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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가 어떤 도시인지 파악하기 위해 첫날은 무작정 걸었다. 바쿠 올드 시티 주변을 걷다가 카스피해가 보이는 공원(구글에도 단순히 Seaside Boulevard로 나와서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으로 갔다. 처음에는 별거 아닌 공원으로 생각했다가 그 규모에 압도당했다. 바쿠가 카피스해를 따라 형성된 도시인데 카스피해와 맞닿은 면은 전부 공원으로 생각해도 될 정도다.


아무래도 서로 증오하는 관계인 아르메니아가 바로 옆 동네라 그런지 아제르바이잔도 민족의식을 일깨울 국기는 어딜 가나 볼 수 있다. 플레임 타워에도 국기 조명이 나오고, 여기 공원에도 커다란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거대한 국기가 있는 플래그 스퀘어가 있다는 걸 나중에 알고 난 후 이건 커다란 축에도 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슬람교가 90%를 넘어 사실상 이슬람 국가로 봐도 무방한 나라지만, 다른 이슬람을 믿는 나라와는 달리 분위기가 완전히 개방적이다. 차도르는 아예 보질 못했고, 히잡을 쓴 여성도 거의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더구나 가장 놀랐던 건 공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들을 봤을 때다.


이슬람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좀 심한 그런 나라들과 비교할 땐 의외의 풍경이라고 할까. 


바다인지 호수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카스피해는 짠내가 났다. 기분 탓일까.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카스피해를 보면서 아제르바이잔은 그래도 옆 나라들 보다는 사정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중동지역의 오일 머니와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겐 일단 물가 비싼 것만 봐도 체감상으로 알 수 있다

바람이 불어 날씨가 쌀쌀했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경치를 구경하며 걸었다. 원래는 끝까지 가볼까 생각했는데, 날이 점점 어두워져 대관람차 주변까지만 걷고, 플레임 타워 야경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


날이 어두워질 즈음 공원 주변은 하나 둘씩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러시아도 그랬지만, 구 소련이었던 나라들의 특징은 오래된 건물에도 조명을 달아 밤에도 건물의 윤곽이 드러나게 만든다. 바쿠는 그것도 모자라 도로 아래쪽에도 불이 들어온다.


아무도 타지 않는 것 같은 대관람차에도 화려한 조명이 켜졌다. 알록달록한 색상에 여러 가지 패턴으로 움직이는 조명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플레임 타워에 불이 언제 들어오는지 몰라 계속 기다렸다. 바람이 세게 불어 그냥 돌아갈까 생각을 수십 번 했을 무렵, 플레임 타워에 불이 들어왔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그 불이 아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난 플레임 타워 꼭대기에 진짜 불기둥이 올라올 줄 알았다. 정말이다. 플레임 타워는 그냥 화염 모양의 조명이 건물 전체를 감싸는 형태였다. 시간이 지나면 아제르바이잔 국기 색깔인 파랑, 빨강, 초록의 조명으로 바뀌고, 그 다음엔 아제르바이잔 국기를 흔드는 사람이 조명으로 표현된다.

아무튼 내가 기대한 화염은 조명뿐이었다. 설마 이런 멍청한 생각은 나밖에 안 했으려나. 산유국이니까, 기름이 펑펑 나오니까 불기둥쯤은 도시 한 가운데서 볼 수 있을 거라는 그런 멍청한 생각 말이다. 근데 그런 위험한 건물은 아무도 원하지 않겠지.


그나저나 사진을 찍고 있을 무렵 누군가 지나가면서 사진을 찍어 보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군말 없이 찍었는데, 좋아하며 그냥 간다.


아제르바이잔도 마찬가지로 여행자를 보면 무척 신기해하는 편이다. 캅카스(코카서스) 3국 중에서 경제력은 조금 나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까다로운 비자 시스템이 여행자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유럽 사람들도 비자 받기 어렵다고 하던데, 대체 2015년 유럽피언게임은 어떻게 치를 건지 궁금하기만 하다. 덕분에 가끔 지나가다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거나, 사진을 찍어 보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


아무튼 난 건물이나 가로등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 플레임 타워를 찍어 보려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시도해봤다.


다음날 만난 파리다와 함께 전망대로 올라가 플레임 타워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되었고, 덤으로 멋진 야경도 감상했다.

낮에도 분명 보았을 인공 베네치아는 밤에 무척 근사해 보였다. 그냥 잠깐 걷다가 플레임 타워 사진을 찍자고 나갔는데, 한 가지 느낀 점이라면 바쿠는 낮보다 밤이 훨씬 괜찮아 보였다. 어디서나 보이는 플레임 타워도 있고, 오래된 건물이 조명을 받으면서 도시 분위기를 유난히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바쿠에서 3일만 있어 많이 돌아다니진 못했지만, 확실히 낮보다 밤이 더 괜찮았다.


저는 지금 세계여행 중에 있습니다. 이 글이 마음에 든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 및 응원을 해주실 수 있습니다. 작은 도움이 현지에서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배낭여행자에게 커피 한 잔 사주시겠습니까?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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