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로 트레킹은 그냥 산만 오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확실히 치앙마이 트레킹과는 많이 달랐다. 치앙마이 트레킹은 태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는데 고산족이 사는 마을을 둘러보는 것 외에도 코끼리나 뗏목을 타는 등 재미적인 요소가 많았다. 하지만 껄로 트레킹은 그냥 뒷산으로 돌아 옆산을 돌아 다시 앞산으로 이동하는 걷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처음은 괜찮았다. 오랜만에 산행을 하며 마시는 공기가 너무도 맑고 상쾌했기 때문이다. 정말 이곳은 그냥 평범한 산이었는데 이상하게 특별한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치앙마이 트레킹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기대하다간 무지하게 실망을 할테지만 말이다.
산은 점점 가파르게 바뀌었다. 영어를 잘 못하는 가이드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며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볍게 눈인사만 주고 받는게 전부였다. 그나마 이 아저씨는 항상 나를 배려해서인지 쉬었다갈지 혹은 물이 필요하냐고 버릇처럼 물었다. 초반이라 물은 거의 마시지 않았는데 계속되는 산행에 슬슬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 좁은 산길로는 수시로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어떻게 이런 산 위로 오토바이가 지나가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산 위에 있는 사람이나 아래에 있는 사람이나 도로가 제대로 깔려있지 않으니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은 오토바이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끔 먼지를 구름처럼 몰고오는 오토바이 때문에 좁은 길 옆으로 비켜서는 것은 물론이고 먼지로 샤워를 해야만 했다.
걷기는 계속됐다. 아무리 껄로 트레킹이 그냥 뒷산을 올라간다고는 하지만 쪼리만 신고 여길 왔다니 나도 참 어처구니 없었다.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해서 산은 무지하게 올라다녀 봤다고는 하지만 역시 산은 산이다. 아무리 껄로 트레킹이 가볍게 가는 것이라고 산인데 내가 너무 우습게 봤다. 힘들긴 힘들었다.
아저씨가 잠깐 쉬었다 가자고 해서 길가에 앉아 쉬었다. 아까 가이드 아저씨의 집 앞에서 딴 열매를 잘라서 먹어봤는데 너무 셨다. 내가 너무 시다고 하니 아저씨는 그냥 웃고만 있었다.
너무 물을 자주 마시면 더 힘들어지니 물은 가끔씩만 마시고, 잠깐 5분정도씩 쉬면서 주변 경치를 바라봤다. 껄로 자체가 산골마을이라 산이 많은건 당연했지만 막상 산 위에서 주변을 보니 한국의 어느 지역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비슷해 보였다. 잠시 쉬면서 바라본 하늘은 더 가까워 보였다.
한참을 걷다가 아저씨는 잠시 멈춰서더니 저 산 비탈길에 있는 곳이 차밭이라고 했다. 이곳에 있는 차가 무척 유명하다는 식으로 설명을 했다.
드디어 원하던 고산마을에 도착했다. 멀리서 집이 보이는 것이 여기가 주요 목적지인가 했다. 그렇게 고산마을을 향해 걷고 있는 도중 나무그늘에 앉아 쉬고 있던 사람들이 보였다. 두 명의 여자분이었는데 내가 지나가다가 한국말이 들려서 인사를 하니 서로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짧게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는데 나중에 다시 또 만날 수 있었다.
고산마을에 도착하니 돼지가 가장 먼저 나를 반겼고, 아주 가끔씩 물건을 팔려고 오는 꼬마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껄로도 한참이나 시골마을이었는데 여기는 더 했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물건을 팔려는 아이들도 별로 없었다.
나에게 가방을 팔려고 했지만 나도 이와 비슷한 가방을 메고 다녔던 상태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꼬마아이가 나에게 물건을 팔려고 했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필요가 없는 물건들이었다. 미안하기는 했지만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여행자는 이럴때 더 안타깝다. 솔직히 얼마 되지도 않은 것들인데도 사줄 수가 없다. 그 작은 돈도 나에게는 생활비였으니 말이다.
나는 이 마을이 우리가 가려던 고산마을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마을이 아니라 다른 마을이라고 한다. 덕분에 또 걸어야 했다. 물론 껄로 트레킹이 치앙마이 트레킹과는 다르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좀 많이 심심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어느 마을. 하지만 갑자기 내 카메라에 있었던 메모리 카드가 맛이 갔다. 덕분에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어서 다른 메모리 카드를 꺼내 사진을 몇 장 삭제한 뒤 겨우 찍을 수 있었다. (위의 사진들은 몇 달간 복구를 못하고 있다가 며칠 전에 겨우 복구를 할 수 있었다) 사진 속의 꼬마 아이는 참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아쉽게도 카메라 문제 때문에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우리는 어느 아주머니 집으로 초대되었다. 영어를 못했던 아저씨가 통역을 해줬는데 차를 마시고 가라는 것이었다. 나무로만 이루어진 허름한 집에 들어서자 아주머니는 차와 만다린을 꺼내줬다. 만다린은 몇 개를 먹어봤지만 전혀 달지 않았다. 하지만 차는 깊은 맛이 우러져 나와서 꽤 마음에 들었다. 더운 날씨에 왠 차를 마시라는지 불평아닌 불평을 속으로 했지만 차의 맛을 보고는 그런 기분이 싹 사라졌다.
순수한 마음으로 나에게 이런 차를 대접하는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비닐봉지 몇 개를 들고 오셨다. 수제로 만든 가방이나 모자 등이 있었는데 관심이 가는 것은 전혀 없었다. 나에게 가방을 꺼내 보였는데 이미 내가 메고 있었던 가방과 매우 비슷했다. 나는 태국에서 샀던 가방을 살짝 보여주자 아주머니도 쉽게 웃음을 지어버렸다. 이들은 장사에 참 미숙했던 것이다. 하긴 미얀마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몇 명되지도 않을 뿐더러 그 중에서 껄로를 거쳐가는 여행자는 더더욱 별로 없을 것이다.
치앙마이 고산마을은 상업화에 물든 감이 없지않아 있다. 하지만 껄로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 여행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재미없고 심심하고 힘들기만 한 것이 바로 껄로 트레킹일테지만 반대로 진짜 고산마을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이 마을을 벗어나서 또 걷기 시작했다. 참 많이도 걷는다. 정말 우습게 봤던 껄로 트레킹 조금씩 지치기만 했다. 일반적인 산행보다 조금 더 열심히 걷는 편이긴 했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오래 걸을 줄은 몰랐다. 하루짜리 트레킹이었기 때문에 3시간정도 걷다가 다시 내려오는 그런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마을을 빠져나가니 아이들이 나무로 만든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비록 그림같은 풍경은 아닐지라도 나는 멈춰서서 사진 찍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건 아마 이 작은 마을까지 기억하고자 하는 여행자의 마음때문이 아닐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연달아 걷다가 아저씨는 이제 이곳만 올라가면 점심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길이라 그런지 무지하게 가파랐다. 내 앞에는 서양 할아버지가 보였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지 힘들어하시더니 결국 뒤에 오던 오토바이에 올라 탔다.
그렇게 정상에 올라오니 몇 개의 나무집이 보였고, 그 중에 하나는 식당이었다. 정상이라 그런지 이름도 'View Point Restraurant'였다. 식당은 나무로 된 테이블과 의자가 4개정도 있었을 뿐일 정도로 허름하긴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오직 여기밖에 선택권이 없는 듯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까전에 봤던 한국인이 보였고, 잠시 후에 스페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도착했다. 헥헥거리면서 들어오는 것을 보니 정말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근데 사실 나도 다리도 아프고, 더위에 땀을 흘려서 그런지 밥맛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밥은 먹지 않겠다고 했고, 콜라 한잔을 마시겠다고 했다. 아저씨는 나보고 정말 안 먹냐고 물어봐서 내가 걱정하지 말고 밥을 먹으라고 당부를 했다. 우선 콜라와 스프라이트를 하나씩 주문했다. 그리고 아저씨에게 꼭 점심 먹으라고 억지로 면요리 하나를 주문했다.
음료를 마시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과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스페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이런 황량한 곳에 살고 있는 것일까? 콜라와 스프라이트는 어떻게 공수하고 있을까? 물론 도시보다 콜라의 가격은 비쌌다. 1개당 1000짯이나 했다.
잠시 후 면요리가 나왔는데 언뜻 보기엔 짜파게티처럼 생겼다. 아저씨가 배고프실거 같아서 계속 권하고 나는 콜라 하나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기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1시간을 넘게 쉬다가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껄로 트레킹은 이렇게 올라왔다가 다른 길로 돌아가는게 전부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식당을 나서면서 계산을 하는데 이상하게 음료가격만 돈을 받았다. 왜 그런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맙소사! 이 친구는 쪼리를 신고 산을 올라왔잖아!"
식당을 나설 때 스페인 할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물론 내 발은 흙으로 엉망진창이 된 상태이기는 했지만 쪼리만 신고 온 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나 보다. 나야 몰랐으니까 트레이닝복에 쪼리만 신고 소풍가는 기분으로 트레킹에 임했던 것 뿐인데 아무튼 스페인 할아버지의 표정이 너무 웃겼다.
"한국 남자들은 모두 군대를 다녀오니 이정도야 끄떡 없어요."
산을 내려가는 것은 그래도 한결 수월했다. 먼지는 훨씬 더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내리막길은 내리막길이다. 훨씬 가벼운 몸상태로 내려올 수 있었다. 올라갈 때와 똑같은 길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지도를 보고 정확히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껄로를 중심으로 산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코스같았다.
그들의 생활은 저랬다.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풀숲에서 방황하는 소가 내 옆에 등장해서 깜짝 놀랐다.
내리막길이라고 해도 돌아가는 길은 참 오래걸렸다. 몇 번을 쉬다 걷다를 반복하니 드디어 마을이 나타났다. 껄로에는 금방 도착할 듯 했다.
길을 걷다보니 미얀마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미얀마에서는 초록색 옷을 아이들이 학생이었는데(순전히 내 추측이지만) 내 옆에 지나가면서 "아 원 노바디 노바디 벗츄~♬" 라고 불러서 깜짝 놀랐다. 여기에 있는 아이들도 한국의 원더걸스를 알고 있다니 참 신기했다.
그렇게 시골마을 길을 걸으며 껄로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껄로에 새벽에 도착한 뒤로 곧바로 트레킹을 갔다오니 몸은 무척 피곤하긴 했다. 아니 어쩌면 전날 만달레이에서 하루 종일 걸었던 피로가 덜 풀려서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너무 힘든 강행군의 연속이었던거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새벽부터 트레킹을 했기 때문에 껄로를 제대로 구경도 못해봤다.
아저씨는 나를 숙소까지 바래다줬는데 조금 아쉬운지 차나 한잔 하자고 했다. 미얀마 사람들은 차에 대한 사랑이 정말 대단한거 같다. 보통은 맥주나 한잔 하자고 제안할텐데 여기서는 차를 마시는게 더 좋은가 보다. 나도 숙소에 바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으니 괜찮다고 했다.
우리는 숙소 근처의 찻집에서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면서 트레킹 가이드 비용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10000짯을 주니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아저씨가 참 순박해 보였다. 영어를 잘 못해서 대화를 많이 하지 못해서 아쉽기는 했지만 정말 친절하고 좋았던 가이드였다. 잠시 후 차를 다 마시고 일어설 때 계산하려는 것을 내가 강하게 만류하며 내가 내버렸다. 400짯이 나왔으니 차 한잔의 비용은 200짯으로 얼마되지 않은 비용이었지만 자신이 내겠다고 하는 아저씨가 꼭 우리 한국 사람의 따뜻한 정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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