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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아주 안 좋은 추억이 있긴 하지만 사실 가격도 나쁘지 않은데다가 아침도 제공해 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오히려 20만 루피아가 넘었던 사쿠라 게스트하우스보다 더 나았는데 2층에 올라 계란과 토스트, 그리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2층의 좁은 발코니에서 아침을 먹는데 상쾌한 기분이 들어 무척 좋았다. 빼곡한 건물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내려오고, 바람은 적당했다. 아래에는 부지런한 여행자들이 좁은 골목 사이를 누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실로 오랜만에 여행자의 기분이 느껴졌다. 불과 몇 달 전에 일본을 다녀왔지만 사람과 건물로 빼곡한 현대의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진짜 여행이라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마냥 거리를 구경하고, 사람들을 마주 대할수록 인도네시아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파 게스트하우스에 하루만 머물렀지만 아침을 먹은 뒤 숙소를 옮겼다. 더 저렴한 안다 여관이 끌렸기 때문이다. 티파 게스트하우스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나오는데 무려 더블룸에 5만 루피아였다. 시설은 당연히 기존에 묵었던 곳보다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격만 저렴하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곧바로 체크인을 했다. 그러고보면 숙소를 옮길 때마다 시설이 조금씩 떨어지곤 했는데 원래 에어컨 방이 있던 사쿠라에서 침대가 푹신했던 티파, 그리고 화장실이 별로인 안다까지 하루마다 이동한 것이다. 애초에 가격만 싸다면 뭐든지 다 괜찮았는데 그렇다고 여기가 크게 나쁘지도 않았다. 족자카르타 날씨가 그리 덥지 않아서 밤이 되면 선풍기도 별로 필요 없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대신 기본적인 침구류를 주지 않다는 단점이 있는데 다행히 나는 침낭을 갖고 있었다.


목적지는 보로부두르(Borobudur)였다. 족자카르타의 가장 핵심적인 관광지라고 할 수 있는 보로부두르는 세계 3대 불교유적로 인도네시아에 오기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곳이었다. 어쩌면 족자카르타에 온 목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여행사를 통해서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프람바난의 경우를 생각해 볼 때 개인적으로 찾아가는 편이 이득일 것 같았다. 어차피 투어는 교통을 제공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면 직접 찾아가서 돈을 더 절약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시에는 분명 이렇게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직접 찾아간다고 버스를 타서 괜히 시간을 훨씬 더 버리게 되었다.

보로부두르까지 버스(트랜스 족자)를 타고 가는 방법은 이렇다. 소스로위자얀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정류장에서 점보르행 버스를 타면 된다. 근데 점보르행 버스가 바로 있는 것이 아니라 3개의 정류장을 지난 후 그곳에서 갈아타야 했다. 의욕적으로 찾아가는 것까지는 그래도 나쁘진 않았는데 점보르 버스터미널까지 너무 멀었다. 갈아타는 시간까지 합치면 1시간 반이 걸렸던 것 같다.


족자카르타에는 버스 터미널이 두 곳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 중에서 북쪽에 점보르 버스 터미널이다. 생각보다 너무 한산한 분위기에 당황스러웠다. 제대로 찾아 온 것은 맞는지, 여기에서 정말 보로부두르까지 갈 수 있는 버스를 탈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거의 폐차 직전의 한 버스가 보였는데 이 버스가 바로 보로부두르까지 간다고 했다. 어떤 아저씨는 당연히 여행자로 보였던 우리에게 다가와 보로부두르를 가려면 이 버스를 타야 한다고 알려줬다. 가격을 물어보니 2만 루피아를 달라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2만 루피아는 너무 비싸 보였다.

즉시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고 얘기하자 곧바로 가격이 1만 루피아로 떨어졌다. 그러나 1만 루피아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보로부두르까지 그렇게 멀었는지도 몰랐고, 이 낡은 버스가 1만 루피아라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버틴다고 가격이 더 내려가지도 않았을 뿐더러 여기까지 왔는데 보로부두르까지 가는 다른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그냥 타게 되었다.


다시 이 버스를 타고 1시간을 갔다. 프람바난처럼 버스를 타고 간단히 다녀올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보로부두르는 너무 멀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보로부두르에는 아침 일찍 가서 실컷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가는데만 오래 걸린다면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근데 이렇게 찾아가는 외국인은 아예 없나보다. 주변은 전부 현지인이었다. 지루한 마음을 달래고자 창밖을 쳐다 봤는데 이제 도시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논만 보였다.


그렇게 이동하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체력을 허비한 후 보로부두르 마을에 도착했다. 이미 점심 시간은 지난 후여서 배가 무지하게 고팠다. 어디로 가야 보로부두르로 갈 수 있는지는 조금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버스 터미널 바로 앞에 있던 식당에서 허기부터 달래기로 했다.


메뉴판을 보다가 박소가 눈에 들어왔다. 자카르타에 도착하자마자 탔던 택시 아저씨에게 인도네시아 음식을 물어본 적이 있는데 박소가 가장 유명하다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꼭 한번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메뉴판에 있었던 것이다. 굉장히 특별한 음식이라기 보다는 사실 박소는 어느 음식점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대중적이고도 서민적인 음식이었다. 박소 한 그릇에 5000 루피아로 가격도 무척 저렴했다.


배도 고파서 미칠 것 같고, 박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고 속으로만 독촉했다. 그렇게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올라있을 때 드디어 박소가 나왔다. 작은 그릇에는 맑은 국물에 면과 피쉬볼 등이 들어 있었다. 살짝 떠 먹어 보니 굉장히 친숙한 맛이 나는 게 괜찮았다. 


옆에 소스 2개가 있길래 적당히 넣어봤다. 이름은 다 모르겠지만 하나는 고추기름이 섞인 것 같았고, 다른 하나는 달콤한 맛을 내게 만들어 줬다. 이 소스을 넣으니 불투명 국물이 되었지만 맛은 훨씬 좋아졌다. 색깔은 붉으스름해 지면서 약간 칼칼한 맛이 나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았던 것이다. 나는 감탄을 할 정도로 맛에 완전 반했다.

너무 배고파서 일까? 양이 적어서 일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너무 맛있기 때문에 깨끗하게 그릇을 비우고는 곧바로 하나의 박소를 더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