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무수히 많은 국경을 넘어봤지만 모얄레(Moyale)처럼 잠시도 머무르기 싫었던 곳도 드물었다.
점심을 같이 먹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짐을 챙겨 토모와 도나가 있는 호텔로 갔다. 그러나 이 친구들은 이어폰을 꼽은 채,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점심도 안 먹겠다고 했다. 많은 여행자를 만나봤지만 이렇게 친근하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밖에 나가 콜라를 사먹었을 때 어김 없이 “니하오”라는 인사말이 들렸다. 1년 넘게 여행하면서 중국인이냐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지만 아프리카에 온 이후, 특히 에티오피아 이후에는 참지 않았다. 난 중국인이 아니라고 말하자, 그는 아시아인은 다 똑같지 않냐며 반문했다. 어이가 없어서 내가 만약 피부색만 보고 너에게 수단 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기분이겠냐고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말하자 그제서야 뭔가 깨달았는지 미안하다 했다. 사실 이는 가난도, 무지의 탓도 아니라 생각한다. 적어도 중동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이들의 태도는 단순히 궁금함이 아닌 놀림감이었을 뿐이다.
버스는 오후 2시에 출발하는 스타 버스(Star Bus)를 탔다. 아무래도 아프리카에서 3대 위험한 도시로 유명한 나이로비(나머지는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와 나이지리아의 라고스)라 밤에 도착하는 것은 좋지 않아 보였다. 무려 16시간 걸리기 때문에 이 버스는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게 된다.
물론 내가 있는 곳보다는 동쪽이 테러가 자주 일어나는 위험지역이긴 해도, 북쪽도 소말리아와 그리 멀지 않아서인지 경비가 엄청 삼엄했다. 무수히 많은 체크포인트에서는 총을 들고 있는 군인이 일일이 신분증을 검사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매 시간마다 멈추고 여권을 검사하는 건 여행자의 피로를 가중시켰다. 졸다가 불이 켜지면 여권을 내밀고, 또 조금 달린다 싶으면 체크포인트에서 멈췄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생각만큼 도로 사정이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랄까. 그럼에도 반 이상은 비포장도로라 먼지를 계속 마셨지만.
나이로비에는 오전 6시에 도착했다. 버스가 멈춘 곳에는 오물로 가득했다. 원래대로라면 택시를 타고 시티 센터로 가야 했으나 버스에서 만난 남수단 사람의 도움으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는 굉장히 독특했다. 맨 앞에 있는 대형 스크린과 스피커에서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여기가 클럽인가, 버스인가. 새벽부터 쿵짝쿵짝 음악을 들으며 시내로 향했다.
과연 나이로비는 대도시였다. 거대한 빌딩과 무수히 많은 사람들, 거기에 지독한 교통체증과 시끄러운 소음은 덤이다. 동아프리카(케냐,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탄자니아)의 최대 도시다웠다. 그러나 나름 아프리카에서 유명한 도시라고는 하나, 모든 게 느렸다. 이제는 한국 음식보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이 그리워졌다.
나이로비 중심부에는 힐튼 호텔이 있는데 여행자가 자주 찾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물론 배낭여행자가 여길 묵을 리가 없고, 교통의 중심지라 이 주변에서 마타투(케냐에서는 일명 봉고차를 마타투라고 부른다)를 타거나 근처에 있는 기념품 가게를 가기 위해서다. 또한 바로 옆에 있는 KCB은행 본점에서 달러를 인출할 수 있다. 아프리카 여행을 하다보면 유로보단 달러가 필요할 때가 많은데 여기서 아주 쉽게 인출할 수 있어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이집트 카이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도로를 건넌다. 신호등은 의미가 없다.
나이로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장난 렌즈를 코치는 것이었다. 소니 수리점까지 찾아가서는 렌즈와 카메라를 맡기고는 며칠 기다렸다. 나름 대도시라 기대를 했는데 며칠 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수리비가 무려 100만원이나 나온 것이다. 이게 말이 되냐고 되물었지만 직원 자신도 수리비를 보고 놀랐다고 했다. 6일이나 기다렸는데 결과가 무척 실망스러웠다. 설상가상으로 나이로비에서는 소니 DSLR도 렌즈도 구할 수 없었다. 결국 방법은 한국에서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또 원치 않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나이로비 생활이 이어졌다.
마타투를 타고 돌아가는 도중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사라를 만났다. 어떻게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먼저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 물론 이제 3개월 공부해서 기본적인 대화밖에 할 수 없었고, 주로 우리는 영어로 이야기를 했다. 한국 음식도 몇 번 먹어봤다고 했는데 떡볶이는 너무 매웠단다.
나이로비는 굉장히 복잡했는데도 불구하고 적응하니 나름 지낼만했다. 한식당도 있다고 들었지만 역시 가격 때문에 한 번도 안 가봤다. 대신 한국 라면은 쉽게 구할 수 있어 몇 번 사다 먹었다. 내가 있는 동안 케냐 독립기념일이 있었다. 독립기념일이 있기 며칠 전부터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고(어찌나 비가 많이 오던지 숙소에 물이 샜다), 독립기념일 전날부터 정전이 되더니 무려 24시간 동안 전기를 쓸 수 없었다. 여기가 케냐의 수도가 맞나 싶었다.
나이로비에서 일주일 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다가 ‘아프지마 도토 도토 잠보~♬’로 유명한 코끼리를 보러 갔다. 무한도전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먼 곳일 줄 알았는데 나이로비 내, 그것도 시티센터에서 버스 타고 불과 20분 만에 갈 수 있는 다이드 쉘드릭(The David Sheldrick Wildlife Trust)이라는 곳이었다. 다만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딱 1시간으로 개방시간이 정해져 있다.
코끼리를 보러 가자고 꼬셔서 따라온 일본인 요시오카, 료와 함께 구경했다. 코끼리가 우유를 먹으려고 멀리서 뛰어오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우유를 다 먹은 코끼리들은 울타리 안에서 나뭇가지를 씹으며 어슬렁거리는데 이때 사람들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어린 코끼리를 직접 만질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딱 1시간 뿐이었지만 입장료도 500실링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었고, 나이로비 내에 있어 멀지 않아 무척 괜찮았다. 다만 누가 도토인지, 누가 잠보인지는 모르겠다. 도토에게 너 유명해졌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코끼리를 바라보는데 뭔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내가 나이로비에서 2주간 지내는 동안 일본인 친구 레나가 에티오피아 남부 여행을 마치고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통장에 돈이 별로 없었지만 일단 100달러를 뽑아서 줬다. 여행자에게 큰 돈을 아무런 조건 없이 빌려줬기에 나도 빨리 갚고 싶었다.
이미 나이로비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되어버린 내가 여기저기를 안내했다. 난 주로 인터넷을 하러 웨스트게이트 쇼핑몰(나중에 2013년 무장괴한이 침입해 총기를 난사해 60명이 죽고, 200명 이상이 부상당한 그 쇼핑몰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을 자주 갔다. 분위기도 근사한데다가 전기를 쓸 수 있는 자리가 많고, 무엇보다도 인터넷이 정말 빨랐다. 레나도 엄청 만족했다. 다만 저녁에 돌아갈 때 마타투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밖에서 창문을 열고 내 휴대폰을 채가려고 한 사건이 있었다. 나이로비는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저녁에는 시내로 진입하는 게 한나절이다. 계속 멈춰있기 마련인데 밖에서 문을 열고 훔치는 도둑이 있을 줄이야. 다행히 내 휴대폰을 훔쳐가는데 실패했지만 모든 승객이 깜짝 놀랐다. 나는 이상하게 괜찮았는데 레나는 엄청나게 겁을 먹었다.
렌즈는 아직 못 받았지만 가만히만 있을 수 없어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슬럼 키베라를 가봤다. 흔히 슬럼(빈민촌)이라고 하면 위험할 것이라고 상상하는데 여기는 그런 곳은 아니다. 오히려 친근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대개 키베라를 여행한다고 하면 가이드를 끼고 가게 되는데 이는 키베라가 워낙 넓은 지역이라 구석진 곳을 혼자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이드 역시 이 지역에서 봉사를 하는 사람이거나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사람이라 우리가 내는 가이드비가 적은 돈이라도 그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
우리 가이드 역시 ‘킹스오브키베라’라는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몇 명의 아이들을 만났는데 전부 나이로비 길거리에서 생활하다가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키베라 역시 열악한 건 마찬가지지만 여기서 공부를 하면서 꿈을 키워가고 있다.
키베라가 얼마나 열악한지는 수도 시설만 봐도 알 수 있다. 5실링(우리나라 돈으로 약 50원)이 없으면 깨끗한 물을 쓸 수 없다. 이 물도 그다지 깨끗한 편이 아니라 꼭 끓여 마셔야 한다고 한다. 만약 돈이 없으면 샤워도, 빨래도 할 수 없다. 키베라 주변에 흐르는 작은 개울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곳은 차라리 빨래를 하지 않는 게 나을 정도로 더럽다.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이 몰려 지내는 슬럼가에서 화장실은 무조건 공용이다. 어느 지역은 공용 화장실도 없어 이제 만들고 있다고 하니 이곳 사정이 어떤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아이들만큼은 정말 밝아 보였다.
좁은 골목 사이로 쓰레기가 가득하다. 어느 골목을 가도 작은 개울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쓰레기가 반쯤 묻혀 있어 악취가 난다. 아주 잠깐 쓰레기 위를 걷고, 악취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는데 이들은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상상하기 힘들다.
이곳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정확한 인구도 파악되지 않는다. 누구는 50~60만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약 100만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슬럼이다.
당연하지만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아주 조금 다를 뿐.
푸르고 아름다운 하늘 아래 쓰레기로 가득하고 황토색으로 물든 키베라가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배낭여행자가 잠시 이곳을 걷고 사진 찍지만 이곳을 동정할 여유 따윈 없다. 그저 잠시만이라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조금은 값진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이로비에서 지낸지 3주 만에 새로운 렌즈를 받았다. 사실 렌즈를 받는 과정에서 엄청 짜증이 났었는데, DHL로 배송하는데 무려 14만원이나 들었을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세금을 20만원이나 냈다. 50만원짜리 렌즈 렌즈 받는데 절반 이상을 배송과 세금으로 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케냐 DHL이 다음날 배송해준다고 했다가 안 해줘서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서 따지고, 또 가서 따지고,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변명을 해서 내가 오히려 그럼 왜 전화를 할 생각을 못했냐며 따졌다. 오죽했으면 내가 여기 DHL 맞냐는 말까지 했을까. 아무튼 돈과 시간은 엄청 낭비하며 나이로비에 지낸 끝에 결국 렌즈를 받았다. 오른쪽의 소니 렌즈는 약 100만원짜리인데 어쩔 수 없이 버렸다.
새로운 렌즈를 받고 사진을 몇 장 찍어봤는데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탐론 렌즈도 소니 OEM으로 취급돼 똑같은 성능이지만 이 렌즈는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의 가벼운 버전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화질은 그렇다 해도 초점이 정말 안 맞았다.
내가 약 3주간 지냈던 ‘뉴 케냐 롯지’에는 항상 일본인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마침 크리스마스라 이들은 피자와 치킨을 사다가 조촐하게 파티를 했다. 그나저나 그렇게 많은 일본인을 만났는데 친해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확실히 일본인과는 뭔가 거리감이 느껴진다.
나이로비 시내는 낮이나 밤이나 엄청 시끄럽다. 새벽 5시부터 왜 그렇게 경적을 울려대고 소리를 지르는지 알 수가 없다.
드디어 나이로비를 탈출해 2시간 정도 떨어진 나이바샤(Naivasha)로 이동했다. 근처에 국립공원이 있어 동물을 쉽게 볼 수 있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시기가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대부분 인도계 사람들이었다. 마사이마라 사파리를 다녀온 레나와 함께 캠핑장에 도착해 지냈는데, 이상하게도 별로 말이 없었다. 뭔가 나에게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 때문인지 우리는 다음날 계획이 달라 헤어졌다. 확실히 일본인과는 친해지기는 쉬워도 친구가 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캠핑장 바로 앞에는 호수가 있는데 아주 가끔 하마가 등장했다. 쉴새 없이 풀 뜯어 먹는 하마를 보니 정말 신기했다. 여기가 정말 야생이구나, 싶었다.
여기서 터키에서 만났다가 케냐에서 다시 우연히 만난 한국인과 재회했지만 저녁도 같이 못 먹고 헤어졌다. 혼자 맥주라도 마시려고 캠핑장의 바에 갔다가 우연히 벨기에인 스텝을 만났다. 그저 인사를 하다가 몇 마디를 주고 받았을 뿐인데 대화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고 그게 3시간 동안 이어졌다.
다음날 레나는 혼자 헬스게이트 국립공원으로 간다며 텐트를 접고 자전거를 타고 떠났다. 난 스텝과 함께 이 주변을 걸으며 여행하기로 했고, 캠핑장을 나오기 직전에 중국인 여행자 첸을 만나 셋이 걷기 시작했다.
복잡한 나이로비에 있다가 한적한 이곳을 걸으니 기분이 새로웠다. 날씨는 살짝 더웠지만 걷기 괜찮은 날씨였으며 무엇보다 의외로 우리 조합이 괜찮았는지 쉴새 없이 떠들며 걷느라 지루하지 않았다.
국립공원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동물은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드디어 줄무늬와 뿔이 있는 녀석들을 만났다. 아주 멀리서부터 우리 냄새를 맡고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지만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을 실제로 보니 정말 신기했다. 우리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역시 동물이 많은 곳이라 표지판부터 달랐다.
꼭 동물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언제 쇠똥구리를 본 적이 있던가.
우리에게는 품바로 더 친숙한 흑멧돼지가 길을 건넌다. 그러고 보니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에서 티몬과 품바가 부른 노래가 ‘하쿠나 마타타’로 바로 케냐에서 사용하는 스와힐리어다. 실제로 케냐에서 “하쿠나 마타타”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물론 나이로비에서 지내는 동안 전혀 하쿠나 마타타를 외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자연에 있는 내가 걱정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얼룩말도 눈앞에서 지나간다.
계속 봐도 신기했던 얼룩말, 사진을 몇 번이고 찍었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우리는 충분히 즐겼다.
우리는 걸어서 어느 작은 마을에 도착한 후 점심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쓰레기와 먼지로 가득해 마냥 평화롭다고 하긴 무리가 있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멀리 왔다고 판단해 캠핑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살짝 내리는 비에다가 마타투가 자주 지나다니지 않아 꽤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일단 걸으면서 히치하이킹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차 2대가 지나간 후 손을 들었는데 바로 멈췄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지만 웨건형 차라 트렁크쪽에 숨겨진 의자가 있어 우리 3명이 탈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와 같은 피셔맨 캠핑장에서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이들 중 한 명이 베이징에서 1년간 지내 중국어를 할 수 있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중국어를 모르지만 첸과 대화를 아주 자연스레 하는 것으로 보아 능숙한 것 같았다. 모두 웃으면서 놀라워했다.
점심을 먹은지 얼마나 됐다고 또 배고팠다. 우리는 민물생선을 파는 시장으로 가서 물고기 6마리를 샀다. 물고기를 사면 손질까지 해서 담아주는데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가면 약간의 돈을 받고 요리를 해준다.
1인당 2마리씩, 정말 맛있게 먹었다.
캠핑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모닥불을 피우며 술을 마셨다. 내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스텝은 선물이라며 보드카를 샀고 우리는 콜라에 타서 홀짝홀짝 마셨다. 우리 옆에는 인도인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엄청나게 취한 상태로 와서는 허무맹랑한 말을 하며 다가왔다. 가령 나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10번도 넘게 묻고, 자신은 광저우에 가봤다며 사진을 보여주려는데 너무 취해서 무슨 버튼을 눌러야 할지도 모르거나 혹은 보여준 사진에 이집트 피라미드가 있어 빵 터지기도 했다. 확실히 케냐에서 인도인들은 부자인 것 같긴 했지만(대부분 케냐인들은 싸구려 중국제 휴대폰을 쓰는데 반해 이 친구는 최신형 갤럭시S6 엣지를 가지고 있었다) 흑인들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우리보고 절대 흑인을 믿지 말라는 말을 했다. 당장은 엄청나게 취한 이 인도인을 더 믿기 힘들어 보였지만.
다음날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헬스게이트(Hell’s Gate) 국립공원을 가기로 해서 아침부터 준비했다. 보드카를 엄청나게 마신 까닭에 나와 스텝은 몸이 상당히 무거웠다. 게다가 떠나려고 하면 내 자전거에 뭔가 문제가 생기거나 가방을 놓고 오거나 그것도 아니면 쇼핑을 하느라 11시에 가자는 계획이 2시쯤으로 늦춰졌다. 헬스게이트 입구만 왔는데도 나와 스텝은 숨을 헐떡였다. 입장료로 30달러, 공원 내 캠핑으로 20달러,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느라 250실링을 내야 할 정도로 무척 비쌌다. 물론 다른 사파리에 비하면 아주 저렴한 편이긴 했지만 우리는 입구에서부터 비싸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입구를 지나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시원한 바람과 경치에 감탄했다.
침식작용으로 독특한 지형을 볼 수 있는 곳도 갔지만 해가 지기 전에 캠핑장에 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해서 조금만 걷다가 돌아왔다.
사파리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다만 우리가 자전거를 타던 날이 일요일이라 유난히 차를 타고 둘러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덕분에 차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를 가득 마셔야 했다.
너무 멀어서 잘 볼 수는 없었지만 버팔로 무리도 보였다.
나이바샤에는 캠핑장이 여러 군데 있는데 당연하게도 산 위에 있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인도계 가족 여행자가 캠핑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텐트를 친 후 주변에서 나무를 모아 불을 피웠다. 사실 헬스게이트 국립공원에서 동물을 볼 수 있어 좋았다기 보다, 죽이 잘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해서 즐거웠던 것 같다. 호흡도 척척 맞아 첸은 나무를 구해오고, 스텝은 불을 피우고, 나는 라면을 끓였다. 가족 여행자에게 숟가락과 포크를 빌려줬더니 감자튀김과 스테이크로 돌아왔다. 저녁이 무척 풍성했다. 저녁을 먹은 우리는 모닥불에 앉아 깊어가는 밤하늘을 바라봤다. 쏟아질 것 같은 별을 기대했는데 보름달이 떠서 별은 많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뒷정리를 했다. 남은 것을 쓰레기를 모아둔 구덩이에 버렸는데 잽싸게 내려온 원숭이가 내가 버린 것을 바로 가지고 갔다. 약간의 빵과 피넛버터 냄새에 끌렸나 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비넛버터 뚜껑을 열고는 먹기 시작했다.
자유롭게 뛰노는 동물처럼 내 몸도 가벼웠으면 좋겠건만 몸은 더 무거웠다. 편하게 자전거를 타는 것도 아니었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어 어깨가 정말 아팠다.
이틀간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니 헬스게이트 국립공원의 규모는 정말 작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뭔가 근사할 것 같았던 ‘버팔로 서킷’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역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은 얼룩말이었다.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게 바로 기린이었는데 멀리서 짠하고 나타났다.
버팔로 서킷으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심했다. 어떤 곳은 자전거를 끌고 가도 힘들 정도로 가팔랐다.
자전거를 끌고 힘겹게 이동하는 도중 멀리서 커다란 기린이 보였다. 이번에는 매우 가까이 갈 수 있어 기린과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버팔로 서킷에 도착한 우리는 또 다시 급경사를 맞이하게 됐다. 뜨거운 태양 아래 자전거를 끌고 계속 올라갔다. 최소한 버팔로가 가득한 그런 곳은 아닐 거라 예상했지만 이런 도로일 줄은 전혀 몰랐다. 한참을 올라갔다가 자전거를 타고 내려왔는데 또 급경사가 보였다. 아무래도 우리가 가려는 출구는 아닌 것 같았다. 지도를 보니 정말 이상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고, 아직 국립공원 내에 있지만 주변은 온통 지열 발전소만 보였다. 마침 여기서 일하는 중국인들에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여기는 발전소만 있는 곳으로 출구는 없다고 들었다. 그렇다는 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경사가 워낙 심해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다.
한참을 돌아 사파리로 돌아온 우리는 출구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마을에서 점심을 먹은 뒤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라 매우 한적했다. 덕분에 남은 캐빈도 있어 주저하지 않고 캐빈에 체크인했다. 내가 텐트를 가져가도 700실링이었는데 케빈은 1000실링이라 가격 차이도 별로 없었다. 캐빈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빨래를 했다. 정말 피곤했는지 각자 그늘진 곳에서 쉬기만 했다.
원래 다음날 떠나기로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떠나지 못할 것을 직감했다. 다들 피로가 덜 풀린 것이다. 우리는 하루만 더 지내다 떠나기로 결정했다. 각자 어디로 갈지는 몰라도 나쿠루(Nakuru)까지는 같이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날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약 4주 전에 보낸 EMS 택배가 나이로비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우간다로 갈 생각이었지만 나이바샤는 나이로비에서 불과 2시간 거리라 택배를 포기하는 것보다 돌아가는 게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침에 첸도 나와 함께 나이로비로 돌아가기로 결정해 같이 가게 되었고, 스텝은 탄자니아로 갈 예정이라 헤어졌다.
2시간 뒤 나이로비에 도착해 드디어 EMS 택배를 받았다. 친구가 보내주긴 했지만 인터넷으로 위치추적이 되지 않아 포기했었는데 다행히 내 손에 들어왔다. 아무리 아프리카지만 케냐라서 금방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4주 만에 받다니 정말 오래 걸리긴 했다. 나와 첸은 나이로비에서 바로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로 가는 버스를 예약하기 위해 돌아다녔다. 가장 좋다고 하는 모던 코스트(Morden Coast) 버스는 좌석이 하나 밖에 안 남았지만 워낙 많은 버스 회사가 있어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팬더(Panther)사의 오후 8시에 출발하는 표를 구했다. 물론 아프리카가 그렇듯 실제로는 9시가 넘어서 출발했지만.
버스를 탄지 16시간이 지난 후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 도착했다. 당연하지만 같은 아프리카라도 우간다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오로지 복잡해 보이는 거리만 조금 비슷해 보였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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