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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사파리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보는 생애 최초의 사파리에 흥분을 감추지 않았고, 우리는 당장이라도 달려올 것 같았던 사자가 벌써부터 눈 앞에 펼쳐진 듯 했다. 

'사파리에서 사자에게 기습을 허용하면 어쩌지?' 일찍부터 설레발을 치는 것으로 썬시티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썬시티는 남아공의 행정수도인 프레토리아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곳으로 골프장, 카지노, 호텔 등을 포함한 남아공 최대의 관광도시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도시는 아니었고, 도시만큼 거대한 관광지였던 것이다. 


썬시티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곧바로 사파리로 출발하는 트럭에 올라탔다. 아프리카 사파리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니 벌써부터 두근두근거렸다. 

사파리는 썬시티에서 조금 벗어난 필란스버그 국립공원Pilansberg National Park을 말하는데 이는 남아공에서도 2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원의 사파리의 규모와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인데 아프리카 사파리는 가둬놓고 우리가 구경하는 그런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냥 넓은 초원 전체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것이다. 


날씨가 무척 추웠지만 출발할 때 만큼은 산뜻했다. 남아공에 이렇게 깨끗하고 정비가 잘 된 곳이 있었다니 조금은 놀랍기까지 했다. 


마주오는 차량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파리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찰나에 갑자기 차량이 멈췄다. 무슨 일인가 사람들이 멀뚱멀뚱 주변을 쳐다보고 있는데 우리 드라이버가 차에서 내리더니 갑자기 총을 꺼내는 것이었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갑작스러운 총이 등장, 그리고 탄을 집어 넣더니 장전까지 하는 모습에 침을 꼴깍 삼켰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차에 올라탔다. 아마도 갑작스러운 동물의 습격에 대비를 하려는 듯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파리 내부를 달렸다. 근데 이 차량은 오픈카라서 그런지 인간적으로 너무 추웠다.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동물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차량은 멈춰섰다. 우리 한국인 가이드와 드라이버가 동물에 대해 설명을 하는 동안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찾는데 열중했다. 


확실히 풀사이에 뭔가 있기는 있었다. 그런데 너무 멀리 있어서 카메라에 담기는 커녕 눈으로 보기에도 힘들었다. 저렇게 멀리 있어서야 우리가 제대로 관찰을 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사진이라도 찍어보려고 일부러 디지털 줌을 해서 찍었는데 열심히 사진 찍는데 열중하다보니 이 동물에 대해 들었던 설명을 다 까먹었다. 디지털줌으로 겨우 땡겨서 이정도이지 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처음으로 만났던 동물이 너무 허무하게 지나가 버린 셈이었다. 


아직은 더 많은 동물을 볼 수 있을거란 기대를 가지고 다시 또 초원 위에 펼쳐져 있었던 도로 위를 달렸다. 잠시 후에 호수 근처에서 멈췄는데 멀리서 보이는 저 바위덩어리들이 바로 하마라고 한다. 진짜 하마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우리로써는 그냥 바위처럼 생긴 저 두툼한 것들을 찍었다. 역시 디지털줌으로 찍어서 이정도이지 육안으로는 거의 알 수가 없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예전에는 이 하마 때문에 여성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호수나 물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하마에게 치여서 그렇다고 하는데 어째 여기 하마들은 잠만 자고 있었다. 하마의 거대한 덩치와 무게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다시 또 재빨리 이 곳을 벗어났다. 


너무 추웠다. 무려 10분을 달렸는데도 동물의 뒷꽁무니를 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가 남아공의 사파리가 맞긴 맞는거야? 


가끔 이렇게 품바라도 볼 수 있긴 했지만 순식간에 우리의 눈에서 사라지곤 했다. 그나마 이 한 마리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동물을 보는 것보다 지나치던 사람을 만나던게 어찌나 반갑던지 우리가 동물을 보러 온 것인지 아니면 사파리를 관광하는 관광객들을 보러 온 것인지 조금 아리송했다. 


저 멀리 악어 한 마리가 보였다. 디지털 줌으로 땡겨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악어들은 눈이 아니라 사진 속의 형태로만 감상할 수 있었다. 


역시 관광객들을 만나니 반가웠다. 


춥고 배고팠다. 일반 동물원의 사파리에서 구경하는게 동물을 더 많이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프리카라고 해서 동물들이 여기저기에서 뛰어 노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나마 필란스버그 국립공원에서 제대로 본 동물이라고 한다면 바로 기린이었다. 정말 제대로 본 동물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우리는 무지하게 추운 바람을 그대로 맞으면서 달리기만 했었는데 기린을 보니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에 와서 동물을 하나도 못 보고 돌아갈까봐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기린은 그래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이것도 디지털줌으로 땡겨서 찍은 것이긴 하지만 다른 동물들보다는 도로 근처에 있어서 움직이는 모습을 잘 볼 수 있었다. 다만 가이드가 설명을 하긴 했지만 원래 기린보다 조금 작은 꼬마 기린이라는 점이 아쉽긴 했다. 


물소인지 뭔지 알 수 없었던 동물과 멀리서 얼룩말을 지켜보는 것으로 이 사파리 투어는 끝이 났다. 애초에 가이드가 사파리에 대한 기대는 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아프리카 사파리에 대한 환상이 산산히 부서지던 순간이었다. 아무리 아프리카라고 해도 동물 보는 것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사파리 투어는 오던 그 방향 그대로 되돌아가는 일정인데 여기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관광객들로 가득차 있었다. 아마 월드컵을 보기 위해 온 각지에서 날아온 응원단일텐데 중간 중간에 우리와 격돌하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보였다. 


지글지글 익는 소리가 나의 배고픔을 가중시키길래 나도 핫도그를 먹을까 했는데 줄도 너무 길고, 갑작스럽게 몰려드는 손님에 정신이 없는지 소세지가 많이 타는 것 같아서 먹지 않았다. 나는 여기에서 기념으로 아프리카틱한 엽서 2장 사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역시 멀리서 동물을 간혹 보기는 했지만 계속되는 숨은그림찾기였다. 트럭을 타고 돌아가는 그 순간은 추위와 배고픔에 몸부림을 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한가지 결론지은 것은 아프리카 사파리라고 해서 동물이 뛰어 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