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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시간 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부터 낯선 분위기와 차가운 공기가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시내에 간 후 미리 예약한 호스텔에 들어가 체크인을 하니 다들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 놓고 놀고 있었다. 첫날부터 이런 적응하기 어려운 분위기는 뭘까. 그러나 나 역시 여행자라 맥주 하나를 들고 앉아 있으니 프랑스인, 이스라엘인과 자연스레 얘기를 주고 받게 되었고, 덕분에 피곤한 몸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았다.

 

다음날 동네를 걸어봤는데 너무 이상했다.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나는 슈퍼에 가서 어버버 하다가, 이내 고개만 끄덕였다. 분명 영어가 통하지 않았던 무수히 많은 나라를 여행했음에도 뭔가 더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스페인어 몇 마디라도 배워둘걸. 말이 안 통하는 문제를 포함해 8개월간 여행한 아프리카에서 갑자기 남미로 날아와 달라진 환경에 이곳은 ‘우리 동네’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겨울로 접어들어 날씨까지 쌀쌀했으니 이거 괜히 아르헨티나로 왔나,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되었다.

 

적응 기간에는 뭔가 먹을만한 식당도 잘 보이지 않아 이곳 사람들은 오로지 피자만 먹는 게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지루함과 추위를 쫓아내고 싶어 부에노스아이레스 프리 워킹투어를 했다. 역시 여행자가 많은 부에노스아이레스답게 다양한 국적의 많은 사람들이 오전부터 모였다. 다만 프리 워킹투어는 상당히 지루했다. 필요 이상으로 설명이 너무 많았고, 점심 시간에는 잠깐 휴식을 가진 뒤 또 투어를 한다고 하길래 나는 빠져 나왔다. 프리 워킹투어를 3시간 넘게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강아지가 참 많다. 오죽하면 내가 느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첫 이미지가 ‘개똥의 도시’였을까. 아무튼 길을 걷다 보면 10마리가 넘는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바쁜 사람을 대신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리 재미있지 않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의 남자 주인공이 이렇게 여러 강아지를 데리고 다녔던 게 기억이 나, 반갑고도 신기했다.

 

사실 난 아르헨티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무작정 날아왔기 때문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이후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여행을 해야 할지, 그런 기본적인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늘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게 적응 못하고 있던 나에게 초등학교(우린 국민학교 졸업생이긴 하지만) 친구 효경이가 그럴 때는 아예 푹 쉬는 게 좋다면서 근처에 있는 한인 호스텔 남미사랑을 3일치 예약해줬다. 여행하면서 항상 느끼지만 난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1년 8개월 간 여행하면서 단 한 번도 한인 민박을 포함해 한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이용해 본적이 없어 조금 낯선 느낌은 들었다. 물론 처음에만 그랬고, 나중에는 여러 사람들과 친해져 이곳을 쉽게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단지 비수기라 여행자는 많지 않았다.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본격적인 부에노스아이레스 탐험에 나섰다. 다른 남미국가에 비해 백인 비율이 무척 높고(이탈리아, 독일, 아일랜드 등의 나라에서 온 이민자)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인지 중후한 유럽풍이 느껴지는 도시기도 하다. 물론 속을 들여다 보면 신기할 정도로 너무 낡은 건물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정치와 경제 문제가 산적해 있어 결코 아름답다고만 할 수 없겠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가 큰 도시이긴 해도 충분히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5월의 광장에 들어섰을 때는 멀리 분홍색의 대통령궁이 보였다. 5월의 광장은 부에노스아이레스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인데 바로 이곳에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5월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각종 시위의 장소이자 수많은 비둘기들의 안식처로 바뀌었다.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출장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득원이형이 여행자를 만났으니 저녁으로 한식을 사주겠다고 해서 점심은 간단하게 거리에서 해결했다. 이곳의 길거리 음식이라면 거의 대부분 남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시지, 초리소(Chorizo)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걷던 공원 근처에서 냄새가 진동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초리소를 빵에 넣어 햄버거처럼 먹는 초리빤(빤은 빵이라는 뜻)이라고 부르는데 소시지의 짭짤한 맛이 야채와 더해져 잘 어울린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징과도 같은 오벨리스크가 있는 7월 9일 거리(Avenida 9 de Julio)로 이동했다. 7월 9일 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폭이 넓은 도로로 유명한데 무려 144m로 한 번에 건너기가 쉽지 않다. 사실 실제로 보면 그렇게 넓어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중간 지점에 과거에는 없었던 버스정거장이나 공원 등이 생겨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고로 7월 9일은 아르헨티나의 독립기념일이다. 이와는 별개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세계에서 가장 긴 거리도 있다. 리바다비아 거리(Avenida Rivadavia)로 35km나 이어져 있다고 한다. 나중에 택시를 리바다비아 거리를 지나갈 기회가 있었는데 계속 일직선으로 달리기만 했는데 변하는 건 건물에 붙어있는 숫자뿐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남미로 건너온 기념이랄까. 오벨리스크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었다.

 

저녁에는 한식당에 갔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촌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다. 대신 이곳은 남미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한국 교민이 많이 살고 있어 뭐든 규모가 크고, 대부분의 음식점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우리가 찾아간 곳도 간판 하나 없는 곳이었는데 무제한으로 음식이 나왔다. 물론 1인 기준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긴 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여겨질 정도로 괜찮았다. 오랜만에 한식당에 와서 정말 배가 터질 정도로 먹었다. 말라리아에 걸려 누워 있을 때 그렇게 먹고 싶은 게 많았는데 뒤늦게나마 소원을 성취했다.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라 보까(La Boca) 지역을 빼놓을 수 없다. 라 보까는 오래된 항구로 과거 이민자들이 꿈을 찾아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이자 그런 이민자들을 위한 싸구려 선술집이나 사창가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향수에 젖었던 그들은 춤을 추면서 삶의 애환을 녹였는데, 그 춤이 지금의 탱고다. 그래서 라 보까는 탱고의 고장으로도 불린다.

 

물론 지금 여행자들은 알록달록하게 색칠된 건물과 여러 기념품 가게와 카페들로 적당히 버무려진 관광지다운 분위기 때문에 찾는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시끌벅적해서 조금 놀랐다.

 

사실 라 보까가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까미니또(Camonito) 내에서만 해당된다. 이곳을 벗어나면 사건사고가 많은지 우범지대로 알려져 있다. 물론 까미니또에서는 전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까미니또를 한 바퀴 돌아보는데 몇 분 걸리지 않을 정도로 매우 좁은 지역이다. 이 좁은 지역에 무수히 많은 기념품 가게와 카페가 관광객의 발걸음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 지역을 연고로 하는 축구팀 보까 주니어는 아르헨티나의 전설, 마라도나가 잠시 뛰었다는 이유만으로(물론 성적으로도) 유명하다. 덕분에 라 보까에서 마라도나는 쉽게 볼 수 있다.

 

아무리 몸치, 박치인 나라고 할지라도 탱고의 고장이라 불리는 라 보까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 없었다. 이곳에 있는 카페와 식당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는 곳이 꽤 있고, 그 중에는 탱고도 볼 수 있었다. 멀리서부터 현란한 발놀림과 화려한 몸짓에 이끌려 어느 식당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탱고를 구경했다. 좁은 공간에서 쉴새 없이 움직이는 그들의 춤사위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탱고에 대해 아는 것은 전혀 없었으나 약간의 팁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정말 멋졌다.

 

물론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여러 탱고 공연이 있으나 관람료가 무척 비싼 편이라 선뜻 갈 생각을 못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비싼 탱고를 봐야 할 정도로 끌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여기서 커피를 마시면서 탱고를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한국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매일 고생이라 하던데 여기는 낙엽이 떨어지는 쌀쌀한 계절이었다.

 

일요일에면 열린다는 산뗄모(Santelmo) 시장을 구경하러 갔다. 일요시장이라고 하길래 나는 길거리에서 몇 개의 노점만이 물건을 파는 수준일 줄 알았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는 규모에 놀랐다. 구경 나온 사람도 정말 많았다. 일요일만 되면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는 차도 없고, 사람도 없는데 전부 여기에 모였나 보다.

 

옷이나 잡화는 물론이고 관광객의 관심을 끌만한 재미있는 물건도 많았다.

 

이곳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마떼차와 마떼컵도 팔고 있었다. 다양한 색상과 그림이 있어 마떼차를 마시지 않더라도 기념으로 갖고 싶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장의 흥을 돋우는 신나는 공연에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산뗄모 시장에는 구경 거리가 참 많았다. 인형 끝에 실을 매달아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 공연도 있고, 중후한 멋을 부릴 줄 아는 할아버지는 색소폰을 연주했다.

 

산뗄모 시장이 끝나는 지점까지 갔다가 돌아왔는데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산뗄모 지역은 과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이었다가 경기가 나빠지면서 한 순간에 슬럼화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다 군부독재가 물러나면서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예술인들이 몰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골동품과 미술품을 파는 상인들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활기를 띄게 되었고, 탱고도 유행했다고 한다. 라 보까와 더불어 이곳도 탱고로 무척 유명하다. 아무튼 지금은 카페와 예술인들의 거리 그리고 일요시장으로 활기찬 곳이 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후 며칠간은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었는데 이제 모든 게 익숙해졌다. 물론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못 잡았지만. 대신 잠깐 우루과이를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페리를 타면 2시간 만에 닿을 수 있는 곳이니 부담이 없을 거라 여겼고, 다른 나라로 넘어가면 기분 전환하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다만 딱 이틀 생각하고 떠난 여정이 일주일로 길어질 줄은 당시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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