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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주나 사원을 뒤로 하고 찾아간 곳은 시끼당 지열지대(Kawah Sikidang)였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할 때는 늘 그랬지만 시끼당 지대가 어딘지 파악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뭐가 있는지는 미리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운전하던 아저씨는 우리에게 다음 장소가 '크레이터'라고 했기 때문에 더 예측하기 어려웠다. 크레이터라면 그냥 움푹 패인 그런 땅을 말하는 것일까?


크레이터를 보기 위해서는 기념품 가게를 지나 조금만 걸으면 된다. 곧바로 넓게 펼쳐진 장소에는 생명체는 살지 않을 것 같은 척박한 땅과 거침없이 솟구치던 수증기가 보였다. 처음 본다면 무척 신기할지도 모르지만 난 어디선가 익숙한 풍경으로 느껴졌다. 그것은 일본에서 지옥이라고 불리던 운젠과 너무도 닮았던 것이다.


벌써부터 계란이 썩은 듯한 유황냄새가 코를 자극시켰다. 아마 크레이터라고 불리는 것은 저 멀리 거대한 수증기가 솟구치는 장소일 것이다.


일본 큐슈를 여행할 때 지옥이라고 불리는 운젠과 벳푸를 다 가봤다. 온천이 부글부글 끓고, 수증기가 올라오는 장면은 비슷했지만, 길도 잘 닦여 있는데다가 근처에 사람도 살고 있어 사실상 철저하게 관광지화 되어있었다. 그런데 시끼당 지대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관광객들을 위한 길이나 안전장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는 길목에 위험하다는 경고판이 그나마 경계심을 가지게 만들어 주었다.


시끼당 지대에서 나온 유황을 캐서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었는데 사실 정말 팔리는지 그게 더 궁금했다. 유황을 가져다가 뭐에다 쓸 수 있는 걸까?


움푹 패인 크레이터에 도착하자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들렸다. 유황냄새는 그리 심하지 않았지만, 온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는 시야의 대부분을 가렸다. 분명 안에 온천이 있는데 쉽게 살펴 볼 수 없었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봐야 뒤에 나오는 것은 수증기 뿐이었다. 그나마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라도 할 때면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알렉산더 여기 좀 봐봐!" 수증기가 올라오는 땅을 유심히 살펴보던 알렉산더는 내 외침에 카메라를 쳐다봤다. 사진을 찍는다니까 웃기만 한다.


나도 위로 올라가 수증기가 올라오는 땅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알렉산더와 사진을 찍었는데 발을 들며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했다.


위로 올라와서 보니 수증기가 퍼지는 모습이 아주 장관이었다. 어쩌면 여기도 화산지대나 다름이 없어서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마냥 멋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만약 일본이었다면 틀림없이 이곳을 엄청난 관광지로 개발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여기 안전할까? 혹시 언제라도 화산처럼 폭발하는 것은 아닐까? 근처 마을에 피해가 가지 않을지 괜한 걱정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인도네시아에서는 워낙 화산이 자주 터지기 때문에 피해를 입기도 했다. 실제로 2010년에는 근처의 화산인 메라피가 폭발하기도 했다.


아래로 내려와 다시 크레이터 주변을 살펴봤다. 가까이 접근해도 수증기 때문에 잘 안 보였는데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가니 끓고 있는 시꺼먼 물이 보였다. 계속 보고 있으면 거친 소리와 시꺼먼 물이 나를 잡아 먹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이 주변은 아주 부실해 보이는 나무 막대만이 보호 장치일 뿐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다. 물론 이런 시꺼먼 물에 누가 들어갈까 싶기도 하지만 괜히 더 불안해 보였다. 아무튼 물 끓는 모습만 봐도 대단했다.


돌아가는 도중에 인도네시아 관광객을 만났다. 한국인 여행자가 신기한지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사진까지 찍게 되었다. 근데 인도네시아 여자들은 사진을 찍을 때 포즈나 눈빛이 참 뇌쇄적이었다. 이럴 때면 국민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입구 앞에도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수증기가 올라오는 곳을 볼 수 있었다. 여기는 작은 규모라서 그런지 특별한 안전장치는 없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정말 이곳이 얼마나 뜨거운지 괜한 궁금증이 생긴다. 그렇지만 손을 집어 넣어 확인할 수는 없기에 그냥 참아야 했다.


인도네시아는 활화산이 워낙 많기 때문에 시끼당 지열지대가 그리 새삼스러울 것은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수증기가 올라오는 모습은 무척 신기하게 돌아봤다. 관광지가 아닌 그냥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 일본의 운젠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애초에 디엥고원에 이런 다양한 모습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더 신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조금 남아 시끼당 지대 바로 앞에 있던 시장을 구경했다. 워낙 작은 시장이라 한 바퀴를 돌아 보는데 1분이면 될 정도로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야 이해가 되는데 여기에 시장이 들어선 모습은 좀 신기했다.


디엥고원에서는 유적이나 자연을 둘러보고 있었지만, 주변에서 계속 이어진 소박하면서 정겨운 풍경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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