이 주어졌는데 여기서 가이드랑 한바탕 말싸움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다가오는 것을 가지고 민감하게 반응한 가이드는 내가 어떤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마치 에티오피아 아이들에게 큰 잘못을 한 것마냥 화를 낸 것이다. 심지어 따로 불러서 그럴 거면 메켈레로 돌아가라는 말까지 했다. 너무 어처구니 없어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모든 사람들이 이 상황에 대해 황당해 하고, 아마 가이드가 오해를 한 것 같다는 말을 나에게 건넸다. 결국 다음 목적지에서 가이드가 미안하다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과를 했고, 굳이 사과를 하는데 내가 안 받을 이유는 없었다.


다나킬 지역으로 들어갈수록 더운 바람이 불어온다. 에티오피아는 높은 고지대가 많아 낮을 제외하고 쌀쌀했는데 다나킬은 해수면보다 지대가 낮아 무척 덥다. 지역에 따라서는 50도를 넘긴다.


이동하기만 했는데 또 휴식이다. 이번에는 점심을 먹은 뒤 한참을 대기했다.


다나킬 지대는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벌인 후 독립한 에리트리아의 국경과 매우 가깝다. 그 때문인지 경찰이나 군인을 마주하게 되는데(혹은 동행하는 경우도 있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리는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동안 나는 밖에서 아이들과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맥주를 마시고 있던 동네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니 반겨줬다.


낙타들이 질서정연하게 서있다.


어느새 몰려든 아이들이 이스라엘 친구 갈리의 머리를 땋으며 즐거워했다.


악숨에서부터 며칠간 함께 여행한 독일 중년부부 버나드과 하니는 매년 1개월씩 휴가를 내서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휴가가 짧은 우리에겐 참 부럽기만 한데 단지 긴 휴가 기간만이 아니라 자유로운 여행을 늘 계획하고 떠난다는 것이 부러웠다.


에티오피아 여행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이 지역의 도로는 정말 잘 닦여 있다. 그러나 이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은 오로지 관광객뿐이다.


저녁이 되기 직전 우리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이런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나 싶을 정도로 날씨는 무덥고,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당연히 전기도 없다.


베이스캠프에 잠깐 짐만 내려놓고 이동한 곳은 거대한 소금사막이다. 처음에는 이곳에 무슨 소금이 있는지 의아했는데 흙을 파보면 반은 소금이다. 직접 맛을 봐도 짜다.


그리고 이 소금을 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소금을 가득 실은 낙타 무리를 아주 짧은 순간 지켜봤지만 그들의 삶 전체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낙타에 실은 소금은 3박 4일간 이동하면서 곳곳에 판다고 한다. 다만 이 소금은 사람이 먹는 소금이 아니고 동물에게 먹여 살을 찌우는데 쓴다고 한다.

 

당나귀도 짐을 짊어져야 한다.


미국인 아저씨 헨리는 촬영을 하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일을 위해 이곳에 온 사람이라 그런지 열정이 남달랐다.


소금을 나르는 사람을 구경한 후 소금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에는 작은 소금탕이 있는데 사해처럼 소금의 농도가 높아 몸이 저절로 뜬다.


슬리퍼를 챙겨가지 않아 소금사막에서는 맨발로 다녔다. 살이 탄 부분이 너무 선명했다.


볼리비아에 있는 유우니 사막은 가보지 않았지만, 약간 그런 느낌이랄까? 낮에 갔다면 재밌는 사진도 많이 찍었을 텐데 이 지대가 낮 시간에는 도저히 머무를 수 없어 거의 해가 지기 직전에 왔다.


같은 지프에 탔던 일본인 쿠니오, 이스라엘인 갈리와 샤론과 사진을 찍었다.


해는 정말 순식간에 떨어졌고, 우리는 지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바로 앞에 있었던 것 같았던 지프가 저 멀리 있어 돌아가는데 정말 힘들었다. 바닥은 사막인데 맨발로 걸으니 고통스러웠다. 나를 비롯한 몇 명은 비명을 지르며 한 발씩 걸었다. 너무 아팠다. 지프로 돌아온 후 와인을 마시며 소금사막에서의 마지막 분위기를 즐겼다. 물론 아무것도 안 보였지만.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후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했다. 사실 별 다른 건 없었는데 미국 아저씨들의 질문이 너무 많아 지겨워 급히 빠져 나왔다. 사막에서 하룻밤은 그리 춥지 않았다. 다만 이 지역의 특성상 더운 바람이 계속해서 불었고, 옆에 있던 쿠니오의 코골이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샤론은 코골이에 잠을 도저히 잘 수 없었는지 끝내 침대를 박차고 나갔다.


정말 황무지라 아무 것도 없는데 괜찮은 아침을 먹고 다시 이동이 시작됐다.


다나킬 투어라고 하면 보통 용암을 볼 수 있는 화산과 더불어 독특한 지형을 보는 게 주 목적이다. 이곳 역시 화산활동으로 인해 유황성분이 섞여 다양한 색깔이 땅에 뿌려져 여행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계랸 썪는 냄새인 가스가 여기서도 느껴지며, 곳곳에서 물 끓는 소리가 들렸다.


팝콘을 뿌려 놓은 것 같았다.


미국 아저씨 헨리는 드론을 가지고 있어 이 주변을 촬영했다.


동굴도 들어가봤는데 그리 특별하지는 않았다.


소금을 캐는 사람을 직접 볼 수도 있다. 땅을 내리치고 덩어리가 나오면 비슷한 규격으로 다듬는 게 이들의 일이다. 사람이 먹는 소금이 아니라 그런지 정제과정은 전혀 없었다.


낙타는 주인이 소금을 캐는 동안 무릎을 꿇고 기다린다.


소금 덩어리를 확보한 후에는 직사각형의 형태도 다듬는다. 눈대중으로 다듬는데도 모양과 크기가 전부 일정하다.


베이스캠프를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메켈레쪽으로 이동했다. 이 지역이 워낙 넓기도 하지만 3박 4일 동안 이동하는 시간이 참 많다.


점심을 먹은 뒤 커피를 끓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어디를 가나 커피를 끓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과연 커피의 나라답다.


두 번째 베이스캠프는 메켈레에서 가까운 어느 마을이었다. 잠깐 휴식을 취한 후 나는 쿠니오, 갈리와 함께 동네를 걸었다. 외국인인 우리가 등장하자 동네 아이들이 전부 뛰어나왔다.


대부분이 “차이나!”라고 외쳤지만 내가 한국이라고 말해주자 수줍게 끄덕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우리 뒤를 계속해서 쫓아왔고, 일부는 ‘외국인’인 우리의 손을 잡기 위해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여자 아이가 내 손을 다른 남자아이에게 빼앗기자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베이스캠프는 현지인의 집이라 저녁을 먹은 뒤 약간의 수다를 떨다 잠이 들었다. 메켈레쪽이라 그런지 날씨는 꽤 추웠다.


지프의 앞자리에 앉았던 쿠니오는 코를 골면서 잠을 가장 많이 잤는데도 차에 타자마자 또 자는 대단한 능력을 보여줬다.


양이나 염소는 마을에서도 방목한다. 누구의 것인지, 또 그걸 어떻게 구별하는지 그게 좀 궁금하다.


커피타임을 가진 곳에서 동네를 한 바퀴 둘러봤다. 이렇게 잘 닦이고 넓은 도로에 30분 동안 지나가는 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당나귀의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다나킬 투어를 하는 동안 왜 4WD 지프를 타는지 몰랐으나 이 길을 달릴 때 비로소 이해가 됐다. 비포장도로가 시작되는데 헛바퀴가 여러 번 돌았다. 엄청난 흙먼지를 날리며 질주했다. 사실 이 길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1시간 가량 질주한 후 잠시 점심을 먹기 위해 멈췄다. 그리고는 다시 질주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온통 돌로만 이루어진 길(사실상 길은 없었다)을 달렸다. 반동에 의해 몸은 저절로 춤을 췄다. 차에 탔지만 내려서 걸어 가는 게 더 좋을 정도로 이곳의 지형은 사람의 출입을 환영하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는데 역시 외국인이 탄 차를 쫓아와서는 펜을 달라고 했다. 사진 찍히는 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거부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1시간 반 가량을 달려 이런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짐을 정리하고 화산 트레킹을 위해 필요한 물품을 받았다. 어차피 3시간 등산이라 물은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침낭은 짐이 될 것 같아 받지 않았는데 잘 때 상당히 추워 침낭을 받지 않은 것은 조금 후회가 됐다.


트레킹이라고는 하지만 힘이 부치는 오르막길은 거의 없다. 그리고 밤에 걷기 때문에 땀도 나지 않았다.


초반에는 플래시를 켜고 걸었지만 달이 너무 밝아 굳이 필요가 없었다. 평소 트레킹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후미에 있는 건 싫다. 그래서 일부러 빨리 선두 그룹까지 간 뒤 끝까지 맨 앞에 있었다. 혼자라 심심했는데 옆에 있던 스위스인 클로드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며 걸으니 지루하지 않았다.


정확히 3시간이 지난 후 정상에 도착했고, 난 불구덩이와 마주하게 됐다.


에르타 에일(Erta Ale) 화산은 바로 앞까지 가서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화산을 갔던 적은 많았어도 용암을 직접 본 적은 처음이라 굉장히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밖으로 나가고자 출렁이고 분출되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활발히 움직이던 용암이 솟구치다가 떠오른 덩어리들이 금세 식어 검은색으로 변해버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단지 너무 어두워 사진으로 담기는 정말 어려웠다.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앉아서 용암을 바라봤다. 엉덩이가 점점 뜨거워졌다.


해가 뜨기 직전인 새벽에도 다시 용암을 봤다. 붉은 용암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저 밑에서 늙은 용이 거친 숨을 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만큼 강렬했다.


여행자는 각자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이 순간을 담으려 노력했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이곳은 엄청나게 더워지기 때문에 아쉽지만 서둘러 내려갔다. 대부분은 처음 보았을 그 용암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달려 메켈레에 도착했다. 다들 3박 4일간 제대로 씻지도 못해 피곤함이 역력했다. 나는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고 다들 좋다고 했다.


일본인 쿠니오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가버려 같은 지프에 탔던 이스라엘인 갈리와 샤론, 악숨부터 같이 여행한 독일인 버나드과 하니, 그리고 초반에 나와 말다툼을 했던 가이드까지 함께 모여 저녁을 먹었다. 현지인이 찍어준 사진이 있는데 셔터를 누르지 못하거나 혹은 누르더라도 카메라까지 같이 내려 정말 답답한 상황이 연출됐다. 덕분에 우리는 흔들린 사진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여하튼 웃음으로 다나킬 투어를 마무리해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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