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기원은 인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대 불교 유적지는 전부 동남아시아에 있다. 흔히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라는 표현을 빌어 소개하는데 이 유적지들은 그 규모가 거대함을 넘어 경이롭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 미얀마 바간 지역에 퍼져있는 불교 유적지,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보로보두르가 바로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다. 운이 좋은지 몰라도 나는 이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를 전부 가봤다.
세계 3대 불교 유적지이자 인도네시아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보로부두르(Borobudur)를 향해 걸었다. 확실히 유명한 관광지답게 사람들이 많았고, 물건을 팔려고 하는 장사꾼이 정말 많았다.
프람바난은 그래도 좀 평온한 느낌이었는데 보로부두르는 거의 시장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이런 규모의 유적지라면 물건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로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했다. 캄보디아도 그랬고, 미얀마에서도 그랬다. 어딜가나 사람이 몰리는 곳이 유적지라면 유적과 관련된 물건이나 기념품을 팔고 있었던 모습을 익히 보았기 때문이다.
보로부두르의 입장료는 15달러였다. 조금 비싼 느낌이 들었지만 세계 최대 불교 유적지인 보로부두르를 보는데 15달러가 아깝다는 생각은 사치였다. 사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학생증이 있으면 거의 절반으로 할인되기 때문이다. 보로부두르는 15달러였지만 국제학생증과 같이 사진이 붙어 있는 학생증만 있다면 8달러에 구입이 가능하다. 학생은 아니지만 학생증이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프람바난과 마찬가지로 보로부두르도 입장권을 구입하고 나면 웰컴 드링크라고 물이나 커피 등을 마실 수 있다. 다만 프람바난과 차이점이라면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도 준다. 배낭여행을 하면 당연히 물은 사먹어야 하니 물병을 받자 괜히 고마웠다.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려고 하면 보자기 형태인 사룽(Sarung)을 착용하도록 도와준다. 치마를 입은 느낌이 들었던 사룽은 보로부두르를 들어가는 모든 사람은 입어야 했다. 사원에 대한 경건한 의미인지 혹은 더러워지지 말라는 것인지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지만 천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천을 가지고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가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보로부두르로 향하는 길은 울창한 숲이라 무척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곳에 세계 최대 불교 유적지가 숨어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사실 보로부두르 역시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처럼 바깥 세상에 나온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여러가지 속설이 있기는 한데 근처에 있는 메라피 화산이 터져 화산재로 인해 묻혔다는 이야기부터 불교를 배척하는 왕조가 완성되자마자 묻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튼 그렇게 묻혀있던 유적지를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복원한 것이 지금의 보로부두르다.
조금 더 걸어가니 멀리서 보로부두르의 위용이 드러났다. 이 엄청난 규모의 불교 유적은 여러 개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그대로 하나다. 목적은 다르지만 거대한 피라미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보로부두르는 하늘에서 보면 정방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변의 길이는 124m라고 한다. 총 9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5층까지는 사각형의 단이 있고, 그 위에는 3층짜리 원형 단, 그리고 마지막에는 탑이 하나 있다. 높이는 42m이나 무게가 무려 350만톤이나 달해 지반의 침하로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 변의 길이가 124m라는 것과 총 9층으로 이뤄져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보로부두르가 얼마나 거대한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생각보다 보로부두르에 늦게 도착한 탓에 시간이 별로 없었다. 때문에 일단 보로보두르의 가장 높은 곳에 먼저 올라가 내려오면서 차례대로 보면서 내려오기로 했다.
보로부두르를 끝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곳은 5층이었다. 과거에는 그 위에도 올라갈 수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유적의 손상 때문인지 올라가는 통로를 막아 놓은 상태였다.
5층에 올라 보니 72개나 있다고 하는 스투파가 가장 먼저 보였다. 스투파는 안에 부처가 있는 종모양의 탑을 말하는데 현지인들은 작은 틈으로 엄지손가락을 넣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보통 보로부두르라고 하면 멀리서 본 외형과 더불어 스투파의 사진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보로부두르 5층을 돌아보면서 역시 거대함에 놀라고 또 놀랐다. 1000년도 훨씬 전에 접착제 없이 돌만 쌓아 이런 탑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랍기만 하다. 단순히 규모만 놓고 본다면 캄보디아 앙코르왓과 비교해 뒤지지 않을 정도다. 덕분에 나는 계속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시 구경하다 보니 멀리서 촬영을 하는지 카메라가 보였다. 아마도 보로부두르에 관련한 영상을 촬영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잠깐 보고 있으니 여자가 계속 실수하길래 금세 흥미가 떨어졌다.
인도네시아에서 불교가 번성했던 시기는 무척 짧다.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등장으로 불교는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특히 이슬람교는 유일신을 믿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짧은 시기에 불교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동안에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지나가다가 본 아이들인데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자고 하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내가 멋쩍어 하니까 근처에 있던 아저씨가 웃으면서 부끄러워서 그런다고 말했다. 이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제 천천히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봤다.
1층부터 4층까지는 벽에 불교와 관련된 설화나 석가모니의 이야기가 담긴 부조가 새겨져 있다. 보로부두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이 부조를 자연스럽게 보고, 결국 마지막 층에 다다르면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층부터 보아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5층에서 내려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거꾸로 보게 되었다.
보로부두르에 있는 부처는 두상이 없는 것이 많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두상을 잘라 태국에게 전해줬다는 이야기도 있고, 종교 탄압으로 인해 두상을 잘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캄보디아에서도 두상이 없는 부처를 많이 봤는데 여기에서도 또 보게 된다.
시간이 없어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다는 점은 무척 아쉽기만 하다. 회랑의 부조를 본다고 내가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방대한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은 보로부두르를 제대로 봤다고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보로부두르는 다른 신전과 다르게 제사를 드리기 위한 곳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알고 있었으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조금 아쉬웠다. 게다가 여러모로 족자카르타에서 보로부두르까지 오는데 시간을 많이 허비해서 결과적으로는 보로부두르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는 것도 아쉽기만 하다. 괜히 버스를 타고 직접 찾아왔나 보다. 이럴줄 알았으면 투어를 이용해서 보로부두르를 찾아 왔다면 좀 더 여유롭게 둘러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로부두르를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내려와서 보니 부처상이 정말 많았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꼬마 아이 두 명이 다가와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경계도 살짝 했는데 사진을 찍고 나니 별다른 뜻은 없었다. 다른 여행지에서는 간혹 어린 아이가 사진을 찍자고 한 뒤에 돈을 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사진을 찍고 난 뒤 엄마로 보이는 사람을 향해 뛰어갔다. 그냥 외국인이라서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다. 멀리서 보니 다른 외국인과도 그렇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보로부두르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보로부두르의 폐장은 생각보다 더 이른 시각이었던 것이다. 어디선가 보로부두르를 야간에 봤다는 것을 본 것 같은데 현재는 야간에 볼 수 없는가 보다. 정말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로부두르를 보고 내려왔다.
사람들이 좀 몰려 있던 공터로 가봤는데 그곳에서는 보로부두르가 한눈에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다.
보로부두르를 배경으로 사진 찍다가 폐장하는 시간까지 앉아서 쉬었다.
잠시 후 사람들을 따라 내려 가니 입고 있던 사룽을 반납하는 장소가 보였다. 뭔가 마음에 들었는데 반납해야 되니 아쉬웠다. 기념으로 줬으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다.
이제 보로부두르를 빠져 나가는데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달라 붙었다. 보로부두르를 축소한 기념품을 파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한 사람을 떼어 놓으면 다른 한 사람이 달려와 구경만 해보라고 말을 건다. 심지어는 보로부두르를 처음 들어갔을 때 만났던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억하지 않냐는 식으로 접근한다. 그 많은 관광객들 중에서 어떻게 나를 기억하는지 참 신기하기만 하다. 이래서 이들은 이름을 기억해 달라고 하나 보다.
정말 이런 곳에서는 보통 기념품을 구입하지도 않고, 구입할 생각도 없었는데 끈질긴 녀석에게 결국 부채를 사고 말았다. 돈이 없다고 해도 아주 친한척을 하면서 괜찮다면서 저렴한거 한 개만 사달라고 계속 달라 붙었던 것이다. 그냥 웃는 모습이 친근해서 부채를 구입한 것은 크게 상관은 없었는데 몇 걸음 걸어가자 똑같은 부채를 더 저렴하게 파는 것을 보고 좀 억울했다. 항상 이런식이다.
보로부두르를 빠져 나오자 이젠 아까 그 베짝 아저씨들이 손을 흔든다. 대단하다. 정말 몇 시간 동안 기다렸단 말인가? 베짝을 탈 생각은 없었으니 그냥 무시했는데도 계속 주변에서 맴돌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결정해야 했다. 이대로 족자카르타로 돌아갈지 아니면 근처에 있는 다른 유적지를 찾아 갈지 고민에 빠진 것이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는데 무슨 오기인지 몰라도 유적지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가장 큰 문제였던 막차가 곧 있으면 떠나는데도 말이다.
세계 3대 불교 유적지이자 인도네시아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보로부두르(Borobudur)를 향해 걸었다. 확실히 유명한 관광지답게 사람들이 많았고, 물건을 팔려고 하는 장사꾼이 정말 많았다.
프람바난은 그래도 좀 평온한 느낌이었는데 보로부두르는 거의 시장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이런 규모의 유적지라면 물건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로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했다. 캄보디아도 그랬고, 미얀마에서도 그랬다. 어딜가나 사람이 몰리는 곳이 유적지라면 유적과 관련된 물건이나 기념품을 팔고 있었던 모습을 익히 보았기 때문이다.
보로부두르의 입장료는 15달러였다. 조금 비싼 느낌이 들었지만 세계 최대 불교 유적지인 보로부두르를 보는데 15달러가 아깝다는 생각은 사치였다. 사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학생증이 있으면 거의 절반으로 할인되기 때문이다. 보로부두르는 15달러였지만 국제학생증과 같이 사진이 붙어 있는 학생증만 있다면 8달러에 구입이 가능하다. 학생은 아니지만 학생증이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프람바난과 마찬가지로 보로부두르도 입장권을 구입하고 나면 웰컴 드링크라고 물이나 커피 등을 마실 수 있다. 다만 프람바난과 차이점이라면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도 준다. 배낭여행을 하면 당연히 물은 사먹어야 하니 물병을 받자 괜히 고마웠다.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려고 하면 보자기 형태인 사룽(Sarung)을 착용하도록 도와준다. 치마를 입은 느낌이 들었던 사룽은 보로부두르를 들어가는 모든 사람은 입어야 했다. 사원에 대한 경건한 의미인지 혹은 더러워지지 말라는 것인지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지만 천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천을 가지고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가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보로부두르로 향하는 길은 울창한 숲이라 무척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곳에 세계 최대 불교 유적지가 숨어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사실 보로부두르 역시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처럼 바깥 세상에 나온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여러가지 속설이 있기는 한데 근처에 있는 메라피 화산이 터져 화산재로 인해 묻혔다는 이야기부터 불교를 배척하는 왕조가 완성되자마자 묻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튼 그렇게 묻혀있던 유적지를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복원한 것이 지금의 보로부두르다.
조금 더 걸어가니 멀리서 보로부두르의 위용이 드러났다. 이 엄청난 규모의 불교 유적은 여러 개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그대로 하나다. 목적은 다르지만 거대한 피라미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보로부두르는 하늘에서 보면 정방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변의 길이는 124m라고 한다. 총 9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5층까지는 사각형의 단이 있고, 그 위에는 3층짜리 원형 단, 그리고 마지막에는 탑이 하나 있다. 높이는 42m이나 무게가 무려 350만톤이나 달해 지반의 침하로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 변의 길이가 124m라는 것과 총 9층으로 이뤄져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보로부두르가 얼마나 거대한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생각보다 보로부두르에 늦게 도착한 탓에 시간이 별로 없었다. 때문에 일단 보로보두르의 가장 높은 곳에 먼저 올라가 내려오면서 차례대로 보면서 내려오기로 했다.
보로부두르를 끝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곳은 5층이었다. 과거에는 그 위에도 올라갈 수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유적의 손상 때문인지 올라가는 통로를 막아 놓은 상태였다.
5층에 올라 보니 72개나 있다고 하는 스투파가 가장 먼저 보였다. 스투파는 안에 부처가 있는 종모양의 탑을 말하는데 현지인들은 작은 틈으로 엄지손가락을 넣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보통 보로부두르라고 하면 멀리서 본 외형과 더불어 스투파의 사진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보로부두르 5층을 돌아보면서 역시 거대함에 놀라고 또 놀랐다. 1000년도 훨씬 전에 접착제 없이 돌만 쌓아 이런 탑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랍기만 하다. 단순히 규모만 놓고 본다면 캄보디아 앙코르왓과 비교해 뒤지지 않을 정도다. 덕분에 나는 계속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시 구경하다 보니 멀리서 촬영을 하는지 카메라가 보였다. 아마도 보로부두르에 관련한 영상을 촬영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잠깐 보고 있으니 여자가 계속 실수하길래 금세 흥미가 떨어졌다.
인도네시아에서 불교가 번성했던 시기는 무척 짧다.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등장으로 불교는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특히 이슬람교는 유일신을 믿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짧은 시기에 불교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동안에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지나가다가 본 아이들인데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자고 하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내가 멋쩍어 하니까 근처에 있던 아저씨가 웃으면서 부끄러워서 그런다고 말했다. 이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제 천천히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봤다.
1층부터 4층까지는 벽에 불교와 관련된 설화나 석가모니의 이야기가 담긴 부조가 새겨져 있다. 보로부두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이 부조를 자연스럽게 보고, 결국 마지막 층에 다다르면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층부터 보아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5층에서 내려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거꾸로 보게 되었다.
보로부두르에 있는 부처는 두상이 없는 것이 많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두상을 잘라 태국에게 전해줬다는 이야기도 있고, 종교 탄압으로 인해 두상을 잘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캄보디아에서도 두상이 없는 부처를 많이 봤는데 여기에서도 또 보게 된다.
시간이 없어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다는 점은 무척 아쉽기만 하다. 회랑의 부조를 본다고 내가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방대한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은 보로부두르를 제대로 봤다고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보로부두르는 다른 신전과 다르게 제사를 드리기 위한 곳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알고 있었으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조금 아쉬웠다. 게다가 여러모로 족자카르타에서 보로부두르까지 오는데 시간을 많이 허비해서 결과적으로는 보로부두르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는 것도 아쉽기만 하다. 괜히 버스를 타고 직접 찾아왔나 보다. 이럴줄 알았으면 투어를 이용해서 보로부두르를 찾아 왔다면 좀 더 여유롭게 둘러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로부두르를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내려와서 보니 부처상이 정말 많았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꼬마 아이 두 명이 다가와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경계도 살짝 했는데 사진을 찍고 나니 별다른 뜻은 없었다. 다른 여행지에서는 간혹 어린 아이가 사진을 찍자고 한 뒤에 돈을 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사진을 찍고 난 뒤 엄마로 보이는 사람을 향해 뛰어갔다. 그냥 외국인이라서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다. 멀리서 보니 다른 외국인과도 그렇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보로부두르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보로부두르의 폐장은 생각보다 더 이른 시각이었던 것이다. 어디선가 보로부두르를 야간에 봤다는 것을 본 것 같은데 현재는 야간에 볼 수 없는가 보다. 정말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로부두르를 보고 내려왔다.
사람들이 좀 몰려 있던 공터로 가봤는데 그곳에서는 보로부두르가 한눈에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다.
보로부두르를 배경으로 사진 찍다가 폐장하는 시간까지 앉아서 쉬었다.
잠시 후 사람들을 따라 내려 가니 입고 있던 사룽을 반납하는 장소가 보였다. 뭔가 마음에 들었는데 반납해야 되니 아쉬웠다. 기념으로 줬으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다.
이제 보로부두르를 빠져 나가는데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달라 붙었다. 보로부두르를 축소한 기념품을 파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한 사람을 떼어 놓으면 다른 한 사람이 달려와 구경만 해보라고 말을 건다. 심지어는 보로부두르를 처음 들어갔을 때 만났던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억하지 않냐는 식으로 접근한다. 그 많은 관광객들 중에서 어떻게 나를 기억하는지 참 신기하기만 하다. 이래서 이들은 이름을 기억해 달라고 하나 보다.
정말 이런 곳에서는 보통 기념품을 구입하지도 않고, 구입할 생각도 없었는데 끈질긴 녀석에게 결국 부채를 사고 말았다. 돈이 없다고 해도 아주 친한척을 하면서 괜찮다면서 저렴한거 한 개만 사달라고 계속 달라 붙었던 것이다. 그냥 웃는 모습이 친근해서 부채를 구입한 것은 크게 상관은 없었는데 몇 걸음 걸어가자 똑같은 부채를 더 저렴하게 파는 것을 보고 좀 억울했다. 항상 이런식이다.
보로부두르를 빠져 나오자 이젠 아까 그 베짝 아저씨들이 손을 흔든다. 대단하다. 정말 몇 시간 동안 기다렸단 말인가? 베짝을 탈 생각은 없었으니 그냥 무시했는데도 계속 주변에서 맴돌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결정해야 했다. 이대로 족자카르타로 돌아갈지 아니면 근처에 있는 다른 유적지를 찾아 갈지 고민에 빠진 것이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는데 무슨 오기인지 몰라도 유적지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가장 큰 문제였던 막차가 곧 있으면 떠나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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