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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에서 고속페리를 타고 시마바라로 건너 온 나는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시마바라에 왔으니 당연히 시마바라는 둘러봐야 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운젠을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가는 방법을 알아봐야 했다. 아니 그런 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여행을 하냐고? 보통 이럴경우 터미널이나 역 근처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 물어보면 아주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니란 소리다.


자칫 지나칠 뻔했는데 터미널 내부에 관광안내 센터가 있었다. 이곳에서 우선 시마바라의 지도를 얻고, 운젠으로 어떻게 가면 좋을지 의논을 했다. 나는 커다란 배낭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배낭을 어디에든 놓고 돌아다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우선 시마바라 역을 가야만 했다. 다행히 친절하신 분의 도움으로 시마바라 역으로 가는 버스편과 운젠으로 가는 방법, 그리고 나가사키까지 이동하는 방법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시마바라 지도를 비롯해서 운젠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 나가사키까지 이동하는 열차 시간표를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시마바라 지도는 여행자에게 있어서 굉장히 꼼꼼하면서도 자세한 지도였다. 각 구역별로 안내해주는 것은 물론, 주요 지역의 역사, 축제 등을 소개해주고 있었고 시미바라의 호텔도 표시되어 있었다.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료마의 이동경로라고 꼼꼼히 표시되어 있는 점은 매우 인상깊었다.


나는 알려준데로 3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원래 시간보다는 조금 늦은 시각에 버스가 등장했다. 시마바라의 버스는 조금 독특하게도 기존의 내가 알고 있던 뒤로 타고 앞으로 내리는 버스가 아닌 앞에만 문이 있는 형태였다. 그러니까 정리권을 뽑을 때도 앞에서 뽑고 요금을 내며 내릴 때도 앞으로 내렸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앞에 정리권을 뽑는 곳과 요금을 내는 통이 함께 있었다. 버스는 시골마을다웠다고 할까? 버스에 탄 손님은 나를 제외하고 연로하신 할머님 몇 분이 전부였고, 잠시 후에는 이분들도 내리는 바람에 텅텅 빈 버스가 운행되었다.


금방 도착할 줄 알았던 시마바라 역은 약 15분 뒤에나 볼 수 있었다. 구마모토에서는 날씨가 흐려서 기분이 많이 가라앉았었는데 시마바라에 온 이후에는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은 날씨가 맑았다가도 급격하게 흐린 기운이 느껴지는 이상한 날씨였다.

시마바라 역은 작은 마을의 간이역처럼 내부도 매우 작았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코인락커부터 찾았다. 내 큼지막한 배낭을 들고 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마바라 역의 내부에 있던 코인락커는 전부 고장이 났는지 운영이 되지 않고 있었다. 난감했던 상황이라 역무실로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자신들이 맡아주겠다고 한다. 혹시 공짜로 짐을 맡겨주는가 싶어서 속으로 내심 좋아했는데 이내 이들은 돈을 받고 맡아준다고 설명을 했다. 솔직히 조금 기대를 했는데 이들의 철저한 자본주의에 또 한 번 감탄이 아닌 감탄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어찌나 철저한지 혹시 자신들이 배낭을 열어본다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배낭을 봉인했다. 역시 일본이었다.


몸이 가벼워졌으니 이제 시마바라를 둘러보기로 했다. 운젠은 13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내가 어느정도 돌아보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 같아서 그때까지 시마바라를 잠깐 돌아보려고 한 것이다. 말은 이렇지만 사실 시마바라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 여유는 커녕 마음만 급한 상태로 거의 뛴걸음 상태였다.


마음은 조급하기는 했지만 시마바라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한적하고 작은 마을이기는 했지만 딱 내가 좋아하는 그 뭔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을은 아기자기하면서도 포근하고, 또 평온했다. 시마바라에서 너무 짧게 머문다는 것은 죄악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까웠다. 사실 그렇다고 시마바라가 무지하게 아름다운 마을이고, 매력이 철철 넘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냥 그대로의 모습이 좋았다고 할까?

시마바라에서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은 바로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이었다. 잉어가 수로에서 헤엄치고 있는 곳으로 시마바라에서 가장 독특한 곳일거라는 생각에 항구의 관광안내 센터에서도 물어봤었다. 아무리 짧게 지나치는 시마바라이기는 하지만 이곳만큼은 꼭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곳에서도 한글을 보면 반갑다는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호주도 마찬가지였지만 일본에서도 이런 사소한 배려를 보면 왜 선진국인지 알 수가 있다. 나는 늘 말하지만 여행자를 끌어들이고 감동을 주는 것은 결코 축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런 시골마을에서도 관광센터를 발견하고, 한글로 된 지도와 이정표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조금 걷다보니 시마바라성이 나왔다. 시간이 된다면 시마바라성도 들러보고 싶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그럴 시간은 없다는 것이 가장 문제였고, 바로 오늘 구마모토성을 봤는데 또 성을 보는 것은 지루할 것 같아서 그만뒀다. 겉모습으로는 조금 아담한 성처럼 보였다.


계속 걸으면서 나는 혼자 히죽대며 사방을 둘러봤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는 이 한적한 거리에 나 혼자 있었는데 괜히 시마바라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고양이가 거리에서 장난치는 모습조차도 재미있었는데 보면 볼 수록 괜찮은 동네라고 느꼈다. 시간만 좀 있었더라면 시마바라에서 하루 머물렀으면 어땠을지 생각도 해봤다.


드디어 짠하고 수로가 나왔다. 거리 한 가운데를 가르는 수로는 별거아니지만 신기하면서도 마을의 운치를 더해주는 역할까지 했다. 이 수로는 과거 구번시대에 생활용수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그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수로의 폭은 좁았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척 길었다. 아까 가지고 온 지도에 의하면 길이는 406.8미터라고 한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돌담, 일부러 꾸미라고 해도 힘들 것 같은 초록빛 나무와 정원, 졸졸 흐르던 수로 그리고 그 거리를 산책하는 사람과 강아지 한 마리는 이곳이 얼마나 그림같은지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골마을의 한적하면서도 정겨운 모습이 바로 여기였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다보니 문득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수로가 아니라 잉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여기에 잉어가 어디있지?' 어딘가 숨어있을 잉어를 찾으며 수로를 끊임없이 들여다 봤는데 잉어는 커녕 피래미 한 마리도 없었다. 수로의 끝으로 왔을 때는 어느 주택에 관광지처럼 보이는 곳이 있어 들어가봤다.


여기도 어떤 특별한 장소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그곳에도 잉어가 보였다. 혹시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일까?


아직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아서 고심하던 중에 어떤 분이 나에게 다가와서 안내 책자를 건네주었다. 마침 잘되었다 싶어서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을 찾고 있다고 하니 다소 충격적이게도 여기가 아니라고 했다. 내가 지도를 펼쳐보이니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은 여기와 전혀 반대 방향에 있었고, 꽤 먼곳에 위치해 있다고 알려줬다. 여태껏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이 이 수로와 연관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와 비슷한 곳이 또 있었던 것이다.

망했다. 시간이 없는데 이대로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을 돌아보지 못한 채로 나가사키로 향해야 하는 것인가? 어쨌든 나는 운젠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서 시마바라 역으로 갔다. 시간이 없어 뛰었다. 그래 또 뛰었다. 오늘 대체 몇 번이나 뛰는거니?

* 내가 찾아갔던 곳은 부케야시키 수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