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엽서를 들고 쫓아오면 도저히 사지 않을 수가 없을거 같아. 이건 캄보디아 때 느꼈던 감정과는 많이 틀린거 같아. 나는 이 아이들의 물건들을 다 사주고 싶은데 실제로는 그럴 수가 없어서 너무 안타까워." 흙먼지가 풀풀나던 길을 걸으면서 나는 비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비키는 내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우리들로써는 모든 아이들의 엽서를 사준다는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를 가리키며 "너와 난 가난한 여행을 하고 있잖아. 사실 우리가 그 많은 사원을 돌아보며 물건을 사 줄 돈은 없는 것도 사실이야." 라고 말을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깟 1000원짜리 하나 사주지 못하고 뿌리치고 나왔을 때는 너무 미안하긴 했지만 나에게는 그럴만한 여력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미얀마를 15일 동안 여행하면서 썼던 돈은 고작해야 300달러가 전부였던 것이다.
새로운 장소를 위해 걸으면서 내가 비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재미있는 사실 알려줄까? 우리나라도 아마 50년 전에는 이랬을거야. 무지하게 가난했던 나라였어. 근데 지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 나라로 바뀌었어."
비키는 나의 말에 흥미가 있는지 그게 사실이냐고 물어봤다. 나는 진짜라고 이야기하면서 양곤에서 봤던 개념 없었던 한국 아저씨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가난한 국가에 와서 사람들을 업신 여기고, 자신의 하인취급하는 모습을 보면 열이 뻗쳐 올라. 우리나라도 고작해야 몇 십년 전에만 하더라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거든."
비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땃빈뉴 파고다의 뒷쪽 길로 가다보니 또 이름 모를 파고다가 나왔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나 사람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다. 강변의 모래로 그렸다는 그림들이 판매를 위해 내놓고 있었고, 이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서 작업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미얀마 사람들은 예술적 감각이 참 뛰어난 것 같다.
이 파고다도 한번 구경해봐야겠다며 안으로 들어갔는데 크게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벽돌로 쌓여진 오래된 파고다로 보였는데 가운데 부조가 하나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이 파고다의 옆에 있었던 독특해 보였던 파고다로 눈을 돌렸다.
책을 꺼내서 살펴보니 이름은 밍글라제디 파고다라고 한다.
가까이에 가보니 가운데 있는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깜빡하고 신발을 신고 올라갔다가 나중에는 신발을 벗고 계단의 끝가지 올라갔다. 그런데 중천에 떴던 태양 덕분에 이 돌계단은 무지하게 뜨거웠다.
밍글라제디에 올라 주변의 경치를 살펴봤다. 아주 가까운 곳에 땃빈뉴 파고다가 보였다. 비키는 땃빈뉴 파고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몇 장을 찍어주고, 비키는 이번에 나를 찍어줬다.
사실은 무지하게 바닥이 뜨거웠지만 아무렇지도 않은척 먼 경치를 바라봤다.
너무 뜨거워서 적당히 보고 얼른 내려왔다.
어디선가 나타난 꼬마 아이들이 우리에게 엽서를 사달라고 졸라 댄다. 우리는 계속 "Sorry"라는 말만 연발해야 했다. 이 아이들은 정말 질길 정도로 계속 쫓아왔는데 엽서를 사줄 수 없으면 선물을 달라고 했다. 사탕, 껌, 펜이 없냐고 계속 쫓아왔다. 그냥 미안하다고만 했다.
정말 이름 모를 작은 파고다도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다보려 한다면 바간에만 몇 주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
멀리서 우차가 보였다. 주인이 작업을 하는 동안 소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신기하다는 생각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해 봤다.
이게 정말 우리가 말하는 소인지는 저 등에 있는 혹때문에 잠깐 망설여야 했다. 미얀마쪽 소들은 다 이렇게 생긴 건가?
이런 우차는 떠날 채비를 했다. 소는 다시 일을 열심히 하러 돌아가야 했다.
여기는 또 어디일까? 마차가 있는 것을 보니 우리보다 먼저 손님이 와있나 보다.
내부를 들어가보니 정면에 부처상이 있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와 함께 따라와서는 손전등으로 벽을 비춰줬다. 어두워서 전혀 보이지 않았었지만 손전등으로 밝히자 흐릿하게 그림이 나타난 것이다. 이 아주머니는 손전등으로 여기 저기를 비추면서 그림에 대한 설명을 계속 해주었다.
너무 어두워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려야 이정도로 찍을 수 있었다. 대부분은 너무도 흐릿해서 그림의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마지막 그림은 부처와 그의 제자들을 그린 것이라고 했던 것 같다.
천장에도 역시 그림이나 독특한 문양이 있었다.
형태는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적어도 불교 예술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파고다의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여기는 파토타마야라고 얘기해줬다.
밖으로 나오니 어린 아이들이 엽서를 팔려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꼬마 아이들이 무척 귀여웠다. 잠시 후에 이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서양인이 나와 우리와 인사를 나눴다. 비키는 이렇게 어린 아이들과 여행을 같이 하면 힘들지 않냐고 했더니 프랑스인이었던 엄마는 학교는 잠깐 쉬고 여행을 다니고 있는데 지금 이게 훨씬 더 교육적으로 좋을거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지금 이미 가족 여행을 한지는 6개월이 지났다고 했다.
이런 여행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이미 6개월이 지났다고 한다니 사실은 서양인들의 여행 스타일이 너무도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여행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기념품은 역시 구입하지 않았다. 우리가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다고 하자 선물을 줄 수 없냐고 묻는다. 하지만 내 가방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비키는 껌 하나 밖에 없었다. 껌 하나를 건네주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사람은 우리에게 샴푸가 없냐고, 혹은 향수가 없냐고 물었는데 비키는 향수는 우리에게도 무척 비싼 물건이라고 했다.
모든 유적지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니 무척 피곤했다. 다만 이미 앙코르왓에서도 비슷한 일들을 겪었고, 사실 미얀마 사람들이 싫지 않았기 때문에 짜증을 부린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흙먼지를 뒤짚어 쓰면서 열심히 걸어다녔다.
조금 더 걸으니 꽤 큰 사원이 나왔다. 입구에서부터 기념품 가게들이 보였던 곳으로 구바욱지 파고다(로 기억은 하고 있으나 책과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닌 것 같다)였던 것 같다.
이제는 사원을 보는 것조차 질린다.
거의 대충 대충 보고 나왔을 때 양곤 버스터미널에서 나는 얼굴만 보았던 중년의 부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비키는 이미 아는 사이인 듯 반가워하면서 말을 건넸다. 이전에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냥우에 도착했는데 새벽 3시 반에 도착했다는 것부터 이 곳 바간은 왜 입장료 10달러를 냈으면서 검사를 하는 곳이 없냐는 얘기를 했다.
그랬다. 생각해보니 바간은 지역 입장료 10달러가 있었는데 전혀 검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 10달러를 내고 지역입장료 영수증은 오후에 받기로 했는데 직원이 혹시라도 검사를 하면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이나 명함을 내면 괜찮을거라 이야기를 해줬다. 그런데 정작 바간을 돌아다니면서 단 한번도 입장료에 대해서 묻는 경우가 없었다.
이 중년의 부부는 몸집이 꽤나 있었던 편으로 전형적인 서양인의 모습이었지만 특히 아주머니의 캐릭터가 무척 독특했다. 붉은색 머리카락에 커다란 목걸이나 팔찌 등으로 장식을 한 상태로 간혹가다가 이상한 물건을 사면 꼭 치장을 하곤 했다. 걸어다니는건 너무 큰 고통이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비키는 캄보디아 앙코르왓에 비교해서 어떻냐고 물어봤는데 이 부부는 자신들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다. 앙코르왓이 분명 멋지긴 하지만 바간도 역시 그에 못지 않게 멋진 곳이라며 둘다 독특한 장소라고 얘기했다.
아마 비키는 계속해서 나오는 사원에 이제 어디가 어딘지 기억이 안 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물건을 사달라고 졸랐는데 나는 이 아이에게 혹시 돈을 모으냐고 물어봤고, 나의 지갑 속에 있던 마지막 1000원을 꺼내서 줬다. 그리고 이거 어차피 작은 돈이니까 절대 환전할 생각하지 말라고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비키는 이 아이에게 그 돈은 가난한 여행자에게서 나온 돈이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비키는 내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우리들로써는 모든 아이들의 엽서를 사준다는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를 가리키며 "너와 난 가난한 여행을 하고 있잖아. 사실 우리가 그 많은 사원을 돌아보며 물건을 사 줄 돈은 없는 것도 사실이야." 라고 말을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깟 1000원짜리 하나 사주지 못하고 뿌리치고 나왔을 때는 너무 미안하긴 했지만 나에게는 그럴만한 여력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미얀마를 15일 동안 여행하면서 썼던 돈은 고작해야 300달러가 전부였던 것이다.
새로운 장소를 위해 걸으면서 내가 비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재미있는 사실 알려줄까? 우리나라도 아마 50년 전에는 이랬을거야. 무지하게 가난했던 나라였어. 근데 지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 나라로 바뀌었어."
비키는 나의 말에 흥미가 있는지 그게 사실이냐고 물어봤다. 나는 진짜라고 이야기하면서 양곤에서 봤던 개념 없었던 한국 아저씨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가난한 국가에 와서 사람들을 업신 여기고, 자신의 하인취급하는 모습을 보면 열이 뻗쳐 올라. 우리나라도 고작해야 몇 십년 전에만 하더라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거든."
비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땃빈뉴 파고다의 뒷쪽 길로 가다보니 또 이름 모를 파고다가 나왔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나 사람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다. 강변의 모래로 그렸다는 그림들이 판매를 위해 내놓고 있었고, 이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서 작업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미얀마 사람들은 예술적 감각이 참 뛰어난 것 같다.
이 파고다도 한번 구경해봐야겠다며 안으로 들어갔는데 크게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벽돌로 쌓여진 오래된 파고다로 보였는데 가운데 부조가 하나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이 파고다의 옆에 있었던 독특해 보였던 파고다로 눈을 돌렸다.
책을 꺼내서 살펴보니 이름은 밍글라제디 파고다라고 한다.
가까이에 가보니 가운데 있는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깜빡하고 신발을 신고 올라갔다가 나중에는 신발을 벗고 계단의 끝가지 올라갔다. 그런데 중천에 떴던 태양 덕분에 이 돌계단은 무지하게 뜨거웠다.
밍글라제디에 올라 주변의 경치를 살펴봤다. 아주 가까운 곳에 땃빈뉴 파고다가 보였다. 비키는 땃빈뉴 파고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몇 장을 찍어주고, 비키는 이번에 나를 찍어줬다.
사실은 무지하게 바닥이 뜨거웠지만 아무렇지도 않은척 먼 경치를 바라봤다.
너무 뜨거워서 적당히 보고 얼른 내려왔다.
어디선가 나타난 꼬마 아이들이 우리에게 엽서를 사달라고 졸라 댄다. 우리는 계속 "Sorry"라는 말만 연발해야 했다. 이 아이들은 정말 질길 정도로 계속 쫓아왔는데 엽서를 사줄 수 없으면 선물을 달라고 했다. 사탕, 껌, 펜이 없냐고 계속 쫓아왔다. 그냥 미안하다고만 했다.
정말 이름 모를 작은 파고다도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다보려 한다면 바간에만 몇 주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
멀리서 우차가 보였다. 주인이 작업을 하는 동안 소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신기하다는 생각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해 봤다.
이게 정말 우리가 말하는 소인지는 저 등에 있는 혹때문에 잠깐 망설여야 했다. 미얀마쪽 소들은 다 이렇게 생긴 건가?
이런 우차는 떠날 채비를 했다. 소는 다시 일을 열심히 하러 돌아가야 했다.
여기는 또 어디일까? 마차가 있는 것을 보니 우리보다 먼저 손님이 와있나 보다.
내부를 들어가보니 정면에 부처상이 있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와 함께 따라와서는 손전등으로 벽을 비춰줬다. 어두워서 전혀 보이지 않았었지만 손전등으로 밝히자 흐릿하게 그림이 나타난 것이다. 이 아주머니는 손전등으로 여기 저기를 비추면서 그림에 대한 설명을 계속 해주었다.
너무 어두워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려야 이정도로 찍을 수 있었다. 대부분은 너무도 흐릿해서 그림의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마지막 그림은 부처와 그의 제자들을 그린 것이라고 했던 것 같다.
천장에도 역시 그림이나 독특한 문양이 있었다.
형태는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적어도 불교 예술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파고다의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여기는 파토타마야라고 얘기해줬다.
밖으로 나오니 어린 아이들이 엽서를 팔려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꼬마 아이들이 무척 귀여웠다. 잠시 후에 이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서양인이 나와 우리와 인사를 나눴다. 비키는 이렇게 어린 아이들과 여행을 같이 하면 힘들지 않냐고 했더니 프랑스인이었던 엄마는 학교는 잠깐 쉬고 여행을 다니고 있는데 지금 이게 훨씬 더 교육적으로 좋을거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지금 이미 가족 여행을 한지는 6개월이 지났다고 했다.
이런 여행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이미 6개월이 지났다고 한다니 사실은 서양인들의 여행 스타일이 너무도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여행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기념품은 역시 구입하지 않았다. 우리가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다고 하자 선물을 줄 수 없냐고 묻는다. 하지만 내 가방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비키는 껌 하나 밖에 없었다. 껌 하나를 건네주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사람은 우리에게 샴푸가 없냐고, 혹은 향수가 없냐고 물었는데 비키는 향수는 우리에게도 무척 비싼 물건이라고 했다.
모든 유적지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니 무척 피곤했다. 다만 이미 앙코르왓에서도 비슷한 일들을 겪었고, 사실 미얀마 사람들이 싫지 않았기 때문에 짜증을 부린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흙먼지를 뒤짚어 쓰면서 열심히 걸어다녔다.
조금 더 걸으니 꽤 큰 사원이 나왔다. 입구에서부터 기념품 가게들이 보였던 곳으로 구바욱지 파고다(로 기억은 하고 있으나 책과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닌 것 같다)였던 것 같다.
이제는 사원을 보는 것조차 질린다.
거의 대충 대충 보고 나왔을 때 양곤 버스터미널에서 나는 얼굴만 보았던 중년의 부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비키는 이미 아는 사이인 듯 반가워하면서 말을 건넸다. 이전에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냥우에 도착했는데 새벽 3시 반에 도착했다는 것부터 이 곳 바간은 왜 입장료 10달러를 냈으면서 검사를 하는 곳이 없냐는 얘기를 했다.
그랬다. 생각해보니 바간은 지역 입장료 10달러가 있었는데 전혀 검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 10달러를 내고 지역입장료 영수증은 오후에 받기로 했는데 직원이 혹시라도 검사를 하면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이나 명함을 내면 괜찮을거라 이야기를 해줬다. 그런데 정작 바간을 돌아다니면서 단 한번도 입장료에 대해서 묻는 경우가 없었다.
이 중년의 부부는 몸집이 꽤나 있었던 편으로 전형적인 서양인의 모습이었지만 특히 아주머니의 캐릭터가 무척 독특했다. 붉은색 머리카락에 커다란 목걸이나 팔찌 등으로 장식을 한 상태로 간혹가다가 이상한 물건을 사면 꼭 치장을 하곤 했다. 걸어다니는건 너무 큰 고통이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비키는 캄보디아 앙코르왓에 비교해서 어떻냐고 물어봤는데 이 부부는 자신들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다. 앙코르왓이 분명 멋지긴 하지만 바간도 역시 그에 못지 않게 멋진 곳이라며 둘다 독특한 장소라고 얘기했다.
아마 비키는 계속해서 나오는 사원에 이제 어디가 어딘지 기억이 안 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물건을 사달라고 졸랐는데 나는 이 아이에게 혹시 돈을 모으냐고 물어봤고, 나의 지갑 속에 있던 마지막 1000원을 꺼내서 줬다. 그리고 이거 어차피 작은 돈이니까 절대 환전할 생각하지 말라고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비키는 이 아이에게 그 돈은 가난한 여행자에게서 나온 돈이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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