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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2006년 해외봉사를 다녀온 후 2008년에 개인적으로 다시 같은 곳을 방문한 이야기입니다.

어김없이 주말이 오자 나는 막탄섬 끝짜락에 왔다. 1주일 만에 찾아온 곳이지만 어떤 의무감 때문에 이 곳에 서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오고 싶어서 다시 온 필리핀, 그리고 주말에는 올랑고에 간다. 그냥 그곳이 좋으니깐 다른 이유 없었다.

아주 익숙한 듯이 15페소(약 450원)를 내고 표를 산 뒤 터미널이라고 보기에도 좀 부실한 곳의 입장료 1페소를 내고 들어왔다. 이 곳에 오는 사람의 대부분은 올랑고와 세부를 지나다니는 현지인이거나 혹은 가까운 힐튼호텔이나 샹그릴라에서 놀러온 관광객이다. 특히나 나와 같이 외국인들은 대부분 여러명이 바닷가로 놀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내가 좀 특별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었다.

배는 통통배라고 불리는 필리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배인데 나무로 만들어져있다. 이 배를 타고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데 작은 배인만큼 날씨가 좋지 않으면 심하게 흔들릴 수가 있다.

날씨는 흐릿흐릿하였고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와서 그런지 덥지는 않았다. 시끄러운 엔진소리에 대화 나누기에도 쉽지 않지만 나에겐 대화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엔진이 기침소리를 내면서 털털거리더니 멈추기 시작했다. 엔진쪽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고 있었고, 배는 바다 한가운데서 멈춰서 더이상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엔진이 고장났나 보다. 아~ 수영도 못하는데 바다 한 가운데서 둥실 둥실 떠있다니 나에게는 딱히 좋은 상황은 아닌 셈이었다.

사람들이 여러번 엔진 쪽을 만지는 듯 했지만 나중에는 아예 손을 놔버렸다. 고칠 수 없는 상태였는지 무전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다른 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30분 넘게 기다렸는데 선장님 지켜우셨는지 노래에 맞춰 춤까지 추시고 상황은 그리 심각한게 아니라듯 웃으면서 고장났다고 말해줬다.



배는 고장 났는데 신나셨던지 춤까지 추셨던 선장아저씨


배 위에서 표류하는거 아닌가라는 괜한 엉뚱한 상상만 30분. 결국 다른 배가 와서 내가 타고 있던 배를 이송해줬다. 방법은 간단히 굵은 밧줄로 묶었을 뿐이다.


상륙할 때가 가까워지면 낮은 수심 때문에 저렇게 커다란 막대기로 배를 상륙시킨다. 출발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막대기를 이용해 사람의 힘으로 배를 조종시키는 건데 뒤에서 보면 재밌다.


세부와 다리로 연결되어있는 막탄섬이 바로 앞에 보인다


작은 마을에서 이용되고 있는 교통수단인 트라이시클을 보고 있으면 오토바이의 무한한 잠재력에 새삼 놀란다. 저 위의 트라이시클이 일반적인 모습이고 다른 지역에서 본 트라이시클은 흡사 자동차와 같은 모습도 있었다. 저 좁은 공간에 3~4명은 물론이고 오토바이 뒤에도 1명이상 탈 수 있다. 물론 짐과 함께 말이다.


필리핀은 우리나라의 중학교의 개념인 middle school이 없고 elementary와 high school만 존재한다. 대학생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고등학생 나이 또래 밖에 안 된다.

내가 푸 초등학교에 도착했을 때 무슨 일인지 전부 밖에 나와있었다. 티나가 먼저 손을 흔들어서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내가 궁금해서 지금 뭐하고 있냐고 물어보니 게임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게임은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알 수 있을만큼 간단한 게임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서운(?) 담임 선생님 티나와 반 아이들


얼굴만 봐도 말썽꾸러기라고 써있다. 티나는 아이들이 말을 정말 안 듣는다고 나한테 하소연아닌 하소연을 했다. 내가 웃으면서 한국 아이들은 더 말 안 듣는다고 하면서 이 아이들정도면 착한거라고 하니까 고개를 도리 도리 저으며 한숨을 내쉰다. ^^


이어진 게임은 콜라병에 물을 집어넣기였는데 그냥 집어넣는게 아니라 멀리서 물을 숟가락으로 떠와서 넣는 것이었다. 후와~ 그냥 넣어도 힘들텐데 숟가락이었으니 게임이 쉽게 끝날리가 없었다. 지루할 법도한데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이 너무도 즐거워보였다. 그리고 병 앞에서는 어김없이 말썽쟁이들이 웃기게 만들거나 훼방을 놓아서 숟가락을 들고 있는 아이의 집중력을 흐트려놓았다.


지난주에와는 다르게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2006년에 헤어지고 난 후 약 2년만에 다시 본 것이었는데 내 이름도 내 생일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를 기억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도 고마웠다.


아이들 역시 사진찍히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사진 찍히는 것이 익숙치 않아 보여도 막상 찍으면 웃는 모습때문인지 어색함이 없다. 사진을 몇 장 찍어주고나서 다음에 올 때는 꼭 현상해서 가져다 주겠다고 티나에게 약속했다.


내가 티나에게 랩탑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아이들이 티나에게 랩탑이 뭐냐라고 물었다. 컴퓨터에 대한 개념도 없는 아이들에게 랩탑이 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랩탑이 뭔지는 몰라도 이 아이들은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2006년 필리핀 해외봉사를 같이 갔던 형은 이 곳은 이렇게 말했다.

'천사들이 살고 있는 섬'

비록 랩탑이 무엇인지 모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