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로는 정말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관광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전부터 지친 몸을 이끌고 트레킹을 했던게 껄로에서의 모든 일정이었다. 사실 나는 너무나 지쳐있었던 상태였다. 껄로 트레킹이 조금 힘들었던 이유도 있을테지만 그보다는 만달레이에서부터 계속 걸었고, 곧바로 버스를 타고 새벽에 껄로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런 피곤한 상태에서 트레킹을 하다니 내 몸이 지칠만도 했다.
온몸이 먼지로 가득했던 상태라서 우선 숙소에 들어가서 씻기로 했다. 숙소에 들어오자 여행자들이 도착했는지 조금 시끌벅적했는데 그 중에서 한 아시아인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단번에 그녀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아봤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저기... 혹시 일본 사람 아닙니까?"
어김없이 물어보는 이 질문에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을 했다. 멋쩍은지 나보고 일본 사람처럼 생겼다면서 웃었다. 체구는 작은 편이었고, 전형적인 일본인처럼 생겼던 여자 아이였는데 혼자서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우선 나는 몸이 너무 지저분했던 상태였고, 하루 종일 걸었던 탓에 얼굴은 벌개졌다. 우선 샤워부터 해야겠다며 일본인과 인사만 잠깐 나누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스턴파라다이스 모텔의 경우 들어가자마자 로비가 있었고, 바로 들어가는 각 방의 문이 있었는데 일본인은 내 옆 방에 체크인을 했었다.
겨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샤워를 했는데 여전히 몸은 무거웠다. 로비로 나와보니 아직도 일본인은 있었고, 그 옆으로는 외국인들이 몇 명 자리를 같이 하고 있었다. 그 때 방금 막 도착한 듯한 외국인이 나에게 오더니 트레킹을 했냐고 물어봤다. 내가 방금 막 트레킹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하니 껄로 트레킹이 어떻냐는 질문부터 나를 트레킹 하자고 꼬셨던 그 가이드 아저씨는 믿을만 하냐고 물어왔다. 옆에 있던 그 트레킹 가이드는 아침에 나를 열심히 꼬셨던 그 아저씨였는데 나를 가리키며 자신의 소개로 트레킹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어쨋든 난 그냥 산만 타다가 돌아왔다고, 치앙마이 트레킹과 같은 재미있는 요소는 기대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줬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일본 여자는 뭔가 심심했는지 내쪽으로 와서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마도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동질감이 작용을 했나 보다. 오사카에 산다는 소개와 함께 몇 마디 이야기를 하다가 같이 인터넷 카페에 가기로 했다.
나는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USB메모리에 옮기지 못한다면 더이상 사진을 찍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 어쨋든 일본인 여자와 함께 걸으면서 인터넷 카페를 찾아나섰는데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껄로에 인터넷 카페가 또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꽤나 괜찮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자리의 대부분은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이용이 쉽지 않았다. 딱 2자리가 남아 있었는데 내가 USB메모리를 숙소에 놓고 오는 바람에 돌아갔는데 갔다오니 이미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어쩔 수없이 기다려야 했다.
밖에서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외국인 3명이 미얀마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얀마 사람은 인레호수가 뭐가 좋냐면서 자신은 한국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국이라는 소리에 나는 귀가 쫑긋해지면서 "한국??" 이라고 말을 했다.
그 때 머리를 묶은 서양인이 나를 쳐다보며 "항쿡 사람?" 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서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채로 어떻게 한국말을 하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한국사람과 결혼했고, 지금은 대구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나단이라고 소개했던 이 호주인은 표정부터 말투까지 너무 익살스러워 한마디 한마디에 웃음이 터지기 일쑤였다.
옆에 있던 스위스 사람, 네덜란드 사람이 있었는데 조나단은 네덜란드 사람을 보더니 히딩크가 진짜 영웅이라느니 한국에서 최고로 대접을 받는 사람이라고 알아서 소개를 했다.
"한국 인터넷 정말 무서워요."
이미 그는 한국 문화에 꽤 적응을 한 듯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뭐든지 여론이 형성되면 무섭다고 표현했다. 그런 한국의 인터넷 문화를 이야기를 하다가 조나단은 나에게 전혀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이명박 좋아요?"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엄청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필 그 많고 많은 질문 중에 왜 이명박일까?
"음... 그.. 사뢈 나뿐 사람... 이메가바이트."
한국말로 저런 이야기를 하던 조나단을 붙잡고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옆에 있던 스위스 사람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하길래 조나단은 영어로 자세한 이야기를 설명해 줬다. 한국의 대통령인데 한국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긴 나도 호주에 있는 동안 무고한 사람을 경찰력으로 억압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했던지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튼 '2메가바이트'라는 말은 나를 엄청나게 웃게 만들었다.
잠시 후 인터넷 카페에서 좀 나이가 많은 아저씨가 나왔고, 이들은 술을 마시러 이동하려고 했다. 조나단 및 여러 사람들은 나를 보며 합류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지만 나는 사진을 옮기는 일이 시급해서 나중에 일이 끝나고 찾아가겠다고 했다. 솔직히 나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는 없었던 상황이었다.
내가 인터넷을 쓰고 있을 때 일본 여자는 간단한 인사만 건네고 사라졌다. 서로 혼자이기 때문에 같이 저녁이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그냥 훌쩍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일본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인터넷은 의외로 너무 빨랐다. 물론 이 빠르다는 기준이 한국은 커녕 태국의 어느 인터넷 카페와 비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느린 수준이었지만 내가 이전에 미얀마에서 했던 인터넷에 비하면 거의 초고속이었다. 그렇게 인터넷도 하면서 사진을 USB에 옮기는데 정말 너무 오래 걸렸다. 약 1시간 반이 되어서야 사진을 겨우 옮길 수 있었다. 컴퓨터 이용료는 1400짯이었는데 그는 내게 1500짯을 가지고 가고, 사탕 2개를 주는 것으로 계산을 해버렸다.
사진을 다 옮기고 나서 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어두워졌다. 조나단을 비롯한 아까 그 사람들을 찾아 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그들과 헤어진 뒤 2시간 가까이 된 상태였다. 그만 포기하고 저녁이나 먹으려고 돌아다녔다. 길 건너편에 있던 식당이 괜찮아 보일거 같아서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미얀마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중에서 식사를 마치고 있었던 한국인 여자 두 분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식당 괜찮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대답을 해주고는 떠나버렸다. 생각해보면 여러 번 만났음에도 많은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고, 친해지지도 못했다. 여행을 하면서 외국인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쉬운데 좀 이상했다.
나는 점심을 안 먹었기 때문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볶음밥을 선택했다. 정말 허겁지겁 먹었는데 맛은 조금 평범한 수준이었다. 근데 밥을 먹으면서 내 몸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트레킹을 다녀오고 난 후 몸이 무거웠지만 샤워를 하고 밥을 먹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던 내 몸이 더 이상해지고 있던 것이다. 거의 억지로 밥을 넣은 후 식당을 나왔다.
마을이 산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껄로의 밤은 다른 곳보다도 유난히 더 추웠다. 하지만 내 몸은 추워서 몸이 떨렸던 것인지 아니면 아파서 떨렸던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밥을 먹고 난 후 맥주라도 한잔하려고 했지만 거리를 걷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다. 그냥 피곤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우선 숙소에 돌아가서 쉬기로 했다.
나는 곧바로 방에 들어가 침대에서 뻗었다. 몸이 너무 아팠다. 열도 나는 것 같았고, 저녁을 잘못먹었는지 속도 안 좋았다. 8시밖에 되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지만 나는 거의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배낭에 있었던 소화제를 겨우겨우 찾아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
밤 10시쯤 되었을까? 밖에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깼지만 나는 아직도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밖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잠이 들 수 없어서 누군지인지도 모를 그들에게 화를 내고 싶었지만 난 일어날 힘조차도 없는 상태였다. 항상 문제없이 잘 돌아다니던 내가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아팠던 적도 처음이었다. 몸살기운에 설사까지 겹쳐서 그날 새벽까지 죽은 듯이 자다가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너무 아픈나머지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렇게 아픈데 내일 인레호수로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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