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에 도착해서 쉐라톤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침대에 뻗어 잠이 들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이미 오후는 훌쩍 넘긴 시간이었는데 이대로 호텔에만 누워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보니 날씨가 포근할 정도로 너무 따뜻했다. 일본의 아래지방인 큐슈에서도 남쪽이었던 미야자키라서 그런지 완연한 봄이 왔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고, 날씨도 상쾌하니 이제 버스만 빨리 오면 더할나위없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올 생각이 없었다. 그 이유는 시가이아 리조트에서 미야자키 시내로 향하던 버스는 무려 1시간 간격으로 있었던 것이다. 가끔씩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 물어보면 미야자키로 가는 버스가 아니라는 대답을 들을 뿐이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니 아무나 붙잡고 태워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실 미야자키에 왔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야자키의 주요 관광지들은 미야자키 시내보다도 미야자키 현에 넓게 퍼져있기 때문이다. 거리도 멀고, 이동하는데 버스나 기차로 최소 30분이상 걸리는 관광지 중에서 여러 지역을 살펴볼 수는 없었다. 우선 미야자키 교통의 중심지인 미야코시티로 가서 생각해 보기로 했는데 시간이나 거리를 생각해 볼 때 30분정도 걸리는 아오시마가 적당할 것으로 보였다.
거의 40분 정도를 기다린 끝에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버스도 이게 맞는지 틀린지 확인할 길이 없어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서 겨우 탈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시스템이 잘 갖춰진 일본에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물어서 찾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날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미야코시티에서 버스를 한참 기다렸던 순간부터 시간이 너무 늦어 아오시마를 볼 수 없을거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잠깐이라도 둘러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야쿠. 하야쿠!"
일본어를 모르지만 분명 '빨리'라는 의미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다리쪽에서 건너온 여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하게 보였는데 아주머니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영어로 설명을 해주었다. 자신들도 너무 늦게 와서 아오시마를 제대로 못 보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아쉬웠지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힘들게 찾아왔는데 아오시마는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가게 된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모녀 여행자와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보고 혼자 여행중이냐는 물음에 혼자 다니고 있다고 하니 조금 신기하게 보는듯 했다. 자신들도 큐슈를 여행중인데 미야자키에서는 다 늦어서 선멧세 니치난과 아오시마 둘다 볼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제 미야자키로 돌아가는지 물어보자 그녀는 곧바로 가고시마로 간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들은 미야자키에서 숙박을 했던 것이 아니라 차를 가지고 여행을 하고 있었고, 미야자키에서 가고시마로 이동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진 밤거리를 걷게 되었다. 그들과 헤어지기 직전에 미야자키로 돌아갈 때는 열차를 이용해 보고 싶어서 물어보니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이 근처에 역이 있냐고 되물었다. 당연히 나야 이용을 해보지도 않았고, 일본을 여행하고 있는 여행자니 알리가 없다. 어쨋든 그녀가 주변에 있던 사람에게 역의 위치를 물어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나를 차가 있는 곳으로 부르더니 역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예상치도 못한 호의에 감사하다고 차에 올라탔다. 조금 어색한 기운이 감돌기는 했지만 역까지 쉽게 찾아갈 수 있어서 나야 좋기는 했다. 물론 역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하니 즐거운 여행이 되라는 여행자의 인사가 오고갔다. 아오시마는 제대로 구경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오시마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혼자 여행을 다니는 나를 위해 호의를 베푸는 여행자를 만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오시마역은 매우 허름하면서도 작았다. 전형적인 시골의 간이역으로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다. 인사를 건넸는데 나를 보더니 일본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해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주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라 영어는 통할리가 없었고, 내가 아는 일본어를 총동원해봤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과 혼자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가 친근하게 느껴지셨는지 계속 말을 거셨고, 가지고 있던 바나나와 요구르트를 주기도 했다.
"예쁘네. 예뻐." 그래 아마 이런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각자 대화를 나누면서 나에게 예쁘다는 말을 건넸다.
잠시 후 나는 중학생의 도움으로 미야자키행 열차를 탈 수 있었다. 미야자키로 가는 방향은 역에서 철로를 건너가야 했다.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잘 가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손짓도 하면서 계속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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