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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 번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특별했다. 그건 역시 특별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먼저 아프리카에서 있을 때부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한국인 배낭여행자 동우를 만났다. 처음 만났음에도 우리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눴고 어느 샌가 같이 여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서로에게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곧 현실이 됐다.


또 다른 만남은 1년만의 재회였다. 이리스와 나는 몬테네그로에서 만났었고, 다시 알바니아에서 만나 며칠간 히치하이킹을 하며 여행을 같이 했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그간 있었던 여행담을 쏟아내느라 바빴다. 유럽도 아니고 남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반가운 게 당연했다. 흔히 ‘미쳤다’는 말이 부정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그리 나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녀는 여전히 히치하이킹으로 세계를 떠돌고 있는 ‘미친’ 여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난 남미에 오면 ‘여행의 자극’을 마구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처음처럼 호기심으로 가득하고, 에너지가 넘쳐 여행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남미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데다가 스페인어도 하지 못해 막상 어딘가로 떠나기를 주저했다. 그러던 시기에 특별한 여행자 동우와 이리스를 만나 조금은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그건 동우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우리 둘 다 1년 이상 여행을 한 장기여행자였기 때문에 무료해진 여행을 자극시킬 필요가 있었다. 다시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며칠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편하게 지내다가 막상 떠나려고 하니 쉽지 않았다. 몸이 피곤한데 하루만 더 머물까,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계속 맴돌았다. 그러나 이렇게 주저하다간 영원히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지 못할 것 같아 배낭을 챙겨 나갔다.


우리의 여행 방법은 다름 아닌 유럽과 중동에서 수없이 했던 히치하이킹으로 결정했다. 동우도 오랜 기간 여행해 별별 경험을 다 했고, 무엇보다 여러 나라에서 히치하이킹을 많이 했다고 했다. 때문에 같이 여행하면 잘 맞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다만 나는 동우의 꼬임에 넘어가 하필 가장 추운 지역인 파타고니아로 가게 됐다.


이번 여정은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아르헨티나 남부지역인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는 것이지만 처음부터 무리 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큰 도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법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외곽으로 나가 어렵게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기 보다 버스를 타고 가까운 도시로 가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출발은 가볍게 시작하자며 그저 지도를 보고, 혹은 감을 믿고 결정한 곳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라스플로레스(Las Flores)였다. 가까울 거라 생각했던 이곳은 버스를 타고 5시간이 넘게 걸렸고, 도착했을 때는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몇 개의 숙소가 보였으나 우리에게 적당한 가격은 아니었다. 첫날부터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자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곳에 캠핑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밖에서 아무데나 자는 와일드캠핑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첫날이니 조금이라도 시설이 갖춰진 캠핑장을 가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한참 걸어간 끝에 도착한 캠핑장은 고요했다. 당연히 추운 겨울에 여기까지 와서 캠핑을 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무료로 개방된 캠핑장인 줄 알았는데 관리인이 있었다. 다행히 예상했던 것보다 저렴한 32페소였다. 다만 호수 바로 옆이라 안개가 있었고, 비도 살짝 내린 후라 텐트를 치기 적합한 장소를 찾기 어려웠다.


적당히 마른 곳에 텐트를 친 후 캠핑장 관리인 아저씨와 수다를 떨었는데 그게 무려 1시간 동안 이어졌다. 동우는 어떻게 스페인어도 못하면서 그렇게 오래 얘기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나도 어떻게 소통을 했는지 의문이다. 그저 아저씨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내 말에 흥미를 가져 사진을 보여줬고, 계속해서 권해주는 따뜻한 마떼차를 나는 홀짝홀짝 마셨을 뿐이다. 


오랜만에 텐트에서 맞는 아침은 차가웠다. 거기에 비까지 더해졌다. 길바닥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우리에게 비가 오는 날씨는 치명적이다. 얼른 텐트를 접고 라스플로레스 시내를 향해 걸었다. 


라스플로레스는 도시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중심부에서 한참 걸어 우리가 히치하이킹을 할 루타 3(Ruta Nacional 3) 도로에 섰다. 여태까지 수없이 많은 히치하이킹을 했는데도 다시 히치하이킹을 하기 위해 도로 위에 서니 앞으로의 여정에 걱정이 앞섰고, 한편으로는 설레는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사실 누가 봐도 개고생이 뻔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떨리는 기분은 멈추지 않았다.


동우는 몇 분간 손을 들다가 주유소에 있는 차를 직접 잡아보겠다고 자리를 비웠다. 그런데 5분도 되지 않아 내 앞으로 차 한 대가 멈췄다. 갑작스럽게 멈춰선 차량 한 대를 보자 미리 연습해뒀던 스페인어 “저를 태워주실 수 있나요?”가 기억이 나지 않아 버벅거렸다. 일단 어설프게나마 아술(Azul)로 가냐고 물어보니 자신도 그쪽으로 간다며 타라고 했다. 기쁜 마음에 주유소로 간 동우를 불렀다. 단 10분 만에 차를 잡았으니, 출발은 참 순조로웠다.


아술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피곤함이 몰려왔다.


계속해서 운이 따라주길 바랐으나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애초에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하는 게 쉬울 거라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술에 도착한 이후 곧바로 마을의 끝을 향해 걸으면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1시간 정도 기다렸을 무렵, 유쾌한 아르헨티나 친구들이 우리 앞에 멈췄다. 우리와는 방향이 달랐지만 아술을 벗어나 여러 갈림길이 있는 로터리까지 데려다 줬다. 여기서 다시 1시간 정도 기다렸다.


고작 100km 이동했을 뿐인데 더 이상 전진을 할 수 없다니, 이런 우울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대의 차가 멈췄다. 우리는 신나서 뛰어갔다. 우리의 목적지로 잡은 바이아블랑카(Bahia Blanca)까지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쪽으로 갈 수 있다면 일단 타야 한다. 되지도 않는 스페인어를 하며 우리 여행을 설명했고, 아저씨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트레스아로요스(Tres Arroyos)에서 내렸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꽤 멀리 이동한 것 같지만 사실 우리의 목적지 바이아블랑카까지 무려 200km나 남은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2시간 넘게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날씨는 점점 추워져 손이 얼어 붙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비비면서 하염없이 지나가는 차를 바라봤다. 결국 해까지 떨어졌다.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주유소 뒷마당이나 주변에 있는 공터에 텐트를 쳐야겠다며 배낭을 챙겨 들었다. 그때 우리 눈에는 커다란 트럭으로 향하는 아저씨가 보였다. 우리는 다짜고짜 다가가 바이아블랑카까지 가냐고 물어봤는데 그렇다는 것이었다. 신이 우리를 아직 버리지 않았구나! 그러나 바이아블랑카까지 태워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이 아저씨는 단번에 거절했다. 여기서 이 트럭을 타지 않으면 길바닥에서 자야 하기에 몇 번 더 물었더니 망설이던 아저씨는 타라고 했다.


트럭에 올라탄 후 우리는 한동안 꽁꽁 언 몸을 녹여야 했다. 길바닥에서 잘 뻔했던 우리는 바이아블랑카로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에 겨웠다. 더 즐거웠던 사실은 우리를 태우기 싫어했던 것으로 여겨졌던 아저씨가 무척 호의적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한국 노래를 들어보더니 좋다고 웃음을 지었다. 거대하고 느린 트럭은 바이아블랑카까지 흥겨운 분위기를 유지한 채 달렸다.


원래 카를로스 아저씨는 바이아블랑카에 도착하면 외곽에서 내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려는 호스텔의 위치를 확인하더니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닌가. 거대한 트럭이 시내까지 진입했다. 그리고는 우리를 시내 한복판에서 내려줬다. 환하게 웃는 카를로스 아저씨와 몇 번이고 작별 인사를 나누고는 트럭에서 내렸다.


바이아블랑카에 도착했을 때는 9시 반이었다. 배는 고파 죽을 지경이었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으나 바이아블랑카에 도착했다는 기쁨에 걸음은 가벼웠다. 우리는 미리 알아둔 바이아블랑카의 유일한 호스텔을 찾아 갔다.


호스텔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비쌌지만(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은 항상 상상을 초월했다) 늦은 시각에 다른 선택을 취하기란 어려웠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오니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비해 바깥 공기가 차갑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몸을 움츠리며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나왔다. 겨울이긴 겨울인가 보다.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몇 개 챙겨온 라면을 꺼내 끓였다. 주방에서 라면을 먹고 있던 우리를 몇 명의 사람들은 신기하게 바라봤고, 정겹게 인사를 나눴다.


다음날 바로 출발하기에는 피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떠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하고 하루를 온전히 쉬기로 했다. 낮에는 잠깐 바이아블랑카를 돌아봤는데 크게 특별해 보이진 않았다. 낡은 건물이 지배하는 회색 도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루를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떠나려 하니 몸이 무거웠다. 또 밖으로 나가 추위에 떨며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하니 직감적으로 오늘도 개고생이 될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바이아블랑카가 제법 큰 도시라 우리는 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나갔고 다시 루타 3 도로 앞에 섰다.


안개가 자욱했다. 커다란 주유소와 쉴새 없이 지나다니는 차가 있어 금방이라도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우리가 도착한 이후 신기하게도 여러 명의 히치하이커를 보게 됐다. 여자 혼자서 여행하는 프랑스인, 저 멀리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던 남자 두 명, 어디로 가는지 작은 배낭만 메고 엄지손가락을 들던 커플까지, 모두가 이곳으로 집결했다.  


뒤늦게 등장한 이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르헨티나인으로 히치하이킹을 해서 남쪽으로 간다고 했다.


지나가는 차가 많으니 굉장히 쉬운 하루가 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4시간이 지나도록 성과가 없었다. 대낮인데도 추위에 떨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일단 주유소 매점에서 몸을 녹이고 엠빠나다로 간단하게 허기를 채웠다. 춥고 배고픈 것보다 혹시라도 오늘 히치하이킹을 하지 못해 바이아블랑카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 그게 더 걱정이 됐다. 그런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때 주유소 매점으로 들어온 두 남자와 마주했다. 우리가 들고 있던 푸에르토마드린이라고 쓰인 판자를 보더니 대뜸 푸에르토마드린(Puerto Madryn)으로 가냐고 물었다. 설마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정말 놀라웠다. 마리오와 탐이라고 소개했던 이 두 아저씨는 점심만 먹고 출발할 예정이니 걱정하지 말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오후 2시에 우리 배낭을 좁은 트렁크에 밀어 넣고 남쪽으로 출발했다. 푸에르토마드린까지는 약 650km나 남은 상황이라 결코 가깝다고 볼 수 없었다.


이전과 달리 느릿한 트럭이 아니라 다행이랄까. 마리오 아저씨가 쉬지 않고 밟아 7시 30분쯤 푸에르토마드린 부근에 도착했다. 


다만 우리는 푸에르토마드린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트렐레우(Trelew)로 갈 예정이라 푸에르토마드린으로 가는 갈림길에 있는 주유소에서 멈춰 섰다. 혹시 푸에르토마드린까지 데려다 주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염치 없이 너무 많은 걸 바라는 생각이었다. 여기까지 데려다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보통은 고속도로를 끼고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데 푸에르토마드린은 그렇지 않았다. 주유소에서 푸에르토마드린까지는 무려 10km나 남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다시 히치하이킹을 하자니 거리가 너무 애매했고, 무엇보다 이미 어두워져 지나가는 차가 우리를 보기 힘들었다. 주유소에 정차해 있는 차를 돌며 푸에르토마드린으로 가냐고 물어봤지만 허탕만 치고, 결국 우리는 푸에르토마드린까지 걷기로 결정했다.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도로를 따라 걸었다. 이렇게 우리의 여정은 하루도 편하지도, 쉽지도 않았다. 그나마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어둠이 두렵지 않았다. 또한 심심하지 않았다.


1시간 정도 걸었을 때 빛이 보였고, 2시간 정도 걸었을 때는 푸에르토마드린 시내에 진입했다. 날씨는 추웠는데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됐다.


호스텔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었다. 샤워를 하고 힘든 하루에만 먹자고 했던 라면을 꺼냈다. 계란을 4개나 넣어 끓이고, 라면으로는 우리의 허기를 채울 수 없어 밥도 했다. 내가 라면을 끓이는 동안 동우는 맥주 두 병을 사와 우리의 만찬을 완성했다. 걸신이 들린 듯 해치웠다. 배가 부르고 아늑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마음이 놓였다.


푸에르토마드린은 나름 관광지라 분위기가 제법 괜찮아 며칠 머무르고 싶었다. 물론 당장 다음날 이동할 생각이 없었다. 피로에 찌든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쉽지 않은 우리가 다음날 아침부터 떠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우리는 조금 더 저렴한 호스텔로 옮긴 후 이틀을 더 보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바깥에서 돌아다니는 시간보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고작 며칠 지냈을 뿐인데 마음이 안정됐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다시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이동하기 보다 여기서 일주일 정도 더 머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푸에르토마드린은 여러 야생 동물을 볼 수 있는데 특히 겨울 시즌에는 해안가로 다가오는 커다란 고래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며칠간 고래를 보러 갈까 고민을 엄청 했다. 그런데 앞으로의 여정에 돈이 계속 필요하고 투어도 그리 저렴한 편이 아니라 부담이 됐다. 결국 고래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푸에르토마드린을 떠났다.


푸에르토마드린을 떠날 때는 히치하이킹이 아닌 버스를 탔다. 아무래도 시내에서 도시 밖으로 나가는 차를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트렐레우(Trelew)로 진입하는 도로에서 내려 히치하이킹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도 차는 멈추지 않았다. 개고생을 예상한대로 우리의 여정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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