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에 도착해서 쉐라톤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침대에 뻗어 잠이 들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이미 오후는 훌쩍 넘긴 시간이었는데 이대로 호텔에만 누워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보니 날씨가 포근할 정도로 너무 따뜻했다. 일본의 아래지방인 큐슈에서도 남쪽이었던 미야자키라서 그런지 완연한 봄이 왔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고, 날씨도 상쾌하니 이제 버스만 빨리 오면 더할나위없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올 생각이 없었다. 그 이유는 시가이아 리조트에서 미야자키 시내로 향하던 버스는 무려 1시간 간격으로 있었던 것이다. 가끔씩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 물어보면 미야자키로 가는 버스가 아니라는 대답을 들을 뿐이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니 아무나 붙잡고 태워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정말 1시간을 기다린 끝에 버스를 타고 미야자키로 갈 수 있었다. 약 30분을 달려서야 미야자키 시내가 보일 정도였는데 새삼 시가이아 리조트가 너무 먼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미야자키역에 도착한 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서 미야코시티로 가는 방법을 물어봤다. 미야자키역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여러곳 있는데 까막눈이라서 어디에서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친절한 사람의 도움으로 미야코시티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사실 미야자키에 왔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야자키의 주요 관광지들은 미야자키 시내보다도 미야자키 현에 넓게 퍼져있기 때문이다. 거리도 멀고, 이동하는데 버스나 기차로 최소 30분이상 걸리는 관광지 중에서 여러 지역을 살펴볼 수는 없었다. 우선 미야자키 교통의 중심지인 미야코시티로 가서 생각해 보기로 했는데 시간이나 거리를 생각해 볼 때 30분정도 걸리는 아오시마가 적당할 것으로 보였다.
남국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미야자키 시내를 벗어나더니 미야코시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야코시티를 제대로 돌아다니지는 않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버스정류장으로 가득해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 거쳐가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지 아오시마로 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물어보는 행위가 반복되었다. 미야코시티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아저씨에게 아오시마로 가는 버스를 물어봤는데 17번, 18번 정류장에서 타면 된다고 아주 친절히 알려주셨다. 내가 17번 정류장이 어디있는지 찾으려고 하자 같이 길을 건너면서 17번까지 안내해주셨는데 자신은 아오시마 출신이라는 말도 슬쩍 꺼냈다.
17번과 18번 정류장에는 아저씨가 알려준대로 목적지인 아오시마가 적혀있었다. 이제 아오시마로 가는 버스만 오면 된다. 그렇게 10분, 20분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는 도무지 올 생각이 없었다. 뒤늦게 버스 배차 시간표를 확인해보니 무려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미야자키의 외곽쪽으로 나가는 대부분의 버스에 해당하던 사항이었다.
거의 40분 정도를 기다린 끝에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버스도 이게 맞는지 틀린지 확인할 길이 없어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서 겨우 탈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시스템이 잘 갖춰진 일본에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물어서 찾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해서 아오시마를 선택한 것인데 사실 아오시마도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미야자키도 그리 큰 도시가 아니었는데 버스를 타고 밖을 바라보니 시골의 어느 한적한 도로의 모습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아마 그렇게 멍하니 30분동안 앞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정신이 몽롱해질무렵 아오시마에 도착했다는 버스기사 아저씨의 말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내릴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이런 한적한 동네가 아오시마라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마을은 한없이 조용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가는데 갑자기 낯선 땅에 떨어져서 그런지 벌써부터 돌아가는 방법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내 그런 걱정들은 접어두고 사진에서만 보였던 아오시마 섬을 찾아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방향감각이 없어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지만 그냥 바닷가쪽으로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걸어가봤다.
바다쪽으로 걸어가니 시원한 파도소리가 들렸고, 멀리서는 아오시마 섬이 보였다. 둘레가 고작해야 1.5km밖에 되지 않는 아오시마 섬은 멀리서봐도 아담해 보이는게 인상적이었다.
날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미야코시티에서 버스를 한참 기다렸던 순간부터 시간이 너무 늦어 아오시마를 볼 수 없을거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잠깐이라도 둘러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이미 6시를 넘긴 상태였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이대로 미야자키 시로 돌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아오시마를 들어가 볼지 고민하고 있었을 때 한 아주머니가 다리를 건너 오고 있었다. 재빨리 다가가 아오시마에 들어갈 수 없냐고 물어보니 뭐라고 말을 조금 건네려다가 이내 다리쪽을 보면서 외쳤다.
"하야쿠. 하야쿠!"
일본어를 모르지만 분명 '빨리'라는 의미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다리쪽에서 건너온 여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하게 보였는데 아주머니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영어로 설명을 해주었다. 자신들도 너무 늦게 와서 아오시마를 제대로 못 보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아쉬웠지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힘들게 찾아왔는데 아오시마는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가게 된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모녀 여행자와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보고 혼자 여행중이냐는 물음에 혼자 다니고 있다고 하니 조금 신기하게 보는듯 했다. 자신들도 큐슈를 여행중인데 미야자키에서는 다 늦어서 선멧세 니치난과 아오시마 둘다 볼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제 미야자키로 돌아가는지 물어보자 그녀는 곧바로 가고시마로 간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들은 미야자키에서 숙박을 했던 것이 아니라 차를 가지고 여행을 하고 있었고, 미야자키에서 가고시마로 이동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진 밤거리를 걷게 되었다. 그들과 헤어지기 직전에 미야자키로 돌아갈 때는 열차를 이용해 보고 싶어서 물어보니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이 근처에 역이 있냐고 되물었다. 당연히 나야 이용을 해보지도 않았고, 일본을 여행하고 있는 여행자니 알리가 없다. 어쨋든 그녀가 주변에 있던 사람에게 역의 위치를 물어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나를 차가 있는 곳으로 부르더니 역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예상치도 못한 호의에 감사하다고 차에 올라탔다. 조금 어색한 기운이 감돌기는 했지만 역까지 쉽게 찾아갈 수 있어서 나야 좋기는 했다. 물론 역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하니 즐거운 여행이 되라는 여행자의 인사가 오고갔다. 아오시마는 제대로 구경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오시마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혼자 여행을 다니는 나를 위해 호의를 베푸는 여행자를 만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오시마역은 매우 허름하면서도 작았다. 전형적인 시골의 간이역으로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다. 인사를 건넸는데 나를 보더니 일본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해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주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라 영어는 통할리가 없었고, 내가 아는 일본어를 총동원해봤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과 혼자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가 친근하게 느껴지셨는지 계속 말을 거셨고, 가지고 있던 바나나와 요구르트를 주기도 했다.
"예쁘네. 예뻐." 그래 아마 이런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각자 대화를 나누면서 나에게 예쁘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나 표정과 손짓으로는 알아듣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다. 쉬지않고 얘기를 하시는데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이해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를 반복했다. 왜 그랬는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알 수가 없지만 할아버지는 한자로 무언가 적기 시작했는데 아마 자신의 주소로 보였다. 게다가 난 이 할아버지의 증명사진까지 건네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30분쯤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던 그런 대화를 이어갔다.
잠시 후 나는 중학생의 도움으로 미야자키행 열차를 탈 수 있었다. 미야자키로 가는 방향은 역에서 철로를 건너가야 했다.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잘 가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손짓도 하면서 계속 지켜봤다.
나는 그렇게 아오시마 여행은 헛탕이었지만 또 다른 인연을 만나고 무사히 미야자키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참 짧은 만남의 연속이었지만 일본 여행은 단순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을 깨고 배낭여행자 스타일 그대로 여행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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