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들 사이에서 로망인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일반적인 여행자라면 3일 정도 타게 되는데 나는 아제르바이잔 입국 문제가 있어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7일간 열차로 달렸다. 말이 7일이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3등석에서 지루함과 싸워야 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험난했던 7일간의 여정을 공개한다.
0일차. “당신의 이름은 세르게이입니까?”
조용하다. 승객은 많지 않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라고 불릴 정도로 굉장히 유명하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블라디보스토크역과 많지 않은 승객에 벌써부터 놀라게 된다. 늦은 밤 거의 12시에 출발하는 열차라서 그런지 더 적막감이 감돈다.
일단 내 자리부터 찾아야겠지. 열차표를 봐도 뭐라고 쓰여 있는지 몰라,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찾을 수 있었다.
3등석 쁠라치까르뜨뉘에 앉자마자 든 생각은 꼭 영화 세트장에 온 느낌이었다. 자리가 2층이라 짐을 위로 올려야 하는데 처음에는 이 무거운 짐을 어떻게 올려야 할지 막막했지만 이내 의자를 밟고 올라가니 쉽게 할 수 있었다.
내 옆에 할머니가 앞에는 아저씨가 앉았다. 우린 말이 없다. 왜냐면 말이 안 통했기 때문에. 정말 이상해. 어색한 이 기분. 아직 출발 전인데 할머니가 내 어깨를 톡톡 치더니 창문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이동하라는 건가? 잠시 후 이 할머니 옷을 갈아입을 테니 저쪽 보라는 소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덜컹거리며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차는 출발했다. 맞은편에 앉은 배나온 아저씨가 뭐라 했다. 당연히 영어는 안 된다. 열차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니 러시아 회화 앱을 이용해 대화를 시도해봤다.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저는 30살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세르게이입니까?”
근데 정말 웃겼던 건 이 아저씨 이름이 세르게이였던 사실이다. 정말 빵터졌다. 모스크바로 갔다가 아제르바이잔으로 여행할 계획이라고(라는 의미로 나라 이름만 말했다) 했더니,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그게 끝.
바로 잤다.
1일차. 내 튀김우동
열차는 여전히 달린다. 아침으로 빵 몇 조각 먹었다. 지난밤에 만난 할머니와 아저씨가 내려서 아래 좌석이 비어있어 앉을 수 있었지만, 2층은 확실히 불편했다. 계속 오르락내리락.
점심 때 하바로브스크에 도착했다. 남자 2명이 내 아래 좌석에 앉게 되었는데 악수를 했지만 서로 웃기만 했다. 근데 첫인상이 안 좋았던 이들은 이후에도 계속 별로였다. 한 남자는 백인으로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에 말도 별로 없었고, 다른 한 남자는 아시아 계열의 황인으로 정신이 반쯤 나가 보였다.
점심으로 라면을 먹으니 또 졸리다.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여기는 지루함과의 싸움인데, 그래서 그냥 잔다. 책은 무슨, 이미 덮어 둔지 오래다.
한참을 자다가 중간에 깼는데 자는 사이에 내 튀김우동을 먹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튀김우동을. 사과도 아까 줄 때는 안 먹더니 2개나 먹었다. 제길 내 튀김우동을 먹다니. 7일간의 여정이 지루할까봐 종류별로 라면을 골라서 샀는데, 그 중 가장 하이라이트였던 튀김우동을 이 자식들이 먹은 거다. 쩝쩝거리면서 먹으니 모를 리가 있나.
덥다. 미칠 듯이 덥다. 여전히 황량한 벌판을 계속 달린다. 나는 지금 ‘설국열차’에 올라탄 것인가. 꼬리칸에 있는 동지들이 떠올랐다.
너무나 덥고 지루해서 열차 칸 앞으로 가봤다. 뜨거운 물을 받는 곳에 작은 창문이 있는데 열려 있었다. 바람이 참 시원했다. 노을이 지고 있는 벌판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뷰티풀”이라 말했다. 왜 이런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내 자리에 없었나.
2일차. 바르닥
시끄럽다. 조용히 좀! 대체 왜 이 아침에 음악을 틀어 놓는 거야!
지금 여기가 어딘지 몇 시인지 모르겠지만 또 자는 수밖에 없다. 그게 시간의 흐름을 가속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가만 열차는 왜 계속 같은 장소에서 멈춰있는 것 같지? 그것보다 나는 똑같은 옷을 며칠이나 입었던 거지? 그러는 사이 내 물이 거의 없어졌다. 생수 2리터를 샀는데 벌써 바닥인 거다. 이 자식들이 다 마셨네? 에라이, 이 놈들.
36루블짜리 싸구려 식빵을 씹어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많던 한국인 여행자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다. 간혹 러시아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도 내가 할 줄 아는 건 오로지 ‘블라디보스토크’, ‘모스크바’를 외치는 것 뿐.
푸틴의 할아버지처럼 생긴 아저씨(미안 내가 아는 러시아 남자는 푸틴 대통령, 여자는 샤라포바?)가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건다.
“오, 카레야스키?”
카레야스키가 한국말이라는 걸 때려 맞춰본다. 나는 푸틴 아저씨라 속으로 불렀던 이 분은 참 괜찮았다. 문제가 있다면 역시 내 침대 아래 있는 놈들이겠지.
가끔 책을 읽고 있으면 내 침대 아래 있는 아저씨가 말을 건다. 보드카 몇 잔 마시는 모습을 보긴 했는데, 그렇다 해도 항상 눈은 풀려있고, 입술은 늘어져 정확하지 못한 발음으로 말을 하는데, 이 사람 제정신인가 싶을 때가 많다. 뭐라 말을 하는데 항상 실없는 미소를 동반한다. 나 원 참, 뭐라 말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난 또 “모스크바, 모스크바!”만 연달아 외쳐댔다.
2일차 저녁(사실 열차는 탄 날을 포함하면 3일차로 느껴지던)으로 넘어가던 시간 잡스러운 망상에 빠진다. 아직도 내가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 열차 안에는 오로지 러시아 사람뿐. 모든 게 비현실 같다. 이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해답은 자고 나면 찾게 될까? 잠이 들어봐야 어차피 똑같은 상황일 뿐인데. 역시 ‘꼬리칸’이다.
푸틴 아저씨는 옆에 있던 아줌마와 어느새 해바라기씨를 먹는데 여념이 없다. 해바가리씨를 입에 가져다 씹고 껍질을 손에 뱉는다. 다시 해바라기씨를 하나 물고 깨물고 뱉는다. 다시 해바라기 씨를 물고 깨물고 뱉는다. 둘 사이엔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깨무는 소리만 리드미컬하게 들릴 뿐.
내가 탔던 3호차의 풍경은 대략 이랬다. 앞쪽에는 언제 탔는지 웃통을 벗고 호박만한 배를 내밀고 앉아 있는 아저씨, 내 휴대폰에 관심을 갖고 대화를 시도했으나 이내 말이 통하지 않아 머리를 부여잡는 아이, 화장실만 수십 번 들락날락 하던 아저씨,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 우리는 오래전에 사라진 낱말퍼즐하던 사람, ‘도시락’ 라면을 먹는 사람, 다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길바닥에 치인다고 할 만큼 많았던 미녀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렇게 유심히 쳐다보지 않아도 기억나는 꼬리칸의 일상이었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어떤 아이의 싸이 배경음이었던 Mika의 Happy Ending을 들으며 누웠다. 풍경은 여전히 그대로,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시차는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변해있었다.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어쩌면 나는 시간을 거슬러 여행하고 있는 중인가.
갑자기 내 주변에서 때 아닌 남북 논란이 벌어졌다. 멀리서 호박배 아저씨가 참견했다. 내 티셔츠에 적힌 Republic Of Korea를 보고도 모르냐고. 옆에 있던 아줌마는 한 술 더 떠서 김일성이 지도냐고 묻는다. 맙소사!
옆에서 영어를 좀 할 줄 알았던 데니스는 내가 만 30살이라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하며,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다. 하긴 데니스는 고작 18살, 그 옆에 있던 친구 알렉산더는 23살이니 내가 엄청 많다고 느껴졌겠지.
이러는 와중에 내 아래 좌석에 있던 이상한 젊은 남자(눈 풀린 아저씨가 아닌) 난데없이 티셔츠를 바꾸자고 난리다. 마치 축구 경기를 마치고 난 후 운동복을 교환하는 것처럼 자기 옷과 바꾸자는데 난 니가 싫다고. 더군다나 그 똥색 옷은 더 싫다고! 아예 연어알까지 꺼내더니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다.
그나마 호박배 아저씨가 정상이다. 이 아저씨의 이름은 빅토르, 빅토르 최나 빅토르 안 덕분에 무척 친숙한 이름이었다. 어느새 빅토르 아저씨와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밤새 사진을 보고, 러시아 회화를 보며 대화를 시도했다.
다들 자고 있다. 열차는 여전히 달리고, 발 냄새의 향연이 시작된다. 빅토르 아저씨와는 12시 넘어서까지 이야기를 했고, 차를 마셨다. 컵이 없어서 플라스틱 용기에 담으려 하자, 어느새 데니스가 쫓아와 자기 컵을 빌려줬다. 그 다음날은 열차 안에서 빌려주는 컵을 가져다 줬다.
빅토르 아저씨는 내 침대 아래에서 잠을 자고 있던 그 무리를 향해 “바르닥”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직까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만, 대충 그 이상한 놈들에게 적절한 단어라고 이해했다. 우린 깔깔거리며 “바르닥”이라고 되새김질 했다. 자고 있던 저 놈들 정말 이상하다고.
3일차. 즐거움이 넘치는 3호차
낮엔 덥고, 밤엔 춥다. 호수가 보이기 시작해 이르쿠츠크인줄 알았는데, 빅토르 아저씨가 알려주길 치타(Chita) 호수라고 했다.
잠시 후 치타에 도착했다. 아침 9시 10분이었다. 잠깐 내렸는데 공기가 참 차다.
풍경은 여전히 같고 오늘도 카드게임 무리, 낱말 퍼즐하는 사람, 해바라기씨 먹기 그것도 아니면 잠이다. 이제 지루함이 조금 적응된다.
바깥에는 살짝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9월인데? 세상에 눈이 오다니. 정말 시베리아가 춥다는 걸 실감했다.
이제는 나를 ‘김’이라 부르며 어울리게 되었다. 특히 러시아 말을 해도 내가 대충 알아 들으면 무척 좋아했다. 아마 절정은 울란우데에서 ‘바르닥’이 내린 후가 아닐까 싶다. 그래봐야 말이 얼마나 통하겠냐만은 데니스가 간간히 영어로 통역을 해주고, 뭐 아무 이야기만 해도 막 웃게 되었다.
전부 내 주변에 모여들고 떠들었다. 오랜만에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들어,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친해졌던 빅토르 아저씨와 데니스에게 사진을 인화해 건네줬다.
사진을 뽑아주니 정말 좋아했다. 한글로 사인을 해달라며.
한참을 떠들다, 내가 언제 모스크바를 가냐는 식으로 한숨을 쉬었는데 다들 나보고 배고프냐며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배고픈 것도 아니고, 안 배고픈 상태도 아닌데 빅토르 아저씨 아까 샀던 즉석식품을 꺼내서 줬다. 햄을 꺼내 보이자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썰어서 넣었다.
아저씨가 직접 뜨거운 물을 붓고 내 앞에 갖다줬다. 기다리며 사진을 찍으니 다들 웃었다. 그때 뒤에 있던 아줌마가 계란 2개를 줬다. 아, 정말 재밌어. “쓰파시바”를 연발했다. 빅토르 아저씨가 빵까지 썰어주는 바람에 정말 배부르게 먹었다.
외국인 된 기분이랄까? 그래, 진작부터 이랬어야만 했다. 그나저나 아직도 이르쿠츠크에 도착하지 못하다니 정말 멀다.
4일차. 중국 여행자, 그리고 금발 미녀
눈발이 날린다. 안개인지.
잠에서 깨니 빅토르 아저씨가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며 소개시켜 줬다. 중국인 여자였다. 반가운 마음에 잠깐 대화를 나눠보니 중국에서 몽골로 이동, 그리고 러시아로 이동해 이 열차를 탔다고 한다.
옆에서 빅토르 아저씨가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자꾸 말을 했는데, 중국인 여자가 나보고 러시아 말을 할 줄 아냐고 물었다. 알아 듣는 나도 웃기지만, 전혀 모른다고 했다.
알고 보니 중국인 여행자는 무리가 있었다. 3명의 여행자가 있었는데, 나와 처음 대화를 나누었던 20살짜리 이핌, 27살의 남자 슈앙,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기도 하고 딱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행자가 아닌지라 말을 별로 안 했던 여자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잠깐 대화를 나눠보니 역시 ‘별에서 온 그대’를 환장하며 좋아했다. 근데 확실히 중국 사람들은 조금만 흥분하면 톤이 무척 높아진다.
정차하는 역에서 잠깐의 휴식이 유일하게 땅을 밟는 시간이다.
잠깐 여기서, 러시아 사람들의 특징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라면을 먹을 때 엄청 불려서 먹었다. 푸틴 아저씨나 빅토르 아저씨 역시 2시간 뒤에 다 불은 라면을 먹곤 했다. 그 장면을 보며 참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슈앙이 중국식 캔으로 된 식품을 줬다. 덕분에 저녁을 때울 수 있었다.
크라스야노스크에 도착했다. 여기선 열차가 무려 41분이나 멈춰 섰다. 공기도 마실 겸 잠깐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니 여자 2명이 내 아래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 명은 영어를 할 줄 알았고, 다른 한 명은 전혀 못하는지 고개만 끄덕였다. 둘은 자매였는데 톰스크에서 여기로 잠깐 여행을 왔다고 한다. 무려 15시간 걸리는 곳이라고. 역시 스케일이 다르다.
금발의 언니는 어느 배우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인상이 강하지만 잘 웃었다. 일단 영어를 할 줄 아니까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과거에는 TV 리포터를 했다고 하던데(역시!), 지금은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를 하거나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을 보니 여러 복장을 입고 찍은 사진이 많아 마치 코스튬을 연상케 했다. 바이칼 여행 사진도 구경했다.
‘바르닥’이 사라진 우리 3번 꼬리칸은 이제 평화롭다. 푸틴 아저씨와는 눈으로만 인사해도 다 통한다. 방금도 빵을 먹고 있는 푸틴 아저씨를 쳐다보니, 나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난 맛있게 먹으라고 다시 눈빛을 보내니, 나에게 빵을 준다. 사양을 했지만 빵을 내밀 던 아저씨의 성의를 봐서 한 조각 먹었더니 옆에 있던 여자가 밥을 줬다.
지루했지만 소소한 재미가 느껴졌다.
5일차. 모두 떠난 후
자고 일어난 사이 금발 미녀는 갔다. 빅토르 아저씨도 갔다. 푸틴 아저씨도 갔다.
이제는 확실히 모스크바와 가까워졌는지 건물이 자주 보인다. 라는 생각도 잠시 다시 황량한 벌판이 나온다. 사람들은 나와 같이 멍하니 창밖만 바라본다. 왜 여행자들이 한 번에 모스크바까지 가지 않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모든 게 지겨워졌다.
나에게 남은 식량도 딱 하나 뿐. 그나마 빅토르 아저씨가 내리면서 감자 즉석식품을 남기고 가서 한 끼는 더 해결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어느 역에서 내려 빵 5개를 100루블 주고 샀다. 중국 애들과 나눠 먹으려고. 다음 역에서는 중국 애들이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어찌나 이 친구들이 러시아 아이스크림 맛있다고 난리 던지.
밤에는 바로 옆에 앉은 러시아 사람 둘과 잠깐 대화를 했다. 근데 영어는 못해서 대충 대화를 이어가야했다. 여자 이름은 올라, 남자의 이름은 바렛이었던가. 몇 십 분간의 대화를 한 후 우리는 각자 잠자리로 이동했다.
상상이나 했겠는가. 내가 좁디좁은 세면대에 코를 박고 머리를 감을지, 멍하니 콘센트만 쳐다볼지,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밤에 똥을 눌지를 말이다. 그나저나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르겠다.
6일차. 잠잠잠
일찍 깼다. 멍하니 앉아있는 것도 잠시, 지겨웠다. 아직은 깜깜한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혼자 빵을 먹고 커피 마시고 앉아 있다가 더 이상 할 게 없음을 깨닫고 다시 잤다. 날이 밝아졌을 때 일어나 차를 마시고, 다시 누웠다. 중국 애들과 대화를 하다가 다시 누웠다. 누워있는 게 이곳 생활의 전부인양.
점심쯤엔 슈앙이 중국 라면을 줘서 끼니를 때우고, 어느 역에서는 먼저 나가있던 중국 애들이 마구 뛰어 오더니 “유, 유!”라며 아이스크림을 던져줬다. 중국인들의 아이스크림 사랑이란.
점점 추워졌다. 다시 중국 애들과 대화하다가 다시 누웠고, 책을 보다가 불편해서 다시 누웠다. 역시 2층이라 불편했다.
어느 역에서는 몸집이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탔는데 오자마자 밥을 먹더니 주무신다. 거의 남산만한 배를 소유하고 있던 이 할아버지... 코를 심하게 곤다.
7일차. 모스크바 입성
비가 와서 더 추운 듯하다. 모스크바까진 불과 5시간 남았다.
2시간 남았다. 설렌다. 벌써부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한국이라면 서울에서 대구까지 갈 시간인데 여기선 2시간이 금방 지나갈 것 같았다. 어느새 모스크바에 거의 도착해, 도심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해가 보인다. 날씨가 맑아진다.
모스크바에 도착해 신난다고 내렸을 땐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10월 1일, 영하의 날씨를 기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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