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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쉐로 돌아왔다. 인레호수 투어를 마치고 피곤에 지쳐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낭쉐에 있는 동안 할 일이 없어 나갔다가 숙소로 들어오고, 다시 숙소가 지겨워 밖으로 돌아다닌 적이 많았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TV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숙소에 딱히 말상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몸이 근질근질해서 밖으로 나갔다. 


미얀마의 어느 도시를 가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낭쉐는 유난히 심심했던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다고 투정을 부렸던 만달레이조차 만달레이 힐이나 꾸도더 파고다와 같은 관광지가 있었던 것에 반해 낭쉐는 그냥 인레호수 투어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마을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데 왜 이리 돌아다니는 여행자들은 안 보이는지 더더욱 혼자라는 사실이 외롭게 느껴졌다. 


심심해서 PC방이나 찾아다녔다. 다행스럽게도 낭쉐에는 PC방이 있었는데 인터넷 속도도 그럭저럭 웹서핑을 할 정도는 되었다. 미얀마에서는 간혹 PC방을 가면 웹서핑이 불가능할 정도로 느린 곳이 많은데 그 속도가 어느정도냐면 메일을 보려고 5분동안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봐도 열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1시간정도 힘겨운 인터넷을 즐기고 이용료 1000짯을 내고 나왔다. 

다시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다녔지만 역시 눈에 띄게 할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숙소로 돌아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은 어두워졌고, 내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배고픔을 알려왔다. 혼자서 저녁을 먹는 일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도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탈리안 커플 마시모와 바라밤이 떠난 이후 이제 웃으면서 대화를 나눌 친구가 사라져서 그런 것일까? 그래도 배가 고프니 몸을 일으켜 밥을 먹으러 나갔다. 


한참을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스마일링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대부분 서양요리로 가득해서 어쩔 수 없이 토마토소스 파스타를 주문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내가 받은 접시에는 허연색 요리가 나온 것이다. 적당히 항의하려고 했지만 내 옆에 붙어있었던 네팔인 종업원과 대화를 하다보니 그냥 먹게 되었다. 가게도 워낙 한가해서 손님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종업원은 나와 대화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 가게에서 꽤 오래 머물다가 더이상 여기에 앉아있는 것도 지겨워져서 나가기로 했다. 가격은 파스타 2500짯, 파인애플 쥬스 500짯으로 적당한 편이었다. 

'차나 한잔 마실까?'

지나가면서 보이는 작은 가게 안에는 미얀마인들이 차를 마시고 있는 흔한 장면이 보였는데 왠지모르게 나도 저기에 껴서 차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금세 귀찮아졌고, 목적지 없이 거리를 걷기만 했다. 


아직 8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맥주를 마시고 싶기도 했지만 혼자여서 기분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왜 이럴까? 혼자여도 여태까지 잘 다녔는데 갑자기 외로움이 마구 밀려왔다. 깜깜한 밤 아래에서 내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혼자서 세계 일주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거구나. 역시 혼자하는 여행은  외로운거였어.'

혼자 여행을 다니고 있었던 나였지만 새삼스럽게 혼자 세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껄로에서부터 몸이 아픈 이후로 마음도 많이 나약해진 모양이다. 


그렇게 밤하늘을 보고 터벅터벅 걷다가 결국은 숙소로 돌아갔다.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숙소로 돌아가고 있는데 아까 전에 내가 걸었던 거리와는 다르게 숙소 주변의 거리는 가로등이 거의 없어 너무 어두웠다. 겨우 길만 확인할 정도였다. 

거의 숙소에 다 왔을 무렵 3명의 여행자가 내 앞에 보였다. 그냥 지나갈 줄 알았던 3명이 멈춰서더니 갑자기 나를 보며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중 가장 개성있게 생긴 친구가 자신이 기억나지 않냐고 물었다. 상세한 설명을 들으니 껄로에서 나에게 트레킹이 어땠냐고 물어봤던 친구였던 것이다. 아주 잠깐 봤는데도 내 빨간색 옷을 보고 기억이 났다며 말을 건넸다고 했는데 정말 신기했다. 

그제서야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소개를 했다. 독일인 크리스챤, 알바니아 사람이지만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었던 마싯다, 코스타리카인 카를로스, 이렇게 3명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거리에서 10분이 넘게 서서 대화를 나누었다. 

"어디를 가던 도중이지? 우리는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갈 생각인데 함께 하지 않을래?"

노란색 모자를 쓰고 있었던 크리스챤이 말했다. 사실 너무 외롭다 못해 숙소로 돌아가던 도중인데 이 친구들을 만났으니 이젠 돌아갈 필요가 없어졌던 셈이다. 

"여기는 어디에 식당이 있지 알아?"
"내가 안내할께. 나만 따라오라구. 아까 저녁을 먹었는데 그쪽 주변에 식당이 많이 몰려있던데?"

혼자 걷던 거리를 이제는 넷이 걷게 되었다. 어떻게 내가 외롭다고 느끼자마자 이렇게 친구가 생기는 것인지 참 신기했다. 거리를 걸으면서 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들은 껄로에서 트레킹을 하며 인레호수까지 걸어왔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하루짜리 트레킹을 했지만 껄로에서는 맘만 먹으면 1박 2일이나 2박 3일 트레킹을 할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인레호수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1박 2일 트레킹의 경우 밤에는 사찰에서 묵게 되는데 이들은 사찰의 규율대로 새벽 4시에 일어나 같이 불경을 외우며 깨어있느라 죽는줄 알았다고 했다. 


아까전에 내가 갔었던 골목 근처에는 노점이 있었다. 이들은 노점에 흥미를 보이더니 맛있어 보인다며 여기에서 먹어보자고 했다. 생각보다 무척 저렴해 보이는 친구들의 식성이었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샐러드 비슷한 것과 치킨스프라고 했던 찌개종류였다. 거의 우리나라 오뎅탕과 비슷한 맛이 났는데 무척 괜찮았다. 심지어 얼큰하기까지 했는데 미얀마에서 이런 맛은 처음이었다. 

이 친구들은 거의 감격하다시피 하며 먹었다. 국물이 조금 맵기는 했지만 모든 음식이 다 맛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인 아주머니에게는 미얀마에서 먹은 최고의 음식이라고까지 했으니 정말 맛있긴 맛있었나 보다. 저녁을 먹으면서 마싯다는 그동안 미얀마 음식이 너무 맛이 없어서 혼났다며 태국 음식이 그리웠다고 했다. 그렇게 음식을 주문하고 먹는 동안 카를로스는 근처 가게에 가서 맥주 4병을 사들고 왔다. 크리스챤은 옆 노점에서 꼬치를 몇 개 사들고 왔다. 정말 저렴한 음식들이긴 했지만 우리에겐 최고의 만찬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부드러운 미얀마 비어를 마시면서 새로운 만남을 즐겼다.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어김없이 묻는 북한에 대한 답변도 했다. 크리스챤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눈을 반짝이더니 이렇게 말을 했다. 

"아, 갑자기 생각난건데 이거 되게 재미있는 조합이지 않아? 유럽인 2명, 남미인 1명, 아시아인 1명이네?"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다 독일인인줄 알았는데 그제서야 서로 국적이 틀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우리는 재미있는 조합이었다.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서 친구가되고,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 여행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맥주를 마시며 한참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카를로스가 말을 했다. 

"크리스챤의 모자 좀 봐봐. 저거 어디서 산 줄 알아? 바로 뽀빠산이야. 저 모자에 적힌 말이 미얀마어로 바로 '뽀빠산'이란 말이지. 완전 웃기지 않아? 뽀빠산에 갔을 때 신나서 저걸 사더니 아주 좋아서 맨날 쓰고 다닌다고."

"저 모자 완전 사랑하나봐. 너무 웃겨!" 마싯다가 거들었다. 


"자자~ 그러지 말고 우리 기념으로 사진이나 찍자고." 

마침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던 내가 제안을 했다. 정말 만난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너무 친근했던 친구들이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크리스챤은 내일 뭘 할거냐고 물었다. 

"글세... 혹시 카누 타봤어? 어떤 사람이 이 근처에서 카누를 탔다고 하는데 괜찮지 않아?"
"와~ 나 카누 타고 싶어!"

카누라는 말에 마싯다가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뚜렷하게 우리가 뭘 하겠다는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 그럼 우리 카누를 탈지 말지는 내일 정하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생각해보자고."

적당히 먹은 우리는 자리에 일어나 숙소로 돌아갔다. 혼자서 터벅터벅 걸었던 그 길을 이제는 4명이 같이 걷게 되었다. 미얀마 여행을 혼자했지만 전혀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자주 친구들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혼자했던 여행이기 때문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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