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르륵"
내 배속은 배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하카타에서 고쿠라로 오던 열차안에서 에끼벤(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은 뒤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것이다. 아까 먹었던 모찌로는 도저히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서 모지코를 둘러보는 것을 그만두고 식당부터 찾기 시작했다.
'역시 라멘이 좋을까?'
일본의 음식에 대해 아는 것도 없어서인지 다른 먹거리는 딱히 떠오르지도 않았고, 다른 음식은 분명 비쌀거라고 단정지어버렸다. 배낭여행자의 습관이 여기에서 나오나보다. 라멘이든 뭐든 싸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보자며 의욕적으로 거리를 걷다 커다란 스시(초밥)집을 지나치게 되었다.
스시의 본고장이었던 일본에서 아직 스시도 먹어보지 않아서 그런지 갑자기 스시가 땡겼다. 문제는 가격이었는데 일단 가게부터 규모가 커보여서 가격이 좀 비싸보였다. 좀 망설이기는 했지만 벽에 붙어있던 플랜카드에는 도시락 세트가 2000엔 미만부터 시작이었고, 스시의 가장 싼 접시는 105엔이라고 적혀있어서 그냥 들어갔다. 괜히 고민할 필요없이 까짓거 비싸더라도 한번 먹어보자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어쩔 줄 몰랐지만 이내 나를 외국인으로 알아보고 자리로 안내해줬다. 그리고는 접시를 세팅해주는 것으로 종업원은 임무를 마쳤다는 듯이 사라졌다.
한국에서도 회전초밥집을 자주 가봤던 것도 아니지만 여기는 '일본의 스시는 바로 이런 곳에서 먹는거야!'라고 속으로 말을할 정도로 항상 상상속에서만 등장했던 그런 식당과 똑같았다. 내 바로 앞에는 먹음직스러운 스시가 지나가고 있었고, 요리사는 차곡차곡 쌓여져 있는 접시를 정리하면서 스시를 그자리에서 만들어 담았다. 그리고 가게 안에는 즐겁게 스시를 먹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선 분위기는 맛있어 보였다. 그런데 스시를 어떻게 먹으면 되는거지? 말이 통하지 않아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조금 답답하기는 했지만 그냥 접시를 집어서 먹으면 될 것 같았다. 접시 앞에는 가격도 다 써있으니 내가 먹으면서 가격도 너무 오버되지 않도록 계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조그만 수도관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옆의 사람을 살펴보니 아래에 있는 버튼을 눌러 따뜻한 물을 받아 마실 수 있었다. 우선 따뜻한 녹차를 마시면서 결전의 의지를 다졌다. 이제 시작해볼까?
물론 가격에 민감해서 그런지 300엔짜리 이상은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우선 100엔 후반대의 스시가 만만해 보여서 접시를 집었다. 깔끔해 보이는게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였다. 젓가락으로 집은 뒤 간장에 살짝 찍어서 먹어보니 진짜 맛있었다. 스시가 녹는다는 맛은 바로 이런 것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었구나!
이번엔 200엔 중반이었던 스시를 집어봤다. 솔직히 내가 음식에 대해 문외하다보니 정말 뭘 먹는지도 모르고 먹고 있었다. 그냥 모양과 가격만 보고 판단했던 것인데 그런데도 다 맛있었다. 바깥에서 봤을 때는 105엔이 가장 싸다고 했지만 실제로 먹은 가장 싼 스시는 190엔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보통은 200엔 중반에서 300엔 초반의 스시를 많이 먹었다.
모양이 독특해서 옆으로 뉘어봤는데 스시 안에도 뭔가가 들어있었다. 간장에 살짝 찍어서 아주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었지만 스시는 거의 빛의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내 바로 옆에는 커플로 보였던 남녀가 열심히 접시를 비우고 있었다. 가게는 남녀노소 다 있을 정도로 다양한 연령층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너무 빨리 먹으면 돈이 너무 많이 나올까봐 걱정이 앞섰는데 또 새로운 접시를 집어들었다. 이번에는 오징어다. 쫀득쫀득하면서도 안에는 순대처럼 씹히는 내용물이 무척 맛있었다. 오징어 순대를 먹는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할까?
밥 위에 살짝 포개진 듯한 스시의 모양이 참 예뻤다. 나중에 후쿠오카에서 100엔 스시전문점을 간적이 있었는데 거기는 스시의 맛도 별로였지만 우선 모양부터 뭉개진 스시였다. 게다가 젓가락으로 스시를 집어올리면 다 부서지는데 먼저 흘리지 않고 먹는 기술부터 연마해야 할 정도로 왜 저렴한지 알 수 있었던 곳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100엔 스시집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100엔 스시의 값어치가 딱 그정도라고 볼 수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맛집이라고 소개하기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내 눈 앞에서 직접 스시를 만들고 접시에 담는 과정을 볼 수 있었으며, 100엔 후반대 저렴한 스시도 젓가락을 사용해서 하나의 흐트러짐없이 집을 수 있었다. 물론 맛도 훌륭했다.
스시를 마구 집어먹고 싶다는 욕구를 가격을 보면서 억눌렀다. 자리에 오래 앉아있다보니 내 앞에 돌아가는 스시는 계속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옆에 있었던 사람은 메뉴가 적혀있는 듯한 종이에 체크를 하더니 요리사에게 건네고 있었는데 바로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는 장면이었다. 그제서야 내 앞에 놓여진 종이의 사용법을 이해하기는 했지만 까막눈이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때 내 옆에서 그릇을 정리하시던 아주머니에게 사용법을 알려달라고 손짓발짓을 한 뒤에 내가 먹고 싶었던 문어를 얘기했다.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일본어로 문어가 '타코'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머니는 내 말을 이해했는지 주문서를 체크해서는 요리사에게 전해줬다.
잠시 후 나는 씹히는 맛이 일품인 문어스시를 맛볼 수 있었다.
내가 먹었던 스시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다보니 만족감과 포만감이 동시에 왔다. 음식의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맛있다 아니다를 판단하기도 어렵고, 실제로 내가 배가 무지하게 고팠던 상태였지만 여기 스시는 너무 맛있어서 살살 녹았다. 역시 일본에서 먹는 스시가 이렇게 맛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 잘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열심히 스시를 만드는 요리사의 모습이 인상이 깊어서 그런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니 흔쾌히 응해주셨다.
스시를 다 먹고 계산을 하려고보니 종업원이 와서는 어떤 기계로 쌓여져있는 접시를 바코드를 찍듯이 투과시켰다. 그랬더니 기계에서 영수증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 영수증으로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먹은 스시의 가격은 1600엔이 살짝 넘긴 금액이 나왔는데 저렴한 스시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적당히 나온듯 하다. 아마 일반적으로 맛있게 먹으려면 2000엔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쨋든 항상 부페에서 먹는 스시만 먹다가 일본에서 먹어보니 정말 스시가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맛있는 스시가 먹고 싶어서 또 일본으로 날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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