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뿐만 아니라 동남아 최대 힌두교 사원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이 엄청난 규모의 사원은 9~10세기에 지어졌다가 16세기에 대지진으로 인해 묻혀 사라지나 싶었지만, 1918년부터 발굴과 재건을 한 끝에 1953년 주 건물을 완성시켰다. 2006년도에도 지진으로 인해 손상을 입었고, 여전히 곳곳에서 복원 작업이 한창인 이곳은 바로 찬디 프람바난(Candi Prambanan)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현재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믿는 종교는 이슬람이다. 하지만 족자카르타의 가장 가까운 유적지 두 곳은 이슬람과 전혀 관련이 없다. 여기 눈앞에 있는 프람바난 사원은 다름 아닌 힌두교 유적지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인도네시아 여행은 자연 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와 문화까지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튼 멀리서부터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프람바난 사원으로 다가섰다. 이 거대한 석조탑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모습만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프람바난 사원 내부에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라라종그랑이다. 사실 라라종그랑을 비롯해 이 근처에는 사원 군(群)이 분포되어 있는데 프람바난 마을과 가까운 사원이라고 해서 이 일대를 그냥 찬디 프람바난(찬디는 사원이라는 뜻이다)라고 부른다. 라라종그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람바난이라고 하면 이곳을 가리킨다.
아무튼 라라종그랑은 힌두교의 대표적인 신인 브라마, 비슈누, 시바 신을 모시기 위한 곳이며, 가장 큰 신전이 바로 시바 신을 위한 곳이다. 물론 구경할 때는 잘 몰랐지만 이 높은 탑들은 브라마, 비슈누, 시바 신을 위한 신전이고, 그 신들이 타고 다니는 동물을 위한 작은 신전이다.
이전까지는 힌두교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잘 몰랐는데 프람바난을 보면서 힌두교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그저 세상의 탄생과 유지, 그리고 파괴를 하는 신들을 섬기는 것이라고 스쳐 들었는데 자세히 접할수록 생각보다 깊이가 있고, 생활과 밀접한 종교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힌두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라마야나(Ramayana)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라마야나는 인도의 라마가 자신과 결혼한 시타가 마왕에게 사로잡히면서 시작되는 대서사시이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원숭이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스리랑카에서 시타를 구출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라마야나는 인도의 영향을 받은 나라와 종교에서는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데 특히 동남아시아에 많이 퍼졌다. 게다가 중국 서유기의 근원이 라마야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그 라마야나 이야기가 이 프람바난에 새겨져 있다.
프람바난 사원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리 높은 위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높은 곳에 올라 주변 사원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은 무척 좋았다.
곳곳에는 정교함이 느껴지는 돌부조가 보인다. 이것도 라마야나 이야기를 담은 것일까? 아니면 힌두교 신을 조각한 것일까? 이런 유적을 보면서 그런 것까지 탐구할 정도로 깊이 있는 여행자는 아니기 때문에 그저 살펴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여기서 고개를 살짝 들어 보면 이런 돌조각은 각 층마다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을 봤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 난다. 겉으로 보면 거대함에 놀라고, 안에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면 정교함에 또 놀란다.
이런 거대한 유적지 안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메라로 어떻게든 담아보려고 애쓰는 여행자를 쉽게 볼 수 있다. 카메라에 프람바난 사원을 다 넣을 수 있을까? 카메라를 세워보고, 꺾어질 정도로 고개를 하늘로 들어 올려본다. 물론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하염없이 바라 보다가 사원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관광객들이 가득한 앞쪽과는 다르게 한결 한가로워 보이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정사각형의 평지 뒤에는 옛 신전인지 모를 돌무덤이 있었다. 시간만 넉넉하다면야 여기에 앉아 프람바난 사원을 질리도록 볼텐데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고작해야 몇 시간도 머물지 않았는데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원래 족자카르타에서 기대했던 것은 세계 최대 불교유적지인 보로부두르였다. 비록 아직 보로부두르를 보기 전이었지만 프람바난은 기대보다 훨씬 대단했던 유적지였다.
이건 혹시 시바 신이 타고 다닌다는 황소 '난디'일까? 힌두교의 세 신은 각기 탈 것이 있는데 비슈누는 가루다, 브라마는 백조인데 시바는 황소라고 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내가 본 이것이 시바의 탈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시바의 황소는 링가(남근상)를 상징한다고 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과거 이러한 유적들이 높이 솟은 것도 링가의 영향이라고 어디서 들은 것 같다.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해서 서둘러 라라종그랑을 빠져 나왔다. 근처에 있는 다른 유적지를 보지도 못하고 나오면 너무 아쉽기 때문이다. 물론 프람바난 유적은 라라종그랑이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이 유적 외에 다른 곳이 더 많이 있는 줄 알았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뒤를 돌아 다시 라라종그랑 쪽을 바라봤다. 듬성듬성 솟아난 나무는 유적을 가려 더욱 신비함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보다 프람바난 사원 내부는 꽤 넓었는데 걸으면서 중요한 부분은 이미 다 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라라종그랑만 보고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다른 여행자처럼 숲속을 걷기로 했다. 끝까지 걷다보면 라라종그랑은 아니더라도 뭔가 색다른 유적지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 하나만 가지고 말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대부분은 굉장히 단촐한 유적뿐이었다.
그나마 가장 마지막에 있었던 유적지만 규모면에서 볼만했지만 이마저도 복원이 덜 된 탓인지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날도 어두워져서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다.
여기에서 인도네시아 아이들을 만났는데 웃음이 해맑고, 귀여워 사진도 같이 찍을 수 있었다.
특별히 볼만한 것이 없다고 여겨 다시 프람바난 사원의 입구쪽으로 돌아갔다. 그 중간에 본 어느 사원은 복원이 진행 중인 모양이다.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면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다시 걸었다. 이제 프람바난 사원은 깜깜해져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두워진 사원은 주요 길목만 출입이 가능했고, 라라종그랑은 들어갈 수도 없었다.
주변은 어두워 이미 관광객은 다 빠져 나간 상태였다. 프람바난은 야간에는 아예 문을 닫는 것 같았다. 여행자는 커녕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이때 노란 조명을 받아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신전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현재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믿는 종교는 이슬람이다. 하지만 족자카르타의 가장 가까운 유적지 두 곳은 이슬람과 전혀 관련이 없다. 여기 눈앞에 있는 프람바난 사원은 다름 아닌 힌두교 유적지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인도네시아 여행은 자연 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와 문화까지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튼 멀리서부터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프람바난 사원으로 다가섰다. 이 거대한 석조탑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모습만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프람바난 사원 내부에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라라종그랑이다. 사실 라라종그랑을 비롯해 이 근처에는 사원 군(群)이 분포되어 있는데 프람바난 마을과 가까운 사원이라고 해서 이 일대를 그냥 찬디 프람바난(찬디는 사원이라는 뜻이다)라고 부른다. 라라종그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람바난이라고 하면 이곳을 가리킨다.
아무튼 라라종그랑은 힌두교의 대표적인 신인 브라마, 비슈누, 시바 신을 모시기 위한 곳이며, 가장 큰 신전이 바로 시바 신을 위한 곳이다. 물론 구경할 때는 잘 몰랐지만 이 높은 탑들은 브라마, 비슈누, 시바 신을 위한 신전이고, 그 신들이 타고 다니는 동물을 위한 작은 신전이다.
이전까지는 힌두교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잘 몰랐는데 프람바난을 보면서 힌두교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그저 세상의 탄생과 유지, 그리고 파괴를 하는 신들을 섬기는 것이라고 스쳐 들었는데 자세히 접할수록 생각보다 깊이가 있고, 생활과 밀접한 종교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힌두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라마야나(Ramayana)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라마야나는 인도의 라마가 자신과 결혼한 시타가 마왕에게 사로잡히면서 시작되는 대서사시이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원숭이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스리랑카에서 시타를 구출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라마야나는 인도의 영향을 받은 나라와 종교에서는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데 특히 동남아시아에 많이 퍼졌다. 게다가 중국 서유기의 근원이 라마야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그 라마야나 이야기가 이 프람바난에 새겨져 있다.
프람바난 사원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리 높은 위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높은 곳에 올라 주변 사원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은 무척 좋았다.
곳곳에는 정교함이 느껴지는 돌부조가 보인다. 이것도 라마야나 이야기를 담은 것일까? 아니면 힌두교 신을 조각한 것일까? 이런 유적을 보면서 그런 것까지 탐구할 정도로 깊이 있는 여행자는 아니기 때문에 그저 살펴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여기서 고개를 살짝 들어 보면 이런 돌조각은 각 층마다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을 봤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 난다. 겉으로 보면 거대함에 놀라고, 안에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면 정교함에 또 놀란다.
이런 거대한 유적지 안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메라로 어떻게든 담아보려고 애쓰는 여행자를 쉽게 볼 수 있다. 카메라에 프람바난 사원을 다 넣을 수 있을까? 카메라를 세워보고, 꺾어질 정도로 고개를 하늘로 들어 올려본다. 물론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하염없이 바라 보다가 사원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관광객들이 가득한 앞쪽과는 다르게 한결 한가로워 보이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정사각형의 평지 뒤에는 옛 신전인지 모를 돌무덤이 있었다. 시간만 넉넉하다면야 여기에 앉아 프람바난 사원을 질리도록 볼텐데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고작해야 몇 시간도 머물지 않았는데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원래 족자카르타에서 기대했던 것은 세계 최대 불교유적지인 보로부두르였다. 비록 아직 보로부두르를 보기 전이었지만 프람바난은 기대보다 훨씬 대단했던 유적지였다.
이건 혹시 시바 신이 타고 다닌다는 황소 '난디'일까? 힌두교의 세 신은 각기 탈 것이 있는데 비슈누는 가루다, 브라마는 백조인데 시바는 황소라고 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내가 본 이것이 시바의 탈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시바의 황소는 링가(남근상)를 상징한다고 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과거 이러한 유적들이 높이 솟은 것도 링가의 영향이라고 어디서 들은 것 같다.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해서 서둘러 라라종그랑을 빠져 나왔다. 근처에 있는 다른 유적지를 보지도 못하고 나오면 너무 아쉽기 때문이다. 물론 프람바난 유적은 라라종그랑이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이 유적 외에 다른 곳이 더 많이 있는 줄 알았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뒤를 돌아 다시 라라종그랑 쪽을 바라봤다. 듬성듬성 솟아난 나무는 유적을 가려 더욱 신비함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보다 프람바난 사원 내부는 꽤 넓었는데 걸으면서 중요한 부분은 이미 다 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라라종그랑만 보고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다른 여행자처럼 숲속을 걷기로 했다. 끝까지 걷다보면 라라종그랑은 아니더라도 뭔가 색다른 유적지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 하나만 가지고 말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대부분은 굉장히 단촐한 유적뿐이었다.
그나마 가장 마지막에 있었던 유적지만 규모면에서 볼만했지만 이마저도 복원이 덜 된 탓인지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날도 어두워져서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다.
여기에서 인도네시아 아이들을 만났는데 웃음이 해맑고, 귀여워 사진도 같이 찍을 수 있었다.
특별히 볼만한 것이 없다고 여겨 다시 프람바난 사원의 입구쪽으로 돌아갔다. 그 중간에 본 어느 사원은 복원이 진행 중인 모양이다.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면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다시 걸었다. 이제 프람바난 사원은 깜깜해져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두워진 사원은 주요 길목만 출입이 가능했고, 라라종그랑은 들어갈 수도 없었다.
주변은 어두워 이미 관광객은 다 빠져 나간 상태였다. 프람바난은 야간에는 아예 문을 닫는 것 같았다. 여행자는 커녕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이때 노란 조명을 받아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신전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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